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흥선대원군은 쇄국 정책을 펼쳤을까? - 박규수 vs 흥선대원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5
이정범 지음, 조환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왜 흥선대원군은 쇄국 정책을 펼쳤을까?

이정범 글 / 조환철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흥선대원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명성황후 입니다..

시아버지의 쇄국 정책때문에 가장 힘들어 했던 인물...

그리고 가장 본받고 싶고 가슴 아픈 인물이기도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으로 유명합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할 무렵 우리나라는 안팎으로 격변을 겪고 있었습니다.

조선에서는 60년 동안 안동 김씨, 풍양 조씨의 세동 정치로 백성들이 힘들어 했습니다.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고 백성들을 착취 하는등 백성들이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때 농민들은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서 전국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흥선대원군은 일부러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면서 술에 취해 살았고

높은 사람집에가서 쌀을 꾸어 생계를 이어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높은 사람들의 힘이 워낙에 컸기에 그 들의 눈밖에 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철종이 서른 두살로 세상을 떠나자 둘째 아들 고종을 왕위에 앉히고 자신은 그 뒤에서

조정을 하면서 조선의 권력을 쥐게 됩니다...

 

행정 조직 개편, 경복궁 증건, 서원 철폐, 인재등용등 다양한 방법으로 개혁 정치를 합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세도 정치를 무너뜨리고 왕권을 강화 하려고 합니다.

 

그 시절 세계 여러 나라들은 무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식민지로 개발하거나 문호를

개방하려고 합니다. 중국, 일본도 강제로 문호를 열었고 조선도 강력하게 이야기 하자

병인박해를 일으키면서 프랑스, 미국, 독일등의 압박을 철저히 물리치면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게 됩니다.

 

만약 흥선대원군이 그때 쇄국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불과 몇백년 차이 나지 않지만 그 시절과 너무나도 다르게 살고 있는 지금...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책을 읽을때면 늘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또 그 시절에 살고 있는 것 마냥..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