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오직 그녀의 것 | 결국 일을 사랑해버린 진심에 대하여
일에 진심인 사람들이 있다. 일하는 8시간을 꾸역꾸역 채우면서 월급 받는 삶이 아니라, 8시간 동안 일을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오직 그녀의 것』 주인공 석주도 그렇다. 석주는 사학과를 전공했지만, 문학에 호기심이 가 출판사 교열부에 취직한다. 그러나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 상사의 제안으로 편집부로 부서를 옮기면서 석주는 새로운 일의 세계로 들어선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듯, 책을 만드는 데 수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책은 작가 혼자 만들 수 없다. 편집자의 매서운 눈이 필요하며, 책이 좋다고 알리는 마케팅부가 필요하며, 그 창작물을 읽어내는 독자가 필요하다. 『오직 그녀의 것』 은 그중 편집자의 역할을 조명한다.
일은 예측할 수 없이 사랑하게 만든다. 하루에 8시간을 일하며 보내다 보면, 우리는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느새 일에 진심이 되어버린다. 『오직 그녀의 것』은 결국 일을 사랑해버린 진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것이 아닌, 알아차린 순간 없이 사랑'해버린' 일에 관해서.
하지만 소설은 일에 대한 세계뿐만 아니라, 생에 대한 자리를 잊지 않는다. 『오직 그녀의 것』은 일(편집자)을 중심으로 사랑, 가족, 죽음과 같이 우리와 떼어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온다. 김혜진 작가의 문체로 인해 석주의 삶이 담백하고 깔끔하게 흘러가는 듯 보인다. 그러나 책을 덮고 생각해 보면 석주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 않다. 극단적인 경제적, 정서적 어려움에 시달리지 않지만, 석주는 예측할 수 없이 떠밀리는 삶을 살았다. 책을 준비하던 도중 맞닥뜨린 작가의 죽음, 결혼 준비, 출판사 창고의 화재 등이 그렇다. 자신의 선택보다 세상의 흐름으로 좌우되는 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석주처럼 예측할 수 없이 떠밀리듯 살고 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 투정 부리지 않고 버텨내는 석주의 어깨를 토닥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석주의 '삶을 이해하는 데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p.173).
석주는 출판인에게 주는 상을 수상하면서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이처럼 우리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일을 잘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혹시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오직 그녀의 것』의 한 장면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싶다.
일이 쉬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는 석주의 말에 장민재는 말한다. "그러게요. 참 이상하죠? 일이 쉬워지는 법이 없으니. 오래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일은 그렇지도 않아요.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 다칠 일이 많다고……"(p.253)
"그래, 일은 좀 할 만하니?"
(p.109)
소설은 이 물음에 석주의 생애를 천천히 보여준다. 당신은 일은 좀 할 만한가? 어떤 대답을 하든 『오직 그녀의 것』 은 치열한 석주의 걸음으로 노동하는 당신을 응원한다고, 멀리서 외치고 있다.
*『딸에 대하여』에서도 그랬듯, 김혜진 작가는 사랑을 대충 하는 법이 없다. 석주의 안정적인 사랑은 매혹되는 사랑만큼이나 매력적이다.
석주는 그가 그 일에서 어떤 성취를 느꼈는지, 어떤 좌절을 견뎠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거라곤 구부정한 자세로 책상 앞에 앉아 뭔가를 골똘히 읽던 모습이 전부였다. 어쩌면 그의 삶에서 아주 사소한 일부에 지나지 않았을 무엇. 그러나 그 순간, 그의 삶을 이해하는 데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지 않았다. - P173
석주는 나중에 알았다. 그 시절, 원호와 나눴던 것이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데서 오는 희열이었음을. 계획할 수 있으나 계획대로 되지 않고, 예상할 수 있으나 예상을 비껴난 형태로 완성되는. 두 사람은 그런 우연적이고 불완전한 세계에 매료된 닮은꼴의 서로를 단번에 알아본 거였다. - P211
사랑은 극적이기보다 안정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오래전 자신이 상상한 것처럼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었으나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가능했다. 그건 언제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 존재하는 무엇이었다. - P211
그러게요. 참 이상하죠? 일이 쉬워지는 법이 없으니. 오래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일은 그렇지도 않아요.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 다칠 일이 많다고. 그땐 무슨 이런 감상적인 소릴 하나 싶었는데 지나고 나니 틀린 말도 아니더라고요. - P253
책을 좋아하나요? ……그건 오래전 사랑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그것이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도 모른 채, 그저 속수무책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석주에게 누군가 건넸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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