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163쪽 내가 처음으로 베르고트 이야기를 들은 것은 나보다 나이 많은 학교 친구로 평소에 내가 감탄해 마지않던 블로크를 통해서였다. ... 내가 존경하는...르콩트스승께서...
그런데 여기책 한 권이 있거든. 요즘 시간이 없어서 읽지는 못하지만, 저 위대한 인물께서 추천하신 책이지. 듣기로는 그분은 이 책의 저자인 베르고트 선생을 아주 섬세한 작가라고 생각한다더라. ... 그러니 이 서정적인 산문을 읽어 봐. - P163
162쪽 이런 날들을 제외하면 평소에는 반대로 조용히 책을 읽을 수있었다. 그러나 한번은 내가 처음 대하는 작가인 베르고트의책을 읽고 있을 때, 스완 씨가 찾아와서 내 독서를 멈추고 한마디 해준 말이 있었는데, ... - P162
164쪽 불행하게도 나는 블로크와 이야기하면서 설명을 요구하기도 했지만, 그가 아름다운 시(詩)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수록 더욱 아름답다고 했을 때 (오로지 진리의 계시만을 기대하던 나에게) 그 말이 내 마음에 불러일으킨 혼란을 진정시킬 수없었다.
실제로 블로크는 두 번 다시 우리 집에 초대받지 못했다. 처음에 그는 크게 환영받았다. - P164
167쪽 우리 가족들은 할머니의 불편한 몸 때문에 그가 흘린 눈물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본능적으로, 또 경험상, 감정의 충동적인 변화가 그 뒤를 잇는 행위나 태도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을,
오히려 도덕적인 의무의 존중이나 친구에 대한 신의, 과제 수행, 식이요법 준수가 쓸데없이 흥분하는 저 일시적인 격정보다는 맹목적인 습관에 보다 확고한 근거를 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P167
168쪽 어느 날 갑자기 나에 대해 다정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고 해서 불쑥 과일 바구니를 보내오는 친구가 아니라. 우정의 의무와 요구 사이에서 상상력과 감수성의 충동적인 움직임으로 올바른 저울을 내 쪽으로 기울일 수 없다고 해서 내게 해로운 쪽으로 왜곡하지 않는 그런 친구를 더 원했다. - P168
168쪽 하지만 나는 블로크를 좋아했고, 부모님께서는 이런 나를기쁘게 해 주고 싶어 하셨는데, ‘미노스와 파지파에의 딸이라는 구절의 무의미한 아름다움에 대해 내가 제기한 그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탓에 나는 피곤해졌고, 비록 어머니께서 블로크와의 대화가 해롭다고 판단하셨을지라도 이런 블로크와 새로운 대화를 나누는 편이 더 나았을 정도로 나는 괴로움에 시달렸다.
그래도 이런 일만 없었다면 블로크는 콩브레에 다시 초대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날 저녁 식사 후에 그는, ... - P168
169쪽 가장 확실한 소식통으로부터 전해들은 바에 따르면 우리 고모할머니가 아주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보냈고, 또 공개적으로 남자에게 얹혀사는 첩이었다고 단언했다.
나는 부모님께 이 말을 전하지 않을 수 었고, 다음에 그가 우리 집에 다시왔을 때는 가족들이 그를 문 밖으로 내쫓아 버렸으며, 내가 길에서 그와 마주쳐 다가갔을 때는 그가 나를 아주 냉정하게대했다.
그러나 그가 베르고트에 대해서 한 말은 진실이었다. - P169
169쪽 ...나는 단지 이야기 주제에만 흥미를 느낀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감추어진 조화의 물결이나 내적인 서곡 같은 것이 그의 문체를 들어올리는어떤 순간에 그가 드문 표현을, 거의 고풍스러운 표현을 즐겨쓴다는 것을 인지했다. - P169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온갖 장애물과 거리감이 제거된, 보다 통합되고 보다 광활한 지대에서 느껴지는 기쁨이었다. - P170
170쪽 예전에 읽었을 때 내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미 내 기쁨의 원인이었던 드문 표현에 대한 동일한 취향, 동일한 음악적인 유출, 동일한 관념론적인 철학을 인식하면서, 나는 내 사유의 표면에 전적으로 단조로운 형상을 그려 보이는 베르고트의 어느 특정 문단과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베르고트의 모든 저술에 공통되는 그의 ‘관념적인 단락‘을 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으며, 모든 유사한 구절들이 그단락과 혼동되면서 일종의 두께와 부피를 갖춰 내 인식이 확대되어 가는 듯한ㅈ느낌이었다. - P170
171쪽 어머니의 여자 친구분이나 뒤 불봉 의사가 베르고트의 책에서 특히 좋아하는 점은 (그렇게 보이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점과 같았는데, 똑같은 음악적인 흐름, 고풍스러운 표현들, 그리고 아주 간단하고 흔한 표현일지라도 그것이조망되는 위치 때문에 작가 특유의 취향을 드러내는 그런 부분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슬픈 대목에서의 어떤 서두름이나 거의 쉰 듯한 억양 같은 것이 있었다. - P171
172쪽 지금까지 내게 감추어져 있던 아름다움들, 예컨대 소나무 숲이나 우박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아탈리」 또는 「페드르」‘에 대해 말할때마다 그는 그것을 이미지로 폭발시켜 내게로까지 전해 줬다.
만약 베르고트가 나로 하여금 다가가게 해 주지 않았다면, 내 하찮은 지각으로는 도저히 인식하지 못할 부분이 이 우주에 얼마나 많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나는 모든 사물들에 대해,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특히 프랑스 옛 건축물과 어떤 바다 풍경에 대해 그의 견해나 은유적인 표현을 들었으면 했다.
그가 그런 것들을 자신의 작품에서 끈질기게 인용하는 것으로 보아, 거기에 풍요로운 의미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 - P172
173쪽 그러나 그의 문장을 즐기는 것은단지 그의 작품을 읽는 순간뿐이었다.
왜냐하면 나중에 나자신이 직접 그 문장들을 써 나가면서부터는 내 생각이 지각한것을 정확히 반영하는 데에만, ‘닮게 하는 데‘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내가 쓰는 것이 과연 내 마음에 드는지 어떤지는 물을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정말로 좋아한 것은 그때 내가 쓴 것과 같은 문장이나 그런 관념 들뿐이었다.
나의 불안하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노력은 그 자체로 사랑의 표시였으며, 기쁨은 없지만 그래도 심오한사랑의 표시였다.
그리하여 갑자기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그런 문장을 발견하면, 다시 말해 양심의 가책이나 엄격한 잣대를 가질 필요 없이, 또는 번민할 필요도 없이 그런 문장을 발견하면, ...그런 문장들을 좋아하는 취향에 즐겁게 자신을 맡기는 것이었다. - P173
174쪽 그때 갑자기 나는 내 소박한 삶과 진실의 왕국이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어떤 점에서는 서로 일치하기조차 한다는 생각이 들어, 마치 되찾은 아버지 품에 안기듯이 작가가 쓴 책의 페이지 위에 신뢰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 P174
175쪽 어느 일요일, 정원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부모님을 찾아오신 스완 때문에 독서가 중단되었다.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 아, 베르고트로군? 누가 자네에게 베르고트의 책을 알주었는가?" 나는 블로크라고 대답했다. - P175
177쪽 이제까지 나는 스완이 진지하게 자기 의견을 표현하기를 싫어하는 것이 뭔가 우아한 파리 사람답게, 할머니 자매들 같은 시골사람들의 독단적인 태도와는대조를 이룬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스완씨가 드나드는 사단이 보여 주는 재치의 형태로서, 전 세대의 서정주의에 대한 일종의 반동 작용이며 과거에는 저속하다고 여겨왔던, 하찮지만 정확한 사실들을 과도하게 복원함으로써 ‘미사여구‘ 사용을 금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물들에 대한 스완의 이런 태도에서 뭔가가 거슬렸다. 그는 자기의견 말하기를 꺼렸고, 소상하게 정확한 정보를 줄 수 있을 때에만 안심했다. 그러나 그런 행동 자체가 이미 세부적인 것의정확함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정하고 말하는 태도를 드러낸다는 걸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 P177
177쪽 사물에 대해 마침내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솔직하게 말하고, 자기 판단을 인용부호 안에 넣지 않고 표현하고, 웃기는 짓이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까다로운 예의를 지키는 일에전념하지 않는 태도를, 그는 도대체 어떤 다른 삶을 위해 남겨두는 것일까? 또한 스완이 베르고트에 대해 말하는 방식에서나는 그의 의견이 그만의 특별한 것이 아닌, 오히려 반대로 당시 베르고트의 모든 찬미자들, 어머니 친구분이나 뒤 불봉 의사의 의견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 P177
178쪽 게다가 자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베르고트에게 부탁할 수 있네. 일년 중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우리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하니까. 내 딸의 가장 가까운 친구라네. 그들은 함께 옛 도시와 대성당, 성들을 구경하러 다닌다네. - P178
180쪽 그때부터 그녀를 생각할 때면, 그녀는 자주 어느 성당 정문에서 조각상들의 의미를 설명해 주면서, 나를 칭찬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베르고트에게 자기 친구라고 소개하는 모습으로 떠올랐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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