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은 다른 곳에 - 교양선집 16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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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로 가득 찬 시와 시인들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생은 다른 곳에>

 

<일 포스티노>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시란 무엇이냐고 묻는다. 네루다는 이렇게 대답한다. "시는 메타포(은유)다." 시는 메타포의 향연이기에 시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소설도 그러할 일이다. 소설로 시와 시의 전달자인 시인을 설명하는 것은 난해한 일이며, 그러하기에 소설을 쓰는 작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밀란 쿤데라가 그렇다. 그는 메타포의 결정체인 시인과 시를 위해 초현실주의적 소설이라는 모험을 했다.

 

이 소설<생은 다른 곳에>을 읽은 독자들은 쿤데라에게 난해하며 낯설다고 이야기한다. 맞는 말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일반적인 소설적 흐름과는 다르다. 시인 '야로밀'의 일대기를 썼는데, 읽다보면 일대기가 아니다. 일대기를 따라가다가 어느새 무의식의 세계에 빠지고, 분열된 자아를 보게 되는 심리학 소설이기도 하고. 서정성으로 대표되는 모성과 사랑의 본질적 의문을 갈구하며, 서정시와 전위시의 충돌로 대변되는 격변의 체코에서 가치관이 뒤흔들린 세계를 바라보는 고백 소설이기도 하다.

 

왜 이렇게 소설을 구성하는 것인가. 해답은 책 안에 있다. 이 책은 시인 야로밀의 이야기로 포장한 쿤데라의 경험적 고백일 것이다. "그것은 공포의 시대일 뿐 아니라 처형자와 시인이 나란히 앉아 통치한 서정시의 시대이기도 했다!"(p311) 에서 그가 말하는 것처럼, 갑자기 쿤데라는 "시를 바라보는 전체적인 가치관이 갑자기 산산조각으로 무너지며 더 이상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는"(서문, p9)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부정확성 속에서 그는 불가피하게 자해를 감당해야 했을 거이며 초현실주의 , 형태파괴, 난해 등으로 규정되는 이 소설을 썼을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이것이 무슨 비정상적인 징후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자기 자신을 의심할 때 나타나는 어떤 진정성의 표지 같은 것 아닐까 여겨진다.

 

다시 돌아와보면, 이 소설은 시인 야로밀의 탄생과 죽음의 일련의 과정으로 장이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 말한 쿤데라의 메타포에 대입하여 보면 서정시의 탄생과 죽음으로도 연결될 것이며 서정주의와 대비되는 정치 속의 전위적 시인의 탄생과도 연결될 것이다. 모성으로 충만한 야로밀은 위대한 상상력과 감정을 가진 재능있는 시인이다. 그런 서정성을 확보한 그가 사랑의 감정의 욕구가 공산주의라는 사회적 혁명 시기를 만나면서 서정성을 포기하며 시대의 처형자와 나란히 앉는 시인이 되어간다. 그런 그의 모습은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오며 자비에르(제2부, 자비에르)라는 또다른 자아를 불러내는 것이다.

 

메타포(은유)로서의 자비에르는 결국 눈이 큰 그녀의 사랑을 뿌리치고 그녀를 배반한다. 이는 '그러나 창 너머의 세계가 훨씬 더 아름다웠다. 그리고 만일 그 세계를 위해서 사랑스러운 여인을 버린다면, 그때는 배반한 사랑의 대가로 인해서 그 세계가 훨씬 더 가치있게 되리라.'(p108)는 쿤데라의 독백처럼 시의 서정성을 버리는 시인의 모습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그리고 "당신은 아름다워요. 하지만 나는 당신을 배반해야만 합니다."(p108)에서 나타나듯, 시인 야로밀의 서정시와의 결별과 혁명시로의 전환을 암시한다.

 

결국 시인 야로밀은 어떻게 되는가. 쿤데라는 서정성과 결별한 시인을 죽인다.(7부 시인의 죽음) 이 죽음의 과정에서 여종업원과의 사랑은 반전으로 마무리되며 모든 혁명가와 시인들이 떠다니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 때 시인의 분열의 상징인 자비에르가 소환되는데, 자비에르가 뻥 차버린 그 소녀가 곧 야로밀, 즉 서정성의 소멸로 인해 사라져버린 야로밀로 그려진다. 야로밀은 자비에르고 동시에 소녀인 것이다. 그런 야로밀이 죽었다.

 

<생은 다른 곳에>는 쿤데라만의 특별한 모험이고, 새로운 기교로 가득찬 문학이다. 독자는 서사적 흐름을 따라가다가도 무의식의 화폭에 담기기도 하고, 분열된 자아를 발견하기도 한다. 몽환적인 상황, 그리고 물과 불의 이미지로 꾸며 있는 작품을 보면 바슐라르의 이미지와 상상력의 시 세계도 그려진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을 틈타, 시인과 시의 의미를 최대한 음미할 수 있게 초현실적 세계를 만들어 놓고 독자를 초대한다.

 

그렇다면 독자로서의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다. 마음껏 현실과 문학사적 일화를 버무린 그의 초현실적 세계에 발을 들여, 생은 다른 곳에 있다고 여기는 시인들의 모습과 창작하는 시인들의 존재를 마음껏 만끽하면 된다. 이번만큼은 시에서 허용되는(시적허용) 관념을 허용하면서, 서사구조에 당황하지 말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봤으면 한다.

 

 

 

"그래서 야로밀은 10만명이나 되는 엄청난 군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고, 그가 이모부에게 말을 하는 것은 10만 명이 단 한 명의 개인에게 이야기를 하는 셈이었다. '그건 폭동이 아니라 혁명입니다.' 그가 말했다.(p148)

 

"그러나 그의 시보다도 훨씬 소중한 무엇이, 그가 결코 소유했던 적이 없었고 진심으로 갈망하는 무엇이 따로 있었으니, 그것은 자신의 남자다움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는 용기와 행동을 통해서만 그것을 성취할 수 있으며, 만일 그 용기가 철저히 혼자여야 하고, 그의 여대생 친구를 포기하고, 그의 화가 친구와 심지어는 시까지도 포기하는 용기를 의미한다면-좋다. 그는 모험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말했다.(p175)

 

"그러나 기억하는 자는 반드시 증언을 해야 하니, 그것은 공포의 시대일 뿐 아니라 처형자와 시인이 나란히 앉아 통치한 서정시의 시대이기도 했다!(p311)

 

"나는 죽어야만 하는가? 그렇다면 불로 인하여 죽게 하라......(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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