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준은 아침 11시가 되자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길거리의 변호사가 챙겨준 것은 이 저택과 컴퓨터, 그리고 매끄럽게 종이를 잘라내는 페이퍼 나이프 정도였다. 그래서 길준은 쓰는 원고가 답답해지면 그 특수한 페이퍼 나이프를 천으로 닦아냈다.
“원고가 잘 안나가는군.”
항상 옆에서 지적하고, 화내고, 차분하게 뒷정리하던 은미와 항상 정중하고 온화했던 준구는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두 사람 다 복지법인에 대한 서류를 꾸미느라 정신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혼자 남겨진
길준은 이제는 거의 다 잊어간 아내를 위한 글을 쓰는 게 고작이었다.
“갑자기 호출이라서 와봤더니 지금 뭐 하고 있나.”
길거리의 변호사가 방문한 건 그가 그날의 마지막 문장을 타이핑하고 있을 때였다.
“아, 잠깐. 잡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복수하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나?”
“당연한 말씀을.”
“자넨 변했군.”
경찰을 했어도 유약한 심성이 사라지진 않는다. 경찰은 강철이 아니니까.
그런 그가 재산을 물려받고 복수를 계획한 뒤 점점 달라지고 있었다.
“변호사님은 안 바뀌신것 같군요.”
“난 하는 일이 늘 같으니까. 근데 자네가 날 부른 건...”
“혹시 제가 상속받기로 한 재산 중 빠뜨리고 안 주신 부분은 없으신가요?”
“잠깐. 자넨 날 지금 횡령범으로 모는 건가?”
그 말에 길준이 맥빠진듯이 웃었다.
“아니오. 그 뜻이 아니었습니다.”
“아냐. 자넨 날...”
“아니라니까요. 법적으로 유언해놓은 재산과 미처 못 찾아서 상속못한 재산은 있을 수 있으니까
요.”
“......”
“변호사님은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그 재산의 행방을. 그리고 그 할아범한테서 들으셨겠죠. 그 재산은 찾을 수 있는 머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다고.”
“자네...”
평생의 은인을 할아범이라고 부르는 저 오만방자함.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저는 알았습니다. 강원도 상릉군 회골리...여기가 어디일까요?”
“잠깐. 그걸 어떻게...”
“상속자들에게는 선물이 하나씩 주어졌죠. 제 경우에는 여기 있는 이 저택과 그밖의 잡동사니들을. 그 외의 다른 2명에게는 그에 맞는 상속품들이 있었어요. 저는 한달 전에 페이퍼 나이프를 특수용제로 닦다가 그만 페이퍼 나이프를 녹슬게 해버렸죠, 그 다음은 어떻게 된 이야기인지 아시겠죠? 전 변호사님도 이 상태가 달가울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당신도 상속자 중 한명이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