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한은 누이와 대화하기가 지루해지자 밖으로 나섰다. 누이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안된다면서 너울을 쓰고 다니는 아주 고풍스러운 짓을 했다. 그 고루함 덕분에 오히려 더 눈에 띄었고, 짜증이 난 설한은 그녀를 다시 여관으로 보냈다.
길거리에는 장이 섰는지 시끌시끌했다. 짚신을 파는 자도 있었고, 굽있는 꽃신을(이것은 서역의 영향인 듯했다.)파는 자도 있었고, 조선철이라는 카펫을 파는 자도 있었다. 조선이라는 이름은 낯이 설었지만 어쨌든 빙궁의 좋은 장식품이 될 듯 했다.
‘누이에게 돈을 조금 받아올 걸 그랬군.’
하지만 한빙의 성격상 결코 주머니를 쉽게 열지 않으리라.
그렇게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와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비무초친이 아주 멋진데!”
“일부러 나와 본 보람이 있구먼!”
비무초친이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뭔가 흥미가 동한 설한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갈래머리를 한 소녀가 팔을 들어 휘젓자 한 남자가 그 팔을 피하면서 그녀의 발을 잡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녀의 발에는 아까 전 굽있는 꽃신이 신겨 있었다.
와아! 하는 소리가 들려 다시 정신을 차려 보니 그녀의 발끝이 남자의 볼을 강타하고 있었다.
“와! 정말 세군!저런 각시를 들이면 도둑은 얼씬도 못하겠어.”
“아니, 어디 예쁜 아가씨를 두고 그런 생각을 하나.”
“그러게.아, 아깝군. 내가 조금만 셌다면…”
“아서라.아서. 비무초친같은 건 짜고치는 것 같은 거야.”
그렇잖아도 한 남자가 나서자 다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선 남자는 어느 누가 봐도 훤칠하기 짝이 없는 헌헌장부였다. 그 자가 나서자 소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째서 나오신 거에요…”
그녀의 말에 그가 말했다.
“옥 낭자를 함부로 다른 자에게 넘기기 싫어서요…”
곧 두 사람 사이에 비무가 이어졌다. 얼핏 봐서는 두 사람 다 무공이 제법 있어보였으나, 빙궁에서 20년간 수련해 온 궁주의 조카 눈에는 굉장히 어설퍼보였다.
그리고 그때 실수이긴-이것이 만약 짜고치는 비무초친이었다면-했지만 소녀가 앞으로 나서면서 휘두른 주먹에 그 남자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오! 짜고 치는 게 아니었군!”
공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고, 소녀의 얼굴도 새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설한은 혀를 차면서 소녀에게 말했다.
“공자님이나 아가씨나 솜씨는 제법 있으나, 좀 안타깝소. 이 몸이 비무를 청해도 괜찮으실런지. 물론 이겨도 꼭 시집오라고 하진 않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