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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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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문체부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독서량은 9.1권이었다. 연 평균 독서율은 66%에도 이르지 못해, 쉽게 말하자면 전 국민 셋 중 한 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이런가 하면, 각종 온라인 독서 카페, 독서 관련 SNS에는 몇 십권씩 책을 읽어내는 사람들도 많다. 소설책, 심지어 시집마저 '떼듯이' 훌훌 읽는 독서 능력자들도 많이 목격된다. 이를 나타내듯이 작년 한 해 책을 1권 이상 읽은 성인 기준으로는 연 평균 독서량이 14권으로, 전체 평균보다 다소 높았다. 흔히 사회에서 빈부 격차의 양극화가 이야기되고 있는 것처럼, 독서 실태에서도 거의 읽지 않는 사람과 엄청나게 읽는 애서가들의 양극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 실태는 불균형하며 정상의 궤도에서 벗어나 있다.

 범위를 문학을 좁혀 더 들어가보자. 소설이나 에세이, 시집은 일반적으로 비문학작품보다 빨리 읽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어떤 이는 한 권을 반나절에 읽어낸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한 권을 '떼고' 금방 다음 새 책을 집어드는 식으로 읽으면서 과연 작품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새 책을 집어들고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아마 이전에 읽었던 작품의 내용은 희미한 기억의 안개속으로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책읽기가 한낱 시간때우기에 불과하다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학은 단순한 오락거리 이상이다. 따라서 문학은 좀 더 신중히, 꼼꼼히, 찬찬히 읽어볼 필요가 있다. 뜯어먹고, 씹어먹고, 튀겨먹고, 숙성시켜먹을 필요가 있다. 이렇게 경종을 울려주는 것이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된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여,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문학 작품은 『위대한 개츠비』이다. 웨스턴에그와 이스턴에그를 잇는 잿빛 골짜기의 황량함과 그곳에 걸린 커다란 눈이 그려진 간판의 으스스함이 내포한 메시지, 개츠비가 하염없이 내다보는 먼 곳의 초록 등대빛에 비추는 아련함. 처음 읽었을 때는 마지막 장을 넘기며 펑펑 울기도 했다. 이후에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서사보다는 인물이나 배경이 암시하는 바, 작품이 나올 시기와 비교하여 시사되는 바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읽는 것이 나름의 묘미가 되고 있다.

 비평가로서 저자 테리 이글턴은 이처럼 문학 작품 속에 숨겨진 장치들을 어떻게 요리조리 살펴볼 수 있는지 그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 숨겨진 장치들이란, 작품의 도입부, 인물, 서사, 해석, 가치라는 다섯까지 큰 줄기로 각각 나뉘어 설명된다. 예컨대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의 유명한 첫 문장 "많은 재산을 소유한 독신 남자가 아내를 얻고자 한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진실이다."가 역설적으로 엘리자베스 일가의 속물적인 여성들을 암시하고 있는지를 제시하며, 작가가 심혈을 기울이는 도입부의 메시지를 어떻게 온전히 해석해낼 수 있을지 등을 말이다. 챕터별로 세부 주제로 나누고 다시 주제별로 다양한 작품의 예를 들며, 문학 작품을 읽는 풍부한 기술적 힘을 길러준다는 면에서 문학도를 위한 입문서와 책읽기를 좋아하는 일반 독자를 위한 대중서의 중간정도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쉬운 점도 있다. 영문학을 중심으로 전개된 비평이라 우리나라 독자로서는 낯선 작품들에 대한 분석 사례도 상당히 많고, 따라서 영문학 원서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묘미를 해설한 부분도 있어 공감이 되기에 언뜻언뜻 부족한 부분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이 책에서 알려주는 소위 '읽는 법'을 터득한다면 어떠한 문학 작품을 읽더라도 작가와 대화를 하고, 때로는 머리싸움을 하는 듯 한 더 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수 아이유는 틈틈이 소설책을 읽는 것으로도 알려져있는데, 그녀의 독서습관은 작품의 가장 마지막 문장을 먼저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 책을 읽어내려간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 다시 다다랐을때, 그 문장이 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반면 이런 사람들도 있다. "현실에서도 머리아파 죽겠는데 뭐하러 그렇게 번거롭게 책을 읽어?"라며 하루 한 권씩 술술 읽어나가는 사람들 말이다. 자기 나름의 독서법을 가지고 있다면 분명 책읽기는 즐거운 지적, 감성적 유희가 될 것이며, 다독 속독 하는 이들의 방법도 어쩌면 그들 나름의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작품에서 좀 더 깊은 맛을 느끼고 싶다면, 작가와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면 조바심내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스토리'에만 치중하여 빨리빨리 읽어제끼기에 이미 우린 현실 속에서 많은 일들을 빨리빨리 해내고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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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업사회]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무업 사회 - 일할 수 없는 청년들의 미래
구도 게이.니시다 료스케 지음, 곽유나.오오쿠사 미노루 옮김 / 펜타그램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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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에 일본에서 방영한 <프리터, 집을 사다フリーター、家を買う>라는 드라마가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얼마 다니지 않은 직장을 때려치고 구직 활동에도 의욕이 없는, 근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20대의 주인공이 우연히 구하게 된 공사현장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치있는 노동의 의미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는 훈훈한 내용이다. 유명한 배우 캐스팅에 괜찮은 시나리오에, 일본 정서 특유의 심금을 울리는 잔잔함으로 필자도 감명깊게 보았던 작품이다. 실제로 이 드라마가 나오기 전, 그러니까 5년을 훌쩍 넘긴 이전부터도 제대로 된 직장을 갖고 있지 않은 채 큰 욕심 없이 아르바이트 생활만 이어가며 필요한 만큼의 생활만 꾸려가는 이른바 '프리터족(フリーター族)'이 일본 사회 내에서 하나의 계층으로 자리잡았다. 그만큼 많은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의 작품에서 프리터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비영리법인 소다테아게넷을 운영하는 대표와 청년 문제를 연구하는 사회학자가 공동으로 집필한 『무업사회』는 이처럼 제대로 된 직업을 갖고 있지 못한 청년들에 대한 그들의 진단을 소개해준다. 소다테아게넷은 일본 청년의 소외계층인 히키코모리, 니트족, 프리터족 등이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일하지 못하는 청년 계층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을 하면서도, 현장에서 접하는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곁들임으로써 그저 딱딱한 연구서에만 그칠 수 있었던 상황을 잘 피해냈다. 통계자료를 활용한 양적인 분석과 10년 이상의 NPO운영에서 얻은 질적 분석이 고루 제시된 양질의 보고서이면서도 어렵지 않게 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필자 역시 지지하고 있는 가설은 우리나라의 사회가 일본 사회를 5년 내지 10년 간격을 두고 뒤따라가고 있는 양상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거품경제 몰락으로 인한 극심한 불황과 이에 따른 자살률의 급격한 증가 등의 사회적 불안이 그러했고, 최근에는 노동의 현장에서 가속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비정규직화(일본의 파견직과 비교할만 하다)를 포함한 고용불안이 그러하다.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프리터족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견도 있다. 실제로 사회 구조적인 난관에 부딛혀 타의적으로 일을 할 처지가 되지 못하는 일본 청년들의 사례는 바로 이웃나라인 우리나라의 모습과 큰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직업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의 청년, 책에 따르면 이른바 '청년 무업자'에 대한 인식은 당사자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고 손가락질 받는 사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면서 취업시장에서 한번 낙오의 옆길로 새게 되면 마치 미끄럼틀처럼 끊임없이 소외계층으로 전락해버릴 우려가 생기게 된다. 어쩌면 전술(前述)했던 드라마 속 훈훈한 이야기에도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주인공의 모습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하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신이 무업 상태가 된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했던 대답은 '질병 및 부상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반면 사회적 편견으로 인식되듯 '게으름'을 암시하는 대답의 비중은 적었다. 그럼에도 '의지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 '가족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처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듯한 갖가지 오해와 무언의 압박은 현재 우리나라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는 '노오오오력'과 다를 바가 없다. 책의 2부에서는 소다테아게넷의 운영 방침에 따라 자립에 성공한 '왕년의 무업 청년' 여섯 명의 사례가 제시되어있다. 일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인지 새기며 뜻깊게 생활에 임하는 청년들의 모습은 청년들의 '무업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야 하는지 우리나라에도 반면교사의 교훈을 주는 듯 싶지만, 결국 사회 구조적인 모순을 푸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2%모자란 해답인것 같기도 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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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사이언스 클래식 25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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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인터스텔라>의 초대박 흥행 이후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우주에 관한 관심은 지대하게 높아졌다. 이 영화의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조나단 놀란은 현실감 넘치는 시나리오 구상을 위해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수 년간 상대성이론을 비롯한 천체 물리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 노력으로 상당히 '그럴법한' 과학이 결코 지루하지 않도록 흥미로운 이야기를 타고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이후 <인터스텔라>열풍을 타고 대중은 신비로운 우주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반면 기초 물리학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여전히 찬밥신세이다. 물론 이는 물리학 뿐만 아니라 소위 '돈이 되지 않는' 많은 학문이 처한 신세이기도 하고 여전히 다수의 전문가들의 자신의 분야에서 세상의 이치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계속 해오고 있지만 사회 안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크지 않다. 과학, 그것은 일반인인 우리에게 멀고도 가까운 것이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차원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책 표지에 실린 이러한 핵심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한 힌트를 이론 물리학자인 리사 랜들이 그리는 현대 물리학의 지도를 통해 얻을 수 있다. 기초와 이론의 학문은 탐구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들여야 하지만, 연구자가 그 성과를 얻게 된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눈을 뜰 수 있게 된다. 특히 물리학과 같은 분야에서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한 실험으로 수 년, 수십 년이나 세상을 앞당길 수 있는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그 중에서도 2008년 이후 실험을 위해 가동 중인 LHC(Large Hadron Collider, 대형 하드론 충돌기)를 통한 실험에 주목한다.

 

 ...LHC 실험의 목표는 이전에 측정된 적이 없는 짧은 거리와, 연구된 적이 없는 높은 에너지에서 물질의 구조에 대해 자세하게 연구하는 것이다. 이 에너지에서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기본 입자들의 무리가 만들어져야 하고, 우주 초기, 즉 대폭발이 일어나고 약 1조분의 1초 후에 나타났던 상호 작용이 드러나야 한다.
 ...이론은 우주가 어떻게 작은 구성 요소에서 진화해서 원자를 이루고, 모여서 별을 이루고, 다시 은하와 더 큰 구조를 이루어 우리 우주에 퍼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몇몇 별들이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무거운 원소들이 이 우리 은하와 태양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생명을 형성하게 되었는지를 성공적으로 설명해준다. LHC로부터, 그리고 앞에서 말한 위성 탐색 실험으로부터 나온 결과를 이용해서,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은 이 확고하고 광범위한 지식의 기초 위에서 더 작은 크기와 더 높은 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이전에 도달하지 못했던 정밀함을 얻고자 한다. (서문 中)

 

 저자는 이 LHC 실험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첨단 물리학의 현 주소라고 보고 이를 통해 어떻게 물질의 비밀,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하는지 그녀를 비롯한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을 소개해준다. 물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 이 책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책이 자랑하는 두툼한 두께만큼이나 그녀가 연구하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을 진지하게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과학도 학문 중 하나이기에, 그 학문을 통해 인류가 세상을 깨달아가는 것이기에 독자로 하여금 훨씬 넓은 의미에서 고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칼 세이건의 저서가 그러했듯이, 그녀가 품는 과학적 질문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우리같은 독자에게는 철학적인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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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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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세계 사회학계에서 아이돌로 꼽히고 있는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은 '액체 근대'라고도 불리는 '유동하는 근대(Liquid Modernity)'라는 개념을 정립하였다. 근대사회의 종언 이후 찾아온 '탈근대사회'의 오류를 수정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만이 불변하고 불확실성만이 확실하다는 현대 사회의 특징을 짚어내었다. 그리고 그는 이를 이론적 토대로 삼아 많은 저작을 쏟아내었다.『도덕적 불감증』역시 그 중 하나인데, 유동하는 근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무뎌져가는 도덕성과 감수성을 어떻게 회복해야 할지 철학자 레오니다스 돈스키스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풀어낸 글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폴란드 출신이지만 그의 학자적 생애 중 많은 시간을 영국에서 보내면서 영국 사회학의 토대를 만든 인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참고로 영국은 의외로 사회학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1980년대까지도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립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수많은 현대 사회학자 중 특히 지그문트 바우만이 세계적으로 호응받는 이유 중 하나는, 사회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만의 굳건한 이론도 있지만 그가 취하는 학자적 태도가 대중과 사회에 열려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사회학자가 '플라톤의 동굴'에서 나와야 한다는 입장을 하고 있다. 학자들만이 향유하는 이론 중심적 행위를 지양하는 한편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경제적 논리에 의해 통계와 숫자만으로 설명되는 종속성도 경계하고 있다. 대신에 그는 사회학이 좀 더 사회 일상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개인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고민에 선택지를 제시해줄 수 있는 역할로서 사회학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저작은 대개 다른 사회학 도서들에 비해 난해함이 덜하다.

 

 악(惡)은 소설이나 예술작품에 등장하는 신화적인 관념이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 현대 사회에서 악은 도처에 유약한 척 하는 가면을 쓰고 웅크리고 있다. 이것들이 익명성으로 오히려 야기되는 구속, 소비사회의 구조에 충실한 물질 소비, 모든것이 개방된 세상에서의 무관심 등으로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며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불확실성만이 팽배한 근대의 유동성에 인간은 오히려 자발적으로 규정과 구분을 갈구하게 된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조장되는 이름붙이기에 스스로를 귀속시키고 이념싸움을 하듯 내 편, 네 편을 갈라서 갈등의 상태에 빠진다.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는 나날 속에서 나와 너를 구분하는 경계는 있어도 내가 내 삶을 살기 위한 명확한 기준은 상실한채 부유하는 듯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일부 언급되는 것과 같이 학문과 대학 역시 경제 논리에 의해 잠식당해 고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도덕적 불감증』은 바로 이러한 오늘날의 세태를 바우만의 시각으로 명확하게 진단하고 우리 스스로가 마취시켜버린 감수성과 도덕성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실마리를 제시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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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전과 영원 - 푸코.라캉.르장드르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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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위 '일본의 니체'라고 불린다는 사상가 사사키 아타루의 신작으로, 만만찮은 볼륨으로 그의 풍부한 사유를 범접하려는 독자를 압도하는 책이다. 저자는 일종의 상관관계에 있는 라캉과 르장드르, 푸코의 이론을 순서대로 하나씩 해체해나가며 성찰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전개해나간다. 따라서 이 책은 저자가 해제(解題)를 시도하는 세 사상가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이 있다면 매우 흥미로운 지적 생산활동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해'본다'. 필자의 뉘앙스에 명확성이 부족한 이유는 반대로 필자 자신이 철학과 친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하나의 큰 시험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당 부분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라캉, 르장드르, 푸코에 대해 생소한 독자라면 소화하기 힘든 내용의 도서가 될 수도 있다.

 

 목표치를 높게 잡아두고 과업을 수행하다보면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그보다 낮은 목표를 잡았을 때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듯이, 개인적으로 높은 수준의 고통스러운 독서의 과정을 거치고 나니 세 사상가의 이론 해석이 난해한 이유와 따라서 어떻게 접근해나갈 수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라캉의 사상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실제계와 상징계, 상상계의 3자는 물론이요 이를 해석하기 위한 용어들도 중복성과 혼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A라는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는 범위의 테두리가 한 사람이 학문을 하는 일생의 기로마다 달라질 수 있기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허나 라캉이 자신의 용어들에 혼용성을 부여한 것은 어느정도 그 자신의 의도이기도 했다. 무지몽매한 우리 대중에게 삶의 깨달음, 혹은 그 실마리나마 제공해주는 철학이 어째서 깔끔하고 명확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도리어 이렇게 혼란하게 하는 것일까? 저자 사사키 아타루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따라서 라캉이 한 말은 무엇이었는가, 라캉은 무슨 말을 했는가, 라캉의 진의는 무엇이었는가, 이렇게 따져 들어갈수록 우리는 라캉의 함정 깊숙이 빠져들어간다.

― 라캉은 읽는 행위를 마치 종교적인 단련이라도 되는 듯 여겼다. 읽는 행위가 한 주체의 교정이고, 갱신, 생산이기조차 하게끔. 독해 불가능한 것을 읽기, 그것이 주체를 만들어낸다. (p. 28~29)

 즉, 글 안에 깨달음이 있어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그 난해함을 독파하고 모호함의 간극을 고민하는 '과정'자체에서 주체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라캉의 의도인 것이다. 이를 서두로 깔아놓고 저자는 팔루스와 향락의 개념을 중심으로 라캉의 이론을 분해해나간다. 그 장(章)의 마지막에서 진리의 단계라 할 수 있는 '죽음'의 개념을 매개삼아 자연스럽게 법제학자이자 역시 사상가인 르장드르의 사상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세속화와 권력의 이야기를 통해 마지막 장인 푸코의 사상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분명히 이것은 철학을 다루는 '교양서'이기에는 문턱이 높은 책이다. 하지만 일본인 저자에 의한 책이라는 두 가지 특성에서 반복적으로 읽고 곱씹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세 사상가의 이론을 일본 정서 특유의 미분(微分)하는 듯한 꼼꼼한 해체와 재구성 작업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도우려 노력했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이러한 저자의 의도가 가능한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번역되었을 것이라는 희망 때문이다. 다양한 사상이 알려지고 번역 기술도 발전한 오늘날엔 덜하지만, 특히 철학 분과와 같은 영역의 저서는 일반적으로 원서가 독일어나 프랑스어 등 라틴 계열의 언어를 바탕으로 저술되었기 때문에 원서에서 의도된 개념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었다. 이는 심하게 말하면 오역의 가능성도 생길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영어로 1차 번역되어 우리나라 말로 2차 번역이 된 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객관적 '경험'과 주관적 '체험'을 나타내는 독일의 원래 개념이 '경험(experience)'라는 하나로 통합된 개념으로 꾸겨넣어진 경우처럼 말이다. 그러나 『야전과 영원』이라는 일본인 저자의 사상을 담은 책은 일본어가 우리나라 말로 번역되는 난이도의 용이함 덕분에 저자가 의도한 내용이 비교적 온전히 전해졌으리라 생각해본다. 아무튼 필자 역시 특히 권력을 논한 푸코 부분의 내용을 한번 더 읽어봐야 겠다고 느낀다. 라캉, 르장드르, 혹은 푸코 셋 중 한 사람의 사상에 관심이 있다면 난이도가 조금 느껴지더라도 한번 읽어보아야 할 양질의 책이다. 자, 철학 탐닉하고 싶은 독자는 이 고된 지적 유희에 도전해보시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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