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별궁에도 그렇게 많은 고문도구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물론 난 왕자이므로 고문도구를 쓰진 않았지만, 심문내내 분위기는 살벌했다. 내가 왕자가 아니라 서자였더라면 엄청난 고문이 가해졌을 것이라는 건 짐작이 충분한 일이었다.

"왕자님. 언제부터 암흑족과 그런 친밀한 관계를 맺으신겁니까."

고문관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가득 했다. 

"내가 무슨 대답을 해야 맞는 건가?"

내 말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대대로 왕족들에게 내려온 불문율입니다. 왕자님은 모르십니까?"

"아무도 내게 들려준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군요. 대답을 정히 못하신다면 유형이 결정될 겁니다."

"날 보고 어쩌란 말인가. 암흑족이 대대로 혼인 가문이지 않았나...더더군다나 이번에 약혼이 거의 확정되다시피한 고니양의 양부도 암흑족이 아닌가?"

"...백작은 별개입니다. 그리고 그 암흑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하."

"그럼 뭔가?"

"그들은 사악한 적들 입니다. 저하. 왜 이 별궁으로 옮기면서 호신부를 다시라고 했겠습니까..."

"사악하다니."

"악마입니다. 사특한 것들이고 궤계를 꾸미는  세상의 멸망을 부르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저하를 이용하려고 할것입니다.  저하가 만나신 고니는 진짜 암흑족, 어둠보다 더 어두운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하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내 마음은 진심이오. 그녀와 혼인할 것이오."

약혼이 결정되었다! 내게 이제 여자는 그녀 한명뿐인 것이다!

"네 맘대로는 안된다."

어느새 어머니가 차분하지만 화려한 양장을 하시고 시장들을 거느리고 오셨다. 새빨간 양모가 인상적인 옷이었다.

"이미 맹세를 해버렸다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별 수 없다. 널 별궁에 유폐시키고 후계자는 양자를 들이겠다. 멍청한 아들때문에 왕가를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어머니!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왕족에게는 권리보다는 의무가 더 중요하다."

어머니는 머리위로 쓴 모자에서 붉은 베일을 드리우셨다.

"그동안 왕실전범을 제대로 읽지 않았던 네 무심함을 원망하거라."

"어머니!"

"고문관, 이 아이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게. 그리고 모든 방의 창문을 닫고, 환기구만 열어둔채로 별궁을 폐쇄시켜...공식적으로 이제 왕자는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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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 있어서 스테이크는 잘 살던 시대의 잔재물같은 거다.
아버지가 낭비벽이 심하신 때 가끔 연말쯤에 파크 호텔같은 곳으로 데려가셔서 스테이크나 호텔 짜장면, 탕수육을 세주시곤 했던 기억이 난다.
정통 양식을 시켜주려다가, 가격에 놀란 어머니가 짤짤 흔드는 통에 한 급수 낮추곤 하긴 했지만...
근데 막상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는 아버지 앞에서 스테이크가 질겨서 못 먹겠다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다.
어린애가 뭘 알겠는가? 고기는 좋아하니까 먹긴 먹는데, 기존 먹는 거하고 뭐가 다른지는 전혀 모르겠고.
아빠는 흐뭇한 얼굴로 많이 먹어, 많이 먹어.를 연발하시니...

그러다가 아이엠에프 직격탄을 맞고, 몇번 의도치 않게 잘리기도 하면서...아버지가 독해졌다.
갈아야 될 것이 있어서 사러 가면 절약 정신이 없다고 외치시니...
하여간 옛 추억을 잊지 못한(커피, 피자, 스테이크, 햄버거)내가 가끔 시내의 스테이크 집을 원정갔다 오면...(물론 어릴 때 추억으로만 간 것이지...스테이크의 진정한 맛을 알고 간 건 아니다...)홱 돌아보시면서 돈이 썩었다!를 외치시므로 

이럴 때는 같이 가는 게 낫다고...스테이끼 썰러 같이 가시지 않겠어요? 하고 여쭤보면 답은 흥!이다.
그러던 아버지가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하는 스테이크를 보고 나도 한번 해봐야지! 라고 하시더니 지금
2달 째 아침에 종류별로 스테이크가 올라오고 있다.
물론 매일 먹는 건 아니지만...
돼지 후지 스테이크, 돼지 전지 스테이크, 돼지 안심 스테이크, 소 안심 스테이크...
양념은 집에서 한 머루 소주술을 붓고 버터를 둘러 촉촉하고 담백하고, 적당히 짭짤하다.
소믈리에로서도 능력 있으셔서 초정 탄산수를 가져다가 머루 액기스에 적당량 부어 탄산음료 만드는데도 심혈을 기울이신다.
   
남자들이 요리하는 시대가 와서 그런가, 스테이크를 요리하게 되신 이유가 모 프로그램에서 스테이크 만드는 걸 보여줘서 그렇다나...
평소에 요리하는 실력이 나보다 나으셔서, 젊으실 적에 차라리 요리를 하시지 그러셨어요...했더니 하시는 말씀.

"남자가 어떻게 물에 손을 담그겠니..."

이것이 아버지가 사시던 시대와 요즘 남자들이 사는 시대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하긴 요즘도 남성 요리교실에 신청하는 사람은 얼마 없긴 하더라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비프 스테이크 타령을 무라카미 라디오 하이요~로 보면서 생각난 이야기다...
하긴 나도 나중에 하루키같은 대작가가 되거나 그만한 나이가 되면 아버지의 포크 스테이크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아직까지 내 기억에서 아버지의 스테이크는 추억이 되기에는 계속 현재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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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새는 부드럽게 내 입술에 입을 맞췄다. 나는 오늘 새벽의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입술을 고니의 입술로 착각하고 말았다.

"백조...아직 시간이..."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한 충격이라도 받은 것처럼 그녀가 물러났다.   
 그제서야 나는 흑조가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

"아니...저기..."

"절 그 애의 대용품으로 생각하시는건가요?"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아니...그게 아니라..."

"당신은 얼마 전에 제게 그 애보다 절 더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죠."

"사실이오."

진실은 진심이다. 백조보다 먼저 사랑하게 된 것이 그녀이니까.

"프랑스 사람의 진실을 듣고 분노하신 것도 사실이었고..."

"물론이지."

거짓말이었지만.
우리 둘다.

"그런데 어째서 절 그 애로 착각하실만큼 그 애를 사랑하게되셨나요...전 그애를 질투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다만?"

"당신이 상처받으실까봐 걱정될 뿐이에요. 그리고 전 어차피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여자.처음에는  그저 샤프론으로만 있으려고 했어요...하지만 진실을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당신은 벗어나지 못하는 수렁에 빠지게 되시는 거죠...전 절대로 그건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요..."

그녀의 성격으로보면 그건 사실인 듯 싶었다.
아무리 친딸이라고는 하지만 화류계에 떠돌던 여성이 양녀로 들어온 품위있는 여성에게 싸늘한 어조로 질타까지 할 수 있을 정도라면...
내가 알기로 그녀는 절대로 빈말은 하지 못한다. 그것이 사랑일 경우에 한해서.....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내 말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함정에 빠지신 거에요."

누구라는 말은 생략되었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그녀의 말을 슬쩍 비틀어서 말했다.

"당신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는 말이군?"

"...당신의 심장에 대고 물어보세요."

그녀가 예전에 구 로마 가도에서 했던 말을 다시 말했다.

"절 향해서 뛰던 심장박동이 이제 제게 들리지 않아요."

"...누구의 음모인지 말하지 않는군요. 당신은 내게 함정이라고 말했는데..."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오랫동안의 직감이 제게 말해요...이건 음모다. 당신을 해치기 위한 음모라고요."

"그만하시오!"

나는 햇빛속에서 뚜렷하게 윤곽을 드러낸 그녀의 아름다운 귓불을 바라보았다. 귓불끝에 마치 붓끝으로 찍어낸 것 같은 검은 점...
귀걸이 점이라고도 부르면서 나는 얼마나 수많은 입맞춤을 그 점에 보내었던가...
하지만 나는 오늘 새벽, 그 입맞춤을 신성한 약속의 입맞춤을 수 많은 백조들에게 둘러싸여 했다.
검은새에게 한 것이 육체의 입맞춤이라면 백조에게 한 입맞춤은 고대의 시대에 대한 내 경의의 표현이었다.

"뭐가 음모란 말이오. 난 왕이 될 남자. 오로지 단 한 사람만이 날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법...그대의 말은 내게 맞지 않소. 도리에 맞지 않는단 말이오. 백작 영애!"


그제서야 그녀는 무슨 뜻인지 이해한 듯 했다. 흑자는 사시나무 떨 듯 떨며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전하. 전 당신을 위해서.."

"......"

내가 뭐라고 대꾸도 하기 전에 문이 열리면서 시장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왕자님!"

"무슨 일들인...?아니?"

그.들은 내 양손을 꽁꽁 묶었다. 

"죄송합나다. 저하. 워낙 국법이 엄하여 여왕님이 어쩌실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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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꾸준히 세웠으니 이젠 무너뜨릴 시간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한동안은 눈팅만 할 듯...
정치적인 이야기는 절대로 가까이 하면 안되므로...

지금 듣는 곡은 레오니드 코간이라는 분이 연주한 모음곡이라고 합니다...
그분은 잘 모르겠고, 하여간 100개짜리 모음이라 운동곡으로는 최적화되어 있지요...
시디 하나 들으면 30분 끝...

예당컴퍼니에서 나왔다는데 음질도 괜찮고, 가격도! 쌉니다.
100개에 사만원...과연, 구성비도 좋고 이런데 원가는 뽑았을런지 원....
사실 분은 제 북플 의 읽고 있어요...부분을 찾으시면 러시아 음악 백선...이라고 나올 겁니다.
그거 복사 붙여넣기 하시면 올 봄의 애청곡으로는 무리가 없겠지요...

저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제법 소설책 읽는 인간인데 어쩌다가 노르웨이의 숲-예. 하루키 작품.-을 이제야 읽는지 모르겠군요...읽어보고 나니 세상이 제법 달라져 보입니다...

아직 덜 읽어서, 이 책 다 읽을 때쯤이면 대통령 선거도 끝날 거 같네요...
안 끝나면 또 딴 책을...배명훈 작가의 맛집 폭격 사건이 마침 제 손에 들려 있으므로 한달 내내 읽을 책 걱정은 안 해도 될 듯 합니다...


그리고 애플 뮤직은 실망../
나의 여신 아이유의 신곡을 내놓아라....
요즘 오페라 음원도 안 올라오는데, 아이유까지! 버는 돈 다 어디다 쓰냐!!!!!
애플 뮤직 불매해버리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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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법칙 - 그랑 셰프 피에르 가니에르가 말하는 요리와 인생
피에르 가니에르.카트린 플로이크 지음, 이종록 옮김, 서승호 감수 / 한길사 / 2017년 1월
평점 :
품절


이용재 평론가의 가니에르 서울 평론과 같이 읽어야 할 책...
이야기한다고 다 그 이야기대로 되는 것은 아님
참고로 그 평은 올리브 잡지 사이트에 가면 읽을 수 있음
그리고 문제의 랑구스틴 요리는 책 앞페이지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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