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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의 여름
루시 스티즈 지음, 노진선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8월
평점 :
[르온서평단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올해 여름은 유독 무더웠다.
그래서인지 <에티의 여름>이라는 제목과 북커버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 책은 지금 읽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 책의 여름은 뜨거웠다.
햇살뿐 아니라 사람들의 욕망과 비밀까지 끈끈하게 달라붙는 여름이었다.

<에티의 여름>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프랑스 프로방스를 배경으로 한다. 전쟁이 남긴 상처와 스페인 독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아직 곳곳에 남아 있는 시대. 그와는 대조적으로 프로방스의 농장과 화실에는 눈이 부실 만큼 강한 햇살이 쏟아진다.
아름답지만 외부와 단절된 공간.
그래서 오히려 그 안에서 사람들의 욕망과 거짓말, 집착은 점점 더 크게 부풀어 오른다.
이곳을 찾아온 기자 조지프는 천재 화가 타르튀프, ‘타타’를 취재하기 위해 그의 외딴 작업실에 머물게 된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뜻밖에도 타타의 모델이 되고, 한 달 동안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조카 에티와 얽히기 시작한다.

에티와 조지프는 서로를 향한 호기심과 육체적인 끌림으로 가까워진다. 하지만 조지프가 에티가 숨기고 있던 거대한 비밀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끝까지 자신의 이름과 권위를 지키려는 타타와, 에티를 에티로 살게 하려는 조지프. 그 사이에서 에티가 오랫동안 지켜온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에티는 처음부터 자신을 설명하는 인물이 아니다. 말보다 행동이 빠르고, 사람보다 먼저 공간을 살핀다. 조용히 타타의 주변을 정리하고 필요한 것을 준비하며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그런 에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녀가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정말 그 시대 어딘가에 살았던 사람처럼, 그리고 내 앞에 움직이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책 속에서 조지프가 타타의 그림을 바라보며 묘사하는 장면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타르튀프는 마치 햇살 그 자체를 병에 담아 화폭에 쏟아붓는 듯하다.”
이 문장은 조지프가 바라보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에티의 여름>이라는 소설 자체를 설명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작가 역시 역시 ‘프로방스에는 햇살이 내리쬔다’고 단순히 말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그 햇살 아래 서 있게 만든다.
농장의 공기와 화실의 냄새, 뜨거운 피부와 식탁 위의 정물, 오후의 빛과 저녁이 찾아오기 직전의 묘한 불안을 문장으로 그려낸다.

작가의 섬세하고 감각적인 문체 덕분에 책 속의 정물과 풍경들은 마치 눈앞에 놓여 있는 것처럼 선명했다. 한 장면 한 장면을 읽는다기보다 그림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꽤 초조하게 읽었다.
뒷이야기가 궁금해 빨리 넘기고 싶은데, 이 문장과 이 공간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어서 자꾸만 속도를 늦추게 되는 이상한 독서였다.
로맨스가 있고 미스터리가 있고, 예술과 소유에 대한 질문이 있다.
책은 이런 사람들이 쓰는 건가.
다 읽고 나서 조금 허탈할 정도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토리의 짜임새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인물에게 독자를 깊숙이 빠뜨리는 힘이 대단했다. 햇살과 욕망, 사랑과 비밀이 뒤엉킨 한여름의 프로방스에서 나 역시 한동안 에티와 조지프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에티의 여름>은 아마 오래도록, 에티를 잊지 못하게 만드는 여름으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