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을 위한 변명
조유식 지음 / 푸른역사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어떨까? 왕건이 궁예와 견훤에게 져서 고려를 성립하지 못했다면..? 흥선군이 적극적인 개화파였다면 국치를 면할수 있었을까?..등의 역사적인 의문점을 품어본적이 없었던 사람은 드물것이다. 역사적 의문이란.. 만약 이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식으로 생각해 보고, 아 그때 고구려가 삼국통일했으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더 강대국이였을텐데~ 하는 근거불명의 우월감을 한때나마 만끽해보려는 식의 생각을 말한다.(그렇다고 본다..난)  우리민족의 가슴아픈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저항이라고 해야할지는 몰라도 나는 그런 식의 역사적 상상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이 책도 그러한 나의 역사적 상상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조선 초는 태종이 즉위하기 전까지는 조선사회는 전반적으로  고려에 대한 잔재와 망상이 남아 뒤숭숭하고 혼란이 가중되던 시기였다. 그를 더욱 부채질 한 것은 이성계의 자손들이 제들끼리 치고받고 죽인 왕자의 난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이방원(태종)은 태생적으로 정권욕이 왕성한 자라서, 조선 개국에 결정적 역할을 한 자신이 차기 왕좌에서 소외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아무렴 고려말엔 정몽주등 조선에 따르지않는 충신들을 마구죽이는등 공을 세우려고 혈안이 된 인물임을 보면 그 정권욕이 왕성한게 이상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결국 이방원은 이성계세력의 우두머리격이자 두뇌인 정도전을 제거함으로써 권력을 손에 쥐게 되고 결국 자신이 조선 제3대왕이 되게 된다.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고려를 전복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일등공신이자, 대국 명나라와도 맞서 당당히 외교를 펼치며, 급기야는 명나라에서조차 두려워한 지략가 정도전이 어째서 이렇게 허망하게 이방원에게 당해버렸느냐 하는 것을 정도전입장에서 해명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는 이방원이 이성계세력을 전복하려는 음모를 꾸미고있는 와중에도  대국적차원의 생각만을 고수 하고 있었다.  명나라와 조선과의 관계에서 실리를 찾으려는데 온 힘을 쏟느라고 자신의 코 앞에 있던 위험요소를 간과하고 말았던 것이다.

만일 정도전이 국내적인 불안요소에도 신경을 집중하여, 이방원세력에게 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것이 이 책에서 내가 느낀 역사적 유희였다. 그는 당시 명나라  개국초라서 국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임을 파악한 정도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군사를 내어 옛 고구려 고토인 요동을 수복하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도 그러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려 했다. 당 태종과의 신경전에서도 지지않는 영웅적모습을 보며, 실제로 정도전이 죽지 않았다면 요동수복이 가능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타까워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코 앞의 칼날을 간과한 정도전에게 대업을 이루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며 위로를 했다. 또한 태종도 왕권쟁취과정에서 비윤리적인 모습을 남기긴 했으나, 실지로는 왕권을 강화시키고 조선왕조를 안정시킨 나름대로 뛰어난 왕이 아닌가..?

역사적 유희에 대한 심각한 맹목은 옮지 않다고 본다. 언제나 그랬으면 어떨까..? 아.. 아쉽네.. 뭐 하지만 별수없지~  거기 까지가 전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단지, 또 다른 역사의 가능성에 대해 잠시나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그 이상의 집중은 역사의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저처럼 역사적 유희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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