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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김진송 지음 / 난다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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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직입적으로, 그리고 두괄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요근래 읽었던 소설 중에 가장 독특했다. 독특하다고 대중성이 없는 건 분명 아닐게다. 요는, 어떤 소설을 읽고 싶으냐에 달려있다고 난 생각한다. 취향의 문제, 사실 난 소설은 취향을 타야하는 장르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런 맥락이라면 근래 보기 드문 소설이라고 바꿔 말 할 수 있다. 이런 원고가 있는데 어떴냐며 누군가 내게 건넸다면 난 무어라 말했을까. 나같은 소인배는 쭈뼛거리며 말했으리라 "재미는 있는데 요새 스타일은 아닌것 같아."
시류를 미리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걸 볼 줄 아는 안목 있다면 삶이 조금은 더 수월해지리라. 그것이 없기에 이 책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다. 요새 스타일의 소설이 아니라, 저 앞의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글이라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나와 다르다. 그런 소설이었다.
"혼자라는 건 용기인 동시에 외로움이자 두려움이었다."
-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中
"언제나 전진을 막는 장애물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사소하고 무시해도 좋을 자잘한 것들이었다."
-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中
비상식적인 설정과 세계 속에서 각각의 단편들 속 주인공들은 고군분투한다. 언뜻 이해가기 힘든 상상이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이따금 명치를 내리치는 듯한 대사를 이따금 읊조린다. 묘한 기분이 드는 건, 그 순간 소설 속 기묘한 세계와 내 두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일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세상의 모든 짝들이 사라지는 세상이건, 무슨 정신인 줄은 모르지만 헐벗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사람들 있는 세상이건, 지금 우리 사는 세상과 아주 다르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은 다를지언정, 그 안의 사람들은 그리 다르지 않다.
전원이란 시골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어보라, 거기 사는 사람들이 전원에서 살고 있는가를. 전원생활이란 적어도 도회 물을 먹어본 사람들이 꿈꿀 수 있는 삶이다. 전원은 오직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울 수 있는 공간이다. 흙투개비가 되어 땅을 파거나 뙤약볕에 몇 시간씩 비지땀을 흘려야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전원은 없다. 거기는 그저 촌구석일 따름이다.
-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中
꿈 같은 이야기, 여기서 말하는 꿈은 결코 기분 좋은 꿈이 아니다. 어서 깨고 싶은 꿈, 깨고 나서도 식은땀이 나거나 묘하게 찡그려질 수 있는 그런 꿈이다. 그러나, 곱씹게 된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내가' 그 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듬어보게 된다. 내게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았다. 나의 현재를 더듬어보게 된, 그런 계기가 되어 준 책. 한참을 고심한 결과로 나온 비유이건만 이마저도 마뜩치 않다. 달리 무어라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아 참 그리고,
책을 읽기 전 표지를 봤을 때 뭔가 근사한 듯한 느낌은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감과 손에 착 잡히는 두꺼운 양장본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뒤 표지를 다시 봤을 때 조금 다른 부분,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 속 계단들 끝에 걸려있는 밝은 문, 그리고 창 저 너머 밝은 빛이 눈에 띄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이 표지를 들여다보게 됐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시간 제법 지난 지금, 나는 이 표지야말로 이 책의 시작과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이건 진짜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고 밖에. 그저 직접 읽어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