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은미의 의견이 일리 있다고 생각한 준구는 길준에게 하은미가 소개하는 곳으로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신원발각의 위태로움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에 그래도 믿어보자는 말이 돌아왔다. 별 수 없이 길준은 하은미가 소개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별로 유명한 사람은 아니에요.”
“.....”
“하지만 좀 더 깊은 사실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죠.”
은미가 손끝으로 대기실 의자를 긁었다.
“저는 이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게 사촌언니가 죽고 나서였어요.”
“......!”
길준은 최대한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하면서 듣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친척들이 그 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요.”
길준은 계속 침묵을 지켰다.
문이 열릴 때까지.
그리고 문이 열리고 치료사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동안 하은미는 그를 밀어넣고 문을 얼른 닫아버렸다.
“하...은!”
“이제 천천히 이야기해볼 시간이 늘었네요. 어째서 그동안 절 보는 눈빛이 안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무슨 뜻입니까. 그게.”
“저는 유능한 비서에요. 하지만 유능한 비서라도 이야기가 진행되기 전에 상사의 문제도 알아야 합니다.”
“당신 이야기나 하면 될걸. 날 너무 편하게 생각하는군요,”
“제 이야기를 들으면 이준구님도 알게 되는 게 있으실거에요.”
그녀는 천천히 그를 안락의자로 인도했다. 길준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잠시 현실을 잊고 싶어하는 그였다,
“제 사촌 언니는 제 우상이었어요.”
“......”
그럴거야.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지. 남자라면 더욱 사랑했을 것이고. 뭘하든 잘 하지만 티를 내지 않는 그녀. 단정한 모습으로 안정감을 주던 그녀.
미모라고 할 순 없지만 타고난 재주로 미녀같이 보이는 재주를 가졌었다. 외모로보면 뼈마디가 굵은 것이 좀 흠이었지만 그건 아주 조그만 흠일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언니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죠.”
“......”
말할수 없는 것이 괴로웠다. 같은 고통 분모를 갖고 있는데도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결혼은 마흔이 넘어서 한다던 언니가 서른에 결혼을 했어요. 그리고...”
“그리고?”
“그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떤 남자가 치근대기 시작했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환영을 보지 않기 위해서 수건을 뒤집어 썼는데도 눈을 감아도 아내의 환영이 보였다.
“3선의원이었다는 남자가 상관에게 모실 여자가 필요하다고 언니에게 명함을 주고 갔더라고요. 언니는 털털한 성격이어서 그런 건 당하고 곧 잊어버렸지만. 그 사람들은 그걸 잊지 않고 있었어요.”
가시가 귀에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길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하지만 취향이 달라져 있었죠. 모시기로 했던 상관이 바뀐거에요. 그 사람은 자신이 직접 여자를 만나는 것보다 민간인 포르노 비디오를 찍은 걸 보는 걸 좋아했어요.”
“......”
길준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이제 진상이 서서히 밝혀지려 하고 있었다.
그동안 찾으려고 했었지만 찾을 수 없었던 것들이.
“사촌언니는 딱 제게 그만큼만 언급했어요. 하긴 그 남편이 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죠. 그 사람은 아마추어 소설가였고, 인생의 낭만을 사랑했어요. 언니의 현실에 대해서 도피하려고만한 비겁자이기도 했구요. 그리고 언닌...”
하은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길준의 눈에서 이슬같은 눈물이 맺혔다.
“살인사건. 아니 그냥 살인사건이 아니라 부패된 공무원에게 살해된 거였어요. 부검결과는 볼 필요도 없었던 거죠.”
눈을 응시할 수 없었다. 하은미는 그동안 유학 가 있었는데도 그 모든 걸 파악한 것이다.
그가 노인의 재산을 받아 지금까지 추적해온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은미씨.”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길준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그 남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정신병원에 들어간 걸로 알고 있어요...그 일을 저지른 자들이 그 남자도 같이 처리해버린거죠.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 말을 더 하기 전에 치료사가 다시 방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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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장소가 가장 좋은 거 같군요,”
신부가 흡족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까지 보호원이 생기기 전이고, 주변은 그저 생기없는 소나무로만 가득했는데도 말이다.
이준구도 길준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만 해도 성공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지윤, 즉 요한은 별 표정이 없었다. 지루해하는 게 역력했다.
“근데 신부님, 저는 언제쯤 돌아갈 수 ...”
요한의 말에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피정하셔야겠소.”
“피정을 얼마나 더 해야되는 겁니까. 전 이미 오랫동안 쉬었습니다. 이제 일을 해도...”
“상황이 안 좋을때는 피해있는 것도 좋은 법이지.”
나이 지긋한 신부는 지윤을 향해서 아이를 타이르듯 달랬다.
“지금 성하께서 바뀌신 것도 세상과 종교가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일치되어가기 때문 아니오? 요즘 나도 그런 기미를 느끼고 있다오. 거기다가 형제여. 당신도 안 좋은 일을 겪었으니...그 일이 다시 반복되기 전에 안전한 곳에 있는 것이 좋지 않겠소?“
“......”
“만약 상황이 허락한다면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이준구가 빙긋 웃었다. 신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챈 듯 했다.
“더 좋은 방법?”
지윤이 약간은 감은 잡은 듯 했지만...
“그렇소. 가장 좋은 방법. 형제가 이곳을 관리하면 되는거요.”
“......”
지윤의 꿈은 그것이었다.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살아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 가톨릭 신부의 길에 들어선 것이었다. 하지만 신부단 내에서도 알력이 있었고, 정치적인 술수를 부리는 신부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정말 뜻밖이었다. 평소라면 선물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 사태의 원인을 알기 때문에 더욱 씁쓸했다.
“저는...”
그날 약간 젖은 옷을 입고 원대한 복수라도 하겠다는 양, 살해에 대한 아무증거도 없이 성당에 들어와서 성경 안에 들어있던 총을 받아들고 가던 남자.
몽테크리스토는 3년이 넘는 기간을 갇혀 있었다지만, 이 남자는 정당한 이유에 의해서 정신병원에 갇혀 있었다.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윤이었다, 더더군다나 자신이 형에게 살해당할 뻔 했을 때 구했던 것도 길준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가장된 위선이라 생각했다,
“저는 하지 않을 겁니다. 가서 게임이나 마저 하겠습니다. 디아블로는 정말 할 맛이 나는 게임이죠.”
지윤은 냉랭하게 대꾸하고는 자신의 차를 몰고 그들의 거주지로 돌아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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