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이야기 - 사랑도 운명도 스스로 쟁취하는 조선 걸크러시 스토리
황인뢰 지음 / 예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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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숲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황인뢰의 <장미 이야기>는 조선 궁궐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어드벤처 소설이다. 2026년 3월 출간된 이 작품은 사랑과 운명, 그리고 스스로 삶을 개척하는 여성 주인공 '장미'의 이야기를 중심에 둔다. 출판사는 이 작품을 "사랑도 운명도 스스로 쟁취하는 조선 걸크러시 스토리"라고 소개하며, 총 408쪽에 걸쳐 궁궐을 무대로 한 모험과 로맨스를 함께 펼쳐낸다. 한문소설 <지봉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점도 흥미롭고, 작가 스스로 이 작품을 "슬갑소설"이라 부른다는 것도 꽤나 독특하다.



황인뢰라는 이름은 드라마 팬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궁〉, 〈궁S〉, 〈돌아온 일지매〉, 〈장난스런 키스〉, 〈러브 어게인〉, 〈심야식당〉 등 다채로운 작품을 연출해온 그는 사랑과 관계, 감수성, 그리고 섬세한 미장센으로 꾸준히 호평을 받아온 연출가다. 초기에는 실험적이고 감각적인 멜로드라마로 이름을 알렸고, 이후에는 대중성 강한 로맨스와 청춘물로 영역을 넓혀왔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소설이라는 새로운 매체로 독자 앞에 섰다.



그리고 그 선택은 꽤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오랫동안 드라마와 단편 작품에서 쌓아온 영상미, 여백의 미, 도시적 감성이 소설의 문장과 장면 구성 속에 고스란히 살아있다. 읽다가 표현이나 설명이 어려운 장면에서는 망설임 없이 현대의 모습을 예로 던져주어 독자들이 소설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점도 재미있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장미는 몰락한 가문의 후손이지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인물이다. 거리와 궁궐을 오가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꾸려는 그녀의 태도는 현대 여성보다 앞서가는 것 같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남장도 마다하지 않는 대담함, 위기 앞에서도 기지를 잃지 않는 당돌함이 장미라는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만든다. 조선이라는 시대적 배경 위에 놓인 그 자유로운 정신이 작품에 묘한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은 조선이라는 배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방식에 있다. 역사적 고증에 무게를 두는 사극의 문법을 따르기보다, 궁궐이라는 공간을 서사의 긴장감을 높이는 무대로 활용한다. 화려하지만 위험하고, 아름답지만 잔인한 궁궐의 이중성이 장미의 모험에 긴장감을 더하는 방식은 연출가 출신 작가만이 구사할 수 있는 감각이다.



이 책은 읽기 쉬운 문장과 생생한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읽히면서도 장면 하나하나가 눈에 선명하게 그려진다는 것은 소설로서도, 대중 독자를 향한 작품으로서도 분명한 덕목이다. 특히 드라마를 보는 듯한 빠른 전개 방식은 활자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도 진입 장벽을 낮춰주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장미 이야기>는 묵직한 문학적 사유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에게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캐릭터를 앞세우고, 로맨스와 어드벤처를 능숙하게 버무린 이 소설은 황인뢰라는 이름이 가진 감각을 충분히 증명해 보인다.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수하는 소녀 장미의 모험과 사랑에 한번쯤 빠져드는 것,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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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 첫걸음 - 개설부터 글쓰기까지, 초보자를 위한 블로그 기초, 개정증보판
전진수 지음 / 혜지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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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숲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전진수의 『네이버 블로그 첫걸음』은 네이버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다. 개설부터 디자인, 글쓰기, 운영 방향까지 초보자가 바로 따라갈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개정 증보판에서는 "개설부터 글쓰기까지, 초보자를 위한 블로그 기초"를 전면에 내세운다. 블로그를 단순한 취미가 아닌 자신만의 기록이자 자산으로 키워나가는 관점을 책 전반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을 집어 든 건 블로그 자체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남들은 블로그 하나로 이것저것 많은 것을 이뤄낸다고 하는데, 유독 내 블로그에만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이유가 혹시 아주 기초적인 무언가를 놓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 막연한 의심이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살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결국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게 만들었다.



책의 목차는 그 의문에 꽤 성실하게 답해준다. 단계별, 분야별로 짜임새 있게 정리되어 있어 어느 부분에서 막히더라도 해당 챕터를 바로 찾아볼 수 있는 구조다. 완전 초보들도 따라하다보면 블로그에 금방 익숙해 지도록 구성되어 있고, 원하는 부분을 찾아서 읽기도 쉽기 때문에 두고두고 읽어도 될 참고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사용 설명서에 그치지 않는다. 나처럼 그저 그런 조잡한 글들로 블로그를 채워오던 사람이라면, 낯선 인플루언서 생태계나 블로그 마켓의 세계를 제법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블로그로 수익을 내고 싶은 이들에게는 입문 교양서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낸다. 이 분야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 파트만으로도 블로그 경제의 큰 그림을 어느 정도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분명해진 것이 있다. '블로그나 해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수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기를 올리는 것만으로 수입이 생기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났다. 블로그로 실질적인 수익을 만들어내려면 글을 꾸준히 올리는 것은 물론, 이웃을 관리하고 트래픽을 분석하며 마케팅과 브랜딩까지 병행해야 한다. 블로그는 낭만적인 부업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업(業)에 가깝다.



어쩌면 이 책이 가장 정직하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블로그의 가능성이 아니라, 그 가능성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노력의 무게인지도 모른다. 화려한 수익 사례 뒤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는 수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있다는 것, 이 책은 그 사실을 직접 말하지 않으면서도 행간에 충분히 담아내고 있다.



결국 <네이버 블로그 첫걸음>은 제목 그대로 '첫걸음'에 충실한 책이다. 블로그를 전혀 모르는 이에게는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고, 이미 운영 중인 이에게는 빠진 부분을 점검하는 체크리스트가 된다. 다만 이 책이 알려주는 것이 블로그의 시작이라면, 그다음을 채워나가는 것은 결국 독자의 몫이다. 첫걸음을 내딛는 것과 끝까지 걸어가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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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2 : 신들의 왕 오딘 만화로 읽는 초등 인문학
김민희 지음, 라임스튜디오 그림 / 아울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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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숲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색이다. 선명하고 예쁜 색감, 그리고 다채롭고 귀여운 캐릭터들. 아울북의 <북유럽 신화 2. 신들의 왕 오딘>은 표지부터 이미 "귀여운 캐릭터들이 풀어내는 신화"라고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북유럽 신화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해 낯선 이름들이 많고, 세계관 자체가 묵직하고 서늘한 느낌이라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낯섦을 오히려 재미로 바꿔버린다. 오딘의 과거, 미미르의 샘, 바나헤임과의 갈등, 그리고 로키와 펜리르로 이어지는 흐름은 북유럽 신화의 핵심 줄기를 자연스럽게 따라가면서도 장면마다 긴장감이 살아 있어 끝까지 손을 놓기 어렵다.



이 책은 신화를 단순한 정보의 나열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 책은 신화를 하나의 이야기로 경험하게 해준다. 그림과 연출이 생생해서 문자로만 읽을 때보다 장면이 훨씬 선명하게 그려지고, 문자가 적은만큼 한 컷의 그림에서도 많은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학습만화라는 형식이 오히려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해준다.


특히 로키라는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신들의 편도, 완전한 악의 편도 아닌 그 묘한 경계 위에 서 있는 존재. 이 책에서 로키는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이야기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핵심 축으로 기능한다. 아이들 눈에는 그냥 장난꾸러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조금 더 읽다 보면 그 뒤에 깔린 복잡한 감정과 관계들이 슬쩍 드러나면서 묘한 여운을 남긴다. 우리가 영화 '토르' 시리즈에서 보았던 그 '로키' 말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장은 신들을 완벽하고 멀리 있는 존재로만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딘은 지혜를 얻기 위해 눈을 내어주고,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그 희생과 무게가 이야기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책을 덮고 나서도 북유럽 신화 특유의 차갑고 웅장한 여운이 오래 남는다.


이 시리즈가 마음에 드는 또 다른 이유는 각 권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처럼 느껴지면서도, 읽고 나면 다음 권이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는 점이다. 억지로 "다음 편도 사세요"를 외치는 방식이 아니라, 세계관 자체가 워낙 넓고 깊어서 독자 스스로 더 알고 싶어지게 만드는 구조다. 북유럽 신화가 처음인 아이라면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히 입문할 수 있고, 이미 조금 알고 있는 아이라면 알던 것들이 연결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사실 신화라는 장르는 어른이 읽어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낯선 고유명사와 복잡한 계보,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버전들이 뒤섞이다 보면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막막해지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꽤 영리하게 만들어진 입문서다. 어렵지 않게, 하지만 가볍지도 않게. 신화의 핵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읽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았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 책은 북유럽 신화의 문을 가장 친절하고 재미있게 열어주는 입문서다. 신화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에게도 좋지만, 북유럽 세계관의 뿌리를 가볍게 훑어보고 싶은 어른 독자에게도 충분히 권할 만하다. 학습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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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괴담
오카자키 하야토 지음, 민경욱 옮김 / 팩토리나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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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서점을 좋아한다. 특별히 살 책이 없어도 그냥 들어가서 책 냄새 맡고, 표지 구경하고, 종이들을 만지작 거리다며 어슬렁거리다 나오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당분간 서점에 못 갈 것 같다.


<서점 괴담>은 제목 그대로 서점을 배경으로 한 괴담 소설인데, 형식이 좀 독특하다. 슬럼프에 빠진 작가 오카자키 하야토와 담당 편집자인 히시카와가 서점을 소재로 한 히트작을 만들겠다며 전국 서점 직원들한테 괴담을 모으기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작가 본인이 주인공이다. 픽션인데 픽션 같지 않은 모큐멘터리 형식이랄까. 읽는 내내 이게 실화인지 아닌지 자꾸 헷갈렸다.

처음에는 그냥 괴담 모음집이겠거니 하고 가볍게 펼쳤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기분이 슬금슬금 나빠진다. 갑자기 비명을 지를 만큼 무서운 게 아니라, 스며드는 느낌이다. 창문 밖이 갑자기 어두워진 것처럼,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분위기가 달라진 것처럼. 어느 페이지부터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어느새 주위를 한 번 둘러보게 됐다.

사실 모큐멘터리 형식이 이렇게 효과적일 줄은 몰랐다. 작가 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실제 취재를 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전개되니까 어디까지가 꾸며낸 이야기인지 경계가 자꾸 흐려진다. 보통 소설을 읽을 때는 '이건 fiction이니까'라는 안전망이 있는데, 이 책은 그 안전망을 교묘하게 걷어내버린다. 결국 독자는 계속 의심하면서 읽게 된다. 이게 진짜야, 아니야? 그 불편한 의심이 공포보다 더 오래 남는다.


서점이라는 공간이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책이 잔뜩 꽂혀 있는 조용한 공간, 점원이 묵묵히 책을 정리하는 공간, 누군가 오래 서서 책을 읽는 공간. 평소엔 그냥 편안하고 좋은 곳인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조용함이 좀 다르게 보인다. 내가 자주 가는 동네 서점이 자꾸 겹쳐 보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단순히 무섭다기보다 기묘하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괴담들이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읽다 보면 뭔가 연결되는 느낌이 든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이야기들 사이에 숨어 있는 패턴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게 공포보다 미스터리에 가까워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만들었다. 무서워서 못 읽겠다는 생각보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멈출 수 없다는 쪽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한테 더 잘 맞는 책인 것 같다. 서점이라는 공간에 애정이 있을수록, 그 친숙함이 배신당하는 느낌이 더 크게 오니까. 공포물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온도의 책이다. 으스스한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데 너무 자극적인 건 싫다면, 딱 맞을 것 같다.

번역도 자연스럽게 읽혔다. 괴담이라는 장르 특성상 문장의 호흡이나 분위기가 번역 과정에서 많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읽는 내내 어색한 부분 없이 잘 흘렀다. 일본 특유의 서늘하고 건조한 감각이 그대로 살아있어서, 번역서를 읽고 있다는 걸 잊을 만큼 몰입했다.


다 읽고 나서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무서워서라기보다, 뭔가 여운이 남아서. 서점이라는 공간을 이렇게 다르게 바라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계속 맴돌았다. 좋아하는 공간이 조금 낯설어지는 경험,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좋았다.

서점에서 일해보는 게 꿈이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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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담아, 제인 오스틴 - 제인의 사람과 사랑, 문학에 대한 가장 내밀한 생각을 나눈 편지들
제인 오스틴 지음, 유혜인 옮김 / 이일상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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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의 숲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재미있게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아직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 다들 입을 모아 명작이라고 하는데, 너무 유명하고 너무 추앙받으니까 괜히 더 손이 안 간 작가들 중 한 명이. 언젠가 읽어야지, 하면서 계속 미뤄왔던 작가. 그런데 이 책이 나한테 제인 오스틴을 먼저 데려와버렸다.



<사랑을 담아, 제인 오스틴>은 소설이 아니라 편지 모음집이다. 오스틴이 언니 커샌드라와 조카들,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을 엮은 책인데, 읽으면서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 사람 진짜 재미있는 사람이었겠구나. 편지 곳곳에 유머가 묻어 있고,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는 눈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읽다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소설 속 위트가 어디서 나온 건지, 이 편지들을 보면 조금은 알 것 같다.



특히 언니 커샌드라에게 보내는 편지들이 좋았다. 별거 아닌 일상 얘기인데, 시장에서 뭘 봤다든가, 누구 결혼 소식이라든가, 그런 소소한 것들이 그녀 손을 거치면 뭔가 살아있는 느낌이 된다. 평범한 하루를 쓰는데도 문장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구나 싶어서, 솔직히 좀 질투가 나기도 했다.

편지라는 형식이 주는 묘한 친밀감도 있었다. 소설은 어쨌든 독자를 의식하고 쓴 글이지만, 편지는 다르다. 언니한테, 가족한테 쓴 글이니까 꾸밈이 덜하고 날것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마치 오스틴의 방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책상에 앉아 편지지에 펜을 긁적이는 모습이 자꾸 상상됐달까. 200년도 더 된 편지인데, 이상하게 전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스틴 소설을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아마 이 편지들이 더 반가울 것 같다. 소설 속 인물들이 어디서 왔는지, 작가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봤는지, 이 편지들이 그 힌트가 되어줄 테니까. 반대로 나처럼 아직 소설을 못 읽은 사람한테는, 오히려 이 책이 좋은 입문서가 될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소설보다 편지가 훨씬 가깝고 편하게 느껴졌달까.

가끔 위대한 작가들은 너무 위대해서 인간처럼 안 느껴질 때가 있다. 흉상이 된 것처럼, 교과서 속 이름이 된 것처럼. 그런데 이 편지들을 읽고 나면 오스틴이 그냥 사람처럼 느껴진다. 조카의 글솜씨를 기특해하고, 지인의 결혼 소식에 한마디 보태고, 몸이 안 좋다고 툭 적어두는 사람. 그 사람이 쓴 소설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더 읽고 싶어졌다.



번역도 자연스러웠다. 편지글 특유의 리듬이 살아있어서 읽는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 편지 모음집 특성상 각 편지 사이사이 맥락 설명이 붙어 있는데, 그 부분도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역자가 중간에 너무 많이 끼어들지 않고 오스틴의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옆에서 조용히 안내해주는 느낌이랄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이제 그녀의 소설을 읽을 준비가 된 것 같다는 거다. 그냥 유명한 고전 작가가 아니라, 언니한테 재잘재잘 편지 쓰던 사람, 동네 소식에 킥킥거리던 사람으로 오스틴을 먼저 알게 됐으니까. 그렇게 알고 나서 읽는 소설은 분명 다를 것 같다.

얼마나 운이 좋은지. 소설보다 먼저 편지로 그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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