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방지 대화 사전
왕고래 지음 / 웨일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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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질러진 물'이라는 관용구는 남녀노소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용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관용구 중 하나이다. 물이 엎질러지면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듯, 이미 벌어져서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일을 뜻하는 이 말은 사실 "그러니 물이 엎질러지기 이전에 충분히 조심하라"는 메시지를 숨기고 있다. 한번 물이 엎질러지고 나면 아무리 후회해도 상황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애초에 물이 엎질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만약 물이 엎질러졌다면 흐르는 물을 잘 닦고 빈 잔에 새 물을 채우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많은 후회를 경험한다. '그때 이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어', '무서워하지 말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걸', '이런 선택만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이 책은 그런 후회 때문에 밤잠을 설쳐 본 경험이 있는 모든 이들, 그중에서도 특히 말言로 인한 후회나 상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 물이 엎질러지기 전에 미리 잔을 멀리 치워두고, 이미 물이 엎질러졌다면 그 이후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적어 놓은 실용서라니. 띠지에 적혀 있는 것처럼, 지난날들의 언행으로 인해 밤마다 이불을 차지 않으려면 이 책을 보시라. 이 책은 바로 그런 후회, 그중에서도 '말'과 관련된 후회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운 말' 사전이니까.

실수인 줄도 모르고 넘어가는 사소한 말의 습관부터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악의를 품고 던지는 말까지, 『후회 방지 대화 사전』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흔히 마주치는 '미운 말'을 총망라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미운 말'이란 말하는 이의 의도와 상관없이(때로는 상관 있기도 하지만) 듣는 이에게 독이 되어 결국 상처를 입히는 말을 뜻한다. 위로랍시고 건넨 말에 도리어 친구가 토라져서 당황하거나, 그 자리에서는 칭찬인 줄 알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미묘하게 찝찝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이는 모두 말하는 이의 의도와 듣는 이가 받아들이는 말의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건이다. 저자는 짧은 문장 속에 담겨 있는 속뜻을 낱낱이 파헤침으로써 그 표현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짚어주고, 예시를 통해 사례에 대한 이해를 도우며, 이런 말을 하거나 들었을 때에 대한 바람직한 대처 방안과 대체어까지 제안한다. 물을 엎지르기 전에 잔을 멀리 밀어두는 방법과 물이 흘렀을 때 말끔하게 닦아내는 방법을 모두 알차게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말言에 대한 실용서라는 측면에서 지난 2016년, 봄알람에서 출간한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가 생각나기도 했다.

이 책은 가독성 좋은 문장과 현실감 있는 예시들로 구성되어 있어 제법 두꺼운 두께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힌다. 게다가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응용법까지 알려준다는 점에서 한국어 사용자를 위한 여러모로 훌륭한 대화 실용서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조차도 한국어 특유의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 종종 어려움을 느끼곤 하는데, 하물며 한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들에게는 어떻겠는가? 소위 말하는 '토종 한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사용하는 다른 이들에게도 이 책이 피가 되고 살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 '미운 말 사전'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나를 방어하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든든한 방패와도 같다. 이 책에서 얻은 요령을 갑옷처럼 몸에 두르면 그 어떤 미운 말도 두렵지 않다.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전해지는 말들 때문에 내가 상처 받을까봐, 혹은 남을 상처줄까봐 걱정되는 이들은 『후회 방지 대화 사전』을 책장에 꼭 두 권 씩 구비해두기를. 그중 한 권은 틈 날 때마다 펼쳐보느라 금방 닳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해당 글은 웨일북 서평단에 선정되어 단행본을 제공받은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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