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하우정을 꽁꽁 묶었다. 처음에 한두가 묶였던 그 끈으로 묶어버렸다. 그리고 한두는 대부분의 승객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하선생의 옷과 자신의 옷을 바꿨다. 언제 준비해왔는지 머리도 포마드를 발라 넘기고, 강탈한 하선생의 소품 중 코담배를 꺼내 잠시 피우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굉장한 인텔리같이 보이는데요?"
설이 감탄하자, 한두가 짧게 웃었다.
"우린 모두 인텔리죠. 단지 옷만 갈아입기만 하면 말입니다. 인텔리라는 것들이 저렇게 무식하니..."
한두는 손가락으로 하선생을 쿡쿡 찔렀다.
하선생은 멸시하는 듯한 표정으로 한두를 노려보았다. 그 눈동자에 담긴 서늘한 악의에 설은 잠시 마음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육혈포를 뽑았을 때 그는 진심이었다...
"이제 제가 뭘 하면 되지요?"
그녀의 물음에 한두가 대답했다.
"그냥 이대로 주욱 가면 되는 겁니다. 별 말은 없더군요."
"...그래요?"
실망한 어조로 설이 대꾸했다. 하얀 설원. 그녀는 그 설원에서 말을 달리고 있을 백명을 생각했다.
약간 어린 시절부터 그는 매사 꼼꼼하고 사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솜털 보송한 얼굴을 매만지면서 웃을 정도로 다감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이렇게 떠돌고 있어야 한다니...
"그를 만날 방법이 없을까요?"
"...아직은 없습니다. 그분 성격 아시죠?"
한두는 그렇게 말하고 입을 한 일자로 다물었다. 약간 앙다문 이빨 탓에 그의 턱이 약간 당겨졌다.
"원래 그런 건가 봅니다. 저도 아버지를 아직까지 전혀 못 뵈었으니까요..."
"...아. 죄송해요."
"그들은 우리를 위해서 일하는데 우리는 막상 얼굴을 못 보죠."
"......"
"그게 독립을 위한 일이니까요. 참아야 합니다...못 참겠는데도 참아야 되지요.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는 죽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래도 참아야 합니다...시체를 못 보더라도, 마지막 순간을 같이 지내지 못하더라도..."
한두는 바깥창을 바라보았다. 기차를 따라서 말을 달리는 누군가의 모습이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눈 사이에서 나타났다.
"...마적인가..."
한두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묶여 있던 하선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독립군..."
한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1등칸에 역무원이 들어왔다.
" 여러분 죄송합니다. 방금 마적단이 기차를 향해 오고 있다는 연락이 들어왔습니다...금방 퇴치한다고 하니 안전한 객실내에 계셔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나가려다가 잠시 한두와 하선생을 보았다. 설은 이 상태를 보고 역무원이 제지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무원은 기계적으로 한두를 향해서 깍듯하게 인사하고, 묶여 있는 하선생을 보고는 멸시의 눈초리를 보내고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