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착각 - 허수경 유고 산문
허수경 지음 / 난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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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페이지 남짓의 얄팍한 책이라 마음에 큰 부담은 없었다. 평소 읽는 속도를 감안하면 2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을 분량이라, 오히려 그 두껍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완독을 한 지금, 책을 읽은 시간을 셈 해보니 족히 일주일 간 난 이 책을 붙들고 있었다. 1년, 아니 근 2년을 돌이켜봐도 이런 적은 없었다. 결과적으로 내게 가장 읽기 힘든 120페이지가 된 셈이었다.


언젠가 다른 독후감에서 시인의 언어를 이야기한 적 있다. 가장 정제된, 그리고 함축적인 수단으로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는 시인인만큼 '감정을 설명하는 부연 대신, 감정을 담아낸 단어 그 자체를 쓰려 한 게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 있다. 박연준 시인의 #소란 을 읽고 느낀 감정이 그것이었다면 반대로 이 허수경 시인의 오늘의 착각은 단어보다 문장, 문장 보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곧 그녀의 감정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길지 않은 글임에도 그녀의 사색의 흔적이, 혹은 그녀의 정서가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절제 없이, 가감 없이 그녀는 이 여덟 편의 글 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데 이곳에 없다는 느낌.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잃어버린 것도 아닌데 하나씩 잃어버리고 있다는 느낌. 섬뜩한 것은 이것이 착각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데 있다. 언젠가는 너를 잃어버릴 거라는 이 확연한 사실을 착각으로 위장하여 저녁 어둠에 놓아두는 것." - <오늘의 착각>


2014년부터 약 2년간 문학 계간지 '발견'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엮은 이 책은 그러한 연고로 그녀가 경험한 2번의 계절이 담겨있다. 고고학을 공부하며 독일에서 마치 유랑하듯 한 삶을 살았던 그녀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발굴을 하며 많은 생각에 잠겼던 듯 하다. 그러한 것들이 모두 그녀에게 영감과 소재가 되어주기라도 한 듯, 그녀의 글엔 그녀만의 독특한 시선과 철학이 담겨있다. 남다른 철학을 담아 쉴 새 없이 시를 노래하듯 한 방편으로 늘어놓은 그녀의 산문은 그래서 읽기에 쉽지 않았지만 그래서 재미나기도 했다. 글에서 언뜻 엿보이는 그녀의 삶 일부를 통해 글엔 없는 그녀의 나머지 삶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 세상에 없는 존재라 더 깊게 생각하게 되다가도, 그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착각이 아닌가 한편으론 상상해본다. '착각은 우리 앞에 옆에 뒤에 그리고 언제나 있다' 던 그녀의 말처럼 말이다.


"나는 아직 살아 있어서 옛 고향의 모습, 한두 가지는 지니고 있다. 아마도 내가 그곳을 떠났을 때 함께 가지고 간 것이리라. 그렇게 장소도 장소를 떠난다. 장소를 내면화한 인간과 함께 그 인간의 시간과 함께. 육회를 슬며시 한곳으로 밀어내고 나는 밥을 먹었다. 밥은 따뜻했고 그래서인지 참 슬펐다. 다 먹고 난 뒤 한구석으로 밀어낸 육회만이 남았을 때 나는 소멸한 소의 마지막 장소가 그릇 안에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했다. 식당을 나오며 나는 육회만이 담긴 그 그릇을 내 내면 속에 집어넣었다." <오늘의 착각>


묘한 책이자 글이다. 생각을 부르는 글,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글, 그리고 인생을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다.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동하게 하고, 나 또한 그녀와 같이 철학을 담은 글을 쓰고자 의지를 다지게 하는 책이 되었다. 이렇게 책으로 엮여질 것을 그녀는 생전에 알았을까. 책을 다 완독한 후에도 궁금한 것들이 여전히 많다. 누구도 답해줄 수 없는 그 질문들을 곱씹는동안, 다시 이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


그녀는 “믿는다는 것은 착각을 사랑한다는 말에 다름아니다.”고 했다. 고고학자인만큼 그녀는 '영원'을 믿지 않는 듯 했고, 그것을 '착각'이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려 하지 않았을까. 다만, 그녀는 '사랑'이라고도 했다. 일장춘몽(一場春夢) 같은 인생이지만, 그녀는 그것마저 감싸 안으며 사랑하려 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런 그녀에게 삶은 '즐거운 착각'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직접 책 제목을 붙인다면 '즐거운 착각'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나 또한 착각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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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김진송 지음 / 난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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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홀로집을짓기시작했을때 #난다 #김진송 #소설 #소설추천 #신간 #책소개


단도직입적으로, 그리고 두괄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요근래 읽었던 소설 중에 가장 독특했다. 독특하다고 대중성이 없는 건 분명 아닐게다. 요는, 어떤 소설을 읽고 싶으냐에 달려있다고 난 생각한다. 취향의 문제, 사실 난 소설은 취향을 타야하는 장르가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런 맥락이라면 근래 보기 드문 소설이라고 바꿔 말 할 수 있다. 이런 원고가 있는데 어떴냐며 누군가 내게 건넸다면 난 무어라 말했을까. 나같은 소인배는 쭈뼛거리며 말했으리라 "재미는 있는데 요새 스타일은 아닌것 같아."



시류를 미리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걸 볼 줄 아는 안목 있다면 삶이 조금은 더 수월해지리라. 그것이 없기에 이 책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다. 요새 스타일의 소설이 아니라, 저 앞의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글이라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나와 다르다. 그런 소설이었다.


"혼자라는 건 용기인 동시에 외로움이자 두려움이었다."

-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中


"언제나 전진을 막는 장애물은 거대한 무엇이 아니라 사소하고 무시해도 좋을 자잘한 것들이었다."

-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中


비상식적인 설정과 세계 속에서 각각의 단편들 속 주인공들은 고군분투한다. 언뜻 이해가기 힘든 상상이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이따금 명치를 내리치는 듯한 대사를 이따금 읊조린다. 묘한 기분이 드는 건, 그 순간 소설 속 기묘한 세계와 내 두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일순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삽시간에 세상의 모든 짝들이 사라지는 세상이건, 무슨 정신인 줄은 모르지만 헐벗고 높은 곳에 올라가는 사람들 있는 세상이건, 지금 우리 사는 세상과 아주 다르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은 다를지언정, 그 안의 사람들은 그리 다르지 않다.



전원이란 시골 사람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어보라, 거기 사는 사람들이 전원에서 살고 있는가를. 전원생활이란 적어도 도회 물을 먹어본 사람들이 꿈꿀 수 있는 삶이다. 전원은 오직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울 수 있는 공간이다. 흙투개비가 되어 땅을 파거나 뙤약볕에 몇 시간씩 비지땀을 흘려야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전원은 없다. 거기는 그저 촌구석일 따름이다.

- 그가 홀로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中


꿈 같은 이야기, 여기서 말하는 꿈은 결코 기분 좋은 꿈이 아니다. 어서 깨고 싶은 꿈, 깨고 나서도 식은땀이 나거나 묘하게 찡그려질 수 있는 그런 꿈이다. 그러나, 곱씹게 된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내가' 그 안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더듬어보게 된다. 내게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았다. 나의 현재를 더듬어보게 된, 그런 계기가 되어 준 책. 한참을 고심한 결과로 나온 비유이건만 이마저도 마뜩치 않다. 달리 무어라 쉽게 설명하기 힘들다. 아 참 그리고,


책을 읽기 전 표지를 봤을 때 뭔가 근사한 듯한 느낌은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감과 손에 착 잡히는 두꺼운 양장본이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난 뒤 표지를 다시 봤을 때 조금 다른 부분,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어두운 배경 속 계단들 끝에 걸려있는 밝은 문, 그리고 창 저 너머 밝은 빛이 눈에 띄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여전히 이 표지를 들여다보게 됐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시간 제법 지난 지금, 나는 이 표지야말로 이 책의 시작과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왜냐고 묻는다면, 이건 진짜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고 밖에. 그저 직접 읽어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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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임 - 오은 산문집
오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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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들이 살아 춤을 춘다. 새로운 창작은 전에 없던 걸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늘 곁에 존재하지만 주목하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오은 시인의 산문집 '다독임'을 읽는 내내 들었던 감상이었다. 외부에서 그럴싸한 무언가를 찾기보다 내 안에서 무언가를 찾자고, 그래야 한다고 그가 말하는 듯했다.

책은 201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가 써내려 온 그의 기록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조언하셨다는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에 주안점을 두며 써 내려갔다고 한다. 언어에 일가견이 있는 시인이 읽는 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특히 더 담았다고 하니 이토록 세심한 글이 나온 걸까. 글을 쓰고 고치고 또, 달이고 우리고, 다시 채에 거르고. 그래서 이 '다독임'에서 그의 정제된 진심이 느껴지나 보다. 읽는 이라면 누구든 그의 마음가짐을 고스란히 느끼리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에선 당시 들불처럼 번졌던 촛불집회에 대한 소신을 밝히고 있다. 책 속 '아무튼, 책이다' 편에서 밝혔다시피 그 역시 '아무튼' 시리즈의 팬이라고 했다. '나의 다음은 국어사전 속에 있다'에서 그는 국어사전에 대한 애정을 말하고 있었다. 이처럼 세월의 흐름 따라 일어났던 일련의 사회적 쟁점을 얘기할 때도, 또 그 속에서 작가로서 느낀 개인사들을 얘기하기도 한다.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일상을 이야기하다가도 평범하지 않은 시기에 느꼈던 개인의 소신과 분기충천을 그대로 담아내기도 한다. 그 자체로 스스로를 위한 '다독임'이라도 되는 듯 말이다.


나는 '오은'이라는 시인을 잘 알지 못한다. 그간 '시'라는 분야를 그리 즐기지 않기도 했고, 왠지 '시인'이라는 단어가 내겐 왠지 모르게 동 떨어져 보이는 존재로 느껴졌던 까닭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그와 교분을 나눈 듯했다. 일방적인 감상일지라도, 책 속 그의 글을 통해 이따금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편으론 나와 다른 비범함을 느끼기도 했다. '시인'이란 저 멀리 떨어져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그 역시 현실에 두 다리 단단히 딛으며 호흡하고 부대끼는 존재가 맞구나. 원래부터 그러했을 사람이건만, 아둔한 나는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당연한 사실을 발견한다. 그의 다독임을 읽으며 나 역시 누군가 다독이는 듯했다. 그래서 그가 그리 말했나 보다. '하는 사람도, 그것을 듣는 존재도 그 순간만큼은 괜찮아지게 만드는 말이다.'라고.

얼마 전 읽었던 '소란'과 비슷한 마음이다. 생각날 때마다 이따금이라도 다시 꺼내어 읽고 싶다. 평범한 일상에서 그가 느낀 바를 다시금 읽고 그의 사유를 쫓고 싶다. 그가 내디뎠던 발자국 모양 그대로 밟아가며 그 안에서 또 나만의 사유를 그의 것과 견주어보고 싶다. 이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나의 세계가 더 풍요로워지리라 확신한다.

시인 '오은' 같은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내 주위에도 한 명쯤 있을 만큼, 그래서 우연히라도 한 번쯤 만나 대화 나눌 수 있을 만큼. 얼마나 즐거울까 그 자리는. 얼마나 재미있을까 나누는 그 대화들이.

나는 이 책을 권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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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자유 - 김인환 산문집
김인환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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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출판사 난다에서 출간된 책들은 다들 비슷하다. 그 내용이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그 책들 모두 하나같이 무게감 있고 울림이 있는 메시지들을 담고 있다는 얘기다. 편안하게 쓴 '산문'의 형태를 하고 있건만, 내공이 있는 작가들이라 그런지 문장 하나에도 허툰 단어들이 박혀 있는 법이 없다. 고심하고 고르고, 숙고해서 선택한 단어들이 즐비하다. 읽기만 해도 공부가 되는 기분, '좋은 문장'의 교본이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이 책 '타인의 자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근래 난다에서 출간되는 산문들의 저자의 면면을 보면 '낯설다' 여길 수 있다. 나 역시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저자의 이름이 생각난다거나, 다른 분야의 책을 통해 어깨너머로만 언뜻 알게 된 이름들이 대부분이었다. 시인 '오은' 님과 '박준' 님, 김용택 시인이 그러했고, 내겐 바로 이 책의 저자 '김인환' 작가님이 더욱 그러했다. 연배가 있으신 분이라 자칫 글이 고루하고 지루하진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지 몰라도 쓸데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이 페이지를 넘길수록 강하게 밀려왔다.

 

독서의 가치를 비롯해서 중세철학산책, 과학기술의 위기와 인문학의 방향 등, 총 11 가지의 다양한 담론들을 소재로 한 저자의 '고견'이 담겨있다. 어정쩡한 생각과 의견, 아니면 말고 식의 추론과 짐작이 아닌, '고견'이자 그만의 '철학'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 단언과 단호함이 그의 글 안에 서려있다. 한 호흡(문단)에 담긴 그의 철학이 읽기에 일면 버겁다 느낄 때도 있지만 이는 분명 즐거운 버거움이다. 그간 외면해온 부족함의 소치임과 동시에, 채워 넣어야 할 빈자리를 발견한 즐거움이기도 하다.

 

나이와 상관없이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나이와 경험은 비례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반면 연륜 없인 결코 쓸 수 없는 글들도 있다. 단순한 경험만이 아닌, 경험과 축적된 지식이 함께 어우러진 글들이 바로 그러하다. 1946년 생인 저자 김인환 님은 70을 넘기신 어르신으로 그가 삶 속에서 느낀 바와 사유를 인문학적 토대 위에 책에 담았다. 넘칠 듯 풍요로운 그의 다양하고도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은 읽는 이를 겸손하게 만든다. 그간 잊고 살았던 '교양'이라는 단어가 떠오른 건 책을 통해 자아를 성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간 이런 책들을 쉬이 발견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그리 많지 않다. 

읽기에 아주 쉬운 글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본디 어떤 배움이란 그리 순탄치 않을 수도 있지 않나. 반대로 쉬운 언어로 쓰인 것들만 읽는다면 머지않아 어떤 한계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이따금일지라도 머릿속에 새로운 영감 집어넣는 시도를 우리는 해야만 한다. 그게 바로 독서의 효용이라 난 믿기 때문이다.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는 책, 과정이 마냥 편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완독하고 난 뒤 난 조금이라도 더 자라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며 느낀 분명한 사실은, 난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 그것만 깨쳐도 난 이 책을 읽은 큰 의미를 찾았다고 말하겠다.

 

넘쳐나는 에세이들의 향연들 속에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독서가들도 있을 것이다. 시류와 상관없이 잘 정제된 책들도 있지만 더러 시류에 편승하고자 하는 에세이들도 적지 않는 요즘이다. 그럴 때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대중적인 책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언젠가 한 번이라도 마주해야 할 책이 아닐까. 그 시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배움의 밀도는 더욱 높아지리라. 느끼는 바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따금 그렇듯 허울뿐인 독후감이 되었다. 감동만 있고 알맹이는 없는.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하여 직접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만 담았다. 그의 사유를 통해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나의 권면에 마음이 동할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타인의자유 #김인환산문집 #출판사난다 #독후감 #신간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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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란 - 박연준 산문집
박연준 지음 / 난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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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 아까운 책들이 간혹 있다.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겨 읽으면서, 줄어들고 있는 페이지가 마냥 아쉬운 책, 한 문장 한 문장을 계속 곱씹게 되는 그런 책 말이다. 박연준 작가님의 산문집, 소란은 내게 그런 책이었다. 두고 두고 즐기다가 아주 나중에 그 느낀 바를 쓰고 싶은 책, 결국 의도적으로 더디 읽기보다 계속해서 여러 번 읽는 방편을 선택했다. 2회독 즈음 했을까, 이제야 나의 느낀 바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든다.


본업이 시인인 저자 박연준 작가님은 이번 개정판 서문에서 '어림'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책이라 했다. 노련과 완숙 보다 그녀는 '어림'을 더 사랑하는 작가인 듯 보였다. 나이 들수록 우린 이 '어림'에서 떨어지려고, 피하거나 못본 척 하려들지만 사실 진짜 삶은 이 '어림'에 깃든 시절에 있는 게 아니냐고, 그녀는 말한다. 나 역시 점차 나이 들어가면서, 또 노인이 되어서도 놓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 중에, 이런 '어림'이 있다. 때론 유치하거나 해맑은 모습으로, 때론 괴팍하거나 졸렬한 모습으로 이 '어림'이 튀어나올지라도, 난 이 '어림'을 끝까지 놓고 싶지 않기에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 머리 속에 들어 있어 어떻게 근사하게 표현할까 고민하던 말들이, 그녀의 언어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걸 읽는 기분. 책을 통해 엿 본 그녀는 달변가도 아니요, 대중을 휘어잡는 연설가 또한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문장에는 감히 흉내내기 힘든 힘이, 담기 힘든 진심이 베어있다. 내가 정의하는 '눈부신 재능'이 담긴 글의 아주 좋은 예시, 그녀의 글에선 범접할 수 없는 '눈부신 재능'의 흔적이 역력하다.


책에서 그녀는 사랑과 일상, 시와 슬픔에 대해 노래한다. 특출날 것 없는 보편적 정서임에도, 그녀는 그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여백 없는 꽉 찬 연주를 들려주기도, 혹은 온통 가득한 여백 속 고요한 독주에 가만히 매진하기도 한다. 책을 읽는 나는 단지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귀울이게 된다. 그녀의 글에는 그런 힘이 있다.


시를 읽는 이유가 뭘까. 이따금 생각할 때 있었다. 본디 시인인 그녀의 글을 통해 지레짐작해보건데, 구구절절 형용하여 설명하고 싶은 말들 중에 부연하고 싶은 말 몇 줌 덜고, 또 거기서 몇 웅큼 덜고 하다보면 진심을 담을 가장 근사한 단어들만 남게 되는 게 아닐까. 이 책에서도 그녀는 멀리 돌고 돌아 가지 않고 책을 읽는 독자들의 마음으로 가는 가장 최단거리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갑정을 설명하는 부연 대신, 감정을 담아낸 단어 그 자체를 쓰려 한 게 아닐까. 감히 넘겨짚어 본다.


언어를 다루는 시인, 그리고 작가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언어를 쉽게 믿지 않는다고 했다. 언어만큼 한계에 부딪히기 쉬운 게 없다고, 느껴지는 감정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몰라 무력감을 느낄 때가 많다며. 그런 그녀이기에 그녀의 글엔 특출나고도 비범한 뭔가가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이 가진 도구의 한계를 이미 아는 사람에게 남은 건, 그 한계를 뛰어 넘어야만 하는 부단함과 치열한 사투만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언어가 이토록 깊은 공감에 이를 수 있는 건, 이런 치열한 고민과 사투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보통 읽은 책에 대해 인상 깊은 몇 구절을 발퀘하곤 하지만, 이 책은 발췌하기가 너무나 어려워 아예 발췌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 발췌가 아니라 원문 그 자체를 읽기를 바라는 마음과 발췌가 없더라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더 담고자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문장과 달리 내 문장은 투박하고 거칠며 비문 투성임에도, 하고자 하는 말에 진심을 담아내려는 노력만큼은 그녀와 경주하듯 부끄럽지 않은 독후감을 쓰고자 했다. 그저, 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보길 바란다. 그 마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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