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경찰 송정의는 일생에 살면서 큰 실수는 안 해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형사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그의 유약한 성품은 교통계에서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갑자기 병률의 호출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어서 오게.”

 

화려하진 않지만 그 나름대로의 중후함이 있는 식당에서 전 경찰이자 현의원의 환대를 받을 줄이야...

 

“...느...늦어서 죄송합니다.”

 

“늦기는, 4분이나 빨리 왔는데.”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병률이 대꾸했다.

 

“내가 좀 빨리 와서 그렇지. 서 있지 말고 앉아.”

 

병률은 한때 정의의 아버지 밑의 부하였다. 하지만 둘 사이가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는데.

경찰까지 그만뒀던 그가 왜 정의를 부른 것일까?

그것이 정의의 의문이었다.

 

“많이 힘들지?”

 

정의의 잔에 소믈리에가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저기...곧 돌아가봐야...포도주는 좀...”

 

소심한 정의의 말에 병률이 다시 한번 그 미소를 지었다. 애매모호한. 정답지를 보고 오히려 의심하는 선생의 얼굴로.

 

“오늘은 내가 특별히 부탁해놨어. 걱정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걱정하지마.”

 

병률이 그 앞으로 쪽지 하나를 건넸다.

 

“우선, 식사부터 좀 하고 시작할까?”

 

식사는 침묵과 함께 시작되었다. 병률이 몇마디 가벼운 농담을 던졌지만 정의는 그 쪽지의 내용이 신경쓰여 제대로 밥을 못 먹었다.

그리고 그는 대충 메인 요리를 넘기자마자 건네받은 쪽지를 급하게 펼쳤다.

 

“......”

 

정의는 쪽지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며칠 전 어떤 숲에서 등이 부러진 남자가 방치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남자는 어떤 저택에 있었던 일을 남김없이 이야기하고 곧 사망했다고 했다. 그리고...그 남자가 말한 위치에 있는 저택은 예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었다고 밝혀졌다. 불법의 냄새가 심하게 나지만 현재 신고한 사람이나 신고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미제의 사건으로 남을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거기에는 또 다른 사건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흥신소 몇군데의 사장들과 직원들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흥신소의 성격상 은밀한 일들이나 불쾌한 일들을 도맡아서 하는 것인지라, 그 이야기가 바로 경찰로 전달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걸 왜 제게...”

 

“자네 관할 구역이거든. 거기가. 교통계에서 자네가 근무하는 곳이잖아.”

 

“하지만 전 형사가 아닌데요...”

 

“형사건 아니건 중요하지 않지. 난 자네가 이름에 걸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형사들은 오히려 이

런 일을 잘 모르지. 하지만 자넨 자네 아버지의 아들이야. 충분히 가능해. 그리고 자넨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놀라운 관찰력과 끈기, 정의감이 있어. 꼭 부탁하는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니까 말이지.”

 

“하지만...”

 

“시간은 충분히 주지.”

 

병률이 마지막 잔을 비우면서 말했다.

 

“나한테는 자네가 꼭 필요해.”

 

정의가 돌아가고 난 후 다른 테이블에서 어떤 여자가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여자는 병률의 테이블로 와 조용히 포도주잔을 들어 보였다.

 

“이젠 공권력의 힘까지 빌리는군요. 놀라워요. 그 실력.”

 

“...실수한 걸 비꼬지 마. 여전히 그 놈 편이 될거야?”

 

은미는 눈동자를 병률에게 똑바로 맞췄다.

 

“당신이 실수만 안 했으면.”

 

그랬으면 당신 편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녀는 그 말을 입안에 담고 그의 잔에 잔을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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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준은 아침 11시가 되자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길거리의 변호사가 챙겨준 것은 이 저택과 컴퓨터, 그리고 매끄럽게 종이를 잘라내는 페이퍼 나이프 정도였다. 그래서 길준은 쓰는 원고가 답답해지면 그 특수한 페이퍼 나이프를 천으로 닦아냈다.

 

“원고가 잘 안나가는군.”

 

항상 옆에서 지적하고, 화내고, 차분하게 뒷정리하던 은미와 항상 정중하고 온화했던 준구는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두 사람 다 복지법인에 대한 서류를 꾸미느라 정신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 남겨진

길준은 이제는 거의 다 잊어간 아내를 위한 글을 쓰는 게 고작이었다.

 

“갑자기 호출이라서 와봤더니 지금 뭐 하고 있나.”

 

길거리의 변호사가 방문한 건 그가 그날의 마지막 문장을 타이핑하고 있을 때였다.

 

“아, 잠깐. 잡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복수하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나?”

 

“당연한 말씀을.”

 

“자넨 변했군.”

 

경찰을 했어도 유약한 심성이 사라지진 않는다. 경찰은 강철이 아니니까.

그런 그가 재산을 물려받고 복수를 계획한 뒤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변호사님은 안 바뀌신것 같군요.”

 

“난 하는 일이 늘 같으니까. 근데 자네가 날 부른 건...”

 

“혹시 제가 상속받기로 한 재산 중 빠뜨리고 안 주신 부분은 없으신가요?”

 

“잠깐. 자넨 날 지금 횡령범으로 모는 건가?”

 

그 말에 길준이 맥빠진듯이 웃었다.

 

“아니오. 그 뜻이 아니었습니다.”

 

“아냐. 자넨 날...”

 

“아니라니까요. 법적으로 유언해놓은 재산과 미처 못 찾아서 상속못한 재산은 있을 수 있으니까

요.”

 

“......”

 

“변호사님은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그 재산의 행방을. 그리고 그 할아범한테서 들으셨겠죠. 그 재산은 찾을 수 있는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고.”

 

“자네...”

 

평생의 은인을 할아범이라고 부르는 저 오만방자함.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알았습니다. 강원도 상릉군 회골리...여기가 어디일까요?”

 

“잠깐. 그걸 어떻게...”

 

“상속자들에게는 선물이 하나씩 주어졌죠. 제 경우에는 여기 있는 이 저택과 그밖의 잡동사니들을. 그 외의 다른 2명에게는 그에 맞는 상속품들이 있었어요. 저는 한달 전에 페이퍼 나이프를 특수용제로 닦다가 그만 페이퍼 나이프를 녹슬게 해버렸죠, 그 다음은 어떻게 된 이야기인지 아시겠죠? 전 변호사님도 이 상태가 달가울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당신도 상속자 중 한명이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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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조용하게 치러졌다. 길준은 말도 하지 않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 흰 여인은 길준의 모친이었다. 비밀스럽게 왕진을 왔던 의사는 마약으로 인해서 온 전신이 굳어갔거나 정신이 나간 상태였을텐데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여인의 뼈는 화장되어 조그만 상자에 보관되었다.

 

“어디서 데려온 겁니까.”

 

장례식이 끝난 후, 길준은 사망신고를 미뤄가면서 이준구를 추궁했다.

 

“어디서, 어떻게 찾아온 겁니까.”

 

이미 실종처리가 되어 있는 길준이니만큼. 그렇기에 사망신고를 하기 위해서 전면으로 나설 순 없는 노릇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일찍 데려왔으면...”

 

길준은 조금 후회하는 것 같아 보였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 놈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는데...”

 

길준의 말에 준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진심이십니까?”

 

“농담같습니까?”

 

길준이 조용히 말했다.

 

“꼬인 일처리를 하기 위해서 조금만 더 슬픈 척 해볼까요? 위선으로 도배를 해서 당신의 어깨를 빌릴까요?”

 

“.....허...”

 

가족이 최우선이었던 준구와는 달리 길준은 한발 더 나갔다.

 

“이제 정해졌습니다. 이사장은 당신이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관리 책임자로서 내 어머니의 사망신고는 당신이...합니다. 물론 사망일자, 사망당시 상태도 모두 변경해서요.”

 

“.....”

 

“그리고 내게 이야기해줘야 합니다. 어머니를 어디서 데려왔는지...그리고 이 상태로 만들어놨던 놈이 그 놈인지 아닌지. 당신이 모른다면 당신이 데려왔던 그 친구들한테서 들어야겠지요. 어디서 데려온 겁니까.”

 

“실은....”

 

그렇게 또 다시 인생의 꼬임매는 더욱 더 엇갈리며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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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마이붐은 일본 전국시대...

대망 세트로부터 시작해서 그 시대로부터 융성해지기 시작한 다도, 그리고 거기서 좀 더 나아가 다완까지...;;;;;;;;근데 문제는 멈출 수가 없다는데 있다.

다행히 국내에는 그 분야의 (내 취향의)책이 별로 없어서 아직까지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지만...

근데 이 책이 문제라는 것이다.

짧으면 차라리 낫겠는데 길다.

이 분야의 친척급인 하루카의 도자기는 3권 완결이라서 딱 적당했는데...(비젠 도자기를 다루고 있다.) 물론 이 분야의 책이 잘못하면 잘 빠질 우려가 있는 재미없다...도 같이 상비하고 있으니...;;;;(하루카의 도자기는 유감스럽지만 가장 문제가 많은 일본풍의 작품이다...정말이지.

담담하면서도 클리셰덩어리...)

 

다행인지 불행인지 [효게모노]는 재미와 길이를 같이 갖추고 있다. 물론 다도와 다구를 다룬다는 점에서 아마 일본 국내에서도 마니악한 인기를 끌었을 거라 생각은 하지만.

재미...라고 해봤자 내 개인적인 재미니까 남한테 강요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조금 알고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조금씩 있다.(그나마 참고할 만한 건, [남방록 연구] 같은 책을 보니 그나마 잔재미는 가질 수 있다는 걸까...이 책을 좀 재미있게 보려면 센 소에키(센노 리큐)의 다도를 연구한 남방록 연구를 읽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좀 재미있게 보려면. 도구 쓰는 법, 다도의 순서 같은 경우도 남방록 연구에 있는 것이 그대로 만화화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하루카의 도자기에 나오는 비젠야키가 그 시대 모습 그대로 나온다는 것도 포인트라면 포인트겠지만.(나도 비젠야키가 뭔지 모른다. 하루카의 도자기에 나오는 것을 보면서 그런가...하고 있지만.)

사실 다완에 대해서 흥미를 가진 지는 그다지 오래 되지 않았다.

로산진에 대한 서적을 읽으면서 시노, 오리베야키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관련 분야들을 읽기 시작했으니...

다완들이 꽃피기 시작한 시대...를 읽는다고 하면 될까?

후루타 사스케라는 남자도 매력적이지만, 그 시대의 인물들과 다완들이 어울리는 것이 정말 좋은 분위기다.

단순 득템의 문제가 아니라, 득템하고 싶어질 물건을 깨어나게 하는 것이 이 만화의 초점이 아닐까 하는데...문제는 길다.(16권까지 있다니...)

나는 고려다완을 수집하는 게 아니라서 만화책이 긴 건 수집할 수가 없다...

  

그게 모순이며, 나의 불행이라고나 할까...

쓰는 건 득템에 대해서 쓰고 있는데, 득템을 피할 말을 하고 있으니...

하여간, 좀 두고 보고 완결이 되면 구비를 하던지...아니면 눈물을 흘리면서 전권 수집의 길을 걸을지.

뭐라고 말은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오래간만이고, 또 아마추어가 함부로 입 뗄만한 분야가 아니기에 이만 접어야겠다.

 

다들 좋은 밤 되시기를.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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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인 2014-08-28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기쁜 나머지 엉망인 글이 되었다...T.T 이거 만큼은 정말 아껴쓰고 싶었는데...
 

다도와 한국의 전통차문화

노무라 미술관 엮음.

드디어 다 읽었다. 1년이나 걸렸네...

그나마도 빼고 읽은 부분도 2챕터나 있으니...

야나기 무네요시의 막사발 건에 대한 통설에 대한 수정이 있었다.

확실히 막사발이 고려다완이라고 한 건 문제가 있었음...

아,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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