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이곳을 맡겨주신다니 영광입니다. 라고 허목사가 말했다.

이준구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 저런 설명을 했다. 향원동에 노숙자가 많으니, 한 때 나도 노숙자였던 신분으로 그들에게 좋은 걸 베풀어주고 싶다. 목사님이 그 일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느냐...

허찬웅 목사는 열렬하게 호응했다.

 

안심입니다. 다들 호응해주는군요.”

 

길준이 고개를 한번 끄덕, 하고는 아예 고개를 숙여버렸다. 이 일에는 많은 노숙자들의 동의가 있었고, 여러명의 신부와 목사들의 협조가 없었다면 되지 않았을 일이었다,

단 한 사람의 복수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이 필요했다...는 건 비약이 심한 것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평범하기 그지 없는 그들의 도움이 고작 복수를 위해서일것이라곤 그들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그 점에서 길준은 그들에게 부끄러웠다.

 

어떻게 보면...”

 

?”

 

길준의 말에 준구가 의아한 어조로 물었다.

 

이건 위선일지도 모릅니다.”

 

“...복수때문이라도 선행은 선행이죠.”

 

“.....”

 

상대는 토건족입니다. 노숙자를 한때 사회생활 하던 건실한 생활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죠. 죽일엽도 단지 개발을 위해서 허물려고 하던 그런 자들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죽일엽을 구하고, 지금은 노숙자들을 위해서 유기농 녹차 생산쪽에 관심을 돌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많은 노숙자들이 당신에게 지지를 보내려고 자신들의 명의를 기꺼이 빌려준것이고요.“

 

 

“......”

 

감격이라고는 할 수 업었다. 단말마처럼 울릴 그 울음은. 길준은 고개를 파묻고 보도 위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자가용 기사가 왔을 때 그는 준구를 먼저 태우게 하고 자신은 교회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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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미의 의견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 준구는 길준에게 하은미가 소개하는 곳으로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신원발각의 위태로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에 그래도 믿어보자는 말이 돌아왔다. 별 수 없이 길준은 하은미가 소개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별로 유명한 사람은 아니에요.”

 

“.....”

 

하지만 좀 더 깊은 사실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은미가 손끝으로 대기실 의자를 긁었다.

 

저는 이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게 사촌언니가 죽고 나서였어요.”

 

“......!”

 

길준은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하면서 듣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친척들이 그 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요.”

 

길준은 계속 침묵을 지켰다.

문이 열릴 때까지.

그리고 문이 열리고 치료사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동안 하은미는 그를 밀어넣고 문을 얼른 닫아버렸다.

 

...!”

 

이제 천천히 이야기해볼 시간이 늘었네요. 어째서 그동안 절 보는 눈빛이 안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무슨 뜻입니까. 그게.”

 

저는 유능한 비서에요. 하지만 유능한 비서라도 이야기가 진행되기 전에 상사의 문제도 알아야 합니다.”

 

당신 이야기나 하면 될걸. 날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군요,”

 

제 이야기를 들으면 이준구님도 알게 되는 게 있으실거에요.”

 

그녀는 천천히 그를 안락의자로 인도했다. 길준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잠시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 그였다,

 

제 사촌 언니는 제 우상이었어요.”

 

“......”

 

그럴거야.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지. 남자라면 더욱 사랑했을 것이고. 뭘하든 잘 하지만 티를 내지 않는 그녀. 단정한 모습으로 안정감을 주던 그녀.

미모라고 할 순 없지만 타고난 재주로 미녀같이 보이는 재주를 가졌었다. 외모로보면 뼈마디가 굵은 것이 좀 흠이었지만 그건 아주 조그만 흠일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언니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죠.”

 

“......”

 

말할수 없는 것이 괴로웠다. 같은 고통 분모를 갖고 있는데도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결혼은 마흔이 넘어서 한다던 언니가 서른에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그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떤 남자가 치근대기 시작했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환영을 보지 않기 위해서 수건을 뒤집어 썼는데도 눈을 감아도 아내의 환영이 보였다.

 

“3선의원이었다는 남자가 상관에게 모실 여자가 필요하다고 언니에게 명함을 주고 갔더라고요. 언니는 털털한 성격이어서 그런 건 당하고 곧 잊어버렸지만. 그 사람들은 그걸 잊지 않고 있었어요.”

 

가시가 귀에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길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하지만 취향이 달라져 있었죠. 모시기로 했던 상관이 바뀐거에요. 그 사람은 자신이 직접 여자를 만나는 것보다 민간인 포르노 비디오를 찍은 걸 보는 걸 좋아했어요.”

 

“......”

 

길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제 진상이 서서히 밝혀지려 하고 있었다.

그동안 찾으려고 했었지만 찾을 수 없었던 것들이.

 

사촌언니는 딱 제게 그만큼만 언급했어요. 하긴 그 남편이 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죠. 그 사람은 아마추어 소설가였고, 인생의 낭만을 사랑했어요. 언니의 현실에 대해서 도피하려고만한 비겁자이기도 했구요. 그리고 언닌...”

 

하은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길준의 눈에서 이슬같은 눈물이 맺혔다.

 

살인사건. 아니 그냥 살인사건이 아니라 부패된 공무원에게 살해된 거였어요. 부검결과는 볼 필요도 없었던 거죠.”

 

눈을 응시할 수 없었다. 하은미는 그동안 유학 가 있었는데도 그 모든 걸 파악한 것이다.

그가 노인의 재산을 받아 지금까지 추적해온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은미씨.”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길준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그 남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신병원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어요...그 일을 저지른 자들이 그 남자도 같이 처리해버린거죠.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말을 더 하기 전에 치료사가 다시 방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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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장소가 가장 좋은 거 같군요,”

 

신부가 흡족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까지 보호원이 생기기 전이고, 주변은 그저 생기없는 소나무로만 가득했는데도 말이다.

이준구도 길준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만 해도 성공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윤, 즉 요한은 별 표정이 없었다. 지루해하는 게 역력했다.

 

근데 신부님, 저는 언제쯤 돌아갈 수 ...”

 

요한의 말에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피정하셔야겠소.”

 

피정을 얼마나 더 해야되는 겁니까. 전 이미 오랫동안 쉬었습니다. 이제 일을 해도...”

 

상황이 안 좋을때는 피해있는 것도 좋은 법이지.”

 

나이 지긋한 신부는 지윤을 향해서 아이를 타이르듯 달랬다.

 

지금 성하께서 바뀌신 것도 세상과 종교가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일치되어가기 때문 아니오? 요즘 나도 그런 기미를 느끼고 있다오. 거기다가 형제여. 당신도 안 좋은 일을 겪었으니...그 일이 다시 반복되기 전에 안전한 곳에 있는 것이 좋지 않겠소?“

 

“......”

 

만약 상황이 허락한다면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이준구가 빙긋 웃었다. 신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챈 듯 했다.

 

더 좋은 방법?”

 

지윤이 약간은 감은 잡은 듯 했지만...

 

그렇소. 가장 좋은 방법. 형제가 이곳을 관리하면 되는거요.”

 

“......”

 

지윤의 꿈은 그것이었다.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살아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 가톨릭 신부의 길에 들어선 것이었다. 하지만 신부단 내에서도 알력이 있었고, 정치적인 술수를 부리는 신부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정말 뜻밖이었다. 평소라면 선물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 사태의 원인을 알기 때문에 더욱 씁쓸했다.

 

저는...”

 

그날 약간 젖은 옷을 입고 원대한 복수라도 하겠다는 양, 살해에 대한 아무증거도 없이 성당에 들어와서 성경 안에 들어있던 총을 받아들고 가던 남자.

몽테크리스토는 3년이 넘는 기간을 갇혀 있었다지만, 이 남자는 정당한 이유에 의해서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윤이었다, 더더군다나 자신이 형에게 살해당할 뻔 했을 때 구했던 것도 길준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가장된 위선이라 생각했다,

 

저는 하지 않을 겁니다. 가서 게임이나 마저 하겠습니다. 디아블로는 정말 할 맛이 나는 게임이죠.”

 

지윤은 냉랭하게 대꾸하고는 자신의 차를 몰고 그들의 거주지로 돌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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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째서 왜.”

 

길준은 조용하게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는 아내를 향해서 물었다.

 

당신은...”

 

길준은 알았다. 자신은 아내를 결코 버리지 못하리라. 그리고 아내도 자신을 버리지 못하리라.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그 감정은 약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옆에 서 있는 것이 점점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미 죽은 사람이다. 환영조차도 죽은 사람에 더 가까웠다. 차라리 환청과 환시가 동시에 왔더라면 반미친사람의 상태라도 좋았다.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되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말도 하지 않고 다만 환영으로만 존재했다. 그림자. 자신만을 바라보는 단 하나의 어둠.

그 점은 아내를 그대로 빼닮았다는 하은미를 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자신이 하은미를 사랑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움직이고 미소짓고 하는 그녀를 보면서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어째서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거야,”

 

병률이 아내를 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것이다.

그는 이제 그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빌어먹을 노인이 심어준 [어딘지 모르지만 수상한 구석이 있는 아내의 환영]은 거짓이었다고. 그렇게 알리고 싶었다.

그는 방에 있는 벨을 울렸다.

 

[특정 사람의 환영이 보이는 것은 정신병적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기도 합니다만.]

 

의사의 소견은 간단했다.

당신은 정신병자요.

 

길준은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는 것은 한사코 거절했는데, 그건 병률로부터 뒤를 밟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신병이라기보다는 아내분에 대한 감정이 강렬해서 지속되는 환영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사랑도 정신병적이라고 하지만 말이죠. 그냥 두고 보시다보면 환영이 사라질 때도 있을 겁니다.]

 

그것은 요한에게 부탁해서 들은 카톨릭 병원의 의사가 왕진와서 한 말이었다.

하은미는...

 

“MRI를 찍어보는 건 어떨까요.”

 

“......”

 

길준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은미씨는 자기 일에만 신경쓰면 좋겠군요.”

 

“...제가 할 일이 그거 아닌가요? 의사들이 왔다갔다하는 걸 보니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많이..”

 

아마 당신은 유능한 비서였나보군요. 하지만 날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길준은 고개를 저으면서 그녀에게 대꾸했다.

 

아내를 무척 사랑하셨나봐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말씀하신대로 유능한 비서니까요.”

 

은미가 조용하게 말했다.

 

후유증이 커질수록 그 근본을 캐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께 심리치료사를 권해드리고 싶어요. 이건 정신병이 아니라 마음 한구석의 구멍에서 시작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길준은 그제서야 감았던 눈을 뜨고 안락의자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은미를 바라보았다.

생생한 갈색눈이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 요즘 좀 이상하다.”

 

윤희가 드레스 셔츠를 갈아입는 남편에게 말했다. 그말에 병률은 넥타이를 매려다 말고 아내쪽을 보았다.

 

...?”

 

요즘 얼굴이 굉장히 안 되보여. 눈도 좀 아픈건지 가끔 찌푸리고.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경찰 그만두면서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병률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

 

여보,”

 

윤희가 가볍게 손으로 그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제 뭐 잘못 먹었어? 아니면...”

 

아니야. 이제 괜찮아.”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병원에 들렀다가 가는게 좋겠어. 나랑 같이 병원...”

 

아니야.”

 

병률은 고개를 저었다.

 

안 가도 될 것 같아. 좀 아는 보건소에 들리지 뭐...신경 안 써도 돼.”

 

그녀를 버린 후 감정은 점점 더 칼처럼 예리하게 그의 온몸을 절단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슴이 저리고, 심장이 더 이상 뛰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의 감정이 그에게 그 모든 것을 시인하라 외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여보.”

 

?”

 

그의 말에 윤희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이 정말 나쁜 짓을 했다면 내가 세상사람들을 대신해서 그 죄를 대신 져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냥 매우 아픈 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어. 그러니까 절대로 아프면 안돼...”

 

걱정마. 죄를 짓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아...”

 

병률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자신을 뒤따라오는 환영을 느끼며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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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끊었습니다.

지금은 연결이 되는 곳에서 쓰고 있습니다.

장기간 아마 글을 못 쓰게 될 듯 합니다. 인터넷이 연결되는 거의 모든 것이 정지상태에 들어가는터라.

어차피 보실 분은 별로 없겠으나, 미리 말씀드립니다.

빠르면 보름 후ㅡ 늦으면 3개월 뒤에 다시 뵙게 되겠군요.

즐겁게 보셨는지는 모르겠군요. 추천 눌러주신 분들은 누구신지 모르겠으나 그 추천 감사히 받았습니다. 반응이 즉각즉각 오는 건 반가운 일이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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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미라고 합니다.”

 

돌아온 차에는 덤이 붙어 있었다. 진짜 이준구는 웃음을 참지 못했고, 길준은 살짝 열을 받은 상태였다. 이게 병률의 계책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건 둘 다의 문제였지만.

어쨌든 돈도 써본 사람이 안다고,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흉내낸 것 부터가 패인이었다.

그시대는 그 시대고 지금 시대는 지금 시대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테지만.

 

난 아가씨가 필요 없는데.”

 

길준은 문 저 바깥을 보면서 이준구가 그녀를 쫓아내길 바라고 있었다.

감시원이 붙은 격이어서 앞으로의 활동에 지장이 있을까봐였다.

 

하지만 사모님이 고맙다고 전하시면서 제가 두 분께 힘이 될 거라고 하셨습니다.”

 

또록또록한 눈동자, 생긋 미소짓는 맵시 있는 입술. 볼우물까지 있었다면 완벽했겠지만 이 여자는 정치인의 밑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만큼 처세술에도 능란할 것이고, 정치인을 지망하는 인물답게 야심도 클 터 였다. 아무 문제 없이 데리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우린 아가씨를 데리고 있을만큼 큰 사업을 할...”

 

의장님 사모님이 직접 보내셨는데 거절하실 생각이신가요?”

“......”

 

의장 사모가 보냈다는데야 할 말이 없었다. 그때 바깥에서 햇볕을 쬐고 있던 요한이 들어왔다. 그 두 사람이 실행하려는 계획에 어정쩡하게 발을 걸치면서 일을 추진하던 중이었다,

요한은 그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

 

복수씨, 준구씨 사업에 좀 익숙한 사람이 필요...”

 

절 쓰시면 됩니다.”

 

자신만만한 그녀의 말에는 요한도 살짝 질겁을 했다. 그런 종류의 인간을 성당에 있으면서 많이 봐왔던 탓이다. 일반 사회도 그렇지만 성당도 어느 정도의 그런 분위기가 존재했다.

항상 내용은 간단했다. 정말 잘 할 수 있던가. 아니면 단순히 호기만 부리던가.

정말 우리 편이 되어서 일을 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길준이 문을 열고 뛰어들어왔다.

 

내 이야기도 좀 들어요. 난 우리들말고는 다른 사람힘을 빌려서 일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그제서야 그는 상대방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하은미.

아내의 사촌동생.

가장 아내를 많이 닮았다던 유학파 사촌...

 

어떠신가요.”

 

하은미가 다시 생긋 웃었다.

 

외모도 합격인가요?”

 

그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

 

합격인가보군요. 보니 이분이 [이준구]님인 것 같은데 맞나요? 그러고보니 아까 전의 그 분이 이준구님이라고 하셨는데...”

 

복수라고 부릅니다.”

 

요한이 미적지근하게 대꾸했다. 그는 다소 신파극적으로 느껴지는 이 계획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이름이셨군요...”

 

하은미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치밀하고 차분하고 용기 있어보이는 그 여성이 갑자기 나사풀린 표정을 하니 무척 안 어울렸다. 웃음을 참지 못한 이준구는 자신도 모르게 킥 소리를 냈고, 길준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를 잠시 노려봤다.

 

내 이름은...”

 

그는 잠시 쉬었다가 대답했다.

 

길준입니다. 앞으로 그렇게 불러요. 은미씨. 하지만 다른 사람앞에서는 내 이름 말하지 마십시오. 그냥 준구라고 부르면되니까.”

 

알겠습니다. 복수씨.”

 

하은미는 조용히 대답했다.

 

저한테도 필요한 감정이네요. 고맙습니다.”

 

길준이 아니라 복수라고 부르는 건 무슨 의미일까.

세 사람은 잠시 생각에 잠겼지만, 하은미는 그 건 아랑곳도 하지 않고 가정부가 있는 현관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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