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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람들
박솔뫼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평점 :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일까?"
작가와 독자를 구분하지 않고, 읽기와 쓰기를 사랑해 마지않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골몰했을 질문이다. 물론 '좋은 글'과 '그렇지 않은 글'을 구분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충분히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애초에 좋다는 것은 주관적인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좋은 글'이라는 어떤 절대적인 경지에 도달한 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느냐는 물음과 별개로, 우리는 모두 '좋은 글'에 관한 각자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가독성이 좋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글이 좋은 글이라고 볼 것이고, 누군가는 촘촘하게 짜인 서사가 손에 땀을 쥐는 서스펜스를 만들어내야만 좋은 글이라고 여길 것이다. 어떤 독서 모임의 회원이 열 명이라면, 그 모임에는 '좋은 글'에 관한 각기 다른 판단 기준이 열 개 존재한다.
이 글을 쓰는 나 또한 당연하게도 '좋은 글'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읽는 이로 하여금 '나도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야말로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창작은 사랑의 가장 궁극적인 형태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단순히 재밌는 글은 많지만, 글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과 별개로 '나도 이런 글을 써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글은 좀처럼 만나기 쉽지가 않다. 그리고 박솔뫼의 이번 소설집은 읽고 나면 짧은 일기라도 한 줄 적어보고 싶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2010년대, 가장 주목 받는 젊은 작가 중 한 사람인 박솔뫼의 신작 『우리의 사람들』은 총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묶인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으로, 박솔뫼 특유의 기이한 호흡과 문장이 무척이나 돋보인다. 지난 2016년부터 2020년 사이에 발표한 단편들은 '지나가기 혹은 영원히 남아 있기'로써 독자가 가지고 있는 '익숙함'이라는 가치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안에서, 시간의 연속성은 더는 유의미하지 않다. 과거, 현재, 미래는 계속해서 중첩되었다 해체되기를 반복하고 '내가 겪지 않은 나의 삶'이 마치 진짜로 벌어진 일처럼 등장한다. 표제작인 「우리의 사람들」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뚜렷하게 두드러진다(그래서 표제작이 된 것일까?). 화자는 자신의 삶과 친구들의 선택에 대한 여러 가지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그에 맞는 '말(言)'을 골라 이야기를 펼친다. 「이미 죽은 열두 명의 여자들과」에서 또한 조한과 화자의 '말', 그리고 조한의 일기(글은 다른 형태의 말이다.)를 통해 이미 죽은 열두 명의 여자들과 김산희의 이야기가 현실로 소환된다. 말로써 여러 겹의 시간은 본래는 불가능해야 하는 중첩이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의 사람들』에서 말은 어떤 종류의 불안을 상징하는데, 이때의 불안은 특정 인물이 느끼는 심리적인 불안이 아닌, 비선형적인 시간의 소환으로서의 불안이다. 「건널목의 말」은 겨울잠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작성된 하나의 커다란 일기와 같다. 사람들에 의해 말해지는 '말'을 땅 속에 묻는 상상을 통해 화자는 "원하는 모든 것과 원한다고 쓴 모든 것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농구하는 사람」은 박솔뫼 식으로 다시 쓴 최인훈의 「광장」인데, 이 단편에서도 '말'은 역시 중요한 역할, 즉 불안을 야기하는 요소로 등장한다. 「광장」 속 이명준과 화자로 표상되는 비현실과 현실은 말로써 하나로 연결된다.
또다른 수록작인 「매일 산책 연습」, 「영화를 보다가 극장을 사버림」에서 역시 현재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말로써 재현된다. 구체적인 장소, 사건, 인명 등은 현실과 픽션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그리고 그중 일부는 실제로 존재했던 것들이다). 박솔뫼의 질문이 시작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과거-현재-미래의 중첩, 현실-픽션의 모호한 경계 등은 그것들을 굳이 구분해야 하는가? 우리는 정말 구분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박솔뫼 작가의 글은, 솔직히 말해서 가독성이 좋다고 말하기 힘들다. 문장의 길이는 제각각이고, 어떤 문장은 비문처럼 보이기도(실제로 비문이기도) 한다. 그러나 문학 작품에서 문장의 엄밀함이 곧 글의 완성도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박솔뫼 작가의 글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처음 읽을 때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지만, 거기서 책을 덮는 것이 아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이해할 때까지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글이다. 읽는 내내 이제니 시인의 산문시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솔뫼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도 무언가를 쓰고 싶어졌다. 지금, 여기에 실현될 수 없는 것을 소환하는 박솔뫼 식 '말'은 조금은 불친절하고 조금은 어지럽지만, 그로 인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생산하게 만든다.
끝으로, 개인적으로 더 궁금한 부분에 관해 이야기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예전부터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에 관심이 많았는데, 박솔뫼의 이번 소설집에는 '부산'과 '광주'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두 곳 모두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을 연상케 하는 장소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내가 문학에 더 조예가 깊었다면 그 의미를 보다 확실이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는 온양의 호텔에 머무르며, 부산의 어느 여관에 머무르며 이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다.
* 해당 글은 창비 서평단에 선정되어 단행본을 제공받은 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