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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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어떤 순간에 가장 공포를 느끼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다를 것이다. 공포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사람마다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모두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예고 없이 튀어나온 기괴한 형상에 공포를 느끼고, 어떤 이는 유혈이 낭자한 사고 현장의 이미지에서 공포를 느끼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조난 당한 숲속에서 맹수를 만난 상황을 상상할 때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사만타 슈웨블린의 『피버 드림』은 여러 가지 종류의 공포 중에서도,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을 때 우리를 엄습하는 '미확인에 대한 불안'이 자아내는 공포를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

─ 벌레 때문이에요.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 돼요. 그리고 기다리면서, 벌레가 생기는 정확한 순간을 찾아내야 해요.

─ 왜 그래야 하는데?

─ 중요하거든요, 우리 모두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가제본 기준) p.4

소설은 아만다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공간에서 다비드의 질문을 받으면서 시작한다. 다비드는 아만다에게 '벌레가 생기는 정확한 순간'을 찾아야 한다며 집 앞마당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묻는다. 아만다는 다비드가 왜 그 일에 대해 묻는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집 앞마당에서 자신의 딸인 니나와 다비드의 엄마인 카를라와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만다의 이야기 속에서, 카를라는 다시 자신의 아들 다비드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시작하고 아만다는 불안함 속에서 자신과 니나 사이의 '구조 거리'가 시시각각 멀어졌다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며 소설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끝 모르는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소설은 오로지 '아만다'와 '다비드' 두 사람의 대화로만 진행되는데, 독자는 오로지 그들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 또 지금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어떤 상황인지를 유추해내야만 한다. 하지만 다비드의 질문은 불친절하고, 아만다는 시종일관 불안에 떨고 있으며, 아만다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카를라 역시 아들 다비드에 관한 기묘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대화를 통해 주어지는 정보는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에 독자는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읽을 때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피버 드림』은 이야기의 새로움이 발생하는 지점을 정확히 포착한 소설이다. 소멸되지 않고 기화하는 존재의 비극적 양상과 인과를 파헤치는 대신 마법같이 뒤섞인 목소리를 들려준다. 소설을 이루는 외적 정보를 비밀에 부치면서도 단숨에 이야기로 몰입하게 만드는 인력이 근사하다. 사만타 슈웨블린은 우리에게 아직 낯선 작가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 되었다.

편혜영 (소설가, 2017 셜리잭슨상 장편 부문 수상자)

그러나 이 소설을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사건의 인과 관계를 명확히 하고 단서를 찾아 이 모든 일의 전말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마치 안개에 가려진 듯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고 흐릿한 상황에서 오는 '불명확성'에 대한 불안함을 통해 긴장감을 유발하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아만다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다비드는 정말로 아만다의 옆에 있는가? 아만다의 상상이 만들어낸 환영이나 환청은 아닌가? 아만다의 딸 니나는 어디 있고, 카를라는 정말로 온전한 정신인가? 녹색 집의 여인은 다비드와 니나에게 무엇을 한 것인가? 이 소설에서 확실한 것은 그 무엇도 없다. 독자는 그저 그 불안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사만타 슈웨블린은 불친절하지만 그렇게 결코 거부할 수 없는 그녀만의 흡인력으로 독자를 『피버 드림』이라는 '불안의 늪'에 발을 묶어둔다.


* 해당 글은 창비 서평단에 선정되어 가제본을 제공받은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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