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 - 찬란한 생의 끝에 만난 마지막 문장들
한스 할터 지음, 한윤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맥시멀리스트가 되었다. 혹시 나중에 필요하게 될지 모르고 멀쩡해 보이는 물건들을 버리는 것이 아까웠다. 덕분에 집은 모시고 살아야 하는 물건들이 가득해졌고 그런 집이 부담스러워졌다. 어느 날 유품 정리사가 쓰신 글을 읽게 되었다. 죽은 다음 내가 남겨놓은 짐을 정리하게 될 누군가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짐을 정리할 거냐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결혼하면서 혼수로 해왔던 못 쓰는 밥솥이며 고장 난 TV를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추억이 담긴 물건이니 아쉬워서 사진은 한 장씩 찍어두었다.

죽음은 어떤 철학보다 강력한 삶의 철학이다.

'죽음을 말하는 것은 곧 삶을 말하는 것이다. _ p.006'

죽음은 안개처럼 흐리고 갈피 잡지 못하는 삶을 선명하게 해준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나의 장례식을 떠올리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는다. 화장터에서 일하는 한 장의사가 쓴 책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이라는 제목을 보며 오히려 잘 살기로 결심했다.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면 시간의 유한함이 다가오고 하루하루의 삶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해진다.

방귀 좀 뀌어본 세계적 현자들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그들이 남긴 생애 마지막 유언은 무엇일까?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사는 이 책 『죽음이 물었다, 어떻게 살 거냐고』를 더욱 궁금하게 했다.

"앞서 떠난 이들의 마지막 말들은 어느 날 다가올 우리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하며 오늘 이 순간을 더 간절하고 충실하게 살아야겠다는 선한 다짐을 하게 만든다. _ 이해인 추천사"





'헤겔(1770~1831)' 오진으로 수년 동안 고통받다가 삶의 마지막 밤을 지내고 난 다음 날 아침, 엄청난 고통이 잠깐 잦아들자 아내에게 속삭였다.

"하느님은 오늘 밤 내가 평온한 시간을 누리기를 바라셨을 거라오. _ p.216"

생의 마지막 8년을 '침대 무덤'에서 누워서 보내야만 했던 독일의 시인 '하이네(1797~1856)'는 죽기 10년 전 스스로를 '앙상하고, 외눈박이 식인종 같다'고 묘사했다.

"나를 곧 땅에 묻을 수 있게 내 고통을 줄여 주소서. _ p.223"

구강 속 종양으로 세 번의 수술을 받았으나 전이된 암으로 아무것도 먹을 수 없게 되고 고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지자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프로이트(1856~1939)'는 주치의에게 다음과 같이 부탁한다.

"지금은 너무나 고문과 같은 고통뿐이고 그것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군요. _ p.273"

그의 주치의는 엄청난 양의 모르핀을 주사했다.

극심한 암성 통증을 보며 나도 아프고 무서웠다.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너무나 죄송했다.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모르핀으로도 잡히지 않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극심한 고통 ... 통증 없이 죽을 수 있기를 소망하지만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지독한 통증에서 벗어나는 해방으로 바라본 것일까?


T.S.엘리엇과 흔히 비교되는 독일의 시인이자 의사인 '고트프리트 벤'은 암이 척추로 전이됐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마지막 10년 동안 사랑이 넘치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 따로 작별 인사는 하지 않았고 단지 "고맙소."라는 마지막 말을 속삭였고 그리고 사망했다. 벤은 유언장과 함께 부인에게 사랑이 담긴 마지막 편지를 남겨놓았다.

"나에게 죽음이 오는 이 순간에도 당신이 보고 싶소. 죽어가면서 내 손이 힘없이 아래로 처지는 이 순간에도 당신의 손을 잡고 싶소. -당신의 G. _ p.239"


'마틴 루서 킹(1929~1968)' 목사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어느 누구와도 싸울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서로에게 저주하거나 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_ p.260"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아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과 싸우고 누군가를 미워할 시간 따위는 없을 것이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족끼리 서로 화해하지 못하고 원수로 남아 저주와 악담을 쏟아내는 그런 일도 있다고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라는 말을 아낌없이 남기며 평안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머리가 지독하게 아프군."이라는 평범한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3000년 이상의 인류사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인사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마지막 말들을 읽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인생 별것 없더라'는 말이 떠올랐다.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인물들이 무슨 업적을 남겼던지, 그들과 나의 능력 차이가 아무리 하늘과 땅이더라도,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라는 '평등함' 앞에서 자랑하고 뽐낼 것도 없지만 비굴할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수십 명의 세계적 현자들의 생애와 유언을 다루다 보니 한 인물에서 다음 인물로 넘어갈 때 갑자기 맥이 끊기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쉬웠다. 하지만 그 덕분에 다양한 시대와 문화, 배경을 가진 그들의 모습을 한곳에서 농축해서 볼 수 있었다. 쉽게 모인 이야기가 아니라 지은이가 몇십 년간 추적하고 수집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검은 비너스 '조세핀 베이커(1906~1975)'는 인종 차별이 영원하지 않음을 입증한 산 증인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춤을 출 거야. 나는 춤을 추기 위해서 태어났기 때문이지. 나에게 있어 삶이란 춤이야. 숨이 멎을 때까지 춤을 추다가 지쳐 쓰러저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_ p.172"

그녀는 파리의 큰 무대에서 춤을 추고 난 후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그녀의 꿈은 이루어졌다. 나도 그녀처럼 숨이 멎을 때까지 생애 마지막 직업을 소명으로 받고 그렇게 일하다가 죽음을 맞이하면 좋겠다.


지칠 줄 모르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은 고령으로 시력과 청각이 나빠지자 공상으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 위대한 미국인은 영원한 잠에 빠져들기 직전에 머리를 창가로 돌리며 속삭였다.

"저곳은 참으로 멋진 곳 같소. _ p.251"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았었던 유명 인사들의 죽음을 읽는 것은 우리의 나의 삶을 말하는 것 같았다. 잘 살고 그리고 저곳으로 가고 싶다. 웰다잉!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