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버스가 P읍으로 들어서고 있는 것을, 농협과 우체국의 간판들로 나는 짐작한다.
손을 뻗어 하차 벨을 누르자 버스가 속력을 줄인다. ......
태풍의 눈 속으로 갑자기 들어선 것 같다. 이제 오후 네시를 조금 넘겼는데, 더 큰 폭설이 다가오기라도 하려는 듯 어둡다. - P88
젖은 아스팔트 위로 눈이 내려앉을 때마다 그것들은 잠시 망설이는 것처럼보인다.
그럼・・・・・그래야지・・・・・ 라고 습관적으로 대화를 맺는 사람의 탄식하는 말투처럼,
끝이 가까워질수록 정적을 닮아가는 음악의 종지부처럼,
누군가의 어깨에 얹으려다 말고 조심스럽게 내려뜨리는 손끝처럼
눈송이들은 검게 젖은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았다가 이내 흔적없이 사라진다. - P89
나를 내려준 뒤 다시 출발하는 버스의 엔진음이 눈의 정적 속으로 무디게 삼켜진다.
속눈썹에 내려앉는 눈송이를 손바닥으로 닦아내며 나는 방향을 찾는다. - P90
너무 고요하다.
계속해서 이마와 뺨에 부딪혀 맺히는 눈의 차가움이 아니라면 꿈이라고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
멸치국수와 물회를 파는 식당들에 불이 꺼져 있는 것은 일요일이라서일까? ...... 적막에 싸인 이 읍에서 불을 밝힌 곳은 길모퉁이의작은 슈퍼마켓뿐이다.
- P91
조그만 푯대는검게 젖은 아스팔트로 매초마다 수천 송이의 눈이 내려앉아 사라지고 있는 횡단보도를 나는 가로지른다.
오십 미터 가까이 걸어 올라갔을 때에야 그 푯대가 버스 정류장이라는 게 확실해진다.
눈비를 피할 수 있는 어떤 구조물도 없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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