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824쪽 나는 목동 키호티스가 되고 자네는 목동 판시노가 되어 산이며 숲이며 초원을 돌아다니면서, 여기서 노래하고 저기서 애기를 읊고, 샘에서 나는 수정 같은 물이나 깨끗한 시냇물이나 수량이 풍부한 강물을 마시는 걸세. 떡갈나무는 자기의 맛있는 열매를 아낌없이 줄 것이고, 단단한 코르크나무의 둥치는 우리에게 앉을 의자를 줄 것이며, 버드나무는 그늘을, 장미는 향기를, 넓은 풀밭은 수많은 색으로 배합된 양탄자를, 맑고 깨끗한 대기는 숨 쉴 공기를, 밤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달과 별은 밝은빛을 우리에게 줄 것이야. 노래는 즐거움을, 눈물은 기쁨을, 아폴론은 시를, 사랑은 영감을 주니 우리는 이것으로 현세뿐만 아니라 앞으로 올 세기에서까지도 영원하고 유명해질 걸세. - P824
67-827쪽 나는 속담을 상황에 맞게 가지고 오고, 그것을 말할 때면 마치 손가락에 반지가 맞듯 딱 들어맞는단 말일세.
하지만 자네는 속담들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다니질 않나. 속담들을 인도하는 게 아니고 말일세. - P827
68-829쪽 하늘에 달은 떴으나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으니 다소 어두운 밤이었다. 디아나 아가씨가 종종 지구 반대편으로 산책을 가시느라 산과 계곡을 어둡게 내버려 두시는 모양이다. - P829
68-831쪽 이제 속담을 줄줄 꿰는 사람은 제가 아닙니다요. 나리의 입에서 저보다 더 많은 속담들이 나오고 있단 말입니다요. 단지 제 속담과 나리의 속담과의 차이라면, 나리의 속담은 제때 나온다는 것이고 제 속담은 때아니게 나온다는 것뿐입니다요. 하지만 어쨌든 이나저나 모두 속담입니다요. - P831
71-857쪽 돈키호테가 세상에서 가장 안달복달 기다리던 밤이 왔으니, 그로서는 ·아폴론의 수레바퀴가 부서져 버렸거나 하루가 보통 때보다 더 늘어나지는 않았나 여겨질 정도였다. 마치 서로에 대한 열정 때문에 한 번도 시간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는 연인들에게 일어나는 일처럼 말이다 . - P857
71-859쪽 하지만 이 꾀 많은 자는 자기 등에 채찍질하는 것을 그만두고 나무에다 해대기 시작했다. 매질하는 사이사이 한숨을 내쉬어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구는 것도 잊지 않았다. - P859
71-860쪽 돈키호테는 지금까지 그러했듯 깊은 연못과 탑과 올렸다 내렸다 하는 쇠창살과 개폐교를 갖춘 성이 아니라, 그냥 여인숙으로 그것을 알아보았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그는 결투에서 진 이후로 모든 일에 걸쳐 좀 더 나은 판단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 P860
71-862쪽 속담은 그만, 산초, 제발 부탁이네. 돈키호테가 말했다. 아무래도 자네는 Sicut eral(이전의 것으로)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군. 내가 자네에게 누차 말하지 않았던가.
쉽고 분명하고 매끄럽게, 그리고 복잡하지 않게 말하라고 말일세. 그러면 빵 한 개가 1백 개의 값어치와 맞먹는다는걸 알게 될 걸세. - P862
72-870쪽· 그리던 고향아, 네 아들 산초 판사가 대단한 부자는 못 되었지만 매는 아주 실컷 맞고 돌아온 것을 눈을 뜨고 보려무나.
두 팔을 벌려 역시 네아들인 돈키호테를 맞이하려무나. 남의 완력에 의해 패배한 채 오시기는 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승리하여 돌아오셨으니 말이다.
그분이 내게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자신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가장 큰 승리란다.
나는 돈을 벌어 왔는데, 지독한 매질을 당하면 멋지게 말을 타게 되는 법이라 그렇지
그런 바보 같은 소리는 그만두고... 돈키호테가 말했다. 자, 곧바로 마을로 들어가세. 거기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목동 생활에 대한 계획과 우리의 생각에 여유를 좀 주세. ·870이렇게 말하면서 그들은 언덕을 내려가 마을로 향했다. - P870
73-874쪽 산치카는 자기 아버지를 껴안고는 5월에 비 기다리듯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며 자기한테는 뭘 가지고 왔는지 물었다. 산초는 딸의 허리 한쪽과 아내의 손을 잡고, 딸은 잿빛의 고삐를 잡은 채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다. 돈키호테를 신부와 학사와 함께, 그리고 조카딸과 가정부의 감시하에 남겨 두고서 말이다. - P874
73-874쪽 그리고 자기는 목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양들과 가축들을 충분히 살 것이며, 이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바로 그들에게 꼭 들어맞는 이름을 지어 놓았다는 것이다. 신부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자 돈키호테는 자기는 <목동 키호티스>이고 학사는 <목동 카라스콘>, 신부는 <목동 쿠리암브로>, 산초 판사는 <목동 판시노>라고 했다.
두사람은 돈키호테의 새로운 광기에 깜짝 놀랐지만, ... - P874
73-877쪽 조용히들 하게, 이 사람들아 돈키호테는 그녀들에게 대답했다. 내 일은 내가 잘 알아. 나를 침대로 데려가 다오 몸이 썩 좋은 것 같지 않구먼.
그리고 자네들이 분명히 알아 둬야 할 것은, 지금 내가 편력 기사가 되건 목동이 되어 돌아다니건, 자네들이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도와주러 갈 거라는 점이야. 어차피 행동으로 알게 될 일이. - P877
74-878쪽 세상만사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없고 그 시작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늘 쇠락해 가니, 특히나 인간의 목숨이 그러하다. 돈키호테의 목숨 또한 그 흐름을 멈추게 할 하늘의 특권을 갖지 않았기에 당사자는 생각도 않고 있을 때 그의 종말은 찾아왔다. 결투에서의 패배로 인한 우울함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렇게 되도록 정한 하늘의 뜻 때문이었는지, 그는 열이 지독하게 올라 엿새 동안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동안 친구들인 신부와 학사와 이발사가 여러 번 찾아왔고, 착한 종자 산초 판사는 그의 머리말을 계속해서 지키고 있었다. - P878
74一880쪽 이제 나는 자유롭고 맑은 이성을 갖게 되었구나. 그 증오할 만한 기사도 책들을 쉬지 않고 지독히도 읽은 탓에 내 이성에 내려앉았던 무지의 ·어두운 그림자가 이제는 없어졌거든. 그 책들이 가지고 있는 터무니없음과 속임수를 이제야 알게 되었단다. 이러한 사실을 참으로 늦게 깨달아, 영혼의 빛이 될 다른 책을 읽음으로써 얼마간이라도 보상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단지 원통하구나. - P880
74-880쪽 내 좋은 이들이여, 축하해 주시오. 나는 이제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아니라 알론소 키하노라오. 나의 생활 방식이 그 이름에다 <착한 자>라는 별명을 달아 주었었지.
이제 나는 아마디스 데 가울라와 그와 같은 가문이 만들어 낸 숱한 잡동사니들의 원수요. 이미 편력 기사도에 관한 불경스러운 이야기들은 모두 나에게 증오스러운 존재가 되었소. 그런 책들을 읽음으로써 내가 빠졌던 아둔함과 위험을 이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오. 하느님의 자비로 내 머리가 교훈을 얻어 그러한 책들을 혐오하게 되었소이다. - P880
74-882쪽 착한 자 알론소 키하노는 정말로 죽어 가고 있으며, 정말로 제정신으로 돌아왔소이다. 그분이 유언을 하도록 우리 모두 들어갑시다. 이 소식은 가정부와 조카딸과 그의 착한 종자 산초 판사의 억눌린 눈물샘을 무섭게 자극했으니, 그들은 눈물보를 터뜨렸고 그들 가슴에서는 깊은 한숨이 쉬지 않고 나왔다. 언젠가 말했듯이, 돈키호테는 착한 자 알론소 키하노였을 때나 돈키호테 데 라만차였을 때나 늘 온화한 성격으로 사람들을 기분 좋게 대해 주었고, 이로 인해 자기 집 사람들은 물론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무척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 P882
74-884쪽·· 이 말로 그는 유언을 마치고 정신을 잃더니 침대에 길게 누웠다. 모두가 당황하여 어떻게든 해보려고 달려들었다. 유언장을 만든 그날 이후 사흘 동안 그는 살아 있기는 했으나 아주 자주 정신을 잃었다. 집안은 어수선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조카딸은 식사를 했고, 가정부는 건배를 했고, 산초는 즐거워했다. 무엇이라도 물려주고 나면, 죽는 자가 마땅히 남기는 고통에 대한 기억은 유산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지워지거나 희미해지는 법이다. - P884
74-885쪽 신부는 공증인에게 보통 돈키호테 데 라만차라고 불리던 착한 자 알론소 키하노가 어떻게 자연사하여 이 세상을 떠났는지에 대해 증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증언을 부탁하는 것은 시데 아메테 베넹헬리가 아닌 다른 작가가 거짓으로 그를 부활시키고 그의 무훈에 관한 끝나지않을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기회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 P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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