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와 빵 셔틀 박장군 콤플렉스 극복 동화 3
이재희 지음, 김은주 그림, 임영주 도움글 / 주니어김영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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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플렉스 극복 동화3

맥아더와 빵 셔틀 박장군

이재희 글 / 김은주 그림

주니어김영사 펴냄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자살'이라는 단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되어버린 요즘...

왜 이렇게 아이들이 나약해지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당당하게 부딪힐 생각을 안하고 그저 남들이 그걸 해결해 주기 바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뭐가 문제일지...많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친구들의 왕따로 자살한 친구 소식을 듣고 가던 장군이는 길에서 우연히 누군가를 마주칩니다.

나중에 교실에 와보니 오늘 처음 이 학교에 오신 선생님으로 장군이의 담임샘 이십니다.

 

장군이는 대식이에게 셔틀이라는 말을 들어가면서 시키는 일을 합니다.

하지 않으면 욕하고 때리고 괴롭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든 일을 합니다.

편의점에서 도둑질도 하고 급식도 떠다주고 피씨방 갈 돈도 내주고..

어떻게 초등학생이 이런 행동들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읽는 내내 화가나서 너무나 속이 상했습니다.

 

그런데 대식이의 상황을 보니 가정형편이 너무나 어렵다는 걸 알았습니다.

뭔가 불안하고 불만이 있는데 그걸 표시 못한 대식이가 이렇게 친구를 괴롭히는것으로

자기의 스트레스를 푸는 듯 합니다.

 

그럼 수란이는 뭘까요? 엄마가 학교 운영위원회 정도이면 관심도 많고 형편도 좋은 아이일텐데

그 친구는 엄마가 모든걸 아이만 밑고 해결해 주기에 선생님이 혼내도 오히려 선생님이

더 당하실거라는 말투로 말을 합니다.

 

이런 친구들에게 나타난 담임샘은 맥아더 장군을 닮은 샘입니다.

 

아버지의 기도...

 

내 아이가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약할 때 스스로를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감을 잃지 않는 용기를 주시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

참된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의 아버지가 된 나도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노라고 말할 수 있게 하소서...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는 선생님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얻고 누군가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혼자 모든걸

해결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 친구들과 그 방법을 함께 찾으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을 지킬수 있는 사람은 자기 밖에 없습니다

누군가가 절대 내가 될 수 없습니다.

늘 자신감을 갖고...힘을 내서...어려운 상황을 극복해야 당당한 내가 될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런 책을 통해 자신감을 갖고 당당한 아이가 되어서 자살이라는

단어를 논하기 전에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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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이다 1 - 빨간 수염 사나이 하멜 일공일삼 85
김남중 지음, 강전희 그림 / 비룡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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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바람이다

1. 빨간 수염 사나이 하멜

김남중 글 / 강전희 그림

비룡소 펴냄

 

너무나 풍요롭던 마을..

바다를 통해 돈을 벌던 그들에게 김씨라는 돈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동네나 마찬가지로 돈이 많은 사람들은 늘 더 많은 돈을 벌기위해 욕심을 부립니다.

또 그 돈을 통해 나만의 허세를 부리곤 합니다.

 

해풍이 아버지는 김씨에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해서 김씨가 부탁한걸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곤 어느날 바다를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때다 싶은 김씨는 해풍이 어머니께 해순이와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서

해풍이네를 괴롭혔습니다.

 

지금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이들에게 이름모를 남만인들이 같이 살았습니다.

머리 색도 눈 색도 다른 이들을 남만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 왔다가 14년간이나 갇혀 지내던 사람들..

조선 사람들은 이들을 멀리 했지만 이들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돈도 열심히 모으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해풍이는 이들이 싫지 않았습니다.

해순이 일로 이들에게 고민을 말하고...도움을 받은 해풍이...

 

그 사이 작은대수형과 해순이가 서로 좋아하는 걸 알게된 해풍이..

그러나 도와줄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하멜 일행이 배를 타고 일본으로 간다는 걸 안 해풍이는 몰래 배안에 숨어서 하멜일행을 따라갔습니다

하멜은 해풍이가 있으면 위험해 질까봐 중간 섬에 해풍이를 버리고 갑니다.

해풍이는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곧 고려인이 사는 곳에 살게 되었고 그곳은 도예촌 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도예촌에 숨어서 1년 넘게 산 해풍이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장수형도 만났고 연수도 만났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기무라 라는 사람에게 기리시딴이라는걸 들키고 

장수와 해풍이만 이곳을 떠나게 하고 모두 살려주었습니다.

 

나중에 기무라는 해풍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중이었습니다.

 

17세기 우리 나라 상황은 심한 쇄국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일본또한 그에 못지 않은 쇄국정책으로

많이 뒤쳐진 상황이었습니다. 기무라는 세계로 진출하고 싶은 야망을 품고 해풍이를 통해

세계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만약 우리 나라가 이때 쇄국정책을 펼치지 않고 그들과 함께 했다면 어떻게 변했을까요???

 

나는 바람이다...읽는 내내...가슴이 콩닥 거리고..그 시절에 왠지 살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너무나 즐겁게 책을 보았습니다..

 

나가사키에 부는 바람...2편도 곧 올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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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종 황제는 폐위되었을까? - 고종 황제 vs 이토 히로부미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50
이계형 지음, 조환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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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종 황제는 페위되었을까?

이계형 글 / 조환철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고종 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정확하게 들은 고궁박물관을 찾아가면서 부터였습니다.

그저 듣기만해도 바라보기만해도 눈물나게 만들었던 고종황제 이야기..

 

그리고 일본의 앞장을 섰던 이토히로부미...이름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떨림이 있는

그런 이름이라 소름이 끼칩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뒤늦게 개항하였지만 엄연한 자주 독립 국가로서 세계 여러나라와 

교류하면서 근대 국가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서구 열강이 아프리카 등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을 지켜본 일본이 이를 흉내 내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야욕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고종은 일본의 감시와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합니다. 그리고 1년 뒤 궁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나라 이름을 '대한 제국'으로 연호를 '광무'로 정하고 자주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회사와 공장을 설립하여 나라의 경제를 부강하게 하고

학교들을 세워 인재를 양성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근대적 개혁을 통틀어 '광무개혁'이라고

부릅니다.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시아와 '러시아는 일본이 대한 제국을 간섭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내용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됩니다.

이것을 국제 사회에서 일본이 대한 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갖는다는 것을 완전히 인정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세등등해진 일본은 대한 제국의 외교권을 빼앗는 조약을 맺고자 합니다.

이에 고종 황제를 비롯하여 많은 정부 관리들이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1905년 11월 일본은

강제로 대한 제국과 을사조약을 맺게 됩니다..

 

정말 화가나는 일이지요...

을사오적을 앞세워 조약성립을 일방적으로 공포하고 대한 제국의 외교권은 강탈되고

이토히로부미를 앞세운 일본이 내정과 외교를 장악하게 됩니다.

 

역사공화국에서는 고종황제가 승리하지만 그 시절에 보상받지 못하는 그 시간들은

어찌해야 할까요???

 

그저 가슴이 답답해지기만 합니다....일본이 더욱 미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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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 강홍립 vs 인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5
정명섭.박지선 지음, 배연오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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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정명섭, 박지선 글 / 배연오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임진왜란시절...병자호란이 떠오르면 한참 인기리에 보았던 '최종병기 활'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명나라와 조선이 일본과 맞서 싸우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건주 여진의 누르하치는 서서히 힘을

기르며 다른 여진족들을 정복해 나갑니다. 1648년 누르하치는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명나라와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놀란 명나라가 누르하치를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면서 조선에도 군대를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시 조선의 임금인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우리를 도와주었던 은혜를 갚기 위해 강홍립을 지휘관으로 하는 군대를 보냅니다.

 

하지만 누르하치의 교묘한 전술에 휘말린 명군은 크게 패하고 강홍립을 비롯한 조선군 역시

포로로 잡히고 맙니다.

그때 광혜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하면서 조선의 외교정책은 혼란을 겪습니다.

 

중립정책을 폐지한 인조는 후금과 대립하면서 명나라 장수 모문룡을 지원합니다.

이에 후금은 명나라와의 전쟁을 할때 위협이 될수 있다면서 조선을 공격합니다.

3만 대군이 조선을 침략하게 된 정묘호란이 그때 발생합니다.

 

의주성이 삽시간에 함락당하고 평양까지 무너지면서 인조는 강화도로 떠납니다.

정묘호란 이후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는 계속 유지하면서 후금에게 세폐를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1636년 청으로 이름을 바꾼 여진족이 다시 쳐들어 옵니다.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이때 인조는 강화도로 피란을 떠날 여유조차 없어서

남한산성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계속 전쟁이 지면서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불과 한달안에 이런 일이 생기고....

인조 임금이 오랑캐인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은건 큰 충격이 됩니다.

 

인조는 관습에 얽매여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한나라의 우두머리가 얼마나 지혜롭고 현명해야 하는지...

그래야 나라의 운명이 바뀐다는걸 인조임금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렇듯 새로운 역사의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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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흥선대원군은 쇄국 정책을 펼쳤을까? - 박규수 vs 흥선대원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5
이정범 지음, 조환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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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흥선대원군은 쇄국 정책을 펼쳤을까?

이정범 글 / 조환철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흥선대원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명성황후 입니다..

시아버지의 쇄국 정책때문에 가장 힘들어 했던 인물...

그리고 가장 본받고 싶고 가슴 아픈 인물이기도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으로 유명합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할 무렵 우리나라는 안팎으로 격변을 겪고 있었습니다.

조선에서는 60년 동안 안동 김씨, 풍양 조씨의 세동 정치로 백성들이 힘들어 했습니다.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고 백성들을 착취 하는등 백성들이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때 농민들은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서 전국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흥선대원군은 일부러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면서 술에 취해 살았고

높은 사람집에가서 쌀을 꾸어 생계를 이어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높은 사람들의 힘이 워낙에 컸기에 그 들의 눈밖에 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철종이 서른 두살로 세상을 떠나자 둘째 아들 고종을 왕위에 앉히고 자신은 그 뒤에서

조정을 하면서 조선의 권력을 쥐게 됩니다...

 

행정 조직 개편, 경복궁 증건, 서원 철폐, 인재등용등 다양한 방법으로 개혁 정치를 합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세도 정치를 무너뜨리고 왕권을 강화 하려고 합니다.

 

그 시절 세계 여러 나라들은 무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식민지로 개발하거나 문호를

개방하려고 합니다. 중국, 일본도 강제로 문호를 열었고 조선도 강력하게 이야기 하자

병인박해를 일으키면서 프랑스, 미국, 독일등의 압박을 철저히 물리치면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게 됩니다.

 

만약 흥선대원군이 그때 쇄국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불과 몇백년 차이 나지 않지만 그 시절과 너무나도 다르게 살고 있는 지금...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책을 읽을때면 늘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또 그 시절에 살고 있는 것 마냥..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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