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째서 왜.”

 

길준은 조용하게 자신의 옆을 지키고 있는 아내를 향해서 물었다.

 

당신은...”

 

길준은 알았다. 자신은 아내를 결코 버리지 못하리라. 그리고 아내도 자신을 버리지 못하리라.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그 감정은 약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옆에 서 있는 것이 점점 더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미 죽은 사람이다. 환영조차도 죽은 사람에 더 가까웠다. 차라리 환청과 환시가 동시에 왔더라면 반미친사람의 상태라도 좋았다. 그녀를 더 사랑하게 되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말도 하지 않고 다만 환영으로만 존재했다. 그림자. 자신만을 바라보는 단 하나의 어둠.

그 점은 아내를 그대로 빼닮았다는 하은미를 보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물론 아직까지 자신이 하은미를 사랑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움직이고 미소짓고 하는 그녀를 보면서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어째서 날 이렇게 괴롭히는 거야,”

 

병률이 아내를 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일 것이다.

그는 이제 그 감정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빌어먹을 노인이 심어준 [어딘지 모르지만 수상한 구석이 있는 아내의 환영]은 거짓이었다고. 그렇게 알리고 싶었다.

그는 방에 있는 벨을 울렸다.

 

[특정 사람의 환영이 보이는 것은 정신병적인 것으로 분류될 수 있기도 합니다만.]

 

의사의 소견은 간단했다.

당신은 정신병자요.

 

길준은 의사에게 약을 처방받는 것은 한사코 거절했는데, 그건 병률로부터 뒤를 밟히지 않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정신병이라기보다는 아내분에 대한 감정이 강렬해서 지속되는 환영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사랑도 정신병적이라고 하지만 말이죠. 그냥 두고 보시다보면 환영이 사라질 때도 있을 겁니다.]

 

그것은 요한에게 부탁해서 들은 카톨릭 병원의 의사가 왕진와서 한 말이었다.

하은미는...

 

“MRI를 찍어보는 건 어떨까요.”

 

“......”

 

길준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은미씨는 자기 일에만 신경쓰면 좋겠군요.”

 

“...제가 할 일이 그거 아닌가요? 의사들이 왔다갔다하는 걸 보니 정신적으로 피로도가 많이..”

 

아마 당신은 유능한 비서였나보군요. 하지만 날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길준은 고개를 저으면서 그녀에게 대꾸했다.

 

아내를 무척 사랑하셨나봐요.”

 

“.....당신이 그걸 어떻게...”

 

말씀하신대로 유능한 비서니까요.”

 

은미가 조용하게 말했다.

 

후유증이 커질수록 그 근본을 캐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당신께 심리치료사를 권해드리고 싶어요. 이건 정신병이 아니라 마음 한구석의 구멍에서 시작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길준은 그제서야 감았던 눈을 뜨고 안락의자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은미를 바라보았다.

생생한 갈색눈이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당신 요즘 좀 이상하다.”

 

윤희가 드레스 셔츠를 갈아입는 남편에게 말했다. 그말에 병률은 넥타이를 매려다 말고 아내쪽을 보았다.

 

...?”

 

요즘 얼굴이 굉장히 안 되보여. 눈도 좀 아픈건지 가끔 찌푸리고.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경찰 그만두면서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병률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

 

여보,”

 

윤희가 가볍게 손으로 그의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제 뭐 잘못 먹었어? 아니면...”

 

아니야. 이제 괜찮아.”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병원에 들렀다가 가는게 좋겠어. 나랑 같이 병원...”

 

아니야.”

 

병률은 고개를 저었다.

 

안 가도 될 것 같아. 좀 아는 보건소에 들리지 뭐...신경 안 써도 돼.”

 

그녀를 버린 후 감정은 점점 더 칼처럼 예리하게 그의 온몸을 절단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가슴이 저리고, 심장이 더 이상 뛰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의 감정이 그에게 그 모든 것을 시인하라 외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여보.”

 

?”

 

그의 말에 윤희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이 정말 나쁜 짓을 했다면 내가 세상사람들을 대신해서 그 죄를 대신 져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냥 매우 아픈 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어. 그러니까 절대로 아프면 안돼...”

 

걱정마. 죄를 짓지도 않았고, 아프지도 않아...”

 

병률은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자신을 뒤따라오는 환영을 느끼며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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