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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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돌아오는 일을 전제한다. 긴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이란 마냥 기쁜 마음만 들지 않는다. 여행에 대한 후회가 담긴 아쉬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막막함, 좋은 여행을 추억하며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마음 등 미묘한 감정이 오고 간다.


함윤이의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는 여행에서 돌아가는 길처럼 미묘한 감정이 뒤섞인다. 「자개장의 용도」은 막막함을 알고 있으나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구유로」는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의 따뜻함이 담겨있다. 「수호자」는 여행의 긴장감을 그대로 품은 듯 무섭기도 하다. 특히 단편 「자개장의 용도」는 '돌아오는 일'을 자개장의 설정을 통해 드러낸다. '나'는 집에 있는 자개장을 통해 원하는 곳을 갈 수 있으나 자기 힘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계산이 필요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서 돌아올 거리를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돌아올 길을 생각한다. 어떤 시험을 준비할 때도 실패를 계산하고 시간을 투자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자꾸만 여행이 망설여지는 이유는 좋은 미래를 꿈꿨으나 잘되지 않았을 때의 두려움, 투자한 시간의 의미를 찾지 못할까 갖는 허무함이 있을 것이다. 돌아올 마음을 생각하면 나아가지 못한다. 「자개장의 용도」는 두려움과 망설임을 부정하기보단 인정하고, 뒤에서 토닥이며 응원해 준다. 「구유로」에서 진흙을 떨어낸 다음 "따뜻한 거나 먹으러 가자(p. 86)"로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언뜻 함윤이의 소설 세계를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세계라고 볼 수 있다. 귀신이 붙기도 하고, 자개장으로 장소를 옮기고 다니는 판타지적 요소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물을 보면 오히려 잔뜩 겁을 먹고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나로 살아가기 위해 남자를 찾으러 다니고, 아이돌이 되기 위해 궂은일을 자처하고, 이유를 모르는 일에 대해서 모른 채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개장의 용도』 소설 속 인물은 치열한 삶을 살았고, 가끔 기절놀이를 할 만큼 '포기할 만한 상황이 오기만을 기다(p.156)'리기도 했지만, 그들의 뒤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인물을 통해 치열함을 응원한다. 치열하게 살았으니 쉬어도 된다는 응원은 아니다. 함윤이의 소설 세계는 진흙을 뚫고 나가 "나 이렇게 살 거야!"라고 외치는 당참이 느껴진다. 그렇게 소리를 내기까지 두려워하고 망설였지만, '내가 소리 내어 말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 남게(p. 44)' 되기에 꿋꿋이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윤이의 소설 세계는 허황된 세계이기보단 현실과 맞닿아 있으며, 잔뜩 무서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뒤를 돌아보며 조금씩 나아가도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 이름을 잊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무럭무럭 나무가 자라(p. 161)'는 것처럼 아주 건강히, 대단히 살아남을 것이다.

자개장을 쓸 땐 돌아올 거리부터 계산하라고. 앞으로 갈 곳에서 자기 힘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먼저 가늠해야 한다. 그래야만 집으로부터 너무 먼 곳에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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