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통찰과 고전 학문 부흥에 쏟은 열정으로 페트라르카는 르네상스의 선구자로 인정받았다. 그에 앞서 단테가, 그 뒤를 이어 보카치오와 함께했던 피렌체의 인문주의 운동은 명맥이 계속 이어지다가 15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된다. 그러고 보면 르네상스는 14세기에 이미 단단하게 싹을 틔우고 있었던 셈이다. 76-77 - P76
조토가 당대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거장이었던 이유는 그의 재능이나 파격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성화의 종교적 역할 안에서 자신의 예술을 펼치는 중용의 감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333 - P333
"나는 기적을 행하고 싶다" 레오나르도는 일찍이 공책에 이렇게 적었다. 그 말에 부응하듯, 16세기 내내 <최후의 만찬>을 묘사하면서 가장 자주 사용된 표현은 바로 "기적적이다"라는 말이었다. 447 - P447
우리는 텍스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순간과 직면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로이 넘나든다. 모든 독자는 안락의자에 앉아, 일렁이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시간의 섬island of tiome을 간다. 마치 로빈슨 크루소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30 - P30
나는 부다페스트를 다른 어떤 도시보다 좋아한다. 그 도시는 스스로를 믿으며 시련을 이겨내고 가고자 하는 곳으로 꿋꿋하게 나아가는 사람 같았다. 1천 년 전 말을 타고 거기 왔던 머저르의 후예들이 지난 150여 년 동안 무엇을 성취했는지 보여주었다.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보면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감정을 맛보았다. 부다페스트는 슬프면서 명랑한 도시였다. 별로 가진 게 없는데도 대단한 자신감을 내뿜었다. 오늘의 만족보다 내일에 대한 기대가 큰 도시였다. 나는 그런 사람 그런 도시가 좋다. 162-163 - P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