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나를 떠난 사람들이 못 견뎌했던 방식으로 살고 있다. 아직도. - P28
여전히 요리를 할 수 없다. 한끼 이상의 식사를 할 수도 없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었던 기억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 P29
이사한뒤 처음으로 아파트 뒤편 산책로에 들어선 11월 초순, 키 큰 단풍나무들이 타는 듯 붉게 물들어 햇빛에 빛나고 있다. 아름답지만, 그걸 느낄 수 있는 내 안의 전극이 죽었거나 거의 끊어졌다. - P29
인선에게서 문자를 받은 12월 하순의 아침 나는 그 산책로를걸어나오고 있었다. - P29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인선을 처음 만났다. 내가 입사한 잡지사에는 사진기자가 따로 없어......동성이 편할 거라는 선배들의 충고대로 사진 프로덕션들을 수소문해 동갑내기 인선을 소개받았다. 그후 삼년 동안매달 함께 출장을 다녔고 퇴사한 뒤로도 이십 년을 친구로 지냈으니, 그녀의 습관들에 대해 알 만큼 안다. - P30
형제자매 없이 마흔둥이로 태어나 자란 그녀는 어머니의 노환을 일찍 겪었다. 팔년 전 제주 중산간 마을로 돌아가 어머니를 돌보다 사 년 만에 여의었고, 그후로도 그 집에서 혼자 머물렀다. 그전에 인선과 나는 아무 때고 서로의 집에서 만나 함께 음식을 해먹고... - P30
사는 곳이 멀어지고 각자의 굴곡을 통과하는 동안 만남의 간격이 차츰 벌어졌다. 나중에는 얼굴을 보지 못한 채 한두 해가 훌쩍 지나가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내가 제주를 찾은 것은 지난해 가을이었다.
화장실을 실내로 들이는 정도로만 소박하게 개조한 목구조의 돌집에 나흘을 머무는 동안 그녀는 이태 전 오일장에서 만나 기르기 시작했다는 조그맣고 하얀 앵무새 한 쌍을 나에게 소개해주었고 그중 한 마리는 간단한 말을 할 줄 알았다. - P31
어두침침한 로비에 들어서자, 손가락과 발가락이 한 개씩 잘려나간 손과발의 사진이 벽에 붙어 있는 게 보였다.
눈을 피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잠시 들여다봤다. 오히려 실제보다 무섭게 기억할 수도 있으니 제대로 보려는 거였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그건 제대로 볼수록 고통스러운 사진이었다.
더듬더듬 그 사진의 오른편로 눈을 돌리자, 같은 손과 발에 손가락과 발가락이 봉합된 사진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 P32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인선은 이십대 후반부터 다큐멘터리영화에 관심을 가졌고,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그 일을 십 년 동안 끈기있게 했다. 물론 벌이가 되는 촬영 일도 닥치는 대로 했지만, 수입이 생기는 대로 자신의 작업에 쏟아부어야 했기 때문에 늘 가난했다. 그녀는 조금 먹고 적게 쓰고 많이 일했다. - P33
그렇게 이 년에 한 편꼴로 인선이 만들어간 단편영화들 중 처음 호평을 받은 것은 베트남의 밀림 속 마을들을 헤매 다니며 한국군 성폭력 생존자들을 인터뷰한 기록이었다. - P33
영화 제작을 위한 지원금을 받았다. 비교적 넉넉한 예산으로 인선이 만든 후속작은 1940년대 만주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했던 할머니의 치매에 걸린 일상을 다룬 것이었다. 딸의 부축을 받으며 실내에서도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의 텅 빈 눈과 침묵, 만주 들판의 끝없는 겨울 숲이 고요 속에서 교차되던 그 영화를 나는 좋아했다. - P34
그다음의 작업도 역사를 통과한 여성들의 증언이리라고 모두 예상했지만, 뜻밖에 인선은 그녀 자신을 인터뷰했다.
그림자와 무릎과 손, 그늘 속 희끄무레한 형체로만 노출된 여자가 영상 속에서 천천히 말을 이어갔는데, 그녀의 목소리를 아는 주변 사람들이 아니라면 인터뷰이가 누구인지조차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1948년 제주의 흑백 영상 기록들이 잠깐씩 삽입되었을 뿐 내러티브가 끊어져 있으며 말 사이의 침묵이 긴, 그늘진 회벽과 빛의 얼룩들이 러닝타임 내내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한 그 영화는, 앞의 작품들과 비슷한 정공법의 감동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당혹감과 실망을 안겨주었다.
평가와 무관하게 인선은 그 세 단편을 연결해 첫 장편영화를 만들 계획이었는데, 스스로 ‘삼면화‘라고 불렀던 그 작업을 어째서인지 중도에 접은 뒤 국비 지원이 되는 목수학교에 지원해 합격했다. - P34
골격이 가는 편이긴 하지만 백칠십 센티미터를 웃도는 키의 인선이 야무지게 촬영 장비를 나르고 다루는 모습을 이십대부터 봐 왔으니, 목수가 된 것이 놀랍긴 했지만 위태로워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주 부상을 입는 것만은 염려스러웠다. - P35
사년 전 늦가을, 인선은 어머니의 장례에 서울의 지인들을 거의 부르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연락을 해왔다. - P45
그 밤 인선이 나에게 그간의 안부를 물었을 때 검은 나무들의 꿈 이야기를 꺼낸 건 그렇게 복잡한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 P46
꿈과 생시 사이에서 검은 나무들의 벌판을 다시 보았던 지난 8월 새벽, 마침내 눈을 뜨고 나는 그곳으로부터 빠져나왔다. - P52
언제나처럼 선선히 인선은 나를 반겼다. 잘 지냈어? 담담하게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은 끝에 나는 말했다.검은 나무들을 심는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처음부터 내가 꿈의 의미를 잘못 이해했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나중에 만나 자세히 이야기하자고. ... 그렇구나.
... 그런데 어떡하지. 난 벌써 시작했는데. 지난번에 너 다녀가고 나서바로. 지난해 가을 제주에서 그 일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인선이었다. - P53
마치 이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간의 일을 들려주기위해 준비해온 사람처럼 인선은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아흔아홉 그루보다 더 넉넉하게 모아서 봄부터 건조시켰어. 지금은 여름이라 습기를 먹었는데, 10월쯤 되면 다루기 꼭 좋게 말라 있을 거야.
11월까지 부지런히 작업해서 땅이 얼기 전에 심으면, 12월부터 3월까지 눈이 올 때마다 촬영할 수 있어.
그렇게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서둘러 전화한 거였지만 나는 놀랐다.
지나간 사 년 동안 그래왔듯, 어떤 이유로든 정말 실현될 수는 없는 일일 거라고 은연중에 생각했던 것이다. 그럼, 그 나무들로 다른 걸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인선이 웃었다. - P53
내 잘못이야. 내가 모든 걸 잘못 생각했어. 휴대폰 저편에서 그녀가 침묵하는 몇 초가 실제보다 길게 느끼졌다.
침묵을 깨며 인선이 말했다.
어쨌든 난 계속하고 있을 거야.
그럴 일이 아니야 인선아, 라고 나는 만류했지만, 그녀는 마치 사과의 말에 너그럽게 답하는 사람처럼 괜찮아, 라고 말했다. 거꾸로 나를 달래는 듯 인내심이 배어 있는 목소리였다. 난 괜찮아, 경하야. 걱정할 거 없어.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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