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근신이 덜 풀린 상태였다. 물론 내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나마 말을 그렇게 한 것은 잘못했다가는 그 노친네가 여기저기 불고 다닐까봐 그런 탓도 있었다. 육황자가 내가 쫓아간 것을 모르는 건지, 아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입을 다물어야 했다.

 

오늘도 일어경을 읽는군요,”

 

근신이 풀리고 나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일어경에 눈을 꽂아두자니 기적처럼 황태자님의 모친인 황후가 나타났다.

 

...마마.”

 

우리 사이에 마마는 무슨.”

 

“.....”

 

드릴 말씀이 없었다. 그녀는 죽은 내 연인과 외모가 비슷했고, 그래서 난 황태자와 그녀를 가족처럼 생각해왔다. 하지만 황후는 황태자보다 제 6황자를 총애했기에 그 이후부터 나와 그녀의 거리가 점점 멀어졌던 것이다.

 

야밤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

 

흰 비둘기가 날아오르고, 마치 귀신이 저지른 것처럼 허름한 객주가 생겼다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더더군다나 그날은 대의 양민이라면 다 아는 가기 다미가 납치를 당했다고.”

 

“.... .”

 

어떻게 그녀는 그 사실을 다 알고 있을까?

아니면 짐짓 짐작만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같으면 몸이 근질근질 할 것 같은데...”

 

저는 근신이 아직 안 끝났습니다.”

 

황제궁에서 지략의 황후인 그녀의 편을 드는 사람은 많았다. 죽은 황자들의 뒤를 잇는 인물이 제 3황자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는 애초에 스스로 황제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고른 것이 제 6황자. 음모의 핵심. 유순한 제 3황자였기에 어머니를 제압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그리고 요즘.”

 

“.....”

 

무장 하나가 규율을 무시하고, 낮이고 밤이고 황제궁을 함부로 떠나 소란을 피우고 있다던데.그 직속 상관은 귀신이 들었다고 푸닥거리를 하는 모양이지만 아무리 봐도 그 원인은 그대때문인 것 같군요,”

 

?”

 

그 작자가 흥미로워 데려와놨더니 떠들어대는 말이, 나는 붉은 까마귀님의 은혜를 입어 낮이고 밤이고 그분이 부르시면 가야 합니다. 라고 하더군요.”

 

, 마마.”

 

그대 잘못 인건 잘 알겠지요?”

 

“.....”

 

내가 폐하라면 일어경이나 한가롭게 읽는 걸 못 봐줄 것인데...폐하는 참 자비로우셔서.”

 

“......”

 

내가 그대의 근신을 풀어주면 그대는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

 

아마 못하겠지.”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가 날 향했다. 뜯어먹어버릴 것 같은 그 눈이 무서웠다.

 

그대는 아마 못할게야. 무른 사람이니까.”

 

“...마마.”

 

황제인을 받아다줄테니 움직이시오. 패설사관.”

 

그녀가 황후로서 위엄있게 말했다.

 

이번에는 실수가 있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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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는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조금이지만 보람을 느꼈다. 결국 이렇게 되어 버린 거 상황을 즐기자고 만든 마음이었지만 그게 진심이 되었다.

 

병률씨.”

그녀는 아까전부터 멍하니 해바라기꽃을 보고 있는 병률을 불렀다.

 

“...으응?”

 

주목의 대상이 갑자기 되었기 때문에 m의장이 언론을 피하고, 그동안 평범한 선인이라는 걸 어필하라면서 지정해 준 고아원이었다. 근데 우습게도 당사자인 병률은 바깥에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거나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다.

 

당신 정말 출마할거야?”

 

“......”

 

지금이라도 포기하면 안돼?”

 

“...? 당신은 싫어?”

 

우리한텐 너무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윤희는 되도록 강조점을 우리에 두었다.

 

처음부터 어울리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병률은 윤희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우린, 좀 더 나은 인생을 살게 될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마.”

 

난 말이야. 당신이 경찰일때도 이런 걱정 해 본적 없어. 그리고 난 당신이 경찰이었을때가 더 나은 인생이었던 것 같아. ”

 

병률은 아내의 손을 꽉 잡았다.

 

내가 약속할게. 우린 좀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거야.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어.”

 

그럼 한가지만 더 약속해 줄래?”

 

?”

 

병률이 예전같은 미소는 아니었지만 환하게 미소를 짓는 게 좋았다. 윤희는 그 웃음이 좋았다.

 

당신 출마했다가 떨어지면 우리, 이런 시설같은데 들어가서 애들을 보는 거야. 우리 둘은 아이가 없으니까 그래도 될 것 같지 않아?”

 

으음..”

 

병률은 말인지 신음인지 모를 말을 흘리고는 다시 해바라기꽃에 눈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몇시간 뒤 두 사람은 m모 의장의 부름으로 고아원에서 나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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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지방에는 검무를 추는 기생이 신으로 추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녀가 무장도 아니고 일개 기생에 불과했는데도 말이다. 그들 지방에는 예전 대대로 뛰어난 무장들이 신으로 추앙을 받아왔지만 이런 일은 드문 일이었다. 워낙 드문 일이라 월지방을 맡은 패관은 이런 말까지 할 정도였다.

 

앞으로는 개미가 신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생이 검무를 잘춰서 신이 되는 세상이니까요.”

 

물론 대부분의 패관들이 인정하다시피 수도 대와 황제국의 모든 땅들은 황제를 살아있는 최고의 신으로 인정했다. 그런데도 월지방은 수많은 신들 중의 한명으로 황제는 아니더라도 무장급도 아닌 일개 기생을 신으로 삼음으로서 황제를 능멸한 것이었다.

 

기생이 신이면 어떻습니까?”

 

평복을 입고 찾아간 객주에서 들은 말이었다.

 

모든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는 세상은 행복한 것입니다.”

 

나는 어느 상인의 말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월지방에는 위와 같은 반역의 기가 충천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랑안 지방의 사고와 같은 철을 해 놓기는 했으나 마음이 답답해져왔다.

과연 모든 이가 신이 되는 사회가 행복한 것일까?

물론 황제가 최고의 살아있는 신이라서 세상이 그렇게 행복한 것같진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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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신부가 맞절을 하면 꽃이 피어난다.

나무에서 꽃이 피면 신랑 신부는 자리를 떠나 긴 여행을 떠난다.

그것을 신혼여행이라 부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은 성인식의 일종이다.

그들은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서 긴 모험을 떠난다.

남자는 긴 칼을, 여자는 석궁을 들고 여행을 떠나

긴 여행동안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제압하고, 혹은 공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꽃이 피어날 때쯤 되면 신랑과 신부는 돌아온다.

전리품, 혹은 부상과 함께.

그리고 돌아와 다시 서로 맞절을 한다. 그리고 꽃이 피어난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두 사람이 진정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하고

꽃한송이를 신랑과 신부의 머리에 나눠서 꽂아준다.

그것이 이땅의 한 소수민족의 이야기이다.

나는 꽃 한송이 꽂아줄 여인도 없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항상 많은 민족들의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는 구석이 있다. 이젠 꽃을 꽂아주는 풍습도 여러군데로 퍼져서 어느 민족이 첫 시작이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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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한다. 그 옆에 누가 있어도 상관없다. 상어가 같이 달린다. 복숭아가 같이 달린다. 심지어 좀비가 같이 달린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때로는 붉은 어릿광대가 제 머리를 축구공 차듯이 차도 무슨 상관인가. 내가 내 삶의 순간을 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달리기는 어느 시간이라도 상관없다. 아침이라도, 점심이라도. 심지어 맥도널드 햄버거를 들고 달린다고 해도. 소스를 질질 흘리면서 달린다고 해도. 저녁에 먹은 스테이크를 같이 먹은 맥주와 함께 게워내고 달린다고 해도.

해는 항상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진다. 동쪽에서 달려 서쪽에서 마라톤을 끝낸다고 해도.

서쪽에서 달려 중간에 쥐가 나서 멈춘다 해도. 내가 달렸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당신은 달리기를 좋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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