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언 반스의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
줄리언 반스 지음, 공진호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림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던 내가 처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 맨 처음은 대학생 때 미술에 관심이 많은 친구를 따라 퐁피두특별전을 관람하고 나서였다. 아무 생각없이 보던 그림들이 색채나 인물의 포즈에도 뜻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몸과 마음이 지독히도 피폐해진 20대 중반, 우연히 접하게 된 그림 에세이들은 너무 힘들어 눈물도 안나오던 메마른 나를 채우며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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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 동안 정말 아쉬웠던 점은 내가 시간이 너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림에 관심이 있고, 그림과 관련된 에세이나 그림을 분석하는 글들을 좋아하는 나는 줄리언 반스가 그답게 때론 냉소적이면서도 상당히 진지하게 화가와 그림에 대해 파고들고 있는 이 책을 하필 지금과 같은 시기에 급하게 후루룩 마시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슬펐다. 16개월의 딸내미는 매일 상상을 초월한 갖가지 이유로 나를 한계까지 들었다놨다 하고있고 회사 일은 밀리고 집안일은 손놓은지 오래. 안아달라 난리치고 막상 안으면 또 몸부림치는 상전땜에 안그래도 안좋던 허리가 점점 맛이 가기 시작했는데 날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내가 알아서 허리 아픈 걸 참아가며 애를 안아야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애를 재우고 새벽에 잠을 줄여 책을 더 봐야지했더니 이번엔 또 감기에 걸려 울고불고 재우면 깨고 또 울고. 정말 이번주는 너무 힘들구나.


p.106

<올랭피아>가 1865년 살롱전에 걸렸을 때 주최 측은 물리적인 위협 때문에 그것을-그녀를-맨 끝 전시실의 문 위쪽에 옮겨 걸어야 했다. 그림이 너무 높게 걸려서 "사람들은 그게 벌거벗은 살덩어리인지 빨래 뭉치인지" 잘 알아보지 못했다.


p.309

마그리트의 미술은 통제와 배제의 미술이다. 그의 관점은 단조롭게 정면을 향한다. 대칭과 평행 후퇴면, 의도적으로 그 가짓수를 축소한 오브제. 본질적으로 평범하거나(커튼,새,불) 반복을 통해 평범하게 만든 오브제(죽방울, 썰매 방울). 밋밋한 채색. 사물을 제시하는 초연한 방식. 그래서, 가령 하늘의 파란색은 항상 하늘의 흉내라도 내는 양 밝고 선명하다. 마그리트는 환상과 자유연상을 거부하는 한편 엄격과 논란과 체계를 선호한다. 이는 실베스터가 "표현의 유쾌함"이라 칭하는 것들로 구성된 재치 있고 자의식 강한 매력적인 미술로, 도발적인 제목이 그 화룡점정을 이룬다. 젊은 사람치고 마그리트를 좋아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스미소니언에서 처음 만나 좋아하게 된 르네 마그리트에 대해 줄리언 반스가 표현한 부분, 마네의 <올랭피아>에 대한 일화, 언젠가 봤었던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에 대한 소논문같은 분석, 항상 궁금했던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에 대한 설명, 드가나 보나르의 작품에 대한 실소터지는 한마디 요약 등 내가 꽂힌 포인트는 여기저기 많았다. 책 표지의 소개글을 누가 선택했는지는 모르나 정말 찰떡이다. "이런 미술 에세이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반스뿐이다" 그리고, "읽고 나면 당장 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어질 것이다" 정말 그랬다. 책을 읽고 있노라니 불과 몇년 전, 홀가분한(딸린 애가 없는) 자유로운 몸으로 미술관을 돌아다니며 마음껏 그림을 감상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루브르, 오르셰, 스미소니언, 프릭컬렉션, 내셔널갤러리, 코톨드 갤러리, 무하 박물관, 빈 미술사 박물관, 벨베데레, 우피치 박물관....열심히 돌아다녔고 많은 그림을 하나라도 더 보고싶어 종종걸음치던 그때가 너무너무 그리워졌다. 너무 그립지만...일단은 또 인후염에 걸리신 우리집 상전님의 용태를 살펴봐야 하므로 서둘러 추억을 갈무리하고 책을 덮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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