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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연대기 - 현대 물리학이 말하는 시간의 모든 것
애덤 프랭크 지음, 고은주 옮김 / 에이도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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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인간과 우주의 시간 이야기 <시간 연대기>

 

풋풋했던 첫사랑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상냥하고 친절하고 위트까지 있었던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해버린 나는, 결국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첫사랑이었고, 처음으로 하는 고백이었기에 얼마나 두근거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고백은 해야겠는데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물어물어 번호를 확인한 나는 삐삐라 불리는 무선호출기에 고백과 함께 00곳에서 몇 시에 기다릴테니 나와 달라고 음성을 남겼었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몇 시간을 계속 기다렸었다. 오직 삐삐라는 음성메세지에 의존한 채, 올지 안올지도 모르는 그 몇 시간이 나에게는 얼마나 길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정말 가지 않는 듯 했던 그때.

 

가끔씩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 와 달리 삐삐나 공중전화가 사라지고, 스마트폰이 대체된 요즘은 약속 시간이 칼 같다.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이야기하고, 1분 1초를 스마트폰으로 확인한다. 정해진 시간에 늦거나 또는 빠르면 몸이 들썩이고 불안해진다. 또한 끊임없이 시간을 체크하고 이메일을 확인하며 뉴스를 실시간으로 검색한다. 지나가버린 시간과 메일과 뉴스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간다. 시간에 중독되어 정밀한 시간의 시대 속에 잡혀 살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데 궁금하다. 왜 이렇게 같은 시간(흔히 우리가 물리적으로 이야기하는)에 있었던 우리는' 빨리 감과 느리게 감'을 느끼는 것일까. 단순히 그냥 느낌에 불과한 것인가. 시간의 개념이 희미했던 목가적 낭만을 그리워하면서도 왜 시,분 단위로 나누어지지 않으면 일상 생활이 낭비된다고 느끼는 것일까. 시간이란 원래 존재하는 것일까. 존재한다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며,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금 말하는 그 '시간'이란 진정 무엇이란 말일까.

 

<시간 연대기>는 현대 물리학자인 애덤 프랭크가 물리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시간의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 쓴 책이다. 인류의 시간과 우주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태초의 시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의 장면을 연속적으로 기술해 나간다. 자연 시간의 일부분으로서의 인간이 자연에서 떨어져나와 시간을 갖게 되고, 그 시간을 조립하고 만들어 내는 일련의 인류 역사를 방대하게 기술해 놓았다. 문화와 시간의 상관 관계와 그 속에서 물질이 어떻게 시간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해 정밀하게 설명한다. 즉, 이 책은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다룬다.

 

시간은 문화와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과 동시에 우리가 속해있는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과도 뗄레야 뗄 수 없다. 더욱이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저자가 우주의 기원과 우주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은 우주를 다루고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다룬다. 덕분에 이 책은 시간과 문화, 물질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우주의 이야기까지 확장하며 책 한권이 인류의 시간 전체를 다루는 듯한 방대함이 느껴진다.

 

태초의 우주는 무엇이었을까. 시작이라는 시간이 과연 우주에서는 어떻게 어떻게 작용할 까를 수많은 물리학자와 천문학자 등이 고민했다. 과학적인 발견과 놀라운 지식의 축적으로 우리는 우리 지구만이 유일한 우주임이 아님을 알고 있다. 수많은 은하와 점점 넓어지는 우주 속에서 우리는 끝과 시작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다. 한때 '빅뱅'이라고 물리는 우주 폭발 기원설이 그럴듯했으나 갑자기 폭발해서 생겼다는 빅뱅이론은 '이전'이 없는 우주와 갑자기 시간이 발생했다는 비논리에 막혀 있다. 그래서 현재 끊임없이 브레인 우주론, 인플레이션이론, 다중우주론, 끈이론, 루프양자우주론 등 대안 이론들이 나타나서 대체하려고 햐고 있으나 이론들 역시 완벽하지 않고 진화중이다. 그 속에서 시간의 개념은 아직도 둥둥 떠나니고 있는 듯하다.

 

놀랍고도 흥미로운 우주 이론과 물리학 이론이 사방에서 튀어나와 기초 지식이 부족하면 따라가기 버거운 점도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을 굳이 분석하지 않고(분석의 정밀함은 물리학도와 천문학도에게 넘기고) 그냥 이야기라고 받아들이면 쉽게 읽을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도 매력인 것이 시간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겉핥기 수준이겠지만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 등의 시간을 바라보는 다양한 이론들은 정말 흥미롭게 경이롭기까지 하다. 특히 과학 혁명을 이끈 뉴턴과 아인슈타인의 시간 이론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개인적으로는 상대성이론을 막연하게 인식하는 정도였는데 이 책을 통해 좀 더 시공간의 장이 펼쳐지는 상대성이론을 접할 수 있어서 지적 줄거움이 컸다.

 

우리가 우주 속에서 시간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으로 인한 물질의 창조, 그리고 문화의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의 각고의 노력과 헌신으로 이루어진 연속된 시간 속의 집단 지성의 힘이다. 그래서 우리는 진화하고 있으며 과학 속에서, 잡힐 것 같지 않는 보이지 않는 우주와 시간의 실체에 대한 이야기를 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집단 지성의 놀라운 힘에 감탄한다. 그리고 과학 지식이 부족한 범인인 나에게더 큰 세상과 우주를 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해주고 있는 수많은 과학자들에게 감사하다.

 

드넓은 밤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지금 여기'의 나를 발견할 때 경이롭다. 이 책에 나와있는 줄리안 바버의 주장대로 '지금'이라는 나의 시간만이 계속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각자의 '지금' 이 시간이 곧 우주의 시간일지도 모르기에, 과거의 우둔함과 아쉬움은 접어놓고, 미래라는 시간의 불안을 털어버리며 삶을 살아가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욱 강렬히 든다. 아득한 시간과 문화와 과학의 위대함 속에서 우주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읽기다.

 

 

밑줄 긋기

 

" 질문1. 우주는 하나인가, 여러 개인가?  질문2. 우주 공간은 무한한가, 한계가 있을까?  질문3. 우주공간은 스스로 존재하는가?  질문4. 시간은 스스로 존재하는가?  질문5. 우주에는 시간적으로 시작과 끝, 아니면 둘 중 하나라도 있을까? (p100)

 

" 달의 주기인 29.5306일을 태양의 주기인 365.2422일에 맞추려는 활발한 노력이 대부분의 달력의 역사를 진행시켰다. 1년을 달로 나누면 12.3683이라는 수가 나온다. 로마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자,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계산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1년을 12개월로 만들자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은 비교적 쉬었다. 그러나 나머지 0.3683월을 그냥 무시해버릴 수는 없었다...(중략)대신관은 날짜와 계절이 서로 어긋나지 않도록 윤달이라는 27일짜리 달을 별도로 삽입해 주기적으로 달력을 조정하는 일을 했다. 이는 물질이 개입하여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지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인데...(p110)

 

"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발견은 중대한 뉴스였다. 유럽에서 일본을 거쳐 미국까지, 허블의 발견은 숨 쉴 틈도 없이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당시 혁신적인 언론매체였던 라디오에서도 모두를 열광케 하는 이 소식이 전해졌다. 허블이 우주의 시공간이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그 순간, 라디오는 인간 세상의 공간을 서로 좁혀놓고 완전히 새로운 시간을 경험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은 결코 작은 아이러니가 아니었다.(p251)

 

"그러나 항상 그리고 영원히, 우주론을 만들어내는 일은 인류 문화의 창조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인간의 시간과 우주의 시간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p464)

 

" 우리가 시간을 발명했고 계속 재창조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시간을 다시 한 번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p465)

 

덧붙임.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물론 솔직한 리뷰이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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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3월 읽고 싶은 책

 

 

 

 

​1. 중국기담(이한, 청아출판사)

 

기이한 이야기들은 항상 호기심을 자극한다. 논리의 세계에 속해서일까. 논리적이지 않고, 합리적 이성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이런 이야기들은 언제나 소소하게 즐겁다. 구전되는 이야기를 들으며 호기심을 키우며, 상상의 나래를 폈던 그 때로 되돌아가고 싶어서 한 표.

 

 

 

 

​2.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대보라 태넌, 예담)

 

가족이 해체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 현대인들은 이제 자기 반성의 시대를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가족보다 친구와 말이 잘 통하고, 가족과 있는 것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요즘 넘쳐난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무래도 소통과 배려의 문제가 아닐까. 이 책은 가장 가까워서 더 어려운 가족의 대화법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책이어서 눈길을 끈다. 이제 가족으로 돌아가 가장 가까운 만큼, 가장 따뜻한 사람이 되어보자.

 

 

 

3. 바른말 바른글(이오덕, 고인돌)

 

내가 항상 존경하는 이오덕 선생님의 글이 또 책으로 나왔다. 항상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보면서 반성하는 건데, 아름다운 우리말을 너무 잃어버리고 있다. 일본어와 영어에 오염된 우리말을 되살리는 것, 비문을 피하고 올바르고 적확한 문장을 써내려 노력했던 그의 모습은 항상 귀감이 된다. 조만간 집에 사놓고 쌓아두고만 있는 <이오덕 일기>도 읽어야겠다.

 

 

 

​4. 사물의 철학(함돈균, 세종서적)

 

​우리 주변 사물을 보고 사유해내는 것은 놀라운 능력이다. 사물에 둘러싸여 있지만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우리에게 이 책은 '사물은 무엇인가'에 대한 흥미롭게 의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가로등부터 후추통까지 정말 다양한 사물을 어떻게 저자는 바라보고 사유하는 지 자못 궁금하다. 항상 정형화된 틀 속에서 사는 나에게 이 책,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5. 누구를 위하여 공부하는가(에르빈 바겐호퍼, 생각의 날개)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해 교육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학교라는 제도를 만들어 교육을 시킨다. 그런데 학교라는 기관이 정말 인간을 인간답게 하기 위한 교육을 하고 있는가, 과연 학생들은 누구를 위해 공부하고 있는가를 따지다보면 학교의 문제점을 정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진정한 아이의 행복을 위해, 아이의 재능을 찾기 위해 학교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담아 놓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대안으로 다양한 교육 환경을 제시해 참고할 만하다. 이 책은 다큐멘터리 영화 '알파벳'을 책으로 출간한 것이라는데 그래서 자연스레 읽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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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다른 곳에 - 교양선집 16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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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 가득 찬 시와 시인들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생은 다른 곳에>

 

<일 포스티노>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시란 무엇이냐고 묻는다. 네루다는 이렇게 대답한다. "시는 메타포(은유)다." 시는 메타포의 향연이기에 시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소설도 그러할 일이다. 소설로 시와 시의 전달자인 시인을 설명하는 것은 난해한 일이며, 그러하기에 소설을 쓰는 작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밀란 쿤데라가 그렇다. 그는 메타포의 결정체인 시인과 시를 위해 초현실주의적 소설이라는 모험을 했다.

 

이 소설<생은 다른 곳에>을 읽은 독자들은 쿤데라에게 난해하며 낯설다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일반적인 소설적 흐름과는 다르다. 시인 '야로밀'의 일대기를 썼는데, 읽다보면 일대기가 아니다. 일대기를 따라가다가 어느새 무의식의 세계에 빠지고, 분열된 자아를 보게 되는 심리학 소설이기도 하고. 서정성으로 대표되는 모성과 사랑의 본질적 의문을 갈구하며, 서정시와 전위시의 충돌로 대변되는 격변의 체코에서 가치관이 뒤흔들린 세계를 바라보는 고백 소설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소설을 구성하는 것인가. 해답은 책 안에 있다. 이 책은 시인 야로밀의 이야기로 포장한 쿤데라의 경험적 고백일 것이다. "그것은 공포의 시대일 뿐 아니라 처형자와 시인이 나란히 앉아 통치한 서정시의 시대이기도 했다!"(p311) 에서 그가 말하는 것처럼, 갑자기 쿤데라는 "시를 바라보는 전체적인 가치관이 갑자기 산산조각으로 무너지며 더 이상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는"(서문, p9)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부정확성 속에서 그는 불가피하게 자해를 감당해야 했을 거이며 초현실주의 , 형태파괴, 난해 등으로 규정되는 이 소설을 썼을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이것이 무슨 비정상적인 징후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자기 자신을 의심할 때 나타나는 어떤 진정성의 표지 같은 것 아닐까 여겨진다.

 

다시 돌아와보면, 이 소설은 시인 야로밀의 탄생과 죽음의 일련의 과정으로 장이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 말한 쿤데라의 메타포에 대입하여 보면 서정시의 탄생과 죽음으로도 연결될 것이며 서정주의와 대비되는 정치 속의 전위적 시인의 탄생과도 연결될 것이다. 모성으로 충만한 야로밀은 위대한 상상력과 감정을 가진 재능있는 시인이다. 그런 서정성을 확보한 그가 사랑의 감정의 욕구가 공산주의라는 사회적 혁명 시기를 만나면서 서정성을 포기하며 시대의 처형자와 나란히 앉는 시인이 되어간다. 그런 그의 모습은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며 자비에르(제2부, 자비에르)라는 또다른 자아를 불러내는 것이다.

 

메타포(은유)로서의 자비에르는 결국 눈이 큰 그녀의 사랑을 뿌리치고 그녀를 배반한다. 이는 '그러나 창 너머의 세계가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만일 그 세계를 위해서 사랑스러운 여인을 버린다면, 그때는 배반한 사랑의 대가로 인해서 그 세계가 훨씬 더 가치있게 되리라.'(p108)는 쿤데라의 독백처럼 시의 서정성을 버리는 시인의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리고 "당신은 아름다워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배반해야만 합니다."(p108)에서 나타나듯, 시인 야로밀의 서정시와의 결별과 혁명시로의 전환을 암시한다.

 

결국 시인 야로밀은 어떻게 되는가. 쿤데라는 서정성과 결별한 시인을 죽인다.(7부 시인의 죽음) 이 죽음의 과정에서 여종업원과의 사랑은 반전으로 마무리되며 모든 혁명가와 시인들이 떠다니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 때 시인의 분열의 상징인 자비에르가 소환되는데, 자비에르가 뻥 차버린 그 소녀가 곧 야로밀, 즉 서정성의 소멸로 인해 사라져버린 야로밀로 그려진다. 야로밀은 자비에르고 동시에 소녀인 것이다. 그런 야로밀이 죽었다.

 

<생은 다른 곳에>는 쿤데라만의 특별한 모험이고, 새로운 기교로 가득찬 문학이다. 독자는 서사적 흐름을 따라가다가도 무의식의 화폭에 담기기도 하고, 분열된 자아를 발견하기도 한다. 몽환적인 상황, 그리고 물과 불의 이미지로 꾸며 있는 작품을 보면 바슐라르의 이미지와 상상력의 시 세계도 그려진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을 틈타, 시인과 시의 의미를 최대한 음미할 수 있게 초현실적 세계를 만들어 놓고 독자를 초대한다.

 

그렇다면 독자로서의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다. 마음껏 현실과 문학사적 일화를 버무린 그의 초현실적 세계에 발을 들여, 생은 다른 곳에 있다고 여기는 시인들의 모습과 창작하는 시인들의 존재를 마음껏 만끽하면 된다. 이번만큼은 시에서 허용되는(시적허용) 관념을 허용하면서, 서사구조에 당황하지 말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봤으면 한다.

 

 

 

"그래서 야로밀은 10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군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고, 그가 이모부에게 말을 하는 것은 10만 명이 단 한 명의 개인에게 이야기를 하는 셈이었다. '그건 폭동이 아니라 혁명입니다.' 그가 말했다.(p148)

 

"그러나 그의 시보다도 훨씬 소중한 무엇이, 그가 결코 소유했던 적이 없었고 진심으로 갈망하는 무엇이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용기와 행동을 통해서만 그것을 성취할 수 있으며, 만일 그 용기가 철저히 혼자여야 하고, 그의 여대생 친구를 포기하고, 그의 화가 친구와 심지어는 시까지도 포기하는 용기를 의미한다면-좋다. 그는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말했다.(p175)

 

"그러나 기억하는 자는 반드시 증언을 해야 하니, 그것은 공포의 시대일 뿐 아니라 처형자와 시인이 나란히 앉아 통치한 서정시의 시대이기도 했다!(p311)

 

"나는 죽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불로 인하여 죽게 하라......(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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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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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기도, 버텨내기도 힘든 서울의 작동원리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나에게 서울은 낮선 곳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사분의 일이 서울에 있다는데, 나는 안타까운 일인지 다행한 일인지 그 사분의 일에 해당되지 않는다. 고백을 하나 해야겠다. 교통체증이 그리 심하지 않고, 북적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놓일 일 없이 사는 나는 가끔씩 서울에 올라가면 숨이 턱 막히고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기도 한다. 신호등이 켜질때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순식간에 밀려 건너는 사람들에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치는 때도 있었고, 지하철 속 인파에 휩쓸려 내가 가야하는 노선을 잘 못 탄 적도 있다. 그렇게 나에게 서울은 두려움의 공간이자 미지의 공간이었다.

 

물론 지금은 좀 나아져서 서울에 올라가 젊은 사람들이 붐벼대는 곳에 머물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적 혜택을 받고 즐기는 욕망을 표출하기도 한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좋은 카페에 앉아 물끄러미 사람들을 바라보며, '이 많은 사람들은 이 좁은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를 자문하기도 한다.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과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기묘하고 절묘하게 공존하는 서울은 해가 바뀌고 나이가 들어도 내가 서울에 살아가지 않는 이상(살아가더라도) 그 실체를 잘 모를 일이다.

 

유동민의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읽었다. 모든 소비와 생산의 원천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과포화 상태로 거주하는 곳, 수도 서울의 이야기를 책 속에 담았다. 경제학자답게 서울의 작동원리를 정치경제학으로 요리했다.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의 철학과 상념을 양념으로 뿌려놓았다. 몰랐던 서울의 실체에 한 발 다가갈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서울의 무엇으로 작동되고 있는가. 저자는 배제와 물신의 공간으로서의 서울을 말한다. 배제는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 다시 말하면 시장경제체제로의 서울을 말한다. 돈을 내지 않은 자는 소비할 수 없다는 단순명쾌한 논리이며, 반대로 자본이 충분해 일정한 자격을 갖추면 만족감이나 우월감을 갖는 도시가 서울이란 것이다. 여기에 물질적인 것을 숭상하는 물신주의가 더욱 견고하게 작동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배제와 물신(fetish)의 키워드는 이 책 전반을 관통한다. 소비의 형태도 그렇고, 사는 곳의 물리적 환경도 그렇다. 또한 사교육과 대학으로 점철되는 교육도시로서의 서울의 모습도 결국 배제와 물신의 키워드가 강하게 작용한다. 사람들은 배제와 물신을 위해 서울로 몰려들며, 그 속에서 욕망을 분출하고, 또한 그 욕망으로 인해 좌절한다.

 

서울은 고도의 압충성장의 상징적인 도시이다. 그러하기에 철저한 자본의 원리로 이루어져있고, 그 속에서 자본 소유의 생존을 벌인다. 반대 급부로 타락한 자본주의의 모습이 적날하게 드러나 보이는 곳이며, 능력주의로 포장하지만 실상은 세습자본과 학벌자본으로 점철된 곳 그 곳이 서울이다.

 

우리는 지금도 계속 서울로 서울로 러시를 해 나간다. 자본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에, 직업을 갖기 위해서,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 서울로 몰려든다. 너무나 당연한 우리 사회의 구조, 우리의 수도 서울에 대한 이러한 수요와 욕망을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그럴 수록 서울은 누구나 들어가기를 욕망하지만, 역설적으로 누구나 들어올 수는 없는 곳, 그래서 이들의 환상이 더욱 커지는 곳이 되어가는 것이다. 누구나 들어올 수는 없는 곳, 배제의 공간으로서 서울은 그렇게 확고히 자신의 위치를 만들어 나간다.

 

이 책의 부제는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어가는가 -이다. 그래서 그럴까. 책을 읽으면 자본의 욕망, 물신의 욕망이 웅크린 서울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래서 음울하고 어둡다. 읽어가는 것만으로도 삶이 소진되는 느낌으로서 이 책은 그래서 답답하다. 결국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재주껏 알아서 살아남으라(p239)는 것인가. 아님 두 개의 사회(p261)가 공존하는 서울의 본 모습을 바라보라는 것인가.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요컨대, 비굴하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는 삶 혹은 먹고사는 것 때문에 생겨나는 비굴함을 최소화하는 것은 평등주의적 열망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을 통해서 가능한 일일 것이다."(p282)나 "그러하므로 비록 추상적이지만, 돈의 논리 때문에 왜곡되는 우리의 기억, 억압당하는 이들의 기억을 복권시키는 것에서 공간 생산의 정치경제학은 시작되어야 한다.(p285)에서도 확인할 수도 있듯이 그는 서울의 물신과 배제를 충분히 경계함을 인정한다. 하지만 점점 독자로서 느껴지는 화려한 괴물로서의 서울의 이 기괴함을 어찌할 수 없다.

 

책 한편에 온전한 신경을 쓰며 읽기를 반복했다. 필자의 사변체적인 느낌으로 연유한 것일 수도 있으나, 그것보다도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더 두며 읽어가려 한 까닭이다.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신자유주의적 경제를 비판하는 듯한 이 학자가 서울이라는 공간을 소재 삼아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대안은 쉽지 만들어지지 않듯이, 이 학자가 극복하기 위해 무슨 말을 할까 집중해서 읽은 탓에 피로도가 큰 것도 사실이다. 부셔야 할까. 다듬어야 할까. 서울이란 공간 속에서 살고 잇지 않은 나에게 그래서 서울이란 도시는 어렵다.

 

 

"자연은 사람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진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 자연 위에 공간을 만들어낸다. 공간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며, 그렇게 만들어지는 공간은 다시 사람들의 욕망과 행동을 만들어나간다. 그러므로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p17)

 

"기억의 공간은 그렇게 사라지며 새로 생겨나는 공간들은 점점 더 배제의 원리를 강화한다.(p123)

 

"단도직입하자면, 자녀에게 성과가 불확실한 학벌자본을 얻도록 투자해 주는 것보다는 좋은 위치에 있는 비싼 아파트 한 채를 물려주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p150)

 

"그렇지만 꿈꾸는 공간에 이미 들어가 있는 이들은 그곳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이들을 따돌리고 접근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더 많은 환상을 충족하기도 한다. 바로 그럴 때, 역설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들의 환상 또한 더 커지게 마련이다. 누구나 들어올 수는 없는 곳, 바로 배제의 공간은 그렇게 만들어진다.(p238)

 

"수직적 위계 구조를 가지는 권력의 논리는 공간의 배치 방식에도 드러나며, 다시 공간의 배치 방식은 그 안에서 지내는 사람들로 하여금 수직적 위계 구조에 익숙해져 복종하도록 만든다. 서고 구석구석에 퍼질러 앉아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의견이나 관심사가 같거나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모여 앉아 논쟁을 벌일 수 있는 공간이 갖추어진 도서관과 그렇지 못한 도서관.(p248)

 

"뒤집어 생각해보면 거시적 위험과 불안이 상존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누구나 알아서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알아서 살아남기', 그러므로 이것은 지금 여기 서울의 공간에서 적용되는 중요한 생존 원칙이다.(p278)

 

 

덧붙임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물론 솔직한 리뷰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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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콘서트 - 통합교과수업을 위한 행복한 멘토링 교과서, 2014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행복한 교과서 시리즈 7
이경원 지음 / 행복한미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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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해답 <교육과정 콘서트>


​'깊게 파려면 넓게 파야 된다'라는 말이 있다. 흙을 파본 경험이 있다면 당연히 알 것이다. 넓게 파지 않고 좁게 깊이 판다면 옆에 있는 흙이 구멍으로 무너져 내린다. 책을 읽는 일도 마찬가지 일 듯하다. 내가 관심이 있는 분야만 파고 또 파게 되면 지식의 폭과 사람의 이해의 넓이도 최소한으로 한정될 것임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빈약한 사견과 관점은 항상 경계해야 된다고 다짐한다. 그래서 넓게 읽으려고 노력하는데, 하 거참, 다시 교육 분야 책 속에서 유영하게 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더란 말인가.

 

이경원 선생님의 <교육과정 콘서트>를 읽었다. 요즘 교육과정 재구성 방식에 꽂혀 있어서 그런지, 보자마자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고 토론하면 좋겠으나, 그럴 수 없기에 선배 선생님들의 다양한 경험을 책으로나마 받아들이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요즘 부쩍 드는 '나는 진짜 교사인가', '너무 수동적으로 안일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가', '왜 가르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는 있는가'의 다소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철학적 고민과도 맞닿아 있어 더욱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읽으면서 드는 생각. 이 책 참 좋다는 것이다. 단순히 '책 어때요?'라고 물을 때 '그냥 좋아요'라고 의미 없이 대답하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재구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얻었고, 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한 실천적 답의 한 조각도 얻었다. 더욱이 새로운 아이들을 얼른 만나고 싶은 열정이 확 타올랐으니 '굉장히 배울게 많은'이라는 의미의 '좋다'이다. 교육과정재구성에 관심 있는 선생님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주제중심 교육과정 운영하면서 얻은 실천 보고서이다. 1부, 2부는 저자의 교육, 교육과정, 학생, 배움에 대한 철학을 담았고, 그 철학을 토대로 3부, 4부에서는 직접 주제 중심 교육과정으로 재구성해 실천한 다양한 모습을 담았다. 책을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쭉 읽어가다 보면 어느새 그 생각의 타당성과 정당성을 이해하게 된다. 아울러 나만의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고민과 선택지를 얻어 가는 기쁨도 누린다.​​

 

교과서는 말 그대로 교육과정을 잘 가르치기 위한 예시서이다. 굳이 교과서를 진도 맞추기용으로 전도시키지 말아야 한다. 터덕터덕 교과서 진도 빼기에 바빴던, 그래서 교과서를 다 가르치면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던 것을 요 몇 년 줄기차게 반성했었다. 그런데 앎과 실천이 분리되어 있어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적이 많았다. 교육과정을 들여다보고 성취기준에 초점을 두고 교육을 해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었다. 그래서 요즘 나도 다시 교육과정의 새 판을 짜는 것에 몰두해 있었는데, 주제중심 교육과정 재구성 방식에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가르칠 수 있는 용기>(​파커, 한문화, 2008)에서 파커 역시 "우리는 주제가 '중앙에 앉아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진리의 커뮤니티에서 종합적인 방안을 찾아야 하고 또 찾을 수 있다. 따라서 교실은 교사 중심도 아니고 학생 중심도 아닌, 주제 중심이 되어야 한다."(p217)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결국 아이들과 나와 학부모의 삶을 어떻게 하나의 주제로 녹여내느냐가 문제일 듯하다. 이것은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고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

 


​"아무리 사회가 경쟁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학교 안에서만큼은 경쟁이 아닌 협력의 가치를 실천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그랬을 때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말이죠. 진짜 경쟁은 학교를 졸업한 후 각자가 전문가가 된 다음 전 세계의 젊은이들과 경쟁하는 것이 진짜 경쟁이 아닐까요?"(p73)

 

"결국 '왜'라는 물음부터 찾아 들어가지 않고선 아이들의 무기력함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교사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했고, 그것이 바로 배움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즉 교사 스스로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서는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성찰을 제대로 실현해 내기 위해 선택한 것이 교육과정 재구성이었으며, 이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주제중심교육과정'이었던 것이죠.(p135)

 

"주제중심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부터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것들을 연결하고 그것들이 다시 주변의 비슷한 유형들과 융합하는 과정을 겪고 있다는 것이었죠. 이렇게 시작하다 보니 어느새 이 세상 모든 것이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기존의 것들도 새롭고 낯설게 보는 일이 바로 주제중심교육과정을 운영하며 겪게 되는 가장 의미 있는 일 중의 하나였습니다.(p149)

 

"주제를 정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정리해 보자면
첫째, 아이들과 어떤 마음을 나누고 싶은지 생각한다. 둘째, 교육과정 성취기준을 전체적으로 분석하고 확인한다. 셋째, 학교의 행사나 계절적 요인들을 반영한다.(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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