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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 그람시 산문선
안토니오 그람시 지음, 김종법 옮김 / 바다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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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나라와 이탈리아는 반도라는 지리적 특성 외에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지형에 유사한 부분이 많다. 그리고 100여 년 전의 이탈리아와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은 특히 닮은 꼴을 하고 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권위주의적인 정부 체제 하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민주주의의 주체가 되어야 할 시민 혹은 국민들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20세기 초 가장 영향력 있었던 사상가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자국을 향한 비판은 따라서 현재 대한민국을 향한 비판으로 들리기도 한다. 서문에 이른 것 처럼 본문 속의 '이탈리아', '파시즘', '프롤레타리아'를 '대한민국', '정치권력', '노동자 혹은 서민'이라고 치환시켜 읽으면 상당히 익숙한 이야기처럼 들리는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그람시는 제 2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권을 맹렬하게 비판하다가 정치적 이단으로 낙인찍힌 뒤 옥중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는 왜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가 오히려 권위주의적 파시스트 정권을 지지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오랜 기간 고민해왔다. 이러한 의문 역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하위 계층으로 분류되는 집단이 집권 보수 정당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이상현상과 닮아있는 점이다. 그람시는 그 해답을 '무관심'이라고 밝혔다. 무관심은 무지 혹은 무의식적인 고개돌림과는 좀 다른, 그보다는 적극적인 시선거두기 혹은 한발 물러서기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하자면 '참여하기'에 대한 거부의사이다. 이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참여기피로 이어지는데, 그람시가 증오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람시의 말에 따르면, 이렇게 무관심한 사람은 대체로 불평불만을 토로한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 중 일부가 반쯤 지나가는 이야기로 "투표도 안하는 사람들이 불평은 많아."라고 흘기는 것도 어떻게 보면 일리가 있어보이는 순간이다. 스스로의 생에 대한 무관심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태도가 집단적으로 형성될 경우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대중은 기득권 세력을 향해 지속적으로 주시를 하고 때로는 성토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메시지는 다니엘 튜더나 장하성 교수의 저서의 말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결국 혼란스러운 시대일수록, 국민은 무관심한 태도를 거두고 더욱 맹렬히 위를 주시해야 한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몇몇 단어만 바꿔넣어 상상해 읽어보면, 이 책이 더욱 현실성있게 다가오는 것이 그 이유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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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계급투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새로운 계급투쟁 - 난민과 테러의 진정한 원인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희상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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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젝은 어쩌면 오늘날 철학자 가운데 가장 핫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름이 많이 알려진 이 일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몇년 전 우리나라를 방문해 '지금 여기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는데 올해 재차 방한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지젝의 저서를 통해 읽는 그의 말은 친숙하게 다가오는 그의 이름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최근 도서관 서가에서 눈에 띄어 『폭력이란 무엇인가』라는 그의 이전 저서 중 하나를 집어들고 읽은 적이 있는데, 읽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라캉을 섭렵한 헤겔리안인 지젝이기 때문에, 두 학자의 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는 헤겔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발한 활동으로 현대 사회의 면면을 요목조목 파헤친 지젝의 논리의 큰 틀은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기 때문에, 이 점을 유념하고 읽는다면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이번 『새로운 계급투쟁』은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테러와 난민 문제에 집중한다. 구체적인 사안에 집중했다는 점은 실제적인 사례를 통해 한결 이해하기 쉽게 한다. '샤를리 앱도' 테러 이후 1년 사이 프랑스에 몇 차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의한 테러가 자행되었고, 이는 전 세계를 큰 충격에 몰아넣었다. 같은 시기에 출간된 소설가 미셸 우엘벡의 『복종』은 그 시의성때문에 공교롭게도 큰 히트를 쳤다. 기존의 테러리즘은 적대 세력의 군사적, 정치적 요지에 대한 이른바 '하드 타겟'을 향한 직접적 타격이었다면, 2000년대 이후의 소위 '신테러리즘'은 미국 쌍둥이빌딩 테러와 이번 최근의 프랑스 사태로 보듯이 공공장소나 문화 요충지의 민간인, 즉 '소프트 타깃'을 목표로 한 테러로 그 형태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 결과 피해 당국은 큰 당혹감을 표출하게 되었고, 대중 사이에서는 민간인 피해자에 대한 추모 운동에서부터 이보다 발전된 반테러리즘 운동까지 촉발시키기도 하였다. 올해 초 프랑스에서 재차 일어난 테러로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SNS를 통해 'Pray for Paris'라는 문구를 공유한 움직임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지젝은 이러한 움직임을 핵심을 빗나간 피상적인 행위라고 지적한다. 테러와 난민 문제의 기저에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으며 현재 유럽 당국과 대중을 비롯한 전세계의 대응은 이를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불평등한 계급구조이다. 즉 현상의 해결이 아닌 현상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타파해야 하도록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데 급급해할 것이 아니라 '가난이 존재할 수 없는 기반 위에 사회를 재건할 수 있(16)'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지젝은 인종, 젠더, 계급을 포함한 현대 사회의 모든 갈등의 구조가 자본주의적 착취의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즉 이번에도 역시 글로벌 자본주의에 대해 겨냥을 하고 있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대중의 움직임을 포함해서 연대가 중요한데, 감정적인 연대와 행위가 아니라 직접적인 투쟁으로서의 연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젊은 층 사이에서도 뜨거운 감자인 젠더 이슈에 대해 반응을 보이는 이들에게도 시사점이 있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전세계에서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가치관에 대한 모색과 동의로 규범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움직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젝은 주장한다.  대담한 표현으로 과격주의자처럼 느껴지기까지 할 수도 있겠으나, 문제점에 대한 지젝의 통찰은 충분히 곱씹어볼만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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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도 가까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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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스스로와 혹은 내 곁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매개가 된다. 입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가 아닌 '글쓰기'는, 저자에 따르면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며 '지금은 아무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훗날 독자가 될 수도 있는 누군가에게 하는 행위'로서 '너무 민감하고 개인적으로 흐릿해 평소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입안에서만 우물거리던 그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적어서 보여줄 수 있는' 것(p. 100)이다. 그러한 글쓰기를 하는 저자는 어려서부터 고독한 독서를 즐겼다고 한다.

 

 

 이 책의 목차를 먼저 살펴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여러 편의 장(章)이 한가운데의 '매듭'장을 중심으로 거울처럼 대칭되는 제목들로 구성되어있다. 더군다나 이 '매듭'장의 앞뒤로는 '감다'와 '풀다'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있다. 책의 표지처럼, 그리고 장들의 제목으로 표현하듯 저자는 이야기의 실타래를 따라 무엇을 감고 또 풀려고 하는걸까? 그것은 저자 레베카 솔닛의 치매든 노모와의 애증섞인 관계, 친한 동료의 죽음을 통해 바라본 삶에 대한 관조, 그리고 읽고 쓰는 고독한 자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차분한 시선 등 모든것을 포괄하는 것 같다. 따라서 이 에세이의 분위기는 파릇파릇 생동감 넘치는 봄 혹은 여름이 아니라 서늘하지만 고요하게 눈내린 겨울의 느낌이 강하다. 이미 국내에 소개된 그녀의 다른 저작 『이 폐허를 응시하라』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와 비교하여 독자를 향해 밖으로 내는 목소리라기 보다는 조금 더 내면에서 맴도는 차분한 목소리의 글이다.

 

 그럼에도 읽는이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사적인 이야기라고 치부하게 되지 않고 그 어떤 글보다 공감하고 독자 스스로의 이야기로 치환하여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글을 풀어나감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담담한 어조와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는 기교 덕이다. 비록 그녀의 글을 많이 읽어본 적은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녀가 유년기시절부터 책과 글에 빠져 자의반 타의반으로 고독한 나날을 지내왔고 그만큼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고 홀로 삶의 깊숙한 지점까지 응시할 수 있는 감성을 키워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마치 학창시절 다른 친구들은 모두 운동장에 나가 공놀이를 하는데 나홀로 운동장 구석 나무 밑에 앉아 책을 읽곤 했던 누군가의 어렸을 적 풍경처럼 말이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혹은 가까운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느낌이 들며 그칠 줄 모르는 고독을 느낄 때 그녀의 이 글을 읽는다면 어느 격언보다 더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두고두고 가끔씩 꺼내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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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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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란드 러셀의 『결혼과 도덕』은 섹슈얼리티와 젠더 문제에 관한 고전에 속한다. 아마 현재 우리 사회의 특히 젋은 세대에서 뜨거운 감자로 꼽히는 제 1의 주제가 바로 이 젠더 문제이기에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다시금 끌고 있는 저서이다. 저자 러셀은 이 민감하지만 피할 수 없는 문제를 정면으로 분석한다. 철학자로서 이론적인 개념만 늘어놓으며 난해한 이야기를 펼치는 것이 아니라, 남녀관계가 사회의 변동에 따라 어떻게 형성되었고 다시금 어떻게 전환되었는지 순서대로 되짚는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최초의 성 역할 형성에서부터 그 전개, 그리고 현대의 젠더 이슈에서 나올법한 결혼과 평등 문제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러셀에 따르면 결혼 풍습은 본능적 요소, 경제적 요소, 그리고 종교적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본능적 요소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성욕이나 그에 따른 성생활에 관련된 것이다. 역사의 전개 과정에서 항상 그러하였듯이, 결혼 풍습과 성 관념에 있어서도 종교의 영향력이 엄청났었음을 새삼 읽을 수 있기도 하다. 이른바 원시 사회에서는 관습적으로나 인식적으로 철저하게 모계 중심 사회였으나, 현재와 같은 구도로 영향을 미쳤듯이 그 관계가 역전하게 된 것은 체계적인 종교의 등장과 함께였다. 물론 그 반대의 의미를 내포한 구절도 있었지만, 기독교와 같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종교는 교리상으로 대개 남성의 권위를 여성에 비해 우위에 두었다. 그리고 성(sex)에 대한 관념도 성스러운 것에 대비해 비속한 것으로 여기고 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퍼지게 되었다. 이 두 차원의 문제가 결합하여 특히 여성이 남성에 비해 성적인 이슈에 관해 제한받고 차별적인 대우를 당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수녀를 신의 신부라고 여겨 그들의 결혼과 성생활을 금지했던 것 처럼 말이다. 그나마 기독교는 천주교에 비해 조금이나마 개방적이었던 것은, 불륜과 같은 일부 성적인 죄악을 저지른 자가 뉘우쳤을 경우, 성직자가 그 죄를 사하여 줄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한편 기독교에서 성직자의 권위를 더욱 높여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사랑에 관해 낭만적인 관념이 생겨난 것은 중세시대 이후이다. 특히 르네상스 이후 각종 문예사조가 화려하게 꽃피면서 사랑에 관한 에로스적 의미가 더욱 부각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20세기들어 여성 운동 및 다양한 시민 운동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대폭 상승하고 제도적, 법적으로 그들의 권위가 격상되고나서도 여전히 섹슈얼리티에서 여성에게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는 해빙되지 않았다. 결혼 제도로 맺어지는 사회 구성원의 관계는 부부, 즉 남녀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자녀의 탄생으로 새로운 관계가 구축되게 된다. 그리고 이혼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이혼률이 생겨나면서 자녀는 엄마, 아빠 양친과 함께한다는 개념도 깨지게 된다. 편부모 가정, 기러기 아빠 등 결혼 이후에도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생겨나는 것이다.

 근대가 해체된 이후 사회의 변혁 속도는 나날이 빨라지면서 젠더와 가족에 관한 관념도 급속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한 사회에서 하나가 아닌 복수의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면서 현재의 젠더 이슈와 같은 갈등을 필연적으로 낳은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에 관해 건설적인 토론과 탐색을 하기 위해서는 러셀이 제시하는 바대로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고찰과 탐색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결혼과 가족, 젠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오늘날까지 오기 어떠한 과정을 거쳐왔는지 살펴볼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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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감 -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
김성윤 지음 / 북인더갭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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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가 휙휙 지나가고 끊임없이 그 이념들이 충돌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은 인터넷공간이다. TV매체나 영화, 혹은 가요 등을 아우르는 대중문화는 다소 가볍게 소비의 대상으로서만 여겨질 뿐, 그 내밀한 작동원리와 숨겨진 의도를 들여다보려는 시도를 하는 이는 많지 않다. 남자 아이돌에 열광하는 어린 소녀들은 철부지로 여겨지고, 이른바 '삼촌팬'이라 불리는 30-40대 남성팬들은 나잇값 못하고 변태스런 취미를 가진 집단으로 치부되며, 박재범 사태 이후 그를 질타하는 대중은 한낱 애국주의적인 광기를 불태우는 것으로 읽혀버리고 만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간 것이 이 『덕후감』이다. 아마도 페이지상으로도 팬이나 혹은 오타쿠에 관한 이야기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 탓인지 다소 유머러스한 작명으로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개략적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그러나 『덕후감』은 언뜻 가벼워보이는 제목처럼 마냥 말랑말랑하지 않다. 또한 그것은 저자가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이라는 부제를 단 것 처럼 사뭇 진지한 고찰로 나아가고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대중문화가 소망을 비추는 거울로 작용한다고 한다. 필자는 이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말로 다시 옮겨보자면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판타지를 성취하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면에서 어긋난 성욕과 도착적인 취향이라고 단편적인 시각에서의 질타받는 삼촌팬들의 불안정한 위상은 참으로 흥미롭다. 사실 필자는 저자의 이력을 보고 놀람과 동시에 동질감을 느꼈는데,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동일한 트랙을 밟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때문인지, 언젠가 필자가 개인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은 주제가 이른바 '아이돌의 사회학'이었는데, 코드적인 면에서도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역시 선점된 분야구나 싶어 내심 아쉽기도 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러한 분야에서도 나름의 전문적인 고찰의 시도가 여러번 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웠고, 이 점이 오히려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독자가 있다면 그들에게 상당한 영감과 질문거리를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저자가 아직 박사 학위 과정 '중'이지만 대중문화의 서브컬쳐 전문가로서 이미 <한겨레>나 <씨네21>과 같은 매체에 여러번 투고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필력과 통찰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오히려 아직 '미완'의 학자로서 이러한 익숙한 소재를 너무 딱딱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너무 가볍지는 않게 능수능란하게 탐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능력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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