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 하찮은 체력 보통 여자의 괜찮은 운동 일기
이진송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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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닮아 운동신경과는 담을 쌓은 삶을 살아온 내게 언제나 가장 싫은 시간은 체육시간과 체력장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 가장 좋았던 것은 억지로 체육수업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을 정도.

운동신경과는 별개로 춤은 좋아했던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뒤늦게 발을 담가본 리듬체조를 시작으로 발레에 꽂혔으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춤바람 잘못 나면 캬바레로 빠진다"는 신조를 가지고 계신 나의 아빠는(실제로 아빠의 먼 친척 중 저런 분이 계셨다고 한다) 내가 얌전히 수학이나 영어 학원을 다니길 바라셨기에 절대로 시켜주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용기를 내어 학교 여름학기 재즈댄스 강좌를 듣기 시작하며 깨달은 것은 나란 인간도 운동을 아주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헬스나 요가 같은 것도 해 봤지만 내게 가장 잘 맞는 것은 45분 가량 스트레칭과 재즈워킹, 웨이브등을 하고 나서 선생님이 만든 작품을 15분 정도 다같이 추는 재즈수업이었다. 발레니 스윙댄스니 탭댄스니 다른 것도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어 나중에 해보려다가 시기를 놓쳤다.

상상 이상으로 스트레스의 연속인 사회 생활을 버티기 위해서는 매주 월수금 저녁 8시 50분부터 10시까지 하는 댄스 수업이 필수였다. 20대 중반부터 거의 30대 중반까지 나는 출장을 가거나 몸이 아프거나 금요일 데이트가 있지 않는 한 주3회 목동 디오댄스에 출근도장을 찍었다. 그렇다고 내가 춤에 엄청난 소질이 있거나 강사 수준으로 능력을 끌어올려 자격증을 딴 것은 아니었고, 어디까지나 나의 운동은 내 스트레스 해소와 건강 관리가 목적이었다. 단 것을 워낙 좋아하기에 그대로 둔다면 심각하게 살이 찔 수도 있었으므로, 댄스 수업이 없는 날은 꾸역꾸역 실내 바이크라도 탔다. 

하찮은 체력을 가진 보통 여자가 "운동하러 가야하는데"라고 되뇌이며 어떻게 해서든 그날 운동을 하러가지 않은 자신을 합리화하고, 또 새로운 운동센터에 홀려 기부천사가 되고, 열을 내다가 저질체력으로 장렬히 전사하기도 하는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는 책,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타고난 운동신경이나 운동에 대한 넘치는 사랑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처럼 꾸역꾸역, 좋아하는 부분도 있지만 아닌건 더 많은, 좋아한다고 엄청나게 또 매진하지도 않는, 의무감과 강박감과 좌절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운동유목민의 이야기였기에 공감을 가득담아 키득거리며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서울에서 원주로 장거리 출퇴근을 하면서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필라테스를 하고 임신을 하고 나서도 집에서 유튜브로 임산부 요가를 틀어놓고 용을 쓰던 내가, 최악의 운태기(운동권태기)를 맞은 것이 하필 이번주였다. 아이를 낳고 난 직후보다 요즘 더 부쩍 팍삭 늙고 있다는 것이 실감나며 온몸 구석구석 안아픈데가 없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핫요가를 다니고 있었는데, 급기야 은총이가 아데노 바이러스에 걸리면서 새벽마다 열을 재고 약을 먹이느라 스탠바이 하기를 꼬박 일주일, 결국 온가족이 아데노의 희생양이 되어 나 역시 열이 오르고 온몸이 쑤시니 핫요가와 수요일 점심의 회사 필라테스는 커녕 그냥 사무실에 앉아 마우스를 클릭질하는것조차 버거운 한주였다. 하필 요가는 등록기간이 종료되었고 운동하러 가지 않는 날은 스트레칭이라도 하던 내가 난생 처음으로 애를 재우다 초저녁인 9시(야행성인 나에게 9시는 초저녁이다)에 기절하는 경험을 연속 3일 하고나니 주말이 끝났다. 허무하다.

책을 덮으며 이 지긋지긋한 아데노도 제발 오늘이 끝이길 바래본다. 그리하여 내일부터는 다시 저녁때 운동도 하고 나도 망가진 몸을 좀 추슬러보자꾸나. 아파도 무한체력이었던 은총이니까 오늘 밤 푹자고 제발 다 낫자.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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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울다
데이비드 플랫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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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5

그곳에서는 누구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쉽다는 착각에 빠져 있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문화적으로 허용해서 그곳에 찾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가장 편안한 삶이어서 그곳에 찾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날 그 방에 모인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고 고생을 하며 곤란한, 심지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줄 분명히 알고서도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먼 발걸음을 했다. 각자 앞에 성경책을 펴고 앉은 그 모임에서 나는 이곳이야말로 하나님이 의도하신 교회라는 생각을 했다.


p.298

내가 이 모든 이야기를 나눈 것은 당신의 길이 내 길과 같아야 한다고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같을 수가 없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선교 단체 리더나 목회자, 다른 나라의 선교사로 부르시지는 않는다. 물론 하나님은 분명 우리 중 일부를 그런 일로 부르시며, 나는 하나님이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을 그렇게 부르시기를 위해 기도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부름은 리더나 목사, 선교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부름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당신이 교사든, 송어 똥 전문가든, 비즈니스 리더든, 가정주부든, 학생이든, 은퇴자든 하나님은 당신의 삶을 절박한 세상에 필요한 도구로 창조하셨다.

그러니 하나님이 현재의 자리에서 당신을 부르시는 역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 하나님이 당신을 이곳에 두신 데는 다 이유가 있음을 기억하라. 당신이 현재의 도시나 마을에 있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당신의 직장, 학교, 사는 동네, 사는 집, 재능, 기술, 능력, 자원은 다 하나님의 섭리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주변 세상에 복음의 소망을 전할 독특한 기회들을 주셨다.


대학생 시절, 나는 내가 속한 교회 대학부의 워십팀으로 매 학기 방학마다 해외 아웃리치를 갔었다. 아웃리치를 가기전에는 몇달간의 연습과 여리고 기도회와 팀모임으로 준비했고 아웃리치 기간에는 개인 여비는 모두 반납하고 개인 관광이며 쇼핑도 금지하고 철저히 예배와 전도에 집중하는 선교였다. 돈이 없어 따로 관광을 할수도 없고 현지를 잘 알지도 못했기에 할수있는 것은 오로지 머물고 있는 교회나 숙소에서 말씀을 읽고 예배하는 것과 노방전도와 워십팀 공연이 전부였다. 그래서 더 순수하게 그 시간에 집중할 수 있었다.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청년부에 소속되어 나름 활동도 하고 국내 아웃리치도 다녀오고 했지만 대학생 시절만큼으 순수함과 열정은 없었다. 사회생활은 상당히 큰 변수였고 거기에 결혼과 임신 출산까지 이어지자 그야말로 나는 선데이 크리스찬(때로는 그보다도 못한) 상태가 되었다. 회사 발령으로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도 육아로 인해 순모임 소속이나 참여는 힘들었고 예배도 간신히 참석하는데 의의를 둘 뿐이었다.


나와 수많은 아웃리치를 함께 가셨던 대학부 시절 목사님께서 작년에 말씀하신 것이 생각난다. "너 우리 대학부 시절 대만이니 일본이니 아웃리치 가던거 생각나지. 이제는 네가 사는 그 곳에서, 네 삶에서 아웃리치를 하는거다. 방학때만 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매일의 삶 가운데 영적전쟁이 있고 네 삶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야 하는거야."


데이비드 플랫 목사님의 "복음이 울다" 가제본을 받아 읽으면서 나는 나의 대학부 시절의 아웃리치와, 목사님이 작년에 해주셨던 말씀이 번갈아 생각났다. 

주일이었지만 역시나 예배때는 난리를 치는 딸아이로 인해 설교를 반의 반도 듣기 힘들었고, 기도시간에도 애가 사고를 칠까 눈도 감기가 힘들고, 개인기도도 당연히 할 시간이 없다. 낮에는 기분이 괜찮으시던 따님은 오후에 급격히 기분이 안좋아져 또 역대급의 진상을 갱신하며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셨고 나는 짜증을 미친듯이 내고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지금 이 곳에서 매일 엉망진창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도, 말씀과 기도는 커녕 그저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적어내기 위한 최소한의 종교활동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더라도,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은총이를 키우며 나는 지금 여기 이 자리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정지되다 못해 이미 한참 퇴보한 것 같지만, 이곳은 이전과 같지 않은 나의 새로운 아웃리치 장소임을 잊지 않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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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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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던 내가 처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맨 처음은 대학생 때 미술에 관심이 많은 친구를 따라 퐁피두특별전을 관람하고 나서였다. 아무 생각없이 보던 그림들이 색채나 인물의 포즈에도 뜻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몸과 마음이 지독히도 피폐해진 20대 중반, 우연히 접하게 된 그림 에세이들은 너무 힘들어 눈물도 안나오던 메마른 나를 채우며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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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정말 아쉬웠던 점은 내가 시간이 너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림에 관심이 있고, 그림과 관련된 에세이나 그림을 분석하는 글들을 좋아하는 나는 줄리언 반스가 그답게 때론 냉소적이면서도 상당히 진지하게 화가와 그림에 대해 파고들고 있는 이 책을 하필 지금과 같은 시기에 급하게 후루룩 마시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슬펐다. 16개월의 딸내미는 매일 상상을 초월한 갖가지 이유로 나를 한계까지 들었다놨다 하고있고 회사 일은 밀리고 집안일은 손놓은지 오래. 안아달라 난리치고 막상 안으면 또 몸부림치는 상전땜에 안그래도 안좋던 허리가 점점 맛이 가기 시작했는데 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내가 알아서 허리 아픈 걸 참아가며 애를 안아야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애를 재우고 새벽에 잠을 줄여 책을 더 봐야지했더니 이번엔 또 감기에 걸려 울고불고 재우면 깨고 또 울고. 정말 이번주는 너무 힘들구나.


p.106

<올랭피아>가 1865년 살롱전에 걸렸을 때 주최 측은 물리적인 위협 때문에 그것을-그녀를-맨 끝 전시실의 문 위쪽에 옮겨 걸어야 했다. 그림이 너무 높게 걸려서 "사람들은 그게 벌거벗은 살덩어리인지 빨래 뭉치인지" 잘 알아보지 못했다.


p.309

마그리트의 미술은 통제와 배제의 미술이다. 그의 관점은 단조롭게 정면을 향한다. 대칭과 평행 후퇴면, 의도적으로 그 가짓수를 축소한 오브제. 본질적으로 평범하거나(커튼,새,불) 반복을 통해 평범하게 만든 오브제(죽방울, 썰매 방울). 밋밋한 채색. 사물을 제시하는 초연한 방식. 그래서, 가령 하늘의 파란색은 항상 하늘의 흉내라도 내는 양 밝고 선명하다. 마그리트는 환상과 자유연상을 거부하는 한편 엄격과 논란과 체계를 선호한다. 이는 실베스터가 "표현의 유쾌함"이라 칭하는 것들로 구성된 재치 있고 자의식 강한 매력적인 미술로, 도발적인 제목이 그 화룡점정을 이룬다. 젊은 사람치고 마그리트를 좋아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스미소니언에서 처음 만나 좋아하게 된 르네 마그리트에 대해 줄리언 반스가 표현한 부분,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한 일화, 언젠가 봤었던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에 대한 소논문같은 분석, 항상 궁금했던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에 대한 설명, 드가나 보나르의 작품에 대한 실소터지는 한마디 요약 등 내가 꽂힌 포인트는 여기저기 많았다. 책 표지의 소개글을 누가 선택했는지는 모르나 정말 찰떡이다. "이런 미술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반스뿐이다" 그리고, "읽고 나면 당장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어질 것이다" 정말 그랬다. 책을 읽고 있노라니 불과 몇년 전, 홀가분한(딸린 애가 없는) 자유로운 몸으로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그림을 감상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루브르, 오르셰, 스미소니언, 프릭컬렉션, 내셔널갤러리, 코톨드 갤러리, 무하 박물관, 빈 미술사 박물관, 벨베데레, 우피치 박물관....열심히 돌아다녔고 많은 그림을 하나라도 더 보고싶어 종종걸음치던 그때가 너무너무 그리워졌다. 너무 그립지만...일단은 또 인후염에 걸리신 우리집 상전님의 용태를 살펴봐야 하므로 서둘러 추억을 갈무리하고 책을 덮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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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했던 모든 애인들에게 - 지구상에서 가장 특별한 203가지 사랑 이야기
올린카 비슈티차.드라젠 그루비시치 지음, 박다솜 옮김 / 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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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고 다들 남자친구를 만들고 데이트를 할 시기가 되었음에도 나는 짝사랑 전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관심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늘 알고지냈던, 대학생이 되고 그야말로 돌변하여 연애의 달인이 된 한 친구는 내게 연애의 비법을 한마디로 말해주었다. "그냥 별로여도 일단 만나봐. 그러다보면 정들게 돼." 나는 그 "일단 만나보는"게 잘 안되는 사람이었다. 


2006년, 크로아티아에서는 독특하고 특별한 전시가 열렸다. '이별'을 기념하는 전시.4년간 사귄 연인이었던 올린카 비슈티차와 드라젠 그루비시치는 사랑이 끝나고 남은 물건들의 처분을 고민하다 이별 보관소를 만들기로 한다. 그들은 남겨진 물건을 폐기하거나 서로 소유를 구분하여 나누는 것보다 훨씬 나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보관소에 "이별의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박물관은 작은 선박용 컨테이너 박스에 전시된 40점의 물건들로 시작되었으나 곧 전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별을 상징하는 물건과 그에 얽힌 사연을 보내왔다.


이 책은 이별의 박물관에 전시된 203가지의 이별의 잔해와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아름답고 애틋한 물건도, 뜬금없고 기괴한 물건도 있다.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분노와 상처만이 남은 사연도 있다. 


내가 겪은 이별들과, 그 관계들은 과연 내게 무엇을 남겼을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많고 다양한 연애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은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내게는 잘 된 일이었다. 나는 워낙 사람간의 관계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내가 상처를 덜 받으라고 가장 사랑할 사람을 가장 마지막에 보내주셨다. 그리고 그를 통해 태어난 또 다른 사랑은 비록 오늘 나를 엄청나게 힘들게 했지만, 그래도 나는 엄마니까...오늘도 아이의 시험에 무참히 패배한 엄마는 그저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사랑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내일은 좀 더 나아져보리라 다짐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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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독서법 - 마음과 생각을 함께 키우는 독서 교육
김소영 지음 / 다산에듀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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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는 독서법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자라오면서 내가 경험해본 바로는 책을 좋아하는 애들은 어떤 상황이라도 책을 가까이하게 되어 있고, 책을 싫어하는 애들은 어떤 풍족한 독서환경이 조성되어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식은 내 맘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머리로는 이해를 한다고 생각했었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딸에게 강요하는 엄마는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요즘 내 맘과는 전혀 거리가 멀게 커가는 딸의 모습을 보며 은연중에 나도 내가 바라는대로 딸이 크길 바라고 있었구나 깨닫게 되는 경우가 벌써 조금씩 생긴다.  책과 인형을 좋아했던 나와는 달리 건전지 투입구나 드릴, 나사에 관심을 가지는 딸내미를 보며 매일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다. 엄마는 같이 책도 읽고 그림도 보고 음악도 듣고 알콩달콩 너와의 즐거운 데이트를 많이 계획해놨었는데....너는 막 물건 다 뜯고 새로 뭐 만들고 이런거 할거야 설마? 엄마는 물건이 어떻게 작동되고 건전지 넣는데가 어떻게 생겼는지 이런건 한번도 궁금해한적이 없는데..도서관이랑 미술관 음악회는 엄마 혼자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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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유로 과연 이 책이 나중에 내가 우리 아이에게 적용할 만한 부분이 생길지는 알 수 없지만 여튼 그래도 책 자체는 참 좋아서, 책을 읽으면서 할수만 있다면 나도 그녀의 독서교실에 아이를 보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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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대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후 출판사에서 어린이책 편집자로 10년을 넘게 일하다 독자와 어린이책을 연결하고픈 마음에 '김소영 독서교실'을 열었다. 그녀의 독서교실을 찾은 아이들이 책 읽기의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되는 비결은 바로 '말하기 독서법'이다. 책을 읽고 억지로 천편일률적인 독후감상문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내용이나 느낌,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책 읽는 재미를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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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1
그러면 아이가 뜻을 몰라서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가르쳐주거나 함께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됩니다. 가르치려는 욕심에 기회다 싶어 "무슨 뜻일지 생각해봐", "앞부분을 잘 보면 짐작할 수 있어" 하고 학습을 시키는 건 책과 멀어지는 계기만 될 뿐입니다.

p.104
우리는 타인의 창의성이 발현된 것을 보고 배움으로써 스스로의 창의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림책 말하기는 그것을 돕습니다.

p.189
이른바 '고전 명작'이라고 해서 고정된 틀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날의 눈으로 비판적으로 읽는다고 해서 그 가치가 훼손되는 것도 아니죠. 혹시 그렇게 읽었을 때 의미를 찾기 어려운 작품이라면 더는 '고전 명작'이라고 부를 필요가 없는 낡은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p.192
독서교실 수업에서 "제 생각은 달라요"라는 말은 늘 반갑습니다. 그 '다른 생각'을 해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니까요. 아이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일단 환영할 일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내용을 잘 이해한 것인지 확인하고, 다른 생각의 근거를 말해보게 합니다. 저는 대체로 지지하고 "좋은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워. 나도 더 생각해볼게."하고 결론을 열어두는 편입니다.
물론 아이가 말하는 근거는 미약하고, 어른의 입장에서 보면 마땅치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아이가 독립적인 생각을 했다는 점이 더 중요합니다. 경우에 따라 아이와 토론하거나 생각이 바뀌도록 유도할 수도 있지만 이때도 작가의 편을 들 게 아니라 중재하는 자리에 서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는 지금 선생님, 부모님이 아닌 작가와 토론을 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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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읽었던 추억의 지경사 책 "나의 유대인 친구 엘렌"이 아직도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것도 반갑고, 나는 잘 모르는 다양한 그림책의 세계에 대해 소개하거나 표지나 면지가 하는 역할에 대해 새로이 깨닫게 되는 것도, 아이에게 말할 때 어떤식으로 말해줘야하는지 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사실 나는 그저 무턱대고 책을 좋아할 뿐이지 체계적으로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잘 정리해서 말하고 쓰는 것과는 정말 거리가 먼 사람이기에 나중에 우리 애가 책을 읽고 뭘 물어보거나 토론을 하고 싶어해도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그런 문제로 고민하게 될 날이 오길 바라며 친구에게 물려받은 아기책을 닦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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