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한동일의 라틴어 인생 문장』은 마치 <해리포터>의 주문처럼 읊조릴 만한 한 줄의 문장들이 담겨있는 마법서같다. 남은 문장들이 아까워 천천히 읽고 싶은 독자의 마음을 알았을까. 묵직한 하드커버이고 옆면은 금박으로 도련되어 있으며 금빛 책갈피끈이 있다. 마음에 새길 금빛 주문이 튀어나올 것 같다. 책의 외양에 마음이 홀린 것은 전작인 『라틴어 수업』을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
Nolite ergo solliciti esse in crastinum; crastinus enim dies sollicitus erit sibi ipsi: sufficit diei malitia sua.
놀리테 에르고 솔리치티 에세 인 크라스티눔; 크라스티누스 에님 디에서 솔리치누스 에리트 시비 입시: 스피치트 디에이 말리티아 수아. _p. 112
많이 들어봐서 익숙한 문장이었는데 라틴어로 읽으니 새삼 특별하게 느껴진다. 라틴어 까막눈이지만 라틴어 발음이 하단에 한글로 쓰여 있어서 아이들 앞에서 뭔가 있어 보이게 외칠 수 있었다. 어차피 우리 집에 라틴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없고 내 멋대로 억양과 어조를 넣어 유창한 듯 읽으면 그만이다. 엄마가 무슨 마법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들렸는지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우리는 당장 해야 할 공부나 일을 뒤로 미루고, 훗날의 걱정과 고민은 당겨서 하길 좋아합니다. _p. 113"
병원에서 보호자로 보낸 시간들은 안 그래도 소심했던 나를 더욱 겁쟁이로 만들었다. 머릿속에서 똬리를 틀고 앉은 걱정은 끝이 없다. '스피치트 디에이 말리티아 수아' 이 문장은 당장 해야 할 일들은 뒤로 미루고 엄마로서, 딸로서, 며느리로서의 염려를 가불하여 오늘을 죽이고 있는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문장이다.
"인간이 하루에 느끼고 감내할 수 있는 절망과 고통을 계량화할 수 있다면, 그날 딱 하루치만의 고통과 절망을 느끼고 감당한다면 좋겠습니다. 내일 다가올 수도 있고 피해갈지도 모를 고통과 절망에 미리 주눅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단한 하루하루의 가장 큰 성공은 죽지 않고 살아 있기로 선택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_p. 113"
오늘을 죽지 않고 살아 있기로 선택한 것만으로 이미 성공했다 말해주는 위로가 필요했었나 보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_p. 195"
행복한 삶을 추구할수록 비참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게 주어진 상황은 쉽게 변하지 않았고, 갈구하던 것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반드시 행복해져야만 하는가?'라는 의문에 저자는 '행복은 고단하고 지친 삶에 주어지는 사탕 같은 존재로 그 사탕 자제가 목표지점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반드시 행복해질 필요는 없다'는 말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그럴듯한 것들이 없는 내 인생에 만족하게 된다. 다만 주어진 것들과 시간을 견디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채워가는 태도, 행복감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