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할 놈의 수학
카를로 프라베티 지음, 최유정 옮김, 이광연 감수 / 문학동네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너무나도 중요하고 기본중의 기본이 되는 학문이자, 동시에 대중들에게 너무나도 사랑받지 못하는 학문이 바로 수학이다. 따라서 어린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에는 이 사실을 인식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즉, 수학을 가르칠 때, 기초적인 개념들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동시에 학습의 흥미도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까지 수학의 초중등교육은 이 두 가지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것 같다. 수학은 수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재미없고 골치 아픈 것으로 여겨지며,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일반적으로 수학을 극히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기호들이 오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학문으로서 수학의 면모는 고도의 논리로 이루어진 수학적 사실들을 특별한 기호들로 표현하고 집약한 것이다. 즉, 수학은 철저하게 논리적인 언어로 쓰여 있다. 논리로 이루어진 지식의 체계라는 것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의 언어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치밀한 논리가 (때로 모호한) 인문학의 논리보다 더 이해하기 쉬울 수 있다. 그럼에도 수학을 거부하게 하는 것은 학생시절 수학이 다른 과목과 마찬가지로 이해보다 암기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응용적 계산을 빠른 시간에 하는 기술적 능력의 학습이 우선되고, 시험에서의 수학 성적이 곧 수학에 대한 이해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런 상황은 강압적이고 획일적인 수업과 연관되어 더 악화된다.

 

    이해를 하며 학습한다는 모든 학문의 기본적 자세는, 본질상 자유로운 사고를 필요조건으로 한다. 또한 학습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부터 철저히 이해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본적 사실의 정립을 위하여는 그 사실에 대한 안티테제를 생각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요구되며, 더 나아가 기존의 입장에 건전한 의심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학교교육은 학문와 수험을 동일시하며, 학문적 이해도와 성적을 동일시하고, 부조리를 질서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수학을 왜 공부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엔 이미 세간엔 답변이 내려져 있는 실정이다. ‘더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해서.’ 그래서 논리적인 사고의 함양이나 수학을 통한 세계의 심화된 이해와 같은 것은 목적이 아니라 우연히 얻게 되는 부수적인 것일 뿐이다. 이런 것을 전제로 하여 이 책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견해는 ‘학습을 도와주는 유용성’의 차원을 본질적인 것처럼 이야기한다. 이러한 인지구조가 수학학습자의 머릿속에 박히게 되면 학습으로 얻어지는 순수한 즐거움은 찾기 어렵게 된다.

  

    2.

 

    문학동네에서 최근에 출간된 카를로 프라베티의「망할 놈의 수학」은 수학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초중등 학생, 또는 수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권할만한 책이다. 저자는 기초적인 수학적 논리를「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야기를 토대로 쉽고 흥미있게 풀어가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수학적 주제는 다음과 같다. - 기수법, 특히 10진법, 소수의 개념, 소수를 찾는 방법으로 에라토스테네스의 체, 연속으로 이어지는 합성수의 목록을 만드는 법, 간단한 위상기하학의 개념, 구구단을 외우는 법, 기하급수의 개념, 등차수열, 등비수열, 계차수열과 소인수, 등차수열의 합, 미터단위법, 방정식, 지수법, 특별한 수열인 피보나치 수열 등.

 

    별 문제는 아니지만, 모든 것에 0을 곱하면 즉시 사라져 버리므로 모든 카드가 ‘카드0’을 두려워한다는 p.38의 언급은 조금 생각할 여지가 있다. 수학에서 0이 된다는 것이 (존재의 차원에서) 사라진다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0이라 표시한 것은 어떤 파르메니데스적 절대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수학적 존재론의 차원에서 0은 다른 모든 자연수와 동일한 위상에 있다. [수학적 존재에 대하여 Platonism과 Nominalism이 대립하고 각자 필연적(necessary)이냐 우연적(contingent)이냐의 존재양상으로 더 나눌 수 있으나 이것들은 수학적 존재 자체의 동일성을 전제로 하므로 어느 것에 따라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앨리스와 찰스(루이스 캐롤)가 도착한 세계에서는 수가 곧 존재하는 실체로 나타나므로 존재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처리하였으나, 이는 ‘無化’와 ‘0되기’를 동일한 것으로 오해시킬 소지가 있다.

 

    또, p.117에서 1미터를 사분자오선 길이의 1천만분의 일이라고 정의했지만, 현재 1미터는 진공 속에서 1/299,792,458초 동안 빛이 진행한 거리로 정의된다.

  

    3.

 

    이런 수학교양서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분명 존재한다. 더욱 고도의 수학적인 내용까지 이런 식으로 계속 전달할 수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고, 이 책이 학생들에게 잠시 재미를 느끼게 하며 수학학습을 도와준다는 차원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수학은 원래 재미없는 것이므로’, 이 책이 ‘특별히 재미를 주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책’ 정도로 이해된다면, 그 이면에는 여전히 수학에 대한 기피감이 굳건히 자리잡고 있으며, 수학에 대한 몰이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재미있을 수 있는 수학’은 이런 기존의 인식구조를 잠시 은폐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재미가 있는 이런 책으로부터 다시 ‘재미없고 망할 놈의 수학’을 가르치는 교실로 바로 돌아가야 하고, ‘재미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원래는 재미없는 것’이란 언명을 함축하게 되는 것이다.

  

    즉, 여기에서 (주로) 학생들에게 기피감을 느끼게 하는, 수학에 대한 인지의 구조적 측면이 바뀌지 않는 한, ‘쉽고 재미있는 수학’이란 말은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기존의 ‘재미없는 수학’이란 인식을 확대재생산 하는 구조 내의 구성요소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망할 놈의 수학」이란 제목 자체가 드러내는 것은 수학이 ‘망할 것’이라는 일반 개인의 정서이지만, 동시에 이 제목은 ‘망할 것’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숨겨진 구조적인 측면 또한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을 벗어나서도 수학이 재미있는 것, 유용하고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려면, 수학학습으로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학습에 대한 인지적 차원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구조적인 면의 개혁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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