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커리어 - 업의 발견 업의 실행 업의 완성, 개정판
박상배 지음 / 다산북스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내 개인적인 관심사 중 하나가 바로 '다가올 미래산업'과 그 안에서의 (나같은 비루한) 직장인들'이다보니, 호기심에 집어드는 책 역시 이와 관련된 책들이 많다. 빅 커리어란 제목 밑에 있는 '10년 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내 시선을 끌었다. 당장 5년, 아니 1년 후의 일도 흐릿한 현 시점에서 10년 후는 내겐 암흑 그 자체다. 10년 후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사실 명쾌한 답이 애시당초 있을리 만무하지마는, 다가올 나의 미래에 대해 조금의 영감이라도 얻을 요량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간 책을 읽으며 쌓아온 (얄팍한) 지식으로 얘기하건데, 지금까지 우리 아버지 세대의 인생에선 한 사람이 하나의 직업을 수행하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더라면 지금 우리세대부터는 우리 각 사람이 하나의 직업으로만 규정되는 시대가 아니라고들 한다. 그 커다란 요인으로는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의 변화속도와 더불어 의학의 발달에 기반한 평균수명의 증대 때문이니, 한 가지 기술만 있으면 정년이 다될때까지 먹고 사는 걱정이 없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10년, 20년을 주기로 우리가 따라가기 버거운 기술과 세상이 펼쳐지는 세상이 되었다. 여기에 평균수명은 100세, 혹은 앞으로 그 이상이 되리라 예상되니 이제 우리는 먹고 사는 업으로부터 은퇴하기까지 단 하나의 명함만을 갖고 있던 세상에서, 업으로의 은퇴 자체가 힘들게 되는 세상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누구나 동경하는 대기업에 다니는 건 모든 직장인들의 꿈이었겠으나, 예전엔 그 영화로운(?) 세월이 인생의 대부분이었더라면 앞으로(혹은 이제는) 그 유효기간이 상당부분 짧아지게 될 것이다. 이미 이야기한 바, 한 직장 내에서의 정년은 축소되고 있는 반면 우리는 100세 시대를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셈을 해봐도 우리에겐 여전히 열심히 채워야할 3,40년이 생기는 셈이니 그 대상은 대기업 직원이던, 중소기업 직원이던, 공무원이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이 된다.

이 책은 바로 이 부분에서 단순히 나의 젊은 시절 밥벌이에 그치는 '일'과 '직업'이 아니라, 100세 시대를 맞이하여 먼 훗날의 '업'을 지금부터 준비하라고 권면한다. 단순히 좋은 회사, 더 많은 돈을 주는 회사를 위한 코칭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먼 훗날까지 미리 내다보아서 '나에게 맞는 일'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제언하고 있다. 사실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심사숙고 하지 않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이 책은 다루고 있다.

1장에서는 앞으로 다가올 '빅 커리어'의 시대, 곧 기나긴 노후까지도 대비할 수 있는 '업의 시대'를 예고하는 한편, 2장부터 마지막 4장에 이르기까지 업의 발견에서부터 실행, 그리고 완성까지 그 방법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내가 열정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평생 할 일조차도 (지금 내가 직장에서 하고 있는 것처럼) 수동적이거나 등떠밀려서 하는 일이 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서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 일의 즐거움은 평생의 업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에, 그러기 위해선 그 일에 나의 열정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이, 혹은 우리의 일이라는 것이 열정의 무게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님은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 열정을 들인 일에 성과를 내야 함은, 우리가 그 일로 밥벌이를 할 수 있느냐와 직결되기 때문에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은 우리의 취미생활과 다를 바가 없다고 책의 저자는 말한다. 본인이 열정을 가지고 있는 어떤 일에 대해 실제 성과를 도출해 내는 방법과 그 과정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있다.

당장 지금 하는 일을 때려치고 자기사업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몸 담고 있는 직장에서 최선을 다하되, 지금 그 일이 나의 빅 커리어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 혹은 연관이 없다면 다른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 다른 준비를 해야 한다면 나는 어떠한 분야에 강점이 있을지 등, 지금부터 커다란 계획 안에서 조망하는 습관을 들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업 안에서 내가 어떻게 '빅 커리어'를 위한 준비를 시작하면 좋을지 그 걸음마 단계에서부터, 사소한 습관을 기르는 방법, 구체화된 나의 생각을 실행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실제 직장인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책에서 말하는 바를 우리 삶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한줌의 '의지'로, 이것만 담보된다면 이 책을 읽는 의미가 분명 있다고 믿는다.
   
아무리 값비싼 헬스클럽에 등록한다고 해도, 아무리 훌륭한 원어민 영어선생님이 있는 학원에 등록한다고 해도, 결국 스스로의 의지가 결과를 좌우한다. 우리 모두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간단한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실행에 옮기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의지가 없다면 결국 이 책 역시 누군가에겐 그저그런 자기개발서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나의 개인적인 견해로, 책 한권에 인생이 바뀐다는 말을 나는 반신반의 하는 입장이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책 한 권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내 삶을 바꾼 책 한 권일 수도 있다. '독서'를 단순히 '읽는다'고 정의하는 누군가에겐 책을 읽었다 한들 그것이 내 삶에 영향을 미칠리 만무하지만, '독서'를 단순히 읽는 걸 넘어 곱씹고 되새겨져 행동의 변화로까지 연결 시키는 어느 누군가에겐 책 한권을 통해 인생이 충분히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틀에서 이 책은 자기개발서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자기개발서의 요(要)는 자기개발에 있음은 모두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책을 집어들기 전, 스스로에게 자문해보자. 달라지고 싶은 의지가 있는지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준비된 아빠는 교육이 남다르다 - 인성을 키우는 아빠교육
김승 지음 / 미디어숲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늦은 퇴근 덕분에 늘상 어둑어둑해져야만 비로소 대면할 수 있는 무뚝뚝한 모습의 아버지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적어도) 내 세대에겐 그리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아이의 양육과 교육은 오로지 어머니의 책무로 여겨지곤 했던 그 당시는 몰랐지만, 성인이 된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성격적으로 나는 아버지를 닮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하루의 대부분을 어머니와 보내고, 학교에 머물며 또래 친구들과 보냈지만, 나는 성인이 되며 점차 아버지의 행동양식이나 가치관을 닮아가고 있었다. 결혼할 남자의 진면목을 보려거든, 그 아버지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 보라던 웃어른들 말씀이 서른 중반이 넘은 이 시점에서 진땀나게 느껴진다. 원하던, 혹은 원하지 않던 간에 아버지가 아이에게 주는 그 영향력이란 건 실로 엄청난 것이 아닌가, 내 삶의 체험을 통해 절실히 느꼈더랬다. 

현재의 나는 (다행히) 결혼은 했지만 아직 아이가 있지는 않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여전히 아이에 대한 계획조차 세우질 않는 건, 마치 계획에도 없던 결혼이 어느 순간 성사됐던 지난날처럼 아이 역시 어느 순간 자연스레 그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약간은 안이한) 기대 덕분이다. 대신, 언제일지 모를 그 순간까지 허송세월을 보내기보다 조금이나마 준비된 아빠가 되고자 나름의 열심을 가지고 무언가 하고자 하니, 이 '준비된 아빠는 교육이 남다르다'야 말로 그 좋은 출발점이자 준비하는 아빠를 위한 훌륭한 입문서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었다

 

이 책은 1부 아버지상과 2부 자녀 인재상, 이렇게 두 가지의 커다란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녀를 위한 어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본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녀상' 이전에 '아버지의 '자아상'이 먼저라는 말이다. 이것이 먼저 정립이 되지 않고선 아이에게 좋은 모범이 될 수 없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우리네 어린 시절 무뚝뚝한 아버지들처럼 내 아이들과의 단절 혹은 강요만이 있을 뿐, 제대로 된 소통이 있을 수가 없다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체험을 통해 아이에 대한 아버지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걸 깨달은 뒤부터, 나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상상하곤 한다. 나의 말버릇, 작은 습관들이 아이의 인격 형성과정에 결코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테니, 평소부터 내 모습을 돌아 보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 지점에 대해 이 책의 저자는 아이에 대한 교육 이전에,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찰과 반성을 통해 나 스스로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그렇게 또 우리는 집 안에서 외딴 섬이 되어버릴거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절반이 지나가건만, 아이의 교육이나 양육에 대한 실체적인 이야기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줄기차게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아버지 당신의 삶과 행복을 말이다.

아버지가 행복하지 않고 삶에 찌들거나 피폐한 마음에 빠져있다면, 아이에게 아무리 훌륭한 고언과 권면을 쏟아낸들 그게 얼마나 효력이 있을까. 세월 조금 지나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아이의 눈에 '나는 그래도 되지만, 너는 그래선 안된다'는 꼰대가 되어있지 않을까. 나는 그저 그런 삶을 살았지만, 너만은 그래선 안된다며 다그치는 아버지들은 결국 아이의 행복까지 방해하며, 손대선 안될, 아이가 직접 잡아야 할 인생의 핸들에까지 손을 뻗치려들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버지, 그 자신의 내적 행복이다.

또한 무엇보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부터 알아야한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 가치관의 우선순위 등, 세상만사의 모든 원리나 이치들이 내 안에서 어떻게 구성되고 그걸 타인에게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타인이 곧 내 아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질문이나 호기심에 차근차근 아버지의 내면을, 혹은 세상 이야기들을 걸러서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공부는 대체 왜 해야하는거야?" 라는 아이의 질문에 "입 다물고 공부나 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렇게 먼저 아버지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올바른 자아상을 정립한 후에야 비로소 나의 자녀를 위한 인재상을 그려내야 한다. 자녀를 어떤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지에 대해, 가치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채워주기 위한 '가정의 문화'를 만드는 노력을 기울이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의 인내와 열심, 끈기가 아버지들에게 필요함은 물론이다.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이 과정을, 책에선 몇 가지 예를 보여주며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가치관의 우선순위를 설정한 뒤, 그것을 토대로 아이의 인재상을 정하는 그 과정에 대해서 말이다. 이를 토대로 가정의 인재상과 아버지의 언어, 그리고 삶이 모두 일관적으로 아이에게 노출이 된다면, 그 안에서 아이는 무의식적으로 그 가치를 흡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인재상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므로, 가정의 인재상이 '배려'라면, 그 아이는 배려는 물론, 겸손과 배려 등 다른 덕목에서도 높은 발달을 보이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이 책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알고 있을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에 대해 구조적인 접근을 통해 차분히 요약 및 정리를 해주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을 내용일 수 있지만, 작가는 이렇게 구조적으로 잘 정리된 글을 통해 우리 모두가 실천으로 옮길 수 있도록 '독려'하는듯 하다. 어찌보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는 '가정 안에서의 인재상 세우기'에 대해, 어떻게 실행으로 옮겨야 할지 어색해 하거나 어려워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세밀하게, 그리고 하나하나 그 방법에 대해 차분히 설명해 주고 있다. 아이가 아직 없음에도 공감가는 이야기가 수두룩하나, 나머지 세부 내용은 각자 직접 책을 읽으며 공감하고 느끼는 것이 더 효과적인 체득이라고 믿는다. 준비된 아빠를 지향한다면, 또 내 아이를 위해 방법을 고민하고 열심을 투자할 마음이 있는 아버지라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지침서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좋은 아빠에 대한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각자 맞다고 믿는 바대로 관철시키는 삶을 추구할 뿐, 누구도 그 정답을 정의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이 책을 다 읽고 내가 느낀 바는, 그 정답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책임감'에 대한 의지이다. 나라는 인간을 통해 세상을 마주할 나의 아이를 위해 조금이라도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나의 '책무'임과 동시에 나의 가정이 바로설 수 있는 근본이 되어 줄 테니 말이다.

흡사 고객을 호객하려는 홈쇼핑 문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처럼 아직은 아이가 없지만 훗날 아이에 대한 교육을 생각하곤 하는 분들이나, 곧 아버지가 될 분들에게, 혹은 이제 막 걸음마를 하기 시작한 아버지들에게, (결국은 모든 아버지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의 착각 - 허수경 유고 산문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20페이지 남짓의 얄팍한 책이라 마음에 큰 부담은 없었다. 평소 읽는 속도를 감안하면 2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분량이라, 오히려 그 두껍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완독을 한 지금, 책을 읽은 시간을 셈 해보니 족히 일주일 간 난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1년, 아니 근 2년을 돌이켜봐도 이런 적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내게 가장 읽기 힘든 120페이지가 된 셈이었다.


언젠가 다른 독후감에서 시인의 언어를 이야기한 적 있다. 가장 정제된, 그리고 함축적인 수단으로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는 시인인만큼 '감정을 설명하는 부연 대신, 감정을 담아낸 단어 그 자체를 쓰려 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 있다. 박연준 시인의 #소란 을 읽고 느낀 감정이 그것이었다면 반대로 이 허수경 시인의 오늘의 착각은 단어보다 문장, 문장 보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곧 그녀의 감정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길지 않은 글임에도 그녀의 사색의 흔적이, 혹은 그녀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절제 없이, 가감 없이 그녀는 이 여덟 편의 글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데 이곳에 없다는 느낌.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하나씩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 섬뜩한 것은 이것이 착각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데 있다. 언젠가는 너를 잃어버릴 거라는 이 확연한 사실을 착각으로 위장하여 저녁 어둠에 놓아두는 것." - <오늘의 착각>


2014년부터 약 2년간 문학 계간지 '발견'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엮은 이 책은 그러한 연고로 그녀가 경험한 2번의 계절이 담겨있다. 고고학을 공부하며 독일에서 마치 유랑하듯 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발굴을 하며 많은 생각에 잠겼던 듯 하다. 그러한 것들이 모두 그녀에게 영감과 소재가 되어주기라도 한 듯, 그녀의 글엔 그녀만의 독특한 시선과 철학이 담겨있다. 남다른 철학을 담아 쉴 새 없이 시를 노래하듯 한 방편으로 늘어놓은 그녀의 산문은 그래서 읽기에 쉽지 않았지만 그래서 재미나기도 했다. 글에서 언뜻 엿보이는 그녀의 삶 일부를 통해 글엔 없는 그녀의 나머지 삶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 세상에 없는 존재라 더 깊게 생각하게 되다가도,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착각이 아닌가 한편으론 상상해본다. '착각은 우리 앞에 옆에 뒤에 그리고 언제나 있다' 던 그녀의 말처럼 말이다.


"나는 아직 살아 있어서 옛 고향의 모습, 한두 가지는 지니고 있다. 아마도 내가 그곳을 떠났을 때 함께 가지고 간 것이리라. 그렇게 장소도 장소를 떠난다. 장소를 내면화한 인간과 함께 그 인간의 시간과 함께. 육회를 슬며시 한곳으로 밀어내고 나는 밥을 먹었다. 밥은 따뜻했고 그래서인지 참 슬펐다. 다 먹고 난 뒤 한구석으로 밀어낸 육회만이 남았을 때 나는 소멸한 소의 마지막 장소가 그릇 안에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식당을 나오며 나는 육회만이 담긴 그 그릇을 내 내면 속에 집어넣었다." <오늘의 착각>


묘한 책이자 글이다. 생각을 부르는 글,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글, 그리고 인생을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다.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동하게 하고, 나 또한 그녀와 같이 철학을 담은 글을 쓰고자 의지를 다지게 하는 책이 되었다. 이렇게 책으로 엮여질 것을 그녀는 생전에 알았을까. 책을 다 완독한 후에도 궁금한 것들이 여전히 많다. 누구도 답해줄 수 없는 그 질문들을 곱씹는동안, 다시 이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녀는 “믿는다는 것은 착각을 사랑한다는 말에 다름아니다.”고 했다. 고고학자인만큼 그녀는 '영원'을 믿지 않는 듯 했고, 그것을 '착각'이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 하지 않았을까. 다만, 그녀는 '사랑'이라고도 했다. 일장춘몽(一場春夢) 같은 인생이지만, 그녀는 그것마저 감싸 안으며 사랑하려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런 그녀에게 삶은 '즐거운 착각'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직접 책 제목을 붙인다면 '즐거운 착각'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나 또한 착각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김진송 지음 / 난다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가홀로집을짓기시작했을때 #난다 #김진송 #소설 #소설추천 #신간 #책소개


단도직입적으로, 그리고 두괄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요근래 읽었던 소설 중에 가장 독특했다. 독특하다고 대중성이 없는 건 분명 아닐게다. 요는, 어떤 소설을 읽고 싶으냐에 달려있다고 난 생각한다. 취향의 문제, 사실 난 소설은 취향을 타야하는 장르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런 맥락이라면 근래 보기 드문 소설이라고 바꿔 말 할 수 있다. 이런 원고가 있는데 어떴냐며 누군가 내게 건넸다면 난 무어라 말했을까. 나같은 소인배는 쭈뼛거리며 말했으리라 "재미는 있는데 요새 스타일은 아닌것 같아."



시류를 미리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걸 볼 줄 아는 안목 있다면 삶이 조금은 더 수월해지리라. 그것이 없기에 이 책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다. 요새 스타일의 소설이 아니라, 저 앞의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글이라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나와 다르다. 그런 소설이었다.


"혼자라는 건 용기인 동시에 외로움이자 두려움이었다."

-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中


"언제나 전진을 막는 장애물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사소하고 무시해도 좋을 자잘한 것들이었다."

-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中


비상식적인 설정과 세계 속에서 각각의 단편들 속 주인공들은 고군분투한다. 언뜻 이해가기 힘든 상상이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이따금 명치를 내리치는 듯한 대사를 이따금 읊조린다. 묘한 기분이 드는 건, 그 순간 소설 속 기묘한 세계와 내 두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일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세상의 모든 짝들이 사라지는 세상이건, 무슨 정신인 줄은 모르지만 헐벗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사람들 있는 세상이건, 지금 우리 사는 세상과 아주 다르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은 다를지언정, 그 안의 사람들은 그리 다르지 않다.



전원이란 시골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어보라, 거기 사는 사람들이 전원에서 살고 있는가를. 전원생활이란 적어도 도회 물을 먹어본 사람들이 꿈꿀 수 있는 삶이다. 전원은 오직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울 수 있는 공간이다. 흙투개비가 되어 땅을 파거나 뙤약볕에 몇 시간씩 비지땀을 흘려야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전원은 없다. 거기는 그저 촌구석일 따름이다.

-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中


꿈 같은 이야기, 여기서 말하는 꿈은 결코 기분 좋은 꿈이 아니다. 어서 깨고 싶은 꿈, 깨고 나서도 식은땀이 나거나 묘하게 찡그려질 수 있는 그런 꿈이다. 그러나, 곱씹게 된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내가' 그 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듬어보게 된다. 내게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았다. 나의 현재를 더듬어보게 된, 그런 계기가 되어 준 책. 한참을 고심한 결과로 나온 비유이건만 이마저도 마뜩치 않다. 달리 무어라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아 참 그리고,


책을 읽기 전 표지를 봤을 때 뭔가 근사한 듯한 느낌은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감과 손에 착 잡히는 두꺼운 양장본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뒤 표지를 다시 봤을 때 조금 다른 부분,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 속 계단들 끝에 걸려있는 밝은 문, 그리고 창 저 너머 밝은 빛이 눈에 띄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이 표지를 들여다보게 됐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시간 제법 지난 지금, 나는 이 표지야말로 이 책의 시작과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이건 진짜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고 밖에. 그저 직접 읽어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어들이 살아 춤을 춘다. 새로운 창작은 전에 없던 걸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존재하지만 주목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오은 시인의 산문집 '다독임'을 읽는 내내 들었던 감상이었다. 외부에서 그럴싸한 무언가를 찾기보다 내 안에서 무언가를 찾자고, 그래야 한다고 그가 말하는 듯했다.

책은 201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가 써내려 온 그의 기록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조언하셨다는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에 주안점을 두며 써 내려갔다고 한다. 언어에 일가견이 있는 시인이 읽는 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특히 더 담았다고 하니 이토록 세심한 글이 나온 걸까. 글을 쓰고 고치고 또, 달이고 우리고, 다시 채에 거르고. 그래서 이 '다독임'에서 그의 정제된 진심이 느껴지나 보다. 읽는 이라면 누구든 그의 마음가짐을 고스란히 느끼리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에선 당시 들불처럼 번졌던 촛불집회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책 속 '아무튼, 책이다' 편에서 밝혔다시피 그 역시 '아무튼' 시리즈의 팬이라고 했다. '나의 다음은 국어사전 속에 있다'에서 그는 국어사전에 대한 애정을 말하고 있었다. 이처럼 세월의 흐름 따라 일어났던 일련의 사회적 쟁점을 얘기할 때도, 또 그 속에서 작가로서 느낀 개인사들을 얘기하기도 한다.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일상을 이야기하다가도 평범하지 않은 시기에 느꼈던 개인의 소신과 분기충천을 그대로 담아내기도 한다. 그 자체로 스스로를 위한 '다독임'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나는 '오은'이라는 시인을 잘 알지 못한다. 그간 '시'라는 분야를 그리 즐기지 않기도 했고, 왠지 '시인'이라는 단어가 내겐 왠지 모르게 동 떨어져 보이는 존재로 느껴졌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와 교분을 나눈 듯했다. 일방적인 감상일지라도, 책 속 그의 글을 통해 이따금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편으론 나와 다른 비범함을 느끼기도 했다. '시인'이란 저 멀리 떨어져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 역시 현실에 두 다리 단단히 딛으며 호흡하고 부대끼는 존재가 맞구나. 원래부터 그러했을 사람이건만, 아둔한 나는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당연한 사실을 발견한다. 그의 다독임을 읽으며 나 역시 누군가 다독이는 듯했다. 그래서 그가 그리 말했나 보다. '하는 사람도, 그것을 듣는 존재도 그 순간만큼은 괜찮아지게 만드는 말이다.'라고.

얼마 전 읽었던 '소란'과 비슷한 마음이다. 생각날 때마다 이따금이라도 다시 꺼내어 읽고 싶다. 평범한 일상에서 그가 느낀 바를 다시금 읽고 그의 사유를 쫓고 싶다. 그가 내디뎠던 발자국 모양 그대로 밟아가며 그 안에서 또 나만의 사유를 그의 것과 견주어보고 싶다. 이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나의 세계가 더 풍요로워지리라 확신한다.

시인 '오은' 같은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 주위에도 한 명쯤 있을 만큼, 그래서 우연히라도 한 번쯤 만나 대화 나눌 수 있을 만큼. 얼마나 즐거울까 그 자리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나누는 그 대화들이.

나는 이 책을 권할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