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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 강홍립 vs 인조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5
정명섭.박지선 지음, 배연오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6월
평점 :

왜 인조는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었을까?
정명섭, 박지선 글 / 배연오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임진왜란시절...병자호란이 떠오르면 한참 인기리에 보았던 '최종병기 활'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명나라와 조선이 일본과 맞서 싸우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건주 여진의 누르하치는 서서히 힘을
기르며 다른 여진족들을 정복해 나갑니다. 1648년 누르하치는 후금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명나라와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놀란 명나라가 누르하치를 토벌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면서 조선에도 군대를
보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시 조선의 임금인 광해군은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우리를 도와주었던 은혜를 갚기 위해 강홍립을 지휘관으로 하는 군대를 보냅니다.
하지만 누르하치의 교묘한 전술에 휘말린 명군은 크게 패하고 강홍립을 비롯한 조선군 역시
포로로 잡히고 맙니다.
그때 광혜군이 폐위되고 인조가 즉위하면서 조선의 외교정책은 혼란을 겪습니다.
중립정책을 폐지한 인조는 후금과 대립하면서 명나라 장수 모문룡을 지원합니다.
이에 후금은 명나라와의 전쟁을 할때 위협이 될수 있다면서 조선을 공격합니다.
3만 대군이 조선을 침략하게 된 정묘호란이 그때 발생합니다.
의주성이 삽시간에 함락당하고 평양까지 무너지면서 인조는 강화도로 떠납니다.
정묘호란 이후 조선은 명나라와의 관계는 계속 유지하면서 후금에게 세폐를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1636년 청으로 이름을 바꾼 여진족이 다시 쳐들어 옵니다.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입니다. 이때 인조는 강화도로 피란을 떠날 여유조차 없어서
남한산성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계속 전쟁이 지면서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불과 한달안에 이런 일이 생기고....
인조 임금이 오랑캐인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은건 큰 충격이 됩니다.
인조는 관습에 얽매여 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한나라의 우두머리가 얼마나 지혜롭고 현명해야 하는지...
그래야 나라의 운명이 바뀐다는걸 인조임금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렇듯 새로운 역사의 실패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