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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4 - 끝없는 밤
손보미 외 지음 / 북다 / 2024년 8월
평점 :

기간 : 2024/09/06 ~ 2024/09/08
어김없이 이효석문학상의 계절이 찾아왔다.
이번 작품집은 작년보다 볼륨이 더 커졌다. 약 70페이지 정도 더 늘었다.
그래서 보는 맛이 더하고 더 풍부하게 느껴진다.
근데, 좀 어이없었던건, 마지막 이효석 작가 연보가 통으로 다 빠져 있다는 점이였다.
책의 단순한 손상인건지 출판의 오류인지 모르겠으나, 이효석문학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책이니만큼 신속히 손봐야 할 문제인것 같아 미리 언급하였다.

# 끝없는 밤 / 손보미
올해의 대상은 '폭우', '밤이 지나면', '불장난', '사랑의 꿈'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손보미 작가가 수상했다.
손보미 작가의 소설들은 보기에 영 불편하다.
이번 소설도 그렇고, 다음에 소개할 소설도 그렇고, 이전까지 내가 봤던 소설들도 그랬고, 시간의 역순으로 쓰여진 소설들이 많다.
현재 시점에서 뭔가 사건이나 이벤트를 던져놓고 점차 과거로 시점을 옮겨가며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에 집중에서 읽지 않으면 흐름을 놓쳐버리기 쉽상이다.
이번 대상작 '끝없는 밤' 은 손보미 작가의 이러한 글쓰기 방식과 가장 잘 어울린다 생각되는 소설로, 잔잔하던 바다가 폭풍이 몰아치며 넘실거리고, 그에 맞춰 주인공 '그녀' 의 상념이 같이 너울거리며 감정이 요동친다.
그렇기에 현재의 '파도' 와 과거의 '회상' 을 비교하며 읽어야 흐름이 제대로 이해가 된다.
잔잔하던 바다의 파도가 약간 더 세게 칠땐 '그녀' 의 불륜도 비교적 약한(?) 편이다.
그러다 요트가 휘청거리고 사람들이 쓰러질 정도로 파도거 거세지며 '그녀' 의 불륜도 점입가경(!)으로 들어간다.
급기야 요트가 뒤집어지고 사람들이 바다에 빠져 버릴 정도가 되니 '그녀' 에게 남은건 자기 혐오와 비참함.
70페이지 정도의 짧은 분량이 아쉬웠다.
플롯을 좀 더 길게 늘린 '끝없는 밤' 을 보고 싶어졌다.
'데카메론' 느낌으로 요트에 탄 사람들 각각의 여러 인간 군상을 그린다면 어떤 소설이 될까?
흑사병이 피렌체 교외의 별장을 폐쇄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듯이, 태풍이라는 외부의 위협이 요트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어 내었으니 이런 느낌으로 이 소설을 읽는다면 정말 재밌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천생연분 / 손보미
대상 작가 손보미의 자선작으로, 이 소설이 오히려 '끝없는 밤' 이라는 제목과 더 어울리게 느껴졌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발이 너무 거센 겨울밤.
이 밤을 가장 길게 느낀 사람은 누구였을까?
어머니의 유산인 엔틱 가구를 가지러 가던 그녀였을까?
아니면, 오밤중에 불륜녀였던 여자의 전화 한통에 튀어나온 그였을까?
어쩌면 두 남녀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5살 아이가 아니였을까?
다시 원래의 제목으로 돌아가,
천생연분은 분명 남동생과 올케, 엄마와 엄마의 새로운 남편을 가리키는것 같은데,
그럼 그녀와 그는 천생연분이 아니여서 이별을 하게 된건가?
그의 천생연분은 그녀가 아니라 원래 자기 마누라였던건가?
그녀가 양호 선생님의 결혼식장에서 대성통곡을 한건 무슨 이유 때문이였을까?
양호실에서 짝사랑하던 남학생을 더이상 보지 못하게 될까봐?
여러가지 물음들이 자꾸 생각나고 인과 관계를 맞춰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뭔가 실마리 하나만 탁 잡으면 얽힌 실타레 풀어지듯이 줄줄히 다 테트리스처럼 딱딱 맞아떨어질것 같은데.
# 허리케인 나이트 / 문지혁
소설속의 '나' 는 실제의 '나' 와 여러가지가 닮아 있어 순간순간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닮은 점들을 감상으로 쓰다가 애써 쓴 문장들을 죄다 지워버렸다.
쓰다보니 내 어리석던 옛 모습들이 자꾸 들춰지는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감정보다는 더 깊고, 자기 혐오라는 감정보다는 더 가벼운, 그 둘의 중간 즈음에 있는 듯한 감정들이 샘솟으며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에 빠져들어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기억에 오래 남는 소설이 될 듯 하다.
# 리틀 프라이드 / 서장원
난 이쪽 주제는 혐오하기 때문에 소설로라도 보지 않는다.

# 혼모노 / 성해나
제목인 혼모노가 내가 아는 그 혼모노 (ほんもの) 인가 싶었는데 정말로 그 혼모노가 맞았다.
나로서는 생소한 주제라 소설의 무당과 굿에 관련된 용어들이 낯설고 어려웠으며 무당들의 감정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지만, 작가의 글솜씨가 대단하여 등장인물들의 감정 표현이 세밀하고 촘촘하며 굿의 동작들은 너무나도 생경하여 소설에 표현된 긴장감을 온전히 느낄수 있었다.
어린 시절 무서워 벌벌 떨며 봤던 전설의 고향이 문득 생각나기도 하였다.
이번 수상작품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느껴진 소설이였다.
# 담담 / 안윤
바이섹슈얼인 여자, 그리고 아내와 딸을 잃어버린 남자.
이 둘의 담담한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다.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워낙 싫어해서 이 소설도 안볼려다가 조금 더 봐보니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니라 마음 놓고 읽을 수 있었다.
큰 상처를 입은 두 남녀 이야기를 아주 담담한 문체로 담백하게 풀어냈다.
이런 문체 너무 좋다. 확정되지 않은 오픈 결말 또한 소설과 잘 어울려 여운이 남았다.
# 그 개와 혁명 / 예소연
언제부터였던가? 신경숙이라는 인간에 실망한 뒤 부터였나?
사상이 조금이라도 들어간 소설은 불쾌하다.
# 그 날의 정모 / 안보윤
작년 이효석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던 안보윤 작가의 자선작이다.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회적 문제나 현상을 리얼하게 표현하는 작가답게 이번 소설도 어김없이 비슷한 정도의 수준으로 불편하게 느껴진다.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처럼 불쾌하게까지는 아니기 때문에 그럭저럭 마음을 가라앉히고 볼 수 있다.
해마다 빼놓지 않고 가을이면 항상 이 책을 읽어왔다.
정이현의 소설을 처음 이 작품집에서 접했으니 20년 정도 봐온것 같다.
그동안은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곤 했었는데 작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이렇게 좋은 기회가 생겨 책을 소장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작품집도 가까이에 두고 생각날때마다 한번씩 다시 읽어보곤 했었는데, 이제는 새 책으로 바꿔줄 때가 되었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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