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에 해안이나 섬에 출몰했던 서양 선박과 서양인들은 조선 사회라는 극장의 무대에 느닷없이 뛰어 올라온 불청객이었다. 하멜 일행을 제외하면 그들은 왕조의 수도와 권력의 심장부에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국외자의 냉정한 시선으로, 기울어가는 왕조와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간파해냈다. 그들이 남긴 여행기나 보고서는 때로 편견과 곡해, 모독 등으로 물들어 있지만, 우리 역사에서 익명으로 떠돌았던 변방 민중들의 생활상과 감수성 그리고 몸짓과 목소리를 손에 잡힐 듯이 그려내고 있다.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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