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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2025.겨울 - 67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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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출판사에게 책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

● 더는 '우리'를 신뢰할 수 없어도 문학은 '우리'의 자리를 만든다
크리티카 - <신인류의 우정> 송연정

"'우리'라는 감각에 물성이 있다면, 그것은 느슨할지언정 단단한 형태가 아니라 차라리 언제든 깨져버릴 수 있는 유리에 가까우리라는 진실을.
……
그럼에도 최대한 많은 '나'들을 '우리'의 이름으로 호명함으로써 '우리'라는 말의 한계를 유보하고 부지런해 우리가 놓일 수 있는 자리를 넓혀가는 일이야말로 문학의 것임을,"

크리티카 - <신인류의 우정> 송연정(p.72-74)

'우리'는 단단한 것처럼 보인다. '나'를 비롯해 또 다른 '나'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게임에서 목숨이 여러 개인 듯, 내가 없어도 또 다른 '나'가 탄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언제든 깨져버릴 수 있'(p.72)다. 12.3 내란 사태로 인해 다시 '우리'가 되었지만, 더는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 연대가 굳히지 않고, 오히려 연대 안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연대가 이루어짐으로써 찾아오는 기쁨보다 두려움과 불안감이 자리했다.

송연정 평론가는 '신극우', '태극기부대'로 불리는 세력의 결집, '서부지법 폭동'으로 불리는 소요 사태*를 언급하며 더이상 '공동체의 신뢰를 더이상 견지할 수 없게 된 상황'을 말한다. '우리'라는 이름만으로 단단할 수 있었던 2016년과 달리, 지금의 '우리'는 깨질까 봐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유리에 이른 것이다.

" 사랑으로부터 감지할 수 있는 불가피한 낭만보다도 더 가볍고 별 볼 일 없는, 아름답지 않더라도 괜찮은 그 모든 감정을, 다만 우정이라고 말해보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크리티카 - <신인류의 우정> 송연정(p.88)

그럼에도 문학은 '우리'를 성실히 외친다. 손미 시인은 무기력한 자신을 마주하고, 김미령 시인은 우리가 아닌 나를 포착한다. 박규현 시인이 부서진 우리를 다시 나에 덧대어 보며 새로운 '우리'를 상상한다. 송연정 평론가가 말하길, 이를 단순히 '우정'으로 명명하기엔 부족하다고 한다. 끈끈하기보다 느슨한 연결이라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우정'이라고 한다면, 헐거운 '나'가 조금씩 변해가는 '우리'에 몸을 맡기어 생동할 수 있지 않을까. 송연정 평론가는 기대한다.

*신진욱 「한국 민주주주의의 위기와 극우파시즘」, 『광장 이후』, 신진욱 외, 문학동네, 2025, 29쪽

● 진정한 팬은 돈을 쓴다
크리티카 - <세상의 환호성에 파묻힌 미친 사랑의 속삭임> 정의정

소비자본주의가 고도화된 사회에서 '취향 공동체'는 '신념 공동체'를 대체한지 오래다. 스타를 '좋아하는' 팬들이 모여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고 연대하는 모습은 요즘 더욱 흔하다.
……
소비는 진정한 '팬 됨'을 가르는 규율이자 담론장에 의견을 제출하기 위한 규범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크리티카 - <세상의 환호성에 파묻힌 미친 사랑의 속삭임> 정의정 (p.119)"

덕질을 열심히 하는 친구에게 '가짜 팬'이라는 개념을 들어본 적 있다. SNS에 팬이라는 것을 티 내지만, 앨범 한 장도 사지 않는다며 그들을 팬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음방에 가고, 콘서트에 가고, 연예인을 위한 소비를 해야만 팬으로 인정받는 세계. 정의정 평론가가 인용한 김수아 작가의 말처럼 '소비는 진정한 '팬 됨'을 가르는 규율'로 자리하고 있다.

팬덤의 영향력은 단순히 그들만의 세계로 말할 수 없다. 여의도에 스타의 팬들이 응원봉을 흔든 순간, 팬들만의 세계에서 확장되어 연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스타'라는 같은 취향을 공유하는 공동체끼리 신념과 마음을 공유하는 공동체로의 발전. 정의정 평론가는 팬덤의 움직임을 스탠 액티비즘(stan activism)이라고 불린다고 말하며, 팬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주체화와 탈주체화의 순간이 여러 번 교차하고 중첩되는 이 소설이, 아름다움, 즉 매력의 윤리와 경제만큼은 영원히 자연화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쩐지 섬뜩하다. 케이팝-대중문화가 생산하는 외모, 몸, 아름다움, 매력에 관한 강력한 담론은 앞으로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보이기 때문이다."(크리티카 - <세상의 환호성에 파묻힌 미친 사랑의 속삭임> 정의정 (p.131))

아름다움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직관적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곤 한다. 아름다움은 위험하고도 매혹적이다. 아름다움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정의정 평론가는 '매력 자본'을 언급한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아름다우면 용서해버린다. 스타를 보고 외모를 평가하는 건 당연한 시대에 있고, 외모가 떨어지는 순간 그것마저도 화제가 된다. 옷 한 번 잘못 입으면 '워스트 드레서'로 기사가 줄줄 나오고, 그 기사를 클릭하는 자들이 있으니 '아름다움을 얻는 일'만큼이나 '아름다움을 잃는 일'은 수많은 화젯거리를 낳고 있다.

하지만 외모, 몸, 아름다움, 매력에 관한 강력한 담론은 흔들릴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마저도 자본으로 자리하고 있는 시대에서 아름다움이 무너지는 일만큼 무서운 일은 없다.

*김수아, 「저항하는 팬덤과 소비자-팬덤의 모순적 공존」, 『페미돌로지』, 빨간소금, 2022

● 문학은 외부에서 라이벌을 찾기보다 문단 내부 속도의 문제를 주목해야 한다 (담 - <문학의 많은 자리> 노태훈, 서호준, 성해나, 함윤이)

"문학의 정수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매개는 출판사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최근에는 출판사가 과도하게 피치를 올린단 생각도 들어요. 신춘문예 당선작이 발표되는 1월 1일부터 신인 작가들에게 전화로 계약 문의가 쏟아진다고 하더라고요.
……
문학은 속도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과보다는 늘 과정이 중요하고 그 핍진하고 찬찬한 과정을 통해 작가가 다음 작품도 낼 수 있다고 여겨요.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콘텐츠에 문학이 밀린다고 진단하기보다는 문단 내부에서 이 속도의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담 - <문학의 많은 자리> 성해나 (p.144-145)

노태훈, 서호준, 성해나, 함윤이 작가가 <문학의 많은 자리>를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이때 주로 나눈 이야기는 2020년대 문학, 독립문학과 문단 데뷔, 독자나 시장이 원하는 작가 등 문학에 관련된 말들이 오고 갔다.

우리는 왜 문학을 읽지 않는가. 누군가는 넷플릭스가 더 재밌어서, 책으로 읽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등 많은 대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해나 작가는 사람들이 문학에 대해서 외부의 문제를 조명하기보단 문단 내부의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서호준 작가가 말하는 '호명 받고 주목받는 작가들은 다 장기 채무자 같(P.144)'다는 말과 연결된다. 서호준 작가가 말하길, 시집의 출간 시기가 점점 줄어들면서 행복하고 즐거운 문학이 아닌, 착취와 소외가 이루어지는 문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함윤이 작가는 신인 입장에서 문단 내부의 문제를 주목했다. 신인 입장에서 계약을 놓치면 후회할까, '마음의 빚을 쌓이는 구조'(P.145)가 만들어지고 있어 문단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감에 쫓기며 문학을 하는 상황에서 좋은 결과물이 탄생할 순 있지만 과정이 속도전이 되는 순간, 그건 작품 퀄리티 문제와 작가의 다음 작품 문제로 전환될 수 있다. 이제 출판사를 중심으로 문단 내부의 문제를 들여다보며 신인은 물론, 문학에서 소외되고 있는 이들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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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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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돌아오는 일을 전제한다. 긴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란 마냥 기쁜 마음만 들지 않는다. 여행에 대한 후회가 담긴 아쉬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막막함, 좋은 여행을 추억하며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마음 등 미묘한 감정이 오고 간다.


함윤이의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는 여행에서 돌아가는 길처럼 미묘한 감정이 뒤섞인다. 「자개장의 용도」은 막막함을 알고 있으나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구유로」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따뜻함이 담겨있다. 「수호자」는 여행의 긴장감을 그대로 품은 듯 무섭기도 하다. 특히 단편 「자개장의 용도」는 '돌아오는 일'을 자개장의 설정을 통해 드러낸다. '나'는 집에 있는 자개장을 통해 원하는 곳을 갈 수 있으나 자기 힘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계산이 필요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돌아올 거리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돌아올 길을 생각한다. 어떤 시험을 준비할 때도 실패를 계산하고 시간을 투자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자꾸만 여행이 망설여지는 이유는 좋은 미래를 꿈꿨으나 잘되지 않았을 때의 두려움, 투자한 시간의 의미를 찾지 못할까 갖는 허무함이 있을 것이다. 돌아올 마음을 생각하면 나아가지 못한다. 「자개장의 용도」는 두려움과 망설임을 부정하기보단 인정하고, 뒤에서 토닥이며 응원해 준다. 「구유로」에서 진흙을 떨어낸 다음 "따뜻한 거나 먹으러 가자(p. 86)"로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뜻 함윤이의 소설 세계를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세계라고 볼 수 있다. 귀신이 붙기도 하고, 자개장으로 장소를 옮기고 다니는 판타지적 요소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물을 보면 오히려 잔뜩 겁을 먹고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나로 살아가기 위해 남자를 찾으러 다니고, 아이돌이 되기 위해 궂은일을 자처하고, 이유를 모르는 일에 대해서 모른 채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개장의 용도』 소설 속 인물은 치열한 삶을 살았고, 가끔 기절놀이를 할 만큼 '포기할 만한 상황이 오기만을 기다(p.156)'리기도 했지만,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인물을 통해 치열함을 응원한다. 치열하게 살았으니 쉬어도 된다는 응원은 아니다. 함윤이의 소설 세계는 진흙을 뚫고 나가 "나 이렇게 살 거야!"라고 외치는 당참이 느껴진다. 그렇게 소리를 내기까지 두려워하고 망설였지만, '내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 남게(p. 44)' 되기에 꿋꿋이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윤이의 소설 세계는 허황된 세계이기보단 현실과 맞닿아 있으며, 잔뜩 무서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뒤를 돌아보며 조금씩 나아가도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 이름을 잊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무럭무럭 나무가 자라(p. 161)'는 것처럼 아주 건강히, 대단히 살아남을 것이다.

자개장을 쓸 땐 돌아올 거리부터 계산하라고. 앞으로 갈 곳에서 자기 힘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먼저 가늠해야 한다. 그래야만 집으로부터 너무 먼 곳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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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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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 읽어야 한다


소설은 나의 나약한 구석을 끄집어내서 너도 그랬던 적 있냐고 묻는다. 나는 공감으로, 눈물로 답했다. 「돌아오는 밤」과 「문제없는, 하루」를 읽으며 사회에 대해 모른 척하고 있던 나의 나약함을, 「빈티지 엽서」에서 사소한 용기에 매달렸던 나의 나약함을, 「거푸집의 형태」에서 사랑받고 싶던 나의 나약함을 들켜버렸다.


개인적으로 「거푸집의 형태」을 읽으며 펑펑 울었고, 「빈티지 엽서」의 차분한 김혜진 작가의 팬이 되기로 결심했다. 오랜만에 읽은 황정은 작가의 단편 「문제없는, 하루」는 여전히 무력하지만 작가의 힘이 여전해서 인상 깊었다.

많은 작가가 수록되어 있는 작품집을 읽다 보면, 작가의 색깔이 뚜렷하지 않아 내용이 기억나지 않았던 때도 있다. 그러나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만은 작가와 작품의 뚜렷한 색깔은 물론, 지금의 현실과 매우 겹쳐진 순간을 다룬다. 어떤 소설보다도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은 지금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읽기에 더 유의미하고, 더 무겁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도 모르면서, 자꾸만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걸 멈추지 못했다……. 그렇게 길을 걷고 또 걷자. 어느 날 오랜 사랑이 확 뒤집어졌다. 그래, 그렇게 되었다. 마치 거푸집으로 찍어낸 것처럼 똑같은 마음이 내 가슴에 콱 박혔다. - P98

우리가 지금과 같은 삶을 살게 된 건 사소한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그걸 알아야 해요.

그 순간, 그녀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사는 건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늘 더 큰 용기를 냈기 때문이라고. 익숙한 일상을 지키는 건 그것을 포기하는 것보다 언제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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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오직 그녀의 것 | 결국 일을 사랑해버린 진심에 대하여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일하는 8시간을 꾸역꾸역 채우면서 월급 받는 삶이 아니라, 8시간 동안 일을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오직 그녀의 것』 주인공 석주도 그렇다. 석주는 사학과를 전공했지만, 문학에 호기심이 가 출판사 교열부에 취직한다. 그러나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 상사의 제안으로 편집부로 부서를 옮기면서 석주는 새로운 일의 세계로 들어선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듯, 책을 만드는 데 수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책은 작가 혼자 만들 수 없다. 편집자의 매서운 눈이 필요하며, 책이 좋다고 알리는 마케팅부가 필요하며, 그 창작물을 읽어내는 독자가 필요하다. 『오직 그녀의 것』 은 그중 편집자의 역할을 조명한다.

일은 예측할 수 없이 사랑하게 만든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하며 보내다 보면, 우리는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느새 일에 진심이 되어버린다. 『오직 그녀의 것』은 결국 일을 사랑해버린 진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것이 아닌, 알아차린 순간 없이 사랑'해버린' 일에 관해서.

하지만 소설은 일에 대한 세계뿐만 아니라, 생에 대한 자리를 잊지 않는다. 『오직 그녀의 것』은 일(편집자)을 중심으로 사랑, 가족, 죽음과 같이 우리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온다. 김혜진 작가의 문체로 인해 석주의 삶이 담백하고 깔끔하게 흘러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책을 덮고 생각해 보면 석주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극단적인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에 시달리지 않지만, 석주는 예측할 수 없이 떠밀리는 삶을 살았다. 책을 준비하던 도중 맞닥뜨린 작가의 죽음, 결혼 준비, 출판사 창고의 화재 등이 그렇다. 자신의 선택보다 세상의 흐름으로 좌우되는 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석주처럼 예측할 수 없이 떠밀리듯 살고 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 투정 부리지 않고 버텨내는 석주의 어깨를 토닥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석주의 '삶을 이해하는 데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p.173).

석주는 출판인에게 주는 상을 수상하면서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이처럼 우리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을 잘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혹시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오직 그녀의 것』의 한 장면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일이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는 석주의 말에 장민재는 말한다. "그러게요. 참 이상하죠? 일이 쉬워지는 법이 없으니. 오래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일은 그렇지도 않아요.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 다칠 일이 많다고……"(p.253)

"그래, 일은 좀 할 만하니?"

(p.109)

소설은 이 물음에 석주의 생애를 천천히 보여준다. 당신은 일은 좀 할 만한가? 어떤 대답을 하든 『오직 그녀의 것』 은 치열한 석주의 걸음으로 노동하는 당신을 응원한다고, 멀리서 외치고 있다.

*『딸에 대하여』에서도 그랬듯, 김혜진 작가는 사랑을 대충 하는 법이 없다. 석주의 안정적인 사랑은 매혹되는 사랑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석주는 그가 그 일에서 어떤 성취를 느꼈는지, 어떤 좌절을 견뎠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거라곤 구부정한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읽던 모습이 전부였다. 어쩌면 그의 삶에서 아주 사소한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무엇.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삶을 이해하는 데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 P173

석주는 나중에 알았다. 그 시절, 원호와 나눴던 것이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데서 오는 희열이었음을. 계획할 수 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고, 예상할 수 있으나 예상을 비껴난 형태로 완성되는. 두 사람은 그런 우연적이고 불완전한 세계에 매료된 닮은꼴의 서로를 단번에 알아본 거였다.
- P211

사랑은 극적이기보다 안정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오래전 자신이 상상한 것처럼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었으나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가능했다. 그건 언제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 존재하는 무엇이었다.
- P211

그러게요. 참 이상하죠? 일이 쉬워지는 법이 없으니. 오래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일은 그렇지도 않아요.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 다칠 일이 많다고. 그땐 무슨 이런 감상적인 소릴 하나 싶었는데 지나고 나니 틀린 말도 아니더라고요. - P253

책을 좋아하나요? ……그건 오래전 사랑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그것이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도 모른 채, 그저 속수무책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석주에게 누군가 건넸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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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2025.가을 - 66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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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진정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생성형 AI에게 위로받는 시대, 작가성에 주목하다


생성형 AI는 창작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주체적 발화에서 주체성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그리고 인간만이 창조할 수 있다고 믿어온 감정과 예술의 가치는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인가.'(머리글-배주영)에 대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생성형 AI에게 고민 상담을 한다. 그때 생성형 AI는 내 고민에 감정적으로 공감해 준다. 우리는 기계적이라도 위로받고, 또다시 생성형 AI에게 고민을 말한다. 내 고민에 대해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학습된 생성형 AI는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기도 하고, 내 입맛에 맞춰 해답을 준다. 그게 감정이든 해결 방법이든.

인간만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감정적 공감을 생성형 AI에게 받는 순간, 예술에 대한 생각도 떠오른다. 그렇다면 예술도 생성형 AI가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걸까? 생성형 AI가 예술의 가치에 손을 대는 순간, 우리는 정보를 대하듯 판별하는 능력과 기준이 필요하다. 챗 GPT가 말하는 정보가 진짜 같은 가짜가 섞여있듯, 생성형 AI가 말하는 예술은 분명히 누군가의 작품을 학습한 것이다. 따라 할 수 없을 거라 믿었던 예술의 가치에 위기가 오고 있다.

자음과모음 2025 가을 66호는 작가성에 주목한다. 누구든 작가를 만들어내고 재구성하는 사회에서 진짜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예술의 가치를 보존해야 하는가? 그리고 독자적인 작가성을 가질 수 있을까?


무조건적인 위로, 거짓일지라도 예측 가능한 위안을 받는 것이다.

예술의 가장 큰 가치라고 믿었던 감정과 감탄의 그 어떤 것조차

사람들은 생성형 AI에게서 받고 있다.







‘가상적 작가‘와의 경쟁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독자는 다양한 이유로 ‘작가‘를 만들어내기도, 재구성하기도 하다.

새로운 작가성이 필요한 것이다. - P5

입술을 조금 내밀고 기도하는 짝꿍이 좋았다

천장에서는 빛이 쏟아졌다

눈을 감아도 빛이 보였다 - P24

‘효도봇‘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케어형 AI가

노인들과 대화하는 중간중간에

교묘하게 보험을 팔거나 물품을 광고하고

결제를 유도해온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다. - P70

마티아스 샤프리크와 마르쿠스 빌란트는 찰스 테일러에 의거하여

‘진정성‘이란 원래는 텍스트가 담지하는 것이었으나 근대에 들어와

개인의 도덕적 범주로 자리 잡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진정한‘ 저자란 독창적이면서도 진실해야 한다는,

즉 미학적이면서도 윤리적인 요구가 생겨난다.

저자의 미디어 활동이 필연적으로 연출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러한 진정성에 대한 요구를 때로는 전혀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으며, 도덕적인 견지에서의 비난을 끌어들일 수 있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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