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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쓰는 마음
이윤주 지음 / 읻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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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윤주 산문집>
읻다 서포터즈 마지막 책, 이윤주 산문집 『고쳐 쓰는 마음』을  읽었다.
이윤주는 국어교사와 신문기자로 일하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고 있다.『나를 견디는 시간』과 『고쳐 쓰는 마음』등 산문을 쓰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처음 읽은 그녀의 글은 한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주었다. 그 손길은 독자들을 위로해주기도, 함께 외로워지기도 했다. 그중 인상 깊었던 몇 가지 글을 소개한다.

<그냥 하는 마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더라도.
중요한 건, 늦었음에도 그냥 하는 마음"

우리는 흔히 늦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지각을 하거나 마음을 너무 늦게 깨닫거나 무언가를 도전하기에 앞서 자주 '너무 늦었다'라고 말한다. 그때 우리는 '늦었다'라는 말 한 마디가 도전을 멈추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망설임의 재료가 된다.
최근 빠더너스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에 출연한 키는 "늦는다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전 지금 시작해도 빠르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세상에 빠르고, 늦는다는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 사실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른 결정이자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산문에서 말했듯, 중요한 건 늦었음에도 그냥 하는 마음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기에 앞서 '그냥'하는 마음이 가끔 필요하다. 그것이 때론 수많은 이유를 대신 하기도 한다.

<나의 세계가 깨져갈 때>
"성장한다는 건 자기중심의 세계가 해체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시야가 어둡다고 해서 남들 눈에 내가 안 보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간다.
내 눈엔 동쪽에서 떠오른 해가 서쪽에서 지지만
사실 움직이는 건 해가 아니라 지구라는 걸 배워간다."
아이들은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간다. 아이들의 세계는 꽤나 단단해서 무너지지 않는다. 그곳엔 애착인형, 사랑, 너무나도 아껴 남 주기 아까운 마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린 성장을 거치면 세계가 깨진다. '나'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가 되어 서로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타인을 의식하기 시작한다.
내가 기억하지 못한 나의 세계는 어땠을까. 오래 전 나의 세계가 우리의 세계가 된 지금, 아이들을 본다. 아이들은 철없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아도 되기에 나는 깨진 세계를 붙여본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할 때.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을 때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타인에게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을 건넬 수 있다.

<to-do list>
MBTI "J"에게 필수. to-do list가 나에게 엄청난 숙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현실적으로 이루어낼 수 없으니 리스트가 나를 잡아먹는 듯 했다.
수전 손택의 일기에서 나온 위 리스트는 일상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균형있는 삶이 될 수 있도록 한다.
이윤주 작가가 말했듯 이는 모두 자기의 통제력을 쌓아가는 것이다. 사소한 것을 하나씩 해내가며 온전히 내가 행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우리는 조금씩 해내야 한다. 수전 손택의 일기 속 to-do list처럼.

<고쳐 쓰지 않는 마음>
이윤주의 깊은 공감을 잘 읽었다. 당신만 길을 모른 채 걸어가는 게 아니라고, 끊임없이 나도 그렇다고 외치는 물음은 깊은 공감을 만들어낸다.
그녀가 글을 쓰면서 조금씩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쌓아간 것처럼 보인다. 그 마음 만큼은 고쳐 쓰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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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이웃
서수진 지음 / 읻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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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가 서수진>

한겨레 문학상 스물 다섯 번째 수상작 《코리안 티처》로 이름을 알린, 서수진은 현재 호주 시드니에 살고 있다. 그녀의 신작 《다정한 이웃》을 읻다 서포터즈를 통해 만날 수 있었다. (감사히 친필 사인까지 함께 받았다..!)


<소개 : 다정한 이웃>

호주에 살고 있는 도은은 자신의 집에 한인 교민 이웃들을 초대한다. 도은은 남편을 데리러 오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도은의 남편 후이는 옆에 보이지 않는다. 그때 이웃들은 후이에 대해 온갖 추측을 한다. 그리고 조금씩 숨겨져 있던 가정들의 불행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결말: 도망과 도망>

여성들은 모두 도망칠 곳이 없어 호주에 왔다.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다르게 살아보기 위해 온 호주에서 그녀들은 더이상 돌아갈 곳이, 도망칠 곳이 없다. 여성들은 아무 곳도 갈 수 없기에 문제 행동(마약, 불륜, 폭력 등)을 하는 남성들을 참고 있었다.

아이을 위해서 참는 여성과 돈을 위해서 참는 여성과 친구를 위해 참는 여성이 있다. 그들은 모두 끝내 남성들을 쫓아가 자신의 감정들을 폭발시킨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도망칠 곳 없는 사람들이다.

반면, 소설 속 남성들은 초반부와 다르게 모두 도망치려 애쓴다. 소설 속 남성들은 여성들을 협박하고 폭력하며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그러나 후반부, 후이는 도은에게 책임을 미루고 도망갔으며, 레오 또한 딸을 데리고 도망친다. 혹은 그들은 어머니에게로 도망친다. 그들은 끝내 자신들의 허점이 드러나자 한없이 약해진다.

<장점: 술술 읽히는 소설>

《다정한 이웃》의 가장 큰 장점은 술술 읽힌다는 점이다.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몽땅 읽어버렸다. 나는 외국 소설보다 한국 소설을 애정하는데, 그 이유는 읽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 소설을 중간에 안 읽혀 턱 막히는 문장들이 많다. 그러나 서수진의 《다정한 이웃》처럼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자연스레 뒷장을 넘기게 된다. 어가볍게 재미있는 소설을 읽고 싶다면, 추천한다.


<장점: 욕망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소설은 개개인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다. 대부분 소설은 우리가 모르는 미묘한 구석들을 느낄 수 있도록 하지만, 《다정한 이웃》은 아는 불행들로 우리의 공감과 분노를 일으킨다. 그 분노를 결국 여성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어진다.

가령 남편의 마약으로 힘들어하는 아내가 있다고 해보자. 이 상황에서 독자들은 아내가 되어 소설에서 느끼는 여성들의 분노에 동참한다. 변명을 하는 남편에게 욕을 퍼붓기도 하고, 답답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후반부, 참아왔던 여성들의 폭발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후련하게 다가온다.

<아쉬운 점: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하는 방법>

소설 속에 술, 마약, 불륜, 도박 등 자극적인 소재들이 다수 등장한다. 《다정한 이웃》에선 자극적인 소재들을 뻔하게 활용했다.

이야기에서 자극적인 소재들은 흔히 불행의 요소로 활용된다. 술로 인한 불행, 마약으로 인한 불행 등 우리는 그 소재들을 통해 한 사람이, 한 가정이 망해가는 모습을 많이 봤다. 정확히는 한국 막장드라마에서, 자극적인 드라마에서 아주 잘 활용한다. 작가는 대중들이 잘 아는 맛으로 불행들을 재조명했다.

현실에서 술, 마약 등이 가정 내 당연한 불행처럼 보일 만큼 소설 속에서 조심히 다루지 않은 점이 무척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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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사이 - 애매 동인 테마 소설집
최미래 외 지음 / 읻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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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식사 자리로 사람 파악하기>

당신은 어떤 식습관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 당신이 이 말에 대답하는 것만으로 나는 당신을 파악할 수 있다.

소설에서는 말한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 식기구 사용 습관, 입맛 등 식사 자리는 사람을 파악하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반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수단으로도 좋았다.' 우리는 사람을 만날 때 흔히 밥을 먹는다. 밥을 먹을 때, 서로 차이를 느낄 때가 많다. 가령 밥 먹는 속도나 젓가락을 올바르게 잡는 것, 같이 먹는 국물에 숟가락을 아무렇게나 넣는 것 등 우리는 밥 먹을 때 사소한 것에서 정을 쌓아가기도, 정이 떨어지기도 한다.

소설 속 '나'는 20대 초반에 닭발을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았지만, 20대 중반에는 연어스테이크와 일본 가정식을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는다. 지금의 우리는 어떤 식습관을 가지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가? 식사자리는 나를 파악할 수 있다.

한편, 나-선정, 나-아빠는 식사 자리로 서로를 알아간다. 때론 좋아하는 음식을 공유하기도, 요리하기도 한다. 음식의 취향이 당신과 내가 다르지만, 조금씩 맞추어간다. 주인공 '나'가 선정의 음식 맛에 익숙해지듯이, 그것이 좋아지듯이.


<세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들>

세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일까? 소설에서 힘겨운 생활을 보낸 아빠는 '나'에게 조언한다. 바다, 가난, 인간은 세상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고.

먼저 바다는 흔히 끝을 알 수 없다는 말을 쓴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까지 발바닥이 땅에 닿기까지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무서워진다.

두 번째로 가난은 벗어나기 힘들어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가난은 함부로 이해한다고 말해선 안 되는데, 그것은 눈앞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인간 또한 세상의 깊을 가늠할 수 없다. 어떠한 인간이 한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란 불가능하듯이, 우리는 한 사람의 세계를 완전히 가늠할 수 없다. 즉,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이는 '나'와 선정이도 그랬다.

<미래와 미래>

우리는 한때 미래를 꿈꿨던 사이. 왜 헤어졌을까? 그리고 왜 슬플까?

선정이와 '나'는 미래를 꿈꿨던 사이다. 둘은 연인이 되었고, 선정이의 제안으로 함께 살아갈 집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미래를 꿈꿀수록 조금씩 둘은 멀어진다. 앞서 말했듯,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인다.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세상에 대해 정말 '모르기 때문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두 번째로는 '알기 때문에'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 한 사람에 대해 우리는 조금의 정보를 얻었을 때, 가장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알기 때문에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다. 어디까지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의 깊이가 들어갈지 모른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한때 미래를 함께 꿈꿨던 사람을 떠올리면 왜 헤어졌을까? 그리고 왜 슬플까? 그건 우리의 현실 앞에서 멈추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며,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바다일 수도, 가난일 수도, 인간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로 막았던 현실들은 당신은 이해할 수 있는가?

'나'와 선정이는 알기 때문에 헤어졌을까? 모르기 때문에 헤어졌을까? 아마 함께 바라본 바다의 깊이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다고 하자.


<그 외 소설>

대표적으로 소개한 최미래의 「얕은 바다라면」뿐만 아니라 조시현, 성해나 등 다양한 작가들도 'ㅇㅁ'을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함께했다.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모두 다른 소재와 다른 느낌이 들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비로소 너와 나의 사이가 경계적이라는 것. 즉, 애매한 사이일 때 소설은 비로소 완성됐다.

맛을 알면 더 먹고 싶은 음식들처럼,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외로움을 잘 느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조금씩 알아버린 경계의 측면에서 우리는 '애매한 사이'이며, 그럴수록 우리의 다음이 더 궁금해질 것이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 식기구 사용 습관, 입맛 등
식사 자리는 사람을 파악하는 꽤 괜찮은 방법이었다.
반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수단으로도 좋았다. - P16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선정이가 손해를 보고도 가만히 있어서?
그 모습이 답답해서?
그런 걸까.
우리가 함께 바라본 바다의 깊이가 달라서?
그랬던 것 같아.
그렇다고 하자. -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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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취소
호영 지음 / 읻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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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와 이야기>

호영은 사람을 초대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거나 혹은 과거의 자신을 인용한다. 많은 사람을 초대한 '전부 취소'는 조금 더 풍요롭다. 호영 덕분에 많은 좋은 글을 얻어갔는데, 이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좋은 사람들을 얻어가는 것과 비슷했다.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읽으며 나의 미숙함들을 채워갔다. 비록 호영의 어휘가 조금 과격할지라도, 호영의 언어들에 솔직함이 담겨있었다.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호영을 조금 더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동시에 나의 생각들도 조금 달라지고 있었다. 그 생각들과 관련해 공유하고자 한다.


< 나에게 수식되는 것들 >

내 이름 앞에 무언가 수식되는 일은 무척 무서운 일이다. A의 연인, 회장, B의 친구, 00학교 출신 등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의 아는 정보를 수식으로 붙인다. '끼리끼리'라는 법칙 아래 수식되는 사람들과 우리는 동일시되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강력한 이유의 타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수식어라면 더욱 그 수식어를 떼내기 어렵다. 호영의 경우, '트랜스젠더이고 따라서 정신병자이므로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주시해야 한다거나, 내가 가진 자질이나 의사결정의 타당성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었다'라고 덧붙인다. 즉, 호영이 커밍아웃을 했다면 회사에 있는 동안 수식어를 떼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 이름에 수식어가 붙는 일은 동시에 수식어의 책임을 짊어진다. 그때마다 숨기려고 애쓰는 건 호영뿐만 아니라, 나도 그랬다. 나의 앞에 수식어가 붙은 건 나를 단정지어 생각하는 것이기에 매우 안 좋아한다.


< 누군가 죽으면 나도 함께 죽는다 >

호영은 엄마를 떠올리며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이 기억하던 나, 그 사람과 놀 때만 나오던 나도 죽게 된다'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군가가 죽으면 왜 그렇게 슬플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사람과 나 둘만이 공유했던 기억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즉, 그 사람이 아는 내가 사라진다. 둘만의 기억을 누구와도 공유하지 못할 때 오는 슬픔들이 있다.

그러나 호영이 말했듯, '예전의 나는 연속되며 연속되지 않는다'. 즉, 그 사람이 죽어도 나는 연속된다. 그 사람과 있었던 나 덕분에 지금의 내가 되어있다. 이는 예전의 내가 있지만, 없는 일.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내가 되어가고 있다.


<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애쓰지만, 그렇지 않아도 될 때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해보다 인정'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이해까지 하지 않더라도, 그 사람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곤 나도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다'라는 말들로. 호영은 "불특정 다수의 인정을 받아야만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이라고 말한다. 내가 나로 살기에 인정이 무조건 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인정이 있으면 조금 덜 외롭다.

호영은 덧붙인다. '성별 정체성이라는 건 나 혼자 내가 누군지 안다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인식을 통해서도 만들어지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누군가가 내린 찰나의 판단으로 인해 고꾸라지는 일들이 생긴다. 한 사람의 판단, 한 가게의 내규가 내 앞의 문은 벽이기도 하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나에게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판단을 할 때, 우리는 조금 더 조심스러워져야 한다.


< 조금 모르겠는 방식으로 >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호칭에 대한 고민을 한 번씩 거친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선배, 형, 오빠, 언니, 누나, A씨 등 다양한 선택지들 중 우리는 어떻게 그 사람을 불러야 하나 고민한다. 그럴 때면 서로 합의를 거치는 과정은 매우 예의처럼 느껴진다. "당신은 어떻게 부를까요?"라는 말이 그 사람과 잘 지내고 싶다는 말을 포함하고 있다. 그때 동시에 말을 놓기도 하며, 서로 친해지기 편한 사이가 된다.

우리는 지금 이분법으로 나누어진 세계를 살고 있다. 밸런스 게임을 할 때 겪는 지옥들처럼 우리는 둘 중 하나를 무조건 '선택'해야 하기도 한다. 이는 때론 강제적이다. 그때마다 나는 '모르겠다'라는 답변을 매우 좋아한다. 몰라서 '선택하지 않겠다'가 아닌, 무언가를 '선택할 수 없는 상황'임을 뜻하는 말이 좋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데에 있어서, 어딜가나 중간지점이 있다. 나는 자주 '중간지점'을 택한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지금은'이라는 말을 앞에 덧붙이는 것. 혹은 점심메뉴를 선택할 때, '나눠먹자'는 선택지를 결정하는 것. 우리는 이분법의 세계에서 벗어나 조금은 모르겠는 방식으로 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 연결되기 위한 언어들을 약속하기 >

내가 모른다고 해서 미뤄왔던 세계들을 마주했을 때, 나는 언어에 관해 약속했다. '언어는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지정되는 것이기도 하며, 우리는 매일 소소한 협상을 하면서 서로 연결되기 위해 지정된 언어를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타인의 가장 사적인 진실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언어를 구사하면서 서로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때마다 서로를 깊이 파고들 순 없겠지만 인식하고 뒤엉키면서 우리는 고민한다. 당신에게 연결될 수 있는 언어가 무엇인지. 그것은 비로소 우리의 약속으로 이어질 것이다.

만약 커밍아웃을 했다면, 회사 내 대다수의 사람에게
그 소식은 커피 마시면서 언급할 가십거리 정도였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몇몇 사람에게는 내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이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수식하게 될 것이다. - P46

어디선가 읽었는데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이 기억하던 나
그 사람과 놀 때만 나오던 나도 죽게 된다
예전의 나는 연속되며 연속되지 않는다 - P76

곧 만나게 될, 또는 방금 만난 사람의 젠더, 성별, 성적 지향이
무엇인가에 대한 가정을 붙들고 있지 않는 것.
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길 원하는지 말하기 전까지는 기다리는 것.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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큔, 아름다운 곡선 자이언트 스텝 1
김규림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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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사람마다 보는 기준이 있다. 책 표지나 책 제목, 그리고 출판사를 보기도 한다. 나는 주로 작가의 믿음으로 책을 고르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 첫 소설을 응원하는 자이언트 스텝 시리즈는 나에게 책을 고르는 데 새로운 도전이었다.


<큔, 아름다운 곡선>은 잘 읽히는 것은 물론, 쉽게 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었다. 현실에 일어나지 않은 세계에 관해서 글을 쓴다는 건, 하나의 세계관을 창조해야 하는 일이다. 그럴수록 세계관의 허점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깨끗할 만큼 빈틈 없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 사랑이다. <큔, 아름다운 곡선>은 사랑을 '쉽게' 다루지 않았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어느 순간에 확 와버린 것이 아니라, 천천히 당신에게 녹아드는 사랑이다. 사랑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편견 없이 그저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Her>이 떠오를 만큼, 사랑에 관해 진지하고 아름다웠다..


또한, 인상 깊었던 점은 에필로그다. 1부와 2부 사이에 에필로그가 있다는 건, 나에게 새로운 구성이었다. 에필로그는 소설 속에 생겼던 궁금증을 풀어주었고, 정말 소설 속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큔, 아름다운 곡선>은 자이언트 스텝 시리즈의 아주 좋은 시작이다.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참신함과 아름답기도 한 사랑 이야기. 이는 다음 자이언트 스텝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채워준다. 

저도 이제 당신처럼 유한한 삶을 살게 됐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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