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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인간에 대하여 - 라틴어 수업, 두 번째 시간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9월
평점 :
우리는 죽음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두려워한다. 유한한 생명의 인간은 영원을 꿈꾸고 신에게서 그 답을 찾으려 한다. 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하나의 종교가 탄생한다. 인간은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잊기 위해 종교에 의지한다. 그렇게 종교는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온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 속에 드러난 믿음과 종교에 대해 이야기한다. 믿음과 종교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삶의 의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간직한 채 생을 이어가고 있을까?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21페이지)
‘어른’이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른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왜 ‘어른이 없다’라는 말이 생긴 것일까? 어른이 되기 위해서 단순히 나이만 필요한 것은 아닌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른’인가? 답은 ‘아니오’다. 내 안의 아이는 철없는 행동과 미숙한 선택을 계속하고 있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은가? 이 질문의 답도 역시 ‘아니오’다. 나는 철없는 아이로 살고 싶다. 나와 같이 어른이 되기 싫어하는 피터팬 증후군에 걸린 어른들이 존재한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아이의 정신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도자가 없다고 탄식하지 말고 너 자신이 지도자가 돼라”(24페이지, 도산 안창호)
일제 강점기에 지도자가 없음을 한탄하는 이들에게 도산 안창호 선생은 너 자신이 지도자가 돼라고 말했다.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생각의 어른이 존재하기 위해서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존중하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어른’과 ‘지도자’가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처럼 스스로가 지도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와 같이 철없는 아이로 살고 싶은 이들은 어른과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철없는 아이와 같은 삶을 살고자 하는 나는 이기적인 사람일까? 철없이 살고 싶은 마음에는 변화가 없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 안의 ‘생각의 어른’의 존재를 살며시 깨워본다. 내 안의 생각의 어른이 깨어난다면 나의 생각에도 어쩌면 변화가 올지도 모르겠다.
‘분리장벽이 실재하는 벽이라면 마음의 벽은 보이지 않는 벽입니다.’(30페이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격리시키기 위해 10미터 높이의 분리 장벽을 세웠다. 장벽으로 인해 타종교와 타종족에 대한 마음의 벽은 더 높고 두꺼워진다. ‘신의 이름’이라는 명분으로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을 공격하는 일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장벽은 왜 만들어질까? 생각이 다르고, 상황이 다르고, 믿는 것이 다를 때, 만들어지는 장벽은 생각보다 더 높고 두껍다. 그렇기 때문에 장벽을 허문다는 것은 쉽지 않다. 가장 가까운 가족 사이에도 마음의 벽이 세워진다. 지금 나는 어떤 마음의 벽을 세우고 있을까? 필자는 차이가 아닌 무엇이 같은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같음을 찾는다면 높은 마음의 벽은 사라질 수 있을까?
‘바라봄’(37페이지)
개인의 고통, 사회의 아픔과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첫 단계는 ‘보는 것’이다. ‘차이’가 아닌 ‘같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을 바라봄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한다. 자신과 타인을 바라본다면 그 안에서 장벽을 허물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라본다면 어쩌면 높고 두꺼운 마음의 장벽도 허물어트릴 수 있을 것이다.
‘Credo quia absurdum est
크레도 쿠이 압수르둠 에스트
(부조리(불합리)하기 때문에 나는 믿는다).’(48페이지)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신은 어디 있는가? 신이 존재한다면 끔찍한 일들은 왜 일어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불합리한 세상에서 작고 힘없는 이들이 고통 받는 상황을 보면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최초의 라틴 신학자인 테르툴리아누스는 부조리하기 때문에 신을 믿는다고 답했다.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가도 마음이 무너지고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 때 종교를 갖지 않았던 사람들도 신을 찾게 된다. 신이 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 사람들은 동시에 극한의 고통과 충격 앞에서 신에게서 위안을 받는다. 그 순간 그들에게 신은 존재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60페이지)
살아가는 동안 많은 일을 겪는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는 것까지 껴안고 고민하면서 괴로워한다. 필자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때 내가 무엇인가를 변화시키고 해결할 수 있다. 할 수 없는 것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삶은 덜 고달프다.
‘어떤 옷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가’
인간은 신을 믿고 신을 경배할 장소를 더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다. 신을 모시는 사제들은 그들만의 종교를 상징하는 옷을 입었다. 신에 대한 성스러운 믿음을 악용해 자신의 권력과 탐욕을 채우는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했다. 그들은 신을 경배하는 장소에 앉아 신을 모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옷을 입고 자기 배만 채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들은 현재의 생과 사후의 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신에 대한 믿음을 이어간다. 사제들이 입는 옷과 비슷하게 종교도 수도복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종교적 신념이나 가르침이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 종교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 자신은 어떤 옷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라고 조언한다.
신에 대한 믿음은 삶의 의지와 연결된다. 살아가는 것과 생명을 지닌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과 자신이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아가길 갈망한다. 그러한 염원을 담아 신을 찾아 소원을 빈다. 신은 곧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존재한다. 어떠한 종교와 무관하게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신과 종교에 대한 믿음에 앞서 자기 자신을 믿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믿음은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믿는 순간, 우리에게는 강력한 에너지가 충전된다.
『믿는 인간에 대하여』의 일부만 발췌된 내용을 읽으면서 전체 내용이 궁금해졌다. 지금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갖고, 어떤 옷의 무게를 견디면서 살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사람들은 행복을 꿈꾸면서 더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해 안식을 찾으려 한다. 우리는 안식을 찾기 위해 신을 찾는다. 그렇게 ‘믿는 인간’이 탄생한다.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믿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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