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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실수
강지영 지음 / STORY.B(스토리비) / 2025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네 터전을 다오. 내가 뿌리 내리게.”
이건 단화의 절박한 외침이면서 강지영의 신작, <양의 실수>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누군가는 뿌리를 내리고 싶어 하지만, 누군가는 그 자리의 모든 인연에 집착하고 발버둥친다. 그 욕망이 뒤엉켜 만들어내는 혼란과 분노, 그리고 서늘한 연민이 페이지마다 스며 있다.

이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이면서 동시에 복수극이고,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줄거리나 반전을 설명하기보다, ‘읽는 체험’ 자체가 중요하다. 읽는 내내 마치 불안한 꿈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었다. 한 문장을 읽을 때마다 심장이 미세하게 뛰었고, 눈앞이 좁아지는 듯한 긴장감이 이어졌다.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는 사실이 그걸 증명한다.

비위가 약한 나로서는 몇몇 장면이 분명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자극은 단순히 ‘폭력적인 장면’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를 정면으로 응시할 때 오는 감정적 충격이었다. 우리가 외면해온 감정들, 예컨대 ‘질투’, ‘후회’, ‘무력감’ 같은 것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그 불편함이 이상하게도 통쾌했다.
특히 작가는 인물의 내면을 묘사할 때 놀라울 만큼 섬세하다. 나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동시에 이해하게 되는 기이한 공감 속에 빠져들었다. 낯선 공간, 낯선 사람, 낯선 감정임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공감할 수 있었다. 소설속의 극악 무도한을 이해하는 감정이 스르륵 생겨났다. 이런 감정의 미묘한 층위를 정확히 포착하는 작가의 시선이 인상 깊었다.

책을 덮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 한켠에서 이상하게도 해방감이 느껴졌다. 누군가의 복수가 끝났는데, 그 끝에 '제피'라는 새로운 시작이 있다. 복수라는 행위가 가진 파괴적 힘 속에서, 작가는 ‘인간다움’이라는 역설적인 온기를 건져 올린다. 그리고 그 온기는 오래 남는다.
나는 강지영 작가의 전작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양의 실수>를 통해 그녀의 세계를 엿본 지금,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졌다. 이야기를 짜는 기술보다 더 깊은, 인간의 본성과 감정의 결을 다루는 힘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장을 넘길 때마다 숨이 막히고, 그 숨막힘 속에서 묘하게 위로받는 경험. 그게 바로 <양의 실수>가 준 가장 큰 감정이었다.

결국 이 책은 이렇게 요약된다.
기괴하고, 궁금하고, 통쾌하다.
그 세 단어가 내 독서의 모든 체험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기괴함 속에서,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하게 되었다.
"모든 우울증의 시작은 크고 작은 모욕감이라고 했다. 잠들기 전,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 조금 오래 샤워하는 날, 우울증 환자들은 지난 모역과 수치를 되새김한다. 그래서 불면증이 생기고, 택시를 타고, 헐레벌떡 젖은 몸을 털어내며 자책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뭐가 그렇게 겁나요. 내가 있잖아. 괴물, 좀비, 미친년 유양이 다 해결할 텐데 긴장 풀어요."
"나는 강의 부탁을 들어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꾸준히 내게 필요한 것을 쓱스럽게 요구하고, 빈손으로 찾아온 날 박대하지 않았다. 케이크를 사 오는 일은 없을 테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모두를, 그리고 모든 걸 용서한 강은 평온한 얼굴로 나를 배웅했다."
"나 또한 내게만 충실한 사람이었다. 모든 문제와 상황을 내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매듭지었 왔다. 대게는 회피였지만 이따금은 살인이 되기도 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