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생기부 필독서 50 - 의대 합격생만 1,000명 이상 배출한 의대 전문 컨설턴트가 공개하는 필독서 시리즈 15
신진상 지음 / 센시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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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동생이 아팠다. 나는 어려서 잘 몰랐지만 나중에 커서 들은 바로는 그 당시에는 건강보험이 없었기 때문에 입원비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게 비쌌다고 한다. 부모님은 큰돈을 구하기 어려워 원무과에 사정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아이가 아픈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드셨을 텐데 병원비까지 걱정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싶다.


미국은 의료민영화로 돈이 많은 사람이 더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지금의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이 참 살기 좋구나 싶다. 놀이공원에서 비싼 티켓을 사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탈 수 있는 것에 대해 아이에게 설명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의료 서비스만큼은 돈의 논리로만 사고파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2,000명 의대 증원으로 시끌시끌하다. 의사들의 파업을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가족 중에서 지금 당장은 대학병원에 의지해야 하는 사람이 없지만, 불행은 언제든 예고 없이 닥치는 법이고, 응급상황이 벌어졌는데 의사가 없어서 치료를 못 받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의대정원에 관한 정부와 의협의 주장 중에서 어느쪽이 맞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파업을 하는 행위는 옳지 않아 보인다. 불이 났는데 소방관이 파업 중이라 올 수 없다고 한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의대 생기부 필독서 50'을 읽고 의사의 자질과 의료 시스템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들을 해볼 수 있었다. 엊그제 치과를 다녀왔고, 며칠 후 이비인후과를 갈 예정이다. 살면서 변호사 사무실에 가볼 일은 드물 수 있지만, 병원은 일상으로 드나든다. 의사를 만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책의 저자 신진상 님은 의대 입시 전문 컨설턴트이다. 입시 전문가이자 독서의 고수임을 알 수 있었다. 의대 교수들이 생기부에서 보고 싶어 한다는 책 50권을 추천한다. 50권이나 되지만 어느 책 하나도 허투루 소개하는 법이 없다. 책마다 한 권 한 권 심장으로 느꼈을 사연과 감동이 전해진다. 평소에 책을 얼마나 많이 읽고 또한 책을 사랑하는지 독서광의 깊은 독서 내공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북소물리에 같아서 책을 정말 맛있게 소개하는데, 그의 표현 과정을 보고 있으면 이 책들을 모두 읽어보고 싶다는 갈망이 생긴다.


책이 반복해서 알려주는 것은 의학은 이과가 아니라 문이과의 융합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인문학 쪽에 더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의사가 치료하는 것은 물건이 아나리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숫자'나 '질병덩어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인격을 가진 귀하디 귀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의사의 소중한 자질이다. 배워서 남에게 줄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의학이 그것을 실천하기에 가장 적합한 학문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의미를 추구하고 인간관계를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가치관과 의사라는 직업이 너무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_p.245"


의사의 단정적인 말투에 환자와 그 가족들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사람은 우주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모든 법칙이 예외없이 적용되는 그런 경우란 없다고 생각한다. 시한부를 선고 받고 모두 다 곧 죽을 거라고 말해도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케이스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의학의 법칙 3가지가 직관, 예외, 편향인 것을 보면(이 말은 의학에는 법칙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의학이 자연과학보다 인문학 쪽에 더 가깝다는 사실이 와닿습니다. _p.243"


정시로 의대에 가는 것은 n수생과도 경쟁해야 하므로 매우 어렵다. 최근 수능이 메디컬고시가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왕년에 공부 좀 해봤다는 고인물들이 수능에서 함께 경쟁한다. 심지어 의대나 한의대 지원을 위해 다시 수능을 보는 학교 선생님들도 계시다고 하니 수능에서 높은 백분위를 가져오는 것은 쉽지 않다. 수능 전체에서 3문제(?) 안쪽으로 틀릴 자신이 있으면 정시에 올인하라는 말도 있다. 고로 현역이라면 수시 학종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준비하는 것이 훨씬 유리한 방법이며 학종에는 독서가 답이라는 것이다. 요즘은 책육아를 실천하고 있는 부모님들이 많은데 역시 독서가 이래저래 정답이었나보다. 텍스트를 읽는 것은 세상을 읽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의대 교수들은 책을 잘 읽는 학생을 좋아한다.


"의대는 세특과 창체에 적힌 독서 활동을 꼼꼼히 봅니다. _p.5"


독서를 독서와 창체에 녹여내는 것이 의대 생기부에 국한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학부에도 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된다. 애초에 독서를 좋아해서 생기부에 스며들었던지 아니면 생기부를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던지, 그 순서에 상관없이 독서에 빠져드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다.


"의대는 합격하는 학생들은 거의 예외 없이 독서광이며 의대 교수들이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의대 생기부에는 필연적으로 독서 활동이 포함돼 있습니다. _p.6"




이 책의 특장점 포인트는 책을 창체와 세특에 녹일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는 것에 있다.


<<눈물 한 방울>>

이어령 교수의 시는 2023년 서울의대 수시 지균전형 면접에서 제시문으로 사용된 적이 있는데, 이런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딸을 잃은 아버지를 의사의 입장에서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눈물 한 방울>>의 글을 읽고 울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 크게 공감을 하면서 훨씬 인간적인 답변을 할 수 있을 겁니다. _p.100"



<<눈물 한 방울>> 책을 어떻게 창체에 녹일 수 있을까 싶지만 '자율 활동'으로 이어령 교수의 시를 음송한 뒤 그 시를 선택한 이유와 느낌을 돌아가면서 발표할 수 있다. '진로 활동'으로는 시 '생각은 언제나 문명의 속도보다 늦게 온다'를 통해 실제 기술과 기술을 재는 단위 표준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며 인문학으로 시작 산업공학으로 가는 길을 제시한다. 세특에 녹이는 방법으로는 '한국사'에서 국립암센터의 역사 알아보기, '생명과학2'에서는 이어령 교수를 비롯해 수많은 유명 인사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암의 유형과 특징 조사가 제시되어 있다.


<<불편한 편의점>>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편의점에서 일하는 학생, 공시생, 노숙자 등 다중 초점 렌즈처럼 모든 등장인물의 시선을 보여주며, 활어처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소설이라 소개한다.


창체에 녹이는 방법은 '자율 활동'으로 일의 의미, 직업의 귀천, 코로나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에 대해 발표 및 질의응답 한다. '동아리 활동'으로는 책의 주인공이 일했던 강남 성형외과의 기발한 광고 기법을 분석해 보기, '진로 활동'으로는 성형외과가 생기부에서 언급해서는 안 되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바뀐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의대 졸업자가 해마다 어떤 전공을 선택하는지 메디컬 신문에서 자료 조사하기가 있다. 세특에 녹이는 방법은 '사회문화'에서 사회계층과 불평등의 사례로 책을 활용하기, '철학'에서는 불편이라는 개념을 놓고 철학적 사유를 펼칠 수 있다.


<<수학의 쓸모>>

수학이 인류문명에 기여해 온 역사를 다룬 책이다. '넷플릭스가 추천 영화를 골라내는 알고리즘, 구글의 번역 시스템에 돌아가는 원리' 등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신장병 환자의 GFR 수치들을 살핀 뒤 다른 실험실 검사에서 얻은 데이터 및 생체 신호와 결합해 신장 기능의 향후 결과 예측할 수 있고, AI 기술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칼은 어떤 조직에 암세포가 들어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의학에서 수학의 쓸모는 더욱 커질 겁니다. 인간 질병의 예측에는 수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의대는 점점 더 수학을 잘하는 의대생을 원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_p.179"


창체에 녹이는 방법은 '동아리 활동'으로 수학의 쓸모, 미적분의 쓸모, 확률과 통계의 쓸모 등으로 시리즈 기사를 준비해서 책의 내용 인용하기, '진로 활동'으로는 '수학은 어떤 식으로 의학 발전에 기여했는가' 등을 주제로 보고서를 쓰고 발표할 수 있다. 세특에 녹이는 방법은 '확률과 통계'에서 암 환자의 완치 판정은 어떤 수학적 원리로 결정되는지 조사하기, '미적분'에서는 MRI, PET, CT 등의 장비에 쓰인 미적분의 사례를 생기부에 활용할 수 있다.


<<청년의사 장기려>>

돈이 없어도 만나기만 하면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는 장기려 고신대 의대 설립자에 관한 소설이다. 가난한 환자들을 위해 평생을 바친 의사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았던 인물이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고신대 등은 학교 설립 자체가 기독교 전통에서 시작된 학교이고, 카톨릭대와 대구카톨릭대는 교수들 중에 상당수가 천주교 신자인 학교라고 한다. 카톨릭 관련 의대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의사라는 직업이 소명의식과 동의어임을 삶으로 증명한 이태석 신부의 이름을 적어도 좋다. 이태석 신부님의 책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는 한때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학생들이 중고생 시절 거의 반드시 읽었던 필독서였다고 한다.


창체에 녹이는 방법은 '동아리 활동'으로 봉사 동아리에서 한 봉사 내용을 적으면서 장기려 박사의 삶이나 책 속 문장을 활용하기, '진로 활동'으로는 '장기려 박사와 이태석 신부를 비교해 두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연구한다. 세특에 녹이는 방법은 '영어 독해와 작문'에서 장기려 박사가 받은 막사이사이상 관련 기사를 검색하며 필리핀의 역사 등을 영어 자료에서 찾아보기 등이 있다.





이렇게 책을 창체와 세특에 녹일 수 있는 방법들이 어쩌다 한 번씩 나온 것이 아니라, 소개하는 책 50권 모두 빠짐없이 모두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 매우 놀랍다. 저자가 서두에서 밝혔듯이 대한민국에서 의대 생기부를 가장 많이 봤다는 그와 같은 이력이 아니면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서울대, 울산대를 비롯한 많은 의대는 면접 때 생기부에 적힌 독서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한다. 교과 공부와 수능 공부도 중요하지만, 책을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독서 활동은 현역 수시 의대 입시 성공을 약속한다. 우리는 책읽기가 비단 입시뿐 아니라 인생의 설명서가 되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꼭 의대 준비생이 아니어도 인문, 사회, 의과학 등 다양한 책의 맛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책이다. 책을 보는 눈이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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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깨우는 아침 공부의 기적 - 등교 전 1시간에 주목하라!
김민주(미쉘) 지음 / 한빛라이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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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족으로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자영업을 하시는 부모님의 생활패턴에 맞춰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어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야간자율학습, 대학교 때는 과외, 회사에 다닐 때는 야근을 하느라 밤늦은 시간에 집에 오게 되었습니다. 내 시간 없이 하루를 마감하기에는 억울한 마음이 들어, 취침 시간을 늦췄습니다. 나 없이 사라진 하루에 대한 보상 심리였던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조용한 밤시간은 꿀같이 달콤했어요. 다음날 기상 시간은 당연히 늦춰졌습니다. 지각은 면해야 했으니 피곤한 얼굴로 인상을 구기고 일어났습니다. 애벌레처럼 허물을 벗고 나와 최소한의 것들을 하고 지하철에 앉아 꾸벅꾸벅 졸며 출근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밥을 후다닥 먹어 치우고 책상에 앉아 부족한 잠을 채웠습니다.


미라클 모닝은 그저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으니 새벽기상은 딴 세상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일은 성공한 CEO들에게나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혼,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는 내 시간이 통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시간 활용법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집안일이나 육아가 하루 종일 끊임없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중간중간 비는 시간이 분명히 존재했으니까요. 다만 나만의 시간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더라고요. 집중할 만하면 어김없이 뭔가 다른 일이 생겨서 치고 들어와요. 규칙적인 스케줄로 진행되는 식사, 청소, 빨래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양가의 대소사, 자잘하게 챙겨야 하는 잡무 등은 예고하지 않고 불쑥 찾아왔습니다. 나만의 시간은 온전히 확보될 수 없는 것이었고, 언제든지 방해받을 수 있었습니다. 내 안에 채워지는 것 없이 비워지는 느낌은 우울함으로 이어졌습니다. 엄마의 저조한 기분은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엄마의 기분에 민감하더라고요.


"'주저앉아 푸념만 할 것인가,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한참 고민했습니다. _p. 019"


자투리 시간 말고 나만을 위해 따로 분리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사방이 막힌 것 같았던 그때, 새벽 기상을 하는 사람들이 다시 눈에 띄었습니다. 숨이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기업의 간부가 아니더라도, 나처럼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주부도 새벽을 살 수 있더라고요.


그들의 모습은 이러했습니다. 까만 새벽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합니다. 책상에 앉아 차도 마시고 책을 읽으며 담소를 나눕니다. 각자 글쓰기나 공부를 하고 있으면, 베란다 창밖으로는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그들의 새벽 풍경은 여유롭고 우아한 그림처럼 남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다는 부러움이 몰려왔습니다. 다행히 돈이 없어도 갖춰놓은 것들이 없어도, 나도 따라 할 수 있는 부러움이었습니다. 책상이랑 알람 시계, 펜과 종이, 책 몇 권과 커피 정도가 준비되면 되었어요. 그렇게 유튜브 <미쉘TV> <MMStudy> 구독을 시작했고, 네이버 카페 <미자모>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나 이렇게 잘났다!' 자랑이 아니라 '해보니까 좋아요. 좋으니까 같이 해요!' 나눔의 마음이 느껴졌어요. 그 나눔의 마음은 질투가 아니라 부러움을 일으켰고, 부러우니까 지는 게 아니라 부러우니까 따라 하게 되었어요.


"내면의 나와 만나는 시간 동안 억울하고 사람들에게서 상처받은 마음도 치유되는 기분이었고, 자기혐오와 죄책감에서도 조금 자유로워졌어요.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 너그러워진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드디어 저도 아침이 주는 선물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죠. _p. 019"


위로(?)가 되는 것은 저자 또한 저녁형 인간에 가깝다고 고백해 준 것입니다. 그녀는 완벽을 말하지 않아요. '내가 옳다, 나를 따르라' 아니라 오히려 부족한 것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SNS 속 완벽하고 빛나는 찰나, 그 순간만을 노출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필터를 거치지 않은 원본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저도 용기가 생겼어요. 뇌를 깨우는 아침 공부의 기적에 도전하고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면 진행형의 실수나 실패를 말할 수 있는 용기는 높은 자존감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침 공부를 함께 잘할 수 있었던 이유도 어쩌면 잠 많고 게으른 엄마임을 아이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부족함을 인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_p. 052"




제가 아침 공부에 대해서 가장 오해했던 것은 수면시간의 부족에 관한 것이었어요. 잠이 보약이라던데 자칫 잠을 줄였다가 건강을 해치면 큰일이니까요. 잠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수면 시간대를 앞으로 옮기는 것이더라고요. 일찍 잠드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다음 날을 기대해 보니 가능했어요. 일찍 자려면 저녁 식사 시간도 늦지 않아야 했습니다.


"일찍 일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바로 일찍 잠드는 것입니다. _p. 054"


드디어 새벽 다섯 시 일어나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일찍 일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 행복했습니다. 다들 해도 나는 못 할 줄 알았거든요. 모두 잠든 새벽 혼자 일어나, 커피와 과자 에이스를 세팅하고 책상에 앉았는데 기분이 어찌나 좋던지요. '나도 할 수 있다.' 이미 성공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하루가 두 배가 된 것만 같았어요.


저자는 육아, 작가, 유튜버, 사업 등 몸이 여러 개인 것처럼 놀랍도록 많은 일을 해내고 있는데,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그 비법이 궁금했어요. 그녀는 직접 쓰고 있는 시간 관리 노하우 11가지를 공개합니다. to do list 작성도 좋았지만 not to do list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피해야 진짜 '할 일'을 할 수 있겠더라고요. '가상 데드라인 정하기'도 중요한 전략일 것 같습니다.




저자는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동안은 아침형 인간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말합니다. 맞아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여유롭게 등교했던 날과, 지각하지 않으려고 다급하게 하루를 시작한 날은 분명히 시작부터 그 기분이 달랐어요. 종소리에 맞춰서 헐레벌떡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 것보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여유롭게 교실에 앉아있는 모습이 훨씬 좋죠. 결국 저도 아이도 함께 바뀌어야 했습니다.


"공부도 하고, 독서도 하고,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여유로운 아침 식사를 즐긴 후 등교하기를 원한다면 아침형 인간으로서의 삶을 추천합니다. 분명 여유로운 집안 분위기를 체감하실 거예요. _p. 040"


아이에게도 아침 공부를 권하고 싶었는데 일부러 깨우지는 않았습니다. 엄마가 억지로 깨운 새벽이 기분 좋을 리 없을 테니까요. 책 속에 '절인 배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깊이 공감했어요. 김치를 담글 때 시어머님께서 상의 없이 보내신 '절인 배추'와 내가 하고 싶어서 산 '총각무'를 대하는 마음은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아이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관찰하는 자세와 아이와의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_p. 070"


저자는 '이래라저래라 대화법'이 아니라 '아이에게 물어보는 화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책에는 그녀가 실제로 아이와 나눴던 대화가 예시로 나와 있습니다.


엄마: 운동장에서는 어떤 친구가 멋져 보여?

아이: 운동 잘하는 친구요.

엄마: 음악실에서는 어떤 친구가 멋져 보여?

아이: 노래 잘하는 친구요, 피아노 잘 치는 친구요.

엄마: 교실에서는 어떤 친구가 멋져 보여?

아이: 공부 잘하는 친구요.

엄마: 너는 어떤 친구가 되고 싶어?

_p. 220

신기하게도 이런 질문들이 아이들에게는 잘 먹히더라고요. 핵심은 엄마가 물어보고,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서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해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잔소리하지 않고도 전하고 싶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더라고요. '아이에게 물어보는 화법'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잘 써먹고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른말을 할 때 아이들은 이를 잔소리로 들을 확률이 높아요, 하지만 아이가 직접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면 그때는 더는 잔소리로 받아들이지 않아요. _p. 104"


저자는 또한 '오전에 할 공부를 다 하고 방과 후 신나게 놀자'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설득했다고 해요. 이것도 따라 해봤는데 정말 동기부여가 되더라고요. 뭐든 마음이 급하면 스트레스가 쌓이지만, 미리 해놓으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쌓이는 것 같아요.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 아침에 해놓으면 할 일을 끝냈다는 생각에 홀가분합니다. _ p.165"


할 일을 끝내고 난 후의 상쾌하고 개운한 기분을 초등 저학년 아이도 분명히 구별하고 표현하더라고요. 이렇게 작은 성공의 경험들을 자주 경험할 수 있게 유도하고 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면 환경조성도 필요해요. '일조량, 빛 공해 차단, 온습도, 침구 관리, 전자기기 관리' 등의 방법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부러운 모습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라 그만큼 노력해야 가능한 일임을 알 수 있었어요. 책상, 침대, 특히 정리와 청소에 관한 언급은 많이 찔렸습니다. 저에게는 정돈된 집이 여전히 큰 숙제인데, 또 열심히 따라 해봐야죠.




아침의 기적을 시작하고 그 힘으로 하루를 성공할 수 있는 '뇌 속이기, 작은 성공 경험 쌓기, 공부에 긍정적인 이미지 심어주기, 자기 인정 키우는 법' 등도 이야기합니다.


마지막 장에는 4주간 아침 공부 루틴 만들기에 대한 단계별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전교 1등'을 하고,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수상한 아이가 어렸을때부터 엄마와 어떻게 스케줄표를 짰는지 그 과정을 알 수 있어 참고하기 좋았어요.




성적이라는 결과도 부럽지만, 아이가 새벽에 스스로 일어나 야무지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근사하죠. 책은 저자가 4년간 아이들과 함께 아침 공부를 실행하고 깨달았던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성공담은 자랑으로 이어지기 쉬워요. 그래서 어떤 자기 계발서는 거부감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책은 자랑하지 않고 공유합니다. 그것도 해볼 만한 것들로만요. 잘 안 보려고 하지만, 어쩌다 SNS에서 넘사벽 세상 속 사람들의 완벽한 모습을 보면 허탈해지거든요. 나는 애초에 따라 하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저자의 글은 휘황찬란하지 않지만, 오히려 일상과 닮아있어 바로 시작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해줘요. 기적은 평범한 것이더라고요.


어차피 확실한 미래란 없으므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접고 당장 '실행'할 것을 권유합니다.


"'우리 아이들 미래는 어쩌지?' 하는 고민과 걱정은 접어두고 '일단 오늘 하루를 잘 살아보자!' '뭐라도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행하는 데에 시간을 쏟는 게 더 현명해요_p. 162"


아침 공부를 시작했지만, 밤늦게 시작하는 아시안컵 축구 경기 때문에 다시 삐걱거립니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중요한 경기를 포기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이럴 때는 "변수 앞에 느긋해지기"를 펴서 잠깐의 실패에 좌절 금지, 마음의 여유도 챙겨봅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늦잠 쿠폰'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평생 프로젝트라 생각하면, 하루 이틀 삐끗한다고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될 거예요. _p. 121"


알았지만 불가능이라 여겼던 '아침 공부의 기적'을 시작해서 현실의 내 삶으로 데려올 수 있었어요. 여전히 늦잠 자는 날이 많지만, 그것 때문에 포기하고 실패라고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예전보다 나아졌고 개선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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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일 공부머리 대화법 - 스스로 질문하고 배우고 깨닫는 아이로 키우는 하루 한 문장 부모 대화의 비밀
김종원 지음 / 카시오페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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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출신 안철수 의원의 딸 안설희 씨가 코로나 침투 경로를 밝히는 논문의 제1 저자로 등재됐다는 뉴스를 봤다. '콩 심은 데 콩 난다더니' '공부머리는 유전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 아이의 공부머리가 유전자가 아니라 부모의 말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작가가 있다. '부모의 말을 닮은 아이의 뇌 . . .' 참 무거운 말이다.

나의 말을 점검한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틀렸고 도대체 무슨 말을 이렇게 골라서 하며 살라는 건지 . . . 그러니까 또 부모가 문제라는 거군.' 괜히 찔리니까 뾰족한 마음이 든다. 차라리 '어차피 할 놈은 하더라'는 말이 편하고, 유전자에게 원인을 돌리며 조상님 탓을 하는 게 쉽다.

하지만 더 생각해 보면 바꿀 것이 '말'이어서 다행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학군지로 이사 가지 않아도, 엄청난 사교육비로 허덕이지 않아도 단지 엄마의 '말'만 바꾸면 결국 해내는 똑똑한 아이로 클 수 있다. 돈도 들지 않고 나도 당장 해볼 수 있다. 뒤돌아보면 내 행동을 결정한 건 '생각'이었고 그 생각은 누군가의 '말'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김종원 작가님의 책은 표지를 넘기면 덮을 수가 없다. 치열한 연구와 사색을 통해 나온 문장들은 어려운 구석이 없고 술술 읽혀 이해가 쉽다. 마치 일타강사의 강의같다. 그래서 내가 문제를 풀었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해했고 감동했어도 내가 혼자서 풀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의 글은 미분 불가능한 점이 없는, 모든 구간에서 연속된 함수 같아서, 이번 책도 펼치자마자 다 읽어버렸는데, 책이 66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실천하라는 뜻인 것 같다. 작가는 한자 한자 눌러서 힘들게 썼겠지만 쉽게 읽히는 글을 좋아한다. 좋으니까 휘리릭 다 읽어버렸지만 나의 삶을 데리고 다시 돌아와 천천히 읽는다. 삶을 대입해서 풀어본다. 익숙해지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게 다 널 위해서 하는 거야."

나는 사랑을 담아 말하지만, 아이에게는 좀 다르게 들리는 것 같다.

"내가 더 살아 봐서 잘 알지! 그러니까 너는 내 말만 조용히 들어!"

"생각은 내가 할 테니까, 너는 내 말만 들으면 되는 거야. _ p.46"

아이에게 무례했던 내 모습이 스친다. 몇십 년 더 살아봤고 경험해 봤다는 이유로 허락도 없이 아의의 삶에 들어가 내 생각을 강요했던 무례함이다.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부모라는 이유로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행위는 아이에게는 폭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_ p.46"

그럼 어떻게 말해야 할까? 분명 대신할 수 있는 말들이 있다.

"멋진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너에게 더 중요한 일은 어떤 걸까? _ p.47"

스스로 빛날 수 있게 하는 아름다운 말인 것 같다.

"너는 오늘 어떤 걸로 네 하루를 채울 예정이니? _ p.51"

책을 읽고 자주 들려주기 시작한 예쁜 말이다.



"너 하나만 보면서 살고 있어. _ p.57"

어렸을 때 많이 들었던 말이다. 사랑에 감사하지만, 책임감으로 눌리고 부담을 주게 된다. '공부'와 '보답'을 연결해서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

"영재는 오직 길러지는 것이며, 환경으로 나타나는 결과다. _ 심리학자 피아제"

환경이 의미하는 것이 좋은 집과 돈, 이미 정해진 것들이라면 좌절했겠지만 내 말만 바꾸면 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책이 말하는 눈에 띈 영재들의 특성 중 하나는 "해결하려는 자세로 살기 때문에 쉽게 불평하지 않는다"이다. 앗, 그동안 뉴스를 보며 정치인들 탓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 . 나는 그동안 아이에게 '나라가 이렇게 돌아가는 것이 모두 정치인들 때문'이라고 반복해서 들려준 셈이다.

"현재 느끼는 나쁜 기분의 이유가 모두 남에게 있다고 말한다는 것은,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책임이 남에게만 있으니, 계속 그들의 탓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_ p.92"

남탓과 불만, 불평이 아니라 해결하려는 태도로 살아가는 아이는 얼마나 빛이 날까.

"한 걸음을 걸어도 스스로 선택한 시작일 때, 빛을 발하는 거니까요. _ p.63"

오늘의 내가 해야 할 일의 방향을 잡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을 찾아서 해내는 아이로 성장하길 바란다.


"고생스러워도 조금만 참고 공부하자. 5년만 참으면 앞으로 편안하니까. _ p.107"

공부는 고생이라는 공식을 심어주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한다고 해도 절대 편안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입시 이후에는 취직, 결혼, 출산, 육아의 더 큰 산이 첩첩산중으로 놓여있음을 알고 있다. 일단 대학은 잘 보내놓고 보자라는 다급한 생각에서 나온 말이었는데, 아이들은 나중에 속았다고 생각하며 부모를 원망할 수도 있다.

"배우는 건 참 행복한 일이야. _ p.107"

나이 들어서 하는 공부의 장점은 '수학도 퀴즈처럼 재밌을 수 있고', '국어 문제집 속의 시나 소설을 읽고도 눈물을 흘릴 수 있으며', '영어 지문을 읽으면서 고대 철학가의 지혜를 얻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공부의 나름의 재밌는 구석을 보여주고 싶다.

아이가 백 점을 맞았다고 기뻐서 말하는데 "반에서 몇 명이 백 점을 맞았니?"라는 말로 찬물을 끼얹은 적이 있다.

"가장 사랑하는 부모가 자신의 노력과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끈기가 사라지죠. _ p.122"

인정과 사랑, 안정감을 주어 삶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받쳐주는 말이 나오도록 연습한다.

"책상 정리 하라고 했어, 안 했어!"

지적과 명령, 억압과 분노로는 아이의 행동을 잘 변하지 않는다. 작가의 제안대로 '생각의 유전자'를 심어준다.

"혹시 깜빡 잊은 거 아니지? 잘 알고 있지? _ p.157"

화내지 않고 변화를 줄 수 있는 이 말을 반드시 입에 붙여야 한다.

"스스로 할 일을 생각하고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변화를 줍니다. _ p.158"

찾고 싶었던 명문가의 비밀을 찾았다.

"대대로 지성과 품성이 뛰어난 명문가에서 다시 지성과 품성이 뛰어난 아이가 탄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유전자 때문이 아니라, 말의 힘 때문이죠. _ p.164"

"명문가에서 다시 인재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대대로 내려오는 언어의 철학과 말의 깊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 언어의 힘이 가정과 아이를 성장시키는 결정적인 자본이 되는 거죠. _ p.237"

축구 게임 때문에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는데 좀 더 짧게 말했어야 했다. 마무리도 긍정이었어야 했고. 나는 특히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더 비난하고 과하게 부정적이었던 것 같다. 무슨 말이든 공감이 먼저다! "게임 하고 싶은 마음 이해해!"



1. 짧게 말하기

"게임을 오래 하면 눈 건강에 안 좋아."

2. 아이의 의향 묻기

"너는 어떻게 생각해?"

3. 긍정적으로 마무리하기

"너라면 알아서 절제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듣고 자라지 않아 낯선 화법이지만 명문가의 비밀이란다. 부정과 비난의 언어를 희망과 긍정의 말로 바꾼다.

"하지 말라고 했어, 안했어!"라는 판결형 표현이 아니라 "네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니?"라는 열린 표현을 사용한다. 스스로 이유를 찾고 생각해서 스스로 바뀌는 아이가 된다.

나의 기대를 물려주지 말고 부담스럽지 않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기대'를 자주 사용한다. 손톱 자르기를 귀찮아해서 "네 손톱이 트롤이니?"라고 비난했었는데 손톱깎이를 든 아이에게 "깔끔해질 손톱을 생각하니 벌써 개운하다." 기대의 말을 해주니 내 언어의 격 또한 올라간 것 같고 이래저래 서로 기분이 좋다. 대신 "전교 1등 할 수 있지?"와 같은 과도한 기대는 하지 않는다. 사실 속마음이야 그렇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않기로 한다.

"우리가 소홀하게 보낸 시간은 그대로 미래로 달려가서 불행한 일은 준비하고 있어. _ p.170"

시간의 가치를 알려주는 매일 1분의 시간을 낸다. 물려줄 돈은 없지만 시간의 가치를 알게 해줄 수 있다면 그 어떤 것보다 큰 유산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요?"

나이팅게일의 아버지는 확신에 찬 음성으로 답했다.

"네가 도울 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어야지. 공부를 통해서 그것들을 갖출 수 있단다. _ p.297"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함께 아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줄 수 있는 것을 갖추기 위해 공부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

아이의 귀에 잘 들려주기 위한 낭독과 말 연습이었지만 내 안의 어린아이도 같이 치료받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위한 말이 곧 나를 위하는 말과 다르지 않았음이다. 말이 가지는 힘을 새삼 다시 느낀다. 말은 유전자를 바꾸고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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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 찬란한 생의 끝에 만난 마지막 문장들
한스 할터 지음, 한윤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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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시멀리스트가 되었다. 혹시 나중에 필요하게 될지 모르고 멀쩡해 보이는 물건들을 버리는 것이 아까웠다. 덕분에 집은 모시고 살아야 하는 물건들이 가득해졌고 그런 집이 부담스러워졌다. 어느 날 유품 정리사가 쓰신 글을 읽게 되었다. 죽은 다음 내가 남겨놓은 짐을 정리하게 될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짐을 정리할 거냐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결혼하면서 혼수로 해왔던 못 쓰는 밥솥이며 고장 난 TV를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추억이 담긴 물건이니 아쉬워서 사진은 한 장씩 찍어두었다.

죽음은 어떤 철학보다 강력한 삶의 철학이다.

'죽음을 말하는 것은 곧 삶을 말하는 것이다. _ p.006'

죽음은 안개처럼 흐리고 갈피 잡지 못하는 삶을 선명하게 해준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의 장례식을 떠올리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는다. 화장터에서 일하는 한 장의사가 쓴 책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라는 제목을 보며 오히려 잘 살기로 결심했다.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면 시간의 유한함이 다가오고 하루하루의 삶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해진다.

방귀 좀 뀌어본 세계적 현자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그들이 남긴 생애 마지막 유언은 무엇일까?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사는 이 책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를 더욱 궁금하게 했다.

"앞서 떠난 이들의 마지막 말들은 어느 날 다가올 우리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며 오늘 이 순간을 더 간절하고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선한 다짐을 하게 만든다. _ 이해인 추천사"





'헤겔(1770~1831)' 오진으로 수년 동안 고통받다가 삶의 마지막 밤을 지내고 난 다음 날 아침, 엄청난 고통이 잠깐 잦아들자 아내에게 속삭였다.

"하느님은 오늘 밤 내가 평온한 시간을 누리기를 바라셨을 거라오. _ p.216"

생의 마지막 8년을 '침대 무덤'에서 누워서 보내야만 했던 독일의 시인 '하이네(1797~1856)'는 죽기 10년 전 스스로를 '앙상하고, 외눈박이 식인종 같다'고 묘사했다.

"나를 곧 땅에 묻을 수 있게 내 고통을 줄여 주소서. _ p.223"

구강 속 종양으로 세 번의 수술을 받았으나 전이된 암으로 아무것도 먹을 수 없게 되고 고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자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프로이트(1856~1939)'는 주치의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한다.

"지금은 너무나 고문과 같은 고통뿐이고 그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군요. _ p.273"

그의 주치의는 엄청난 양의 모르핀을 주사했다.

극심한 암성 통증을 보며 나도 아프고 무서웠다.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너무나 죄송했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모르핀으로도 잡히지 않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극심한 고통 ... 통증 없이 죽을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지독한 통증에서 벗어나는 해방으로 바라본 것일까?


T.S.엘리엇과 흔히 비교되는 독일의 시인이자 의사인 '고트프리트 벤'은 암이 척추로 전이됐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사랑이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 따로 작별 인사는 하지 않았고 단지 "고맙소."라는 마지막 말을 속삭였고 그리고 사망했다. 벤은 유언장과 함께 부인에게 사랑이 담긴 마지막 편지를 남겨놓았다.

"나에게 죽음이 오는 이 순간에도 당신이 보고 싶소. 죽어가면서 내 손이 힘없이 아래로 처지는 이 순간에도 당신의 손을 잡고 싶소. -당신의 G. _ p.239"


'마틴 루서 킹(1929~1968)' 목사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느 누구와도 싸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서로에게 저주하거나 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_ p.260"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아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과 싸우고 누군가를 미워할 시간 따위는 없을 것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끼리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원수로 남아 저주와 악담을 쏟아내는 그런 일도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아낌없이 남기며 평안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머리가 지독하게 아프군."이라는 평범한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3000년 이상의 인류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인사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마지막 말들을 읽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인생 별것 없더라'는 말이 떠올랐다.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인물들이 무슨 업적을 남겼던지, 그들과 나의 능력 차이가 아무리 하늘과 땅이더라도,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라는 '평등함' 앞에서 자랑하고 뽐낼 것도 없지만 비굴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수십 명의 세계적 현자들의 생애와 유언을 다루다 보니 한 인물에서 다음 인물로 넘어갈 때 갑자기 맥이 끊기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쉬웠다. 하지만 그 덕분에 다양한 시대와 문화, 배경을 가진 그들의 모습을 한곳에서 농축해서 볼 수 있었다. 쉽게 모인 이야기가 아니라 지은이가 몇십 년간 추적하고 수집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검은 비너스 '조세핀 베이커(1906~1975)'는 인종 차별이 영원하지 않음을 입증한 산 증인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춤을 출 거야. 나는 춤을 추기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이지. 나에게 있어 삶이란 춤이야. 숨이 멎을 때까지 춤을 추다가 지쳐 쓰러저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_ p.172"

그녀는 파리의 큰 무대에서 춤을 추고 난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다. 나도 그녀처럼 숨이 멎을 때까지 생애 마지막 직업을 소명으로 받고 그렇게 일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다.


지칠 줄 모르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은 고령으로 시력과 청각이 나빠지자 공상으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 위대한 미국인은 영원한 잠에 빠져들기 직전에 머리를 창가로 돌리며 속삭였다.

"저곳은 참으로 멋진 곳 같소. _ p.251"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았었던 유명 인사들의 죽음을 읽는 것은 우리의 나의 삶을 말하는 것 같았다. 잘 살고 그리고 저곳으로 가고 싶다. 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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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 - 삶의 고비마다 나를 일으킨 단 한 줄의 희망
한동일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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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은 마치 <해리포터>의 주문처럼 읊조릴 만한 한 줄의 문장들이 담겨있는 마법서같다. 남은 문장들이 아까워 천천히 읽고 싶은 독자의 마음을 알았을까. 묵직한 하드커버이고 옆면은 금박으로 도련되어 있으며 금빛 책갈피끈이 있다. 마음에 새길 금빛 주문이 튀어나올 것 같다. 책의 외양에 마음이 홀린 것은 전작인 라틴어 수업을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Nolite ergo solliciti esse in crastinum; crastinus enim dies sollicitus erit sibi ipsi: sufficit diei malitia sua.

놀리테 에르고 솔리치티 에세 인 크라스티눔; 크라스티누스 에님 디에서 솔리치누스 에리트 시비 입시: 스피치트 디에이 말리티아 수아. _p. 112

많이 들어봐서 익숙한 문장이었는데 라틴어로 읽으니 새삼 특별하게 느껴진다. 라틴어 까막눈이지만 라틴어 발음이 하단에 한글로 쓰여 있어서 아이들 앞에서 뭔가 있어 보이게 외칠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 집에 라틴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없고 내 멋대로 억양과 어조를 넣어 유창한 듯 읽으면 그만이다. 엄마가 무슨 마법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들렸는지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우리는 당장 해야 할 공부나 일을 뒤로 미루고, 훗날의 걱정과 고민은 당겨서 하길 좋아합니다. _p. 113"

병원에서 보호자로 보낸 시간들은 안 그래도 소심했던 나를 더욱 겁쟁이로 만들었다.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고 앉은 걱정은 끝이 없다. '스피치트 디에이 말리티아 수아' 이 문장은 당장 해야 할 일들은 뒤로 미루고 엄마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의 염려를 가불하여 오늘을 죽이고 있는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문장이다.

"인간이 하루에 느끼고 감내할 수 있는 절망과 고통을 계량화할 수 있다면, 그날 딱 하루치만의 고통과 절망을 느끼고 감당한다면 좋겠습니다. 내일 다가올 수도 있고 피해갈지도 모를 고통과 절망에 미리 주눅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단한 하루하루의 가장 큰 성공은 죽지 않고 살아 있기로 선택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_p. 113"

오늘을 죽지 않고 살아 있기로 선택한 것만으로 이미 성공했다 말해주는 위로가 필요했었나 보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_p. 195"

행복한 삶을 추구할수록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게 주어진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갈구하던 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반드시 행복해져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에 저자는 '행복은 고단하고 지친 삶에 주어지는 사탕 같은 존재로 그 사탕 자제가 목표지점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반드시 행복해질 필요는 없다'는 말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그럴듯한 것들이 없는 내 인생에 만족하게 된다. 다만 주어진 것들과 시간을 견디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채워가는 태도, 행복감을 느낀다.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야 한다.

Qui maledixerit patri suo vel matri, morte moriatur.

퀴 말레디세리트 파트리 수오 벨 마트리, 모르테 모리아투르. _p. 46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깎아내리고 자학함으로써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모는 사형과 마찬가지이지요. _p.48"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태어난 가난한 사람 (bominem pauperem de pauperibus natum; 호미넴 파우페렘 데 파우페리부스 나툼) 그것이 바로 나였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와 빚쟁이에 시달리는 가난하고 불화하는 가정에서 부모님을 원망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철이 들고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아이를 키워야 했을 부모를 향한 연민을 가지면서, 저자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절대 최고가 아닌 부모님을 최고라 정의한다.

그런 생각은 가지를 뻗어나가 자신이 가르치는 제자들을 '최고의 학생'이라고 믿는다. 부모님도 제자들도 최고라 정의했을 때 나 자신도 최고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 자신과 연결된 사람들을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 여긴다면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만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유를 어느 한 사람의 문제로 몰아가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물론 이것은 세상에 널린 쉽고도 흔해빠진 선택이었습니다. _p.25"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고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의 문제로 몰아가며 미워하는 것은 나의 불행을 전가하는 쉬운 선택이었다. 저자는 이것이 내 안에 있는 불만과 미성숙을 타인에게 투사하는 것이라 말한다. '이게 다 쟤 때문이야.' 책임을 넘겨 씌울 누군가를 계속해서 만들면서 나는 의로운 척 아닌 척 빠져나왔다. 말로 뱉어버려 주워 담을 수 없는 부끄러운 순간들이다.

"내가 극단적으로 미워했던 타인들은 가난한 내 영혼의 반영이었습니다. _p.88"


내가 이를 원하고 명령하니 의지는 명분을 위해 존재하여라.

Hoc volo sic jubeo sit pro ratione voluntas.

호크 볼로 시크 유베오 시트 프로 라티오네 볼룬타스. _p. 330

사극을 보면 시대를 막론하고 자주 등장하는 대사가 있다. "명분이 필요해." 백성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명분이었다.

"당신이 배를 만들고 싶다면, 사람들에게 목재를 가져오게 하고 일을 지시하고 일감을 나눠주는 일을 하지 마라. 대신 그들에게 저 넓고 끝없는 바다에 대한 동경심을 키워주어라. _ 생택쥐페리"

아이들에게 문제집을 나눠주고 시간표를 짜주는 것도 좋지만 먼저 아이들이 꿈꾸고 나가고 싶은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


당신의 달란트를 잊지 마세요

Ne obliviscaris talentorum tuorum.

네 오블리비스카리스 탈렌토룸 투오룸. _p. 373

"눈의 잘 띄지 않는 어떤 재능은 범용적이어서 유용할 때가 많습니다. _p.373"

나는 그다지 똑똑하지 않고 말솜씨가 없으며 춤을 잘 추거나 노래를 잘하는 등의 끼가 없다. 내가 가진 달란트는 초라해보이고 남들의 화려하고 반짝이는 재능이 부럽다. 저자는 또렷한 재능이 아니라 조용히 누군가를 응원하는 재능처럼 '조용한 일상의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활약이 더 많이 필요하다 말한다.


위로해줄 이들을 바랐건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Sustinui qui simul contristaretur, et non fuit.

수스티누이 퀴 시물 콘트리스타레투르, 에트 논 푸이트. _p. 18

힘들 때 위로해줄 사람을 찾게 된다. 위로를 바랐건만 찾지 못하였다는 옛사람의 문장을 읽고 절망의 탄식이 몇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은 아닌가 하는 동질감을 느끼며 묘한 위로를 받는다.

내게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은 내가 필요할 때 아무 때나 불러낼 수 있는 위로다. 내가 무슨 일을 풀고 해결할 수 있겠냐마는 나도 위로를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낼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 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송곳』 (창비, 201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증정 받아 솔직한 리뷰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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