역사를 보다 2 - 역사의 변곡점을 수놓은 재밌고 놀라운 순간들 역사를 보다 2
박현도 외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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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느낀 점을 정리한 서평입니다.>


역사책을 읽을 때 느끼는 가장 큰 장벽 중 하나는 ‘거리감’이다. 책 속 인물들은 너무 먼 시대에 살았고, 사건들은 나와 무관하게 흘러간 듯 느껴진다. 하지만 "역사를 보다 2"는 그 거리감을 단숨에 좁혀버린다.



이 책은 고고학, 이슬람, 이집트를 전공하고 연구하는 세 명의 전문가들이 유튜브 채널 ‘보다’에서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결과물이다. 세 사람은 각자의 전문 분야를 바탕으로, 우리가 교과서나 주류 역사책에서 잘 다루지 않는 지역과 시선으로 역사를 풀어낸다. 그 덕분에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치 새로운 창문이 열리듯, 우리가 놓치고 있던 역사적 풍경들이 펼쳐진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흔히 역사를 이야기할 때 중심에 놓이는 서구 열강, 일본, 중국의 프레임에서 과감히 벗어난다. 대신 이집트,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그리고 우리의 고대사로 시선을 확장한다. 덕분에 역사가 더 이상 ‘서구가 만든 이야기’나 ‘가까운 나라와의 관계사’로만 머물지 않는다.

이를테면, 이집트를 다룰 때 단순히 피라미드와 파라오의 이미지만을 반복하지 않는다. 고대인의 생활 방식, 그들의 건축 기술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사막과 나일강이 만든 독특한 문화권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사 속에서 작동했는지를 깊이 들려준다. 전쟁 뉴스로만 접하던 중앙아시아의 역사도, 현지의 환경·문화·정치적 맥락 속에서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이야기에 한국사가 가볍게 스며 있다는 것이다. 고조선과 유라시아를 연결하며 시야를 확장하고, 한글 이전의 문자 ‘이두’처럼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적 사실을 불쑥 꺼내준다. 이 연결고리 덕분에 우리는 ‘세계사’라는 낯선 바다 위에서도 발을 디딜 수 있는 한국의 작은 섬을 발견하게 된다.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말맛’에 있다. 전문가들의 대화는 논문처럼 딱딱하지 않고, 그렇다고 근거 없는 잡담도 아니다. 고증과 유머가 적절히 섞여 있어, 마치 오랜 친구 셋이 술자리에서 옛날이야기를 풀어놓는 것을 옆에서 듣는 기분이다. 예를 들어 징기스칸을 영웅으로만 그리는 전통적 서사 대신, 여러 대륙의 기록을 비교하며 그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세계문화유산을 둘러싼 각국의 입장 차이, 파도의 파장만으로 항해가 가능했던 고대 기술 같은 이야기는 역사서에서 자주 접하기 힘든 ‘생활 속의 역사’다. 이런 이야기들이 귀에 쏙쏙 들어오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더 깊은 공부로 나아가고 싶어지게 된다.



이 책은 전문적인 역사 지식을 ‘확장된 시선’으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학생들이 세계사를 공부할 때 단편적인 연도나 사건만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다른 지역·문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동시에 역사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온다. 굳이 공부하려는 마음가짐이 아니더라도, 재미있게 읽다 보면 어느새 지식이 쌓인다. 나처럼 단순히 ‘재미있네’ 하며 읽기 시작했다가,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호기심이 계속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역사를 보다 2"는 ‘많이 아는 아저씨들의 수다’ 같은 책이다. 하지만 그 수다는 잡소리가 아니라, 인류가 걸어온 길 위에 숨겨진 풍경들을 발굴하는 발굴 현장이다.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싶거나, 세계사를 더 넓은 시선으로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게’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인 선택이 될 것이다. "보다"라는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며 오늘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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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천만 원 수익 내는 주식 투자 기술
인디플랜(안형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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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내용을 정리한 서평입니다.>

안형준 작가의 『1년에 1천만 원 수익 내는 주식 투자 기술』을 읽기 전, 나는 내가 주식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저 ‘산’ 적만 있을 뿐, 투자자라기보다는 소비자에 가까웠다. 쇼핑몰에서 물건 고르듯 종목을 고르고, 카트에 담듯 매수한 뒤에는 그냥 잊어버렸다. 수익이 나도 손을 못 대고, 손실이 나도 감정만 요동칠 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 책을 펼친 이유도 단순했다. "나도 수익 좀 내보고 싶어서."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이번엔 좀 다르게 해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안형준은 ‘인디플랜’이라는 유튜브 채널로 이미 꽤 유명한 인물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잘 몰랐다. 다만 제목이 내 상황에 딱 맞았고, 표지가 친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책이 “초보를 위한 책”이라는 점이었다. 읽기 시작하자마자, ‘이건 나한테 하는 말이구나’ 싶었다.

주식 책이라고 하면 흔히 숫자와 그래프, 전문용어가 빼곡히 들어차 있거나, 지나치게 ‘초고수’들의 이야기로만 채워져 있어서 초심자는 입구에서부터 쫓겨나기 일쑤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초보의 눈높이에서 쓰인 책’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아니, 어쩌면 초보가 초보를 위해 쓴 책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한때 자신도 주린이였던 저자의 시선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리고 그건 읽는 내내 묘하게도 위로와 공감을 안긴다.

예를 들어, 주식을 처음 시작할 때 누구나 겪는 ‘멘붕 포인트’들이 있다.

▶ 이 회사 좋아보여서 샀는데 주가는 왜 떨어지는 거지?

▶ 차트가 무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 갑자기 공포감이 밀려온다. 손절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런 질문에 대해 저자는 기술적인 해법뿐 아니라 심리적인 장치와 구조를 동시에 제시한다. 주식의 흐름을 분석하는 기술적 지표(이동평균선, 볼린저밴드 등)와 함께, 투자자의 심리가 주가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는지를 함께 설명하면서 "왜 그런가?"에 대한 맥락을 계속해서 붙인다. 그래서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단순한 공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이해’하게 만든다. 그 이해가 곧 자신감으로 전환된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앞부분에서 차트를 읽는 기초에 대한 설명이 좀 더 친절했으면 좋았겠다. 기술적 분석 도구 중에서도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지표들이 빠르게 지나가면서 설명되기 때문에, 아주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는 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은 책의 후반부 실전 사례들이 보완해준다. 주가가 움직인 패턴, 차트를 보고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실제 거래 화면과 함께 설명한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학습 효과가 쌓인다.

이 구조 덕분에, 앞에서 막연했던 개념이 뒤로 가며 선명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 책이 단순히 돈 버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안형준 작가는 주식 투자라는 도구를 통해 ‘현실과 감정’ 사이의 균형을 잡는 법을 이야기한다. 욕심이 생기는 순간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공포감에 사로잡혔을 때 어떻게 판단을 유지할 것인지, 결국 투자는 수익률이 아니라 ‘자신을 관리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런 내용은 숫자나 공식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이고, 실제 투자 경험에서 우러나온 ‘태도의 조언’이라서 더 울림이 크다.


책을 덮고, 나는 바로 영웅문 앱을 깔았다. 그리고 예전처럼 충동적으로 매수 버튼을 누르지는 않았다. 종목을 검색하고, 뉴스 흐름을 보고, 차트를 좀 더 천천히 들여다볼 예정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물론 당장 큰 수익이 생기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방식으로 주식을 ‘보기' 시작했다. 그게 가장 큰 변화다.

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했던 건 ‘1년에 1천만 원’이라는 수익의 액수 자체가 아니다. 누구나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차근차근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었다.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잊고 있었던 주식 계좌는 그데로 묻어두고, 새로 연 계좌를 다시 통해, 이번엔 무작정 사지 않고, 공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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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라서 더 끌리는, 아르헨티나 - 지구 반대편 하늘 아래 머무른 3년의 기록
백상아 지음 / 미다스북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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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남미, 아르헨티나. 한반도 반대편 끝에 있어 시간차도 계절도 모두 반대인 나라. 나에게 아르헨티나는 축구 잘하는 나라, 메시의 나라, 그리고 언젠가 기사에서 봤던 200%가 넘는 초인플레이션의 나라 정도였다. 그 이름은 익숙하지만 실체는 흐릿하고 멀게 느껴졌던 나라. 그런 아르헨티나가 이 책을 통해 조금 더 또렷해졌고, 단지 ‘머나먼 이국’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온 시간과 맞닿아 있는 거울 같은 나라로 느껴졌다.


이 책은 한 30대 여성이 3년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파견교사로 머물며 직접 경험하고 관찰한 아르헨티나의 일상과 정치, 역사, 사람, 음식, 문화에 대한 기록이다. 흔히 말하는 여행 에세이처럼 반짝이고 낭만적인 이미지들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이 책은 오히려 그 반대편에서 아르헨티나를 바라본다. 멀리 있는 이국의 풍경이라도 진창에 발을 빠뜨리고, 습기 찬 벽지 냄새를 맡으며, 소매치기를 걱정하며 살아내는 현장의 냄새가 묻어난다. 그렇기에 책장을 덮고 나면 관광이 아닌 ‘삶으로서의 여행’을 한 기분이 된다.

아르헨티나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역사를 품고 있다. 식민지배와 전쟁, 군부독재, 민주화 투쟁이라는 굵직한 역사적 굴곡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닮아 있다. 하지만 지금, 두 나라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위기에 시달리고 있으며, 복잡하고 불합리한 세법은 젊은 세대에게 희망을 앗아가고 있다. 책에서는 “세금이 폭탄처럼 돌아온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일상에 깊게 파고드는 공포로 느껴진다. 급기야 많은 젊은이들이 나라를 떠나거나 해외에 계좌를 개설하며 다른 삶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이민자들은 자신의 삶을 개척해왔다. 저자가 만난 재외한인 1.5세대, 2세대들은 치열하게 공부하고 노력해 지금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이질적인 환경 속에서 적응하고, 현지 사회에 녹아들며 이민자의 정체성을 단단히 다져왔다. 그들이 뿌리내린 이야기는 짧은 책 속 한 챕터일 뿐이지만, 그 뒤에는 무수한 고통과 끈질긴 생존의 역사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나 역시, 이방인의 마음으로 어떤 도시의 아파트를 계약하려 하고, 치안 걱정을 하며 길을 걸어가는 장면들을 상상하게 된다.


책은 아르헨티나의 대자연과 풍경, 그리고 문화도 놓치지 않는다. 이과수 폭포의 장쾌함, 고산지대의 청명함, 그리고 정열적인 탱고와 와인, 전통 요리와 마테차까지. 이국의 낯선 언어와 음식, 문화가 책 속에서는 놀랍게도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루이스 보르헤스 같은 문인은 이제 익숙한 이름이 되었고, 마테차는 이미 우리 생활에도 스며든 음료다. 탱고는 TV 광고나 공연을 통해 이미 귀에 익은 리듬이다. 그러고 보면, 지리적 거리는 먼데 정신적 거리는 의외로 가까운 나라였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책’이라기보다는 ‘삶에 대한 책’이다. 멀고 낯선 나라에서의 생존, 관계 맺기, 관찰, 적응과 같은 일상의 감각들이 생생하게 녹아 있다. 예를 들어 집을 구하려다가 차별을 겪은 이야기, 외국인으로서 느끼는 소외감, 그리고 마트의 물가에 놀라는 순간까지. 그런 소소하지만 생생한 장면들이 오히려 이 나라의 본질을 더 잘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을 덮으며 마음 한구석에서 ‘언젠가는’이라는 말을 꺼내본다. 언젠가는 그 이과수 폭포 앞에 서보고 싶고, 언젠가는 파타고니아의 빙하 위를 걷고 싶다. 언젠가는 소보다 사람이 적다는 그 땅에서 소고기를 마음껏 먹어보고 싶다.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머나먼 나라지만, 이 책을 통해 그 먼 나라와 나 사이에 작지만 단단한 다리가 생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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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월드 - 심해에서 만난 찬란한 세상
수전 케이시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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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은 솔직 후기입니다.>


수전 케이시의 "언더월드"를 펼치자, 책 한가운데서 바닷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익숙한 바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는 해변의 너울거리는 파도, 햇빛 아래 반짝이는 표면에 불과했다. 저자가 탐험하는 바다는 그 아래, 훨씬 더 깊고, 어둡고, 고요하고, 동시에 찬란한 심해(深海)였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어느새 그녀와 함께 방수복을 입고 심해를 향해 천천히 가라앉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구 표면의 65퍼센트, 생물 서식지의 95퍼센트가 심해이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공간의 80퍼센트는 아직 제대로 된 지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달이나 화성에 더 많은 관심과 자원을 쏟는 동안, 정작 우리 발 아래 펼쳐진 또 하나의 우주는 긴 침묵 속에서 숨을 참고 있었다.

심해는 단지 과학의 영역이나 모험의 대상이 아니다. 이 책은 한 탐험가가 미지의 존재를 향해 보내는 절절한 러브레터이며, 그녀처럼 바다를 너무나 사랑해서 바다처럼 살고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염시키고자 하는 음모다. 그녀의 문장은 다정하고 단단하다. 각 장마다 심해를 향한 마음이 담겨 있고, 절정에 이르러 “이제 박광층으로 들어갑니다”라고 선언할 때, 나도 덩달아 긴장되고 설레일 수밖에 없다.





책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실제 심해 탐사에 참여한 장면들이다. 초심해저대, 무광층, 박광층… 해수 1만 미터 아래, 빛이 도달하지 않는 세계에서 저자는 박테리아가 만드는 불빛, 촉수가 반짝이는 생물, 뼈가 거의 없는 물고기, 심지어 플라스틱 쓰레기와 마주한다. 저자의 시선은 경이로우면서도 현실적이다. “너무 낯설어서 무섭고, 너무 완벽해서 아름답다”는 말이 이 세계에 딱 맞는 표현이다.

무서움과 아름다움은 늘 나란히 선다. 심해의 생명체는 대개 투명하거나 자가발광을 하거나, 극도의 압력을 견디기 위해 몸을 비현실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의 육지 기준으로는 기괴함 그 자체지만, 이들의 존재는 지구의 진짜 얼굴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동시에 책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조명한다. 우리가 몰랐기에 쉽게 무시할 수 있었던 세계가 사실은 우리의 기후를 조절하고, 온실가스를 흡수하며, 과거의 역사를 저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조목조목 짚는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이라는 현실. 심해를 사랑하기에 가능한 분노. 케이시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지만 단호하다. 바다 아래에 깔린 광물들을 두고 전 세계 기업들이 경쟁하고, 심해 채굴권을 판매하는 시장이 형성되고, 쓰레기와 독성물질이 쌓이고 있다. 아직 우리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이 공간이, 돈의 논리에 의해 서서히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은 책 전체에 무겁고 차가운 긴장감을 더한다.

작가는 말한다. 심해는 “지구 자체”라고.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그저 과장된 은유처럼 들렸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말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사실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우리는 우주보다 바다를, 그것도 가장 깊고 어두운 바다를 더 먼저 알아야 한다.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지구의 심장은, 바로 그곳에서 뛰고 있으니까. 탄소를 흡수하고, 지구 내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새로운 생명의 기원을 품고 있는 심해는, 우리의 과거이자 미래이며 현재다.

"언더월드"는 단지 지식이나 정보를 주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시선을 바꿔놓는다. 심해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깨우고, 그 깊은 어둠 속에서 생명과 가능성과 사랑을 발견하게 한다. 저자의 표현처럼 “그냥 멈춰요. 기다려요. 우리가 대안을 생각할 기회를 줘요.” 그 속삭임은 이 책을 통해 진심으로 전해진다. 이제 나도 심해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이제 집앞 바다에 해변을 걷다보면 저 멀리 심해를 한번쯤 생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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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삼킨 세계사 - 12척 난파선에서 발견한 3500년 세계사 대항해
데이비드 기빈스 지음, 이승훈 옮김 / 다산초당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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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문명의 역사는 대개 땅 위에서 시작된다. 도시가 세워지고, 길이 뚫리고, 제국이 확장되는 서사는 지도를 따라 펼쳐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모든 역사가 육지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다는 언제나 인간의 도전이자 통로였고, 교역과 전쟁, 이주의 현장이었다. 문제는 그 대부분이 바다에 잠겨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 무너져 내려 잊혀졌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어느 날 난파선 하나가 건져 올린 청동 조각 하나, 깨진 항아리 하나를 통해 되살아날 수 있다는 걸 이 책은 증명해 보인다. 데이비드 기빈스의 "바다가 삼킨 세계사"는 그렇게, 바다 속에서 역사의 실마리를 건져 올리는 책이다.


책장을 펼치면, 먼저 저자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다. 데이비드 기빈스는 세계적인 수중고고학자이며 동시에 수많은 대중 역사서와 소설을 써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단지 유물에 대한 고증만으로 이루어진 과학적 보고서가 아니다.

각 난파선에는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목소리와 감정이 입혀져 있고, 침묵하던 바다에 이야기를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따라 읽는다는 건 단순히 선박의 구조나 해류의 방향을 공부하는 일이 아니라, 파도에 삼켜졌던 세계의 풍경을 천천히 복원해나가는 일이다.


책에는 총 12척의 난파선이 등장한다. 그 범위는 놀랍도록 넓다. 선사시대 도버 해협을 건넌 배에서부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피해 은괴를 수송하던 영국의 군함에 이르기까지, 거의 3,500년에 걸친 해양사가 집약되어 있다.


이 책은 그 난파선들을 단순히 시대순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각각의 배에는 그 시대를 통과한 사람들이 살았고, 물건이 오갔으며, 정치와 권력이 얽혔다. 난파선은 그 시대의 단면을 정지된 채로 보여주는 하나의 프레임이다. 파편처럼 남겨진 유물들은 당대의 기술 수준이나 경제 시스템을 말해주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울루부룬 난파선이다. 기원전 14세기, 지금의 터키 인근 해역에서 발견된 이 배는 당시 동지중해 전역에서 수집된 수많은 유물들을 실은 채 침몰했다. 코끼리 어금니, 구리괴, 주석, 이집트풍 장신구, 미케네 양식의 도자기까지. 마치 고대의 글로벌 쇼핑리스트라도 펼쳐 놓은 듯 다양한 문명의 조각들이 한 배에 실려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유물 컬렉션이 아니다. 이 배가 어떤 항로를 따라 어디서 출발했고, 무엇을 왜 실었는지를 추적해 나가다 보면, 바다를 통해 얽히고설킨 고대 지중해 문명의 네트워크가 그려진다. 교과서 한 페이지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 역사의 입체성이 바닷속에서 드러난다.


흥미로운 건, 저자가 각 선박의 이야기를 서술하면서 등장인물들의 구체적인 삶을 함께 상상한다는 점이다. 기원전의 궁수, 헬레니즘 시대의 상인, 로마 시대의 노예, 제국주의 시대의 선장까지. 이들은 모두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발굴된 유물과 사료를 바탕으로 충분히 상상 가능한 사람들이며, 그들을 통해 이야기는 단단해진다.


고고학적 사실과 인간적인 상상력이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를 보완하며 몰입감을 준다. 수중고고학이라는 장르는 때때로 너무 기술적이거나 전문적일 수 있지만, 기빈스는 정반대로 간다. 우리는 바닷속의 산소통을 단 채, 저자와 함께 선체로 내려가고, 해저의 빛과 조류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바다가 삼킨 세계사"는 제목처럼 과감한 선언을 담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라는 개념은 육지 중심, 제국 중심의 이야기일 때가 많다. 이 책은 그 시선을 전복한다. 바다는 분명히 인류사의 주변부가 아니며, 해양은 역사의 숨겨진 중심이라는 것이다.


바다는 소통의 통로였고, 충돌의 현장이었고, 문명의 흐름이 가장 먼저 감지되는 공간이었다. 난파선 하나가 발견되면, 우리는 단순히 잃어버린 배를 찾는 게 아니라, 잊고 있던 질문을 되찾는다. 왜 이 배가 여기에 침몰했는가, 이 항로는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누가 이 배를 만들었고, 누가 그 안에서 죽었는가.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고고학 서사가 아니다. 정밀하고 웅장한 ‘바다의 역사서’이자, 동시에 바다를 통해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육지에서의 삶이 실패로 끝났을 때 바다로 눈을 돌렸던 사람들, 이민자와 모험가, 제국과 피식민자, 생존자와 침몰자들이 남긴 흔적은 때로 파편으로만 존재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진실한 목소리일지도 모른다.


책을 덮고 나니, 내가 바다를 얼마나 단순하게 보아왔는지 알게 됐다. 파랗고 광활한 풍경 뒤에는 수천 년간 누군가가 지녔던 두려움과 용기, 갈망과 상실이 고스란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데이비드 기빈스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건져 올려, 독자 앞에 펼쳐 놓는다. 마치 고대의 수면 위에 다시금 돛을 올리는 것처럼, 그가 불러낸 바다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새로운 세계사로 항해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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