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치가 된다던 독립군들은 쉽게 퇴치되지 않았다. 한두나 설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그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곧 죽어간다는 계모와 만나지 않거나 한번도 만난 적 없다는 독립군 장군인 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면 차라리 이대로 기차가 납치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도...도망가십시오...민나사마...으윽."

한 30분쯤 지났을까. 피투성이가 된 역무원이 문을 겨우 밀고 들어오며 외쳤다. 이내 탕! 하는 소리가 들리고
역무원은 처음에 그랬듯이 이번에는 사람만 바꾸어 하선생이 입은 옷에 피를 묻히며 쓰러졌다.
하선생은 피하지도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밖을 보았다. 이내 그는 묶여 있던 끈을 쉽게 풀어내었다.
놀란 두 사람을 바라보며 하선생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뭐가 놀랍소? 바보여러분?내가 한때 독립군에서 활동했었다는 건 몰랐나보군.아니, 알아도 몰랐겠지. 이 정도는 기본이라는 거."

"...그래도 마음보를 못 고쳤군요. 당신!"

그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하선생은 피식 웃었다.

"이 옷차림이라는 게 차라리 다행이군. 겨우 구해줬더니 버르장머리 없이 군 댓가를 치르게 해주겠소.김군."

"하선생. 하선생!!"

독립군에 기차통째로 납치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1등석의 제국인들은 웅성거렸다. 그리고 하선생의 팬이라는 노부인은 울부짖기까지 했다. 그렇기도 했으리라. 반도인이지만 제국인에 가까운 생활을 해왔던 사람들은 확실히 공포심을 가졌다. 그들은 독립군이 마치 도깨비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다.
그럴 법도 한 것이 독립군은 그들의 친척들에게 다가가 독립군비를 대달라고 한 후 후원금을 내지 않으면 총살까지하는 무서운 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이 다 거절하고 총살당하고 말았다.

"네."

하선생은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꾸했다.

"우리 지금 독립군에게 끌려가고 있는 것 맞지요?"

"...그렇습니다만, 괜찮을 것입니다."

노부인은 그에게 달려오다가 그의 옷차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피...그 피...그리고 그 옷은...도대체..."

 "...이럴 때 쓰라고 입는 옷입니다."

속옷까지는 미처 갈아입히지 못했던 탓에 미처 방심했던 탓이었다.  속옷안에 품고 있던 다른 육혈포가 그의 손에 쥐어지자 마자 불을 뿜었다.

타앙!

 
그의 총은 정확히 노부인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리고 그의 육혈포는 이내 설과 한두를 향했다.

"내 애정을 거부한 대가, 그리고 날 이렇게 우스꽝스런 꼴로 만든 걸 저 세상에서 두고두고 후회하길 바라겠소! 잘 가시오. 설양!"

타앙!

두번째 총성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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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개씩 올린다는 생각은 어디로 갔는지...
또 이틀만에 한개 올립니다...
어둠의...는 한동안 실종이군요...하긴 매일 올려서 좋을 사람이 별로 없을지도...

어제는 부르크하르트의 책을 읽느라 못 올렸습니다. 아직도 읽고 있는 중이에요.
근데 굉장히 재미있네요. 뭐하러 시오노 나나미의 책으로 첫 시작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쪽이 좀 더 쉽게 설명하는 편입니다만...
사실 베네치아 도시 이야기는 부르크하르트 쪽에서는 조금만 나오기 때문에 베네치아 사를 한꺼번에 읽으려면 전공사로 하던지, 아니면 그냥 쉽게 읽자면 시오노 상의 책을 읽는 게 나을지도.(저는 역사에 문외한이라 제 기준에서만 이야기한 것이니 오해마시길...)
베네치아 도시 이야기는 사촌한테 빌려주고 아직 못 받아서 다시 살까 생각 중입니다만...그 두꺼운 책을...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부르크하르트의 책을 읽고, 동서판 시리즈를 천천히 하나하나 독파해나가야 합니다...
그나마 또 산 책이 있으니 한동안 책탑 무너뜨리기를 또 시작해야 하겠네요...t.t
시지프스가 된 기분이네요...

아, 오늘 퇴근 때 곡은 리키 리의 곡들이었습니다.
전지현의 헤라 광고에도 쓰였던 곡인데, 제 기억으로는 마드모아젤 씨 에서도 쓰였던 것 같아요.
마드모아젤 씨 는 전 프랑스 보그 편집장 카린 로이펠트의 이니셜인데요. 네. 그렇습니다. 카린 로이펠트가 자기 이름을 건 잡지를 만드는 과정을 취재한 다큐멘터리 영화에요. 패션 다큐가 그렇듯 음악이 굉장히 감각적이죠.
카린은 당시 보그를 그만두고 자기 이름을 건 패션지를 낸다고 해서 보그를 관할하는 콘데나스트와 한때 전쟁 분위기까지 낸 적 있지요...카린 로이펠트를 그때 처음 알았는데 굉장히 멋진 여성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드모아젤 씨를 꽤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곡도 계속 찾았는데 우연찮게 리키 리의 곡이었던 것을 찾아내서 요즘 즐겨 듣고 있습니다. 그래도 레이디 가가만큼 열광적이지는 않지만요...
굉장히 우아하고 세기말적인 느낌이 드는 곡입니다. 가수의 목소리톤이 워낙 신비스럽기도 합니다만, 곡이 그만큼 받쳐주고 세션이 그만큼 받쳐주니 그렇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들어보시고 싶다면 벅스나 멜론이나 네이버에서 찾아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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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쥔장은...한동안 부재 중일 듯 합니다.책탑 부수러 가야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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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라고 푸지게 자다보니..어제도 읽은 책은 빈약...
(왜 이렇게 쓰느냐고 하면, 지금이 막 12시가 넘은 시간이기 때문이죠...흑흑,)
읽고 있는 책은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이야기(동서판), 얼마 전부터 잡았지만 도통 읽지를 못했던 몰락의 에티카...이 두권인데 둘 다 진도 정말 안 나가는군요...;;;;
부르크하르트 같은 경우에는 예전에 도서관에 호화양장본으로 들어왔던 적이 있는데 그때 서점에서 주문할 것을...;;;;;;동서판도 나름 내용은 있어보이는데 워낙 오역, 창역, 누락 등으로 유명하다보니..;;;;;;
하여간 책비보고 읽으라고 한 다음 차안에서 듣고, 비몽사몽일 때 잘 듣고 있습니다...

몰락의 에티카는 이북이 아니라서 책비더러 읽으라고 할 수 없어서 읽는데, 오! 시인들에 대한 비평이 자세하고도 감각적이군요.(왜 감각적인지는 그 비평을 보시면 아시게 될 듯. 시인들도 꽤 반길 듯한 비평입니다. 이렇게 다정한 비평은 잘 못 봤어요. 제가 워낙 비평쪽에 과문하기도 하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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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하우정을 꽁꽁 묶었다. 처음에 한두가 묶였던 그 끈으로 묶어버렸다. 그리고 한두는 대부분의 승객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하선생의 옷과 자신의 옷을 바꿨다. 언제 준비해왔는지 머리도 포마드를 발라 넘기고, 강탈한 하선생의 소품 중 코담배를 꺼내 잠시 피우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굉장한 인텔리같이 보이는데요?"

설이 감탄하자, 한두가 짧게 웃었다.

"우린 모두 인텔리죠. 단지 옷만 갈아입기만 하면 말입니다. 인텔리라는 것들이 저렇게 무식하니..."

한두는 손가락으로 하선생을 쿡쿡 찔렀다.
하선생은 멸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한두를 노려보았다. 그 눈동자에 담긴 서늘한 악의에 설은 잠시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육혈포를 뽑았을 때 그는 진심이었다...

"이제 제가 뭘 하면 되지요?"

그녀의 물음에 한두가 대답했다.

"그냥 이대로 주욱 가면 되는 겁니다. 별 말은 없더군요."

"...그래요?"

실망한 어조로 설이 대꾸했다. 하얀 설원. 그녀는 그 설원에서 말을 달리고 있을 백명을 생각했다.
약간 어린 시절부터 그는 매사 꼼꼼하고 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솜털 보송한 얼굴을 매만지면서 웃을 정도로 다감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떠돌고 있어야 한다니...

"그를 만날 방법이 없을까요?"

"...아직은 없습니다. 그분 성격 아시죠?"

한두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한 일자로 다물었다. 약간 앙다문 이빨 탓에 그의 턱이 약간 당겨졌다.

"원래 그런 건가 봅니다. 저도 아버지를 아직까지 전혀 못 뵈었으니까요..."

"...아. 죄송해요."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 일하는데 우리는 막상 얼굴을 못 보죠."

"......"

"그게 독립을 위한 일이니까요. 참아야 합니다...못 참겠는데도 참아야 되지요.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는 죽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래도 참아야 합니다...시체를 못 보더라도, 마지막 순간을 같이 지내지 못하더라도..."

한두는 바깥창을 바라보았다. 기차를 따라서 말을 달리는 누군가의 모습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눈 사이에서 나타났다.

"...마적인가..."

한두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묶여 있던 하선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독립군..."

한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1등칸에 역무원이 들어왔다.

" 여러분 죄송합니다. 방금 마적단이 기차를 향해 오고 있다는 연락이 들어왔습니다...금방 퇴치한다고 하니 안전한 객실내에 계셔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나가려다가 잠시 한두와 하선생을 보았다. 설은 이 상태를 보고 역무원이 제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무원은 기계적으로 한두를 향해서 깍듯하게 인사하고, 묶여 있는 하선생을 보고는 멸시의 눈초리를 보내고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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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 없는 구애에 설은 혀를 찼다.

"...정말 갈수록...

"...아, 이건 진심입니다. 난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어요."

어딜가든 씨알 먹히지 않는 소리를 하는 우정에게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

"...내 어디가 그토록 마음에 드셨는지는 모르겠..."

그녀의 말에 하선생은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던 걸 답지 않는 순수함과 열정을...난 그 열정에 반했습니다."

"...열정이라고요? 모던 걸 답지 않은...점이라고요?"

"당신같은 모던 걸은 없지요. 반도인 특유의 야만에 가까운 순수성과 유럽의 성녀같은 고고함, 그리고 대륙인들과 사소한 대화마저 잘 어울리는 세련됨과 소박함. 난 당신을 그 점에서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

그는 잠시 자기자랑을 하는 것이 저어된다는 듯 주저했지만 이내 매끄러운 혀를 놀렸다.

"수많은 아름다운 여인들이 내 앞에 몸을 던진 것이 내 매력의 전부는 아닐 겁니다. 당대 최고의 문사, 그리고 만약의 경우, 당신을 해칠 사람이 있을 경우에 막을 수 있는 격투실력도 매력의 일부겠지요."

그 많은 장점들을 일부라고 치부하는 그에게 그녀는 잠시나마 어지러움을 느꼈다.
저 남자는 그게 진심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장점은?"

그가 오히려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뻔뻔함이겠죠."

그녀의 냉담한 대답에 그가 대답했다.

"아니오. 장점은 바로 당신의 '동포들-기차에 탄 사람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또한 당신의 고매한 그 '약혼자'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고요...난 지금 마음만 먹으면 이 기차 전체를 지옥의 아가리로 처넣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드디어 악이 본심을 밝혔다. 하지만 그녀는 그 뜻을 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저 농담이나 던지는 남자가 지금 자신에게 악의를 드러낸 것이었다.

"자, 선택하시죠. 별로 선택의 여지는 없어보이지만..."

그는 갑자기 옷 안쪽에서 아까 전에 적을 향해 쏘았던 육혈포를 꺼내들었다. 그 동작에 깜짝 놀란 한두가 저지하려 했지만 워낙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막을 수가 없었다. 승객들은 대부분 잠들어 있어서 그 장면을 본 사람도 들은 사람도 없었다.

그는 육혈포 구멍을 설의 목에 갖다댔다.

"선택하십시오. 당신과 당신의 약혼자, 그리고 이 기차에 탄 사람 모두의 목숨을 버리...아니..."

그의 목에도 서늘한 무언가가 닿아 있었다. 그리고 목 아니라 허리께에도.

"고상한 숙녀분을 위협해서야 쓰나."

여전히 사투리가 섞인 일본어로-저번에는 대륙어 사투리였지만 지금은 일본어 사투리였다.-한두가 감자 깎아먹는 단검을 우정의 목에 갖다댔다.
그리고 허리께, 급소 가장 가까운 위치에는 순수한 모던 걸이라 불린 설이 은장도를 갖다대고 있었다.

"이대일입니다. 포기하세요."

차가운 목소리로 설이 말했다.

"당신에게 내 매력을 하나 더 가르쳐 줄 수 있어서 기쁘군요. 단호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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