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결정된 거죠. 내년엔 브라이턴이나가요." 드렐폴 부인은 지금 막 일어난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 채 말했다.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은, 이제 더 이상 내년이란 없다는 의미였다.
다음 주가 있을지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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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신여성에 대해 읽었다. 그녀는 자기가 구여성이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나, 어느 정도 생각을 해본 후 그런 호칭은 로맨스와 뜨개질과 오르가슴 같은 것들과 다를 바 없으며, 정말로 중요한것은 가능한 한 최선을 다해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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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상 내재해 있는 죄악은 그 일을 일으킨 이들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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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파친코 1~2 세트 - 전2권
이민진 지음, 이미정 옮김 / 문학사상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파친코를 여는 첫 문장이다.


표지에 소설의 제목만큼이나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는 이름 이민진 작가의 장편 소설 파친코는 부산의 영도에서 19세기 말을 살아가던 한 부부에게서 시작되어 그들의 가장 약한 첫째 아들 훈이와 결혼식 당일날 처음 만나 부부의 연을 맺는 어린 신부 양진,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건강하고 사랑스러운 딸 순자와 그의 자식 노아, 모자수 그리고 또 모자수의 자식 솔로몬에까지 5대에 이르는 한 집안의 이야기이자, 당시 그들이 살았던 영도와 일본 오사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국제 정세를 아주 밀착해서 보여주는 날 것 그대로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민진과 마찬가지로 한국계 미국인 작가인 이창래의 국내 번역출간본 '영원한 이방인' 역시 표지에 작가의 이름이 (제목보다도 훨씬) 큼지막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사실 파친코의 경우 다른 번역서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작게 표시된 번역자(이미정)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또 이따금씩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영어로 쓰인 글에서 훨씬 더 자주 만나게 되는 수사학적 인칭 묘사 방식을 제외하면 아예 처음부터 한국어로 쓰인 이야기래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이다.


사실 단단하고 생존력 있는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면 이곳 동아시아 문화권 내에서도 떠오르는 작품이 더러 있었다. 펄 벅의 '대지',  하시다 스가코의 '오싱' 같은 것들(물론 대지에서의 '오란'은 오싱이나 순자보다는 그 비중이 덜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 파친코 속 이야기가 좀 더 각별하게 와닿았던 것은 우선은 내가 지금도 발을 붙이고 사는 이 땅에서 벌어진 이야기여서가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이것이 나와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함을 뒤늦게나마 피부로 깨닫게 해준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때로는 이 세계(라는 것이 뭘 두고 말하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가 조금은 더, 지금의 겪어본 적 없는 신세계를 몸으로 부딪히고 있는 2-30대를 제대로 이해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진 적이 있었다. 허나 파친코를 읽고 난 뒤, 나 역시 지나온(혹은 다가올) 세대에 대한 이해가 턱없이 부족했음을 좀 더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영화 '허스토리'에서 문정숙은 그의 딸 혜수에게 시대를 잘 타고나 태어났음에 감사하며 살라는 말을 한다.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덮어놓고, 그의 세심하지 못한 언행을 마음속으로나마 손가락질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현재의 내가 누리고 있는 이 가공품 같은 평화에 깊은 감사를 느껴야 하는 분명한 지점이 존재함을 안다. 나는 운이 좋았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순자의 큰 아들 노아의 소원은 그저 아무 곳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진짜 일본인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그가 품게된 쑥스러운 소원 하나는 어느 옛날로 돌아가, 자연과 책, 아이들 몇 명과 함께하는 매우 수수한 삶을 누리는 유럽인이 되는 것이 되었다. 이제는 그 소원을 위해 굳이 유럽인이 되거나, 목숨을 걸지 않아도 괜찮은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만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백노아가 꿈꿨던 것과 비슷한 소망을 가졌던 적이 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각만 해도 마음이 갑갑해지는 역사를 떠올리고 곱씹는 대신 모든 것을 흘려보내고 평화로운 유럽인이 되고 싶었다. 멀찍이서 흐리게 보이는 장밋빛 풍경의 일부가 되어 시시하게 별 일 없이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노아와 나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 하나가 존재했다. 나는 그가 온전히 누리지 못한 평화를 물려 받았다. 우리가 식탁 위로 멀끔하게 올려지는 고기를 짐짓 고상한 체하며 먹듯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평화란 우리 중 다수가 그 공정에 개입한 적 없는 가공육 같은 평화에 가깝다.


그럭저럭 운이 좋아 지금과 같은 전쟁과 분단의 자취가 거의 사라진 세계에 났다면 그것을 운의 탓으로 돌리고 마는 것으로는 모자라다. 적어도 현재를 살아가는 전쟁과 분단을 겪어본 적 없는 대부분의 한국 시민 모두는, 우리가 뭣도 모르고 품 안에 갖게된 평화를 잘 보전해야 하는 도의적 책임 역시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 누군가 이 별 일 없이 사는 삶에 물려하며 평화를 걷어차고 분란을 조장하고 전쟁에 다가가려는 시도를 한다고 해도 그것이 무사히 무마되고 좌초될 수 있도록 작은 것에서부터 체계 및 체제 마련을 든든히 해야할 것이다. 그에 앞서, 한 번 벌어졌던 비극이 다시 초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민 모두가 배우는/배워야 하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르며 이민진의 파친코 역시 그렇다.

파친코에서는 전쟁 중 일본에 건너가 살며 겪는 재일 조선인들의 삶에 중점을 두고, 그들의 일상에 밀착된 이야기를 주로 들려준다. 소설 속에서 일본인 남학생 무리에 성폭행을 당할 뻔한 순자를 구해주며 한수는,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중국이나 일본에 가면 좋은 일자리가 있다고 떠들어대는 조선인들을 만날지도 몰라요. 당신이 아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런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고 주의를 준다. 가히 수퍼 히어로에 맞먹는 한수를 만난 덕분에 순자는 적시적소에 거처를 옮겨가며 그럭저럭한 삶을 계속 이어가지만 대신, 영도의 하숙집에서 양진과 순자가 함께 살았던 복희·동희 자매를 통해 스치듯 근로정신대와 일본군위안부에 관해 언급한다. 그 애들을 서울에서 왔다 카는 말 잘하는 여자한테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둘 다 만주로 가서 돈을 번다는 생각에 흥분해 있어 가지고 어쩔 수 없었다 아이가. 하숙집을 살 정도로 돈을 마이 벌면 돌아온다 캤는데. 좋은 애들이라 지금도 걱정이 된다. (……) 시장에서 들은 얘긴데 공장으로 일하러 간 여자애들이 어딘가로 끌려가 일본 군인들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다 카대.


순자는 자기에게 지시를 하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던 동희의 동그스름하고 수수했던 얼굴을 떠올렸다. 동희의 얼굴과 표정과 태도,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나서 평소에는 기도를 잘 하지 않는 순자였지만 그 두 사람을 잘 보살펴달라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를 올렸다. 순자는 그  두사람이 군인들에게 끌려가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이삭은 어째서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큰 시련을 겪는지에 대해서 순자가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해주곤 했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견뎌낼 때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고 이삭은 말했다. 왜 자신은 무사한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까? 많은 사람들이 고국에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데 왜 자신은 이 부엌에서 엄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걸까? 이삭은 하나님에게는 계획이 있으시다고 말하곤 했다. 순자는 그럴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래도 사라진 두 자매를 생각하면 그러한 믿음이 조금도 위안이 되지를 않았다. 순자의 하숙집에서 일했던 두 자매는 순자의 두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보다 더 순진했다.

(소설 '파친코' 본문 중)


여기 오신 분들은 제 말 잘 들으이소!

전쟁은 하지 마라, 두 번 다시는―

(영화 '허스토리' 후반부 장면에서 정길이 부르는 노래 중)



우리는 이따금 아주 단순한 진실이 너무 당연하기 때문에 쉬이 지나치기도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말에 의문을 갖거나 혹은 이미 벌어진 참극 전부를 없던 일인양 시침을 떼기도 한다. 사실 전쟁이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 하는 이유와 이미 존재했던 시간들을 지우려는 시도는 온전히 같은 이유에서 기인한다. 그것이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꼭 같은 것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그 어떤 방법으로도 우리 모두의 삶을 되돌려 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삶은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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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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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분히 독자를 꾀는 생활서 같은 인상을 주는 제목이다. 그러나 책을 펼치고 오스카 와일드의 인용, 나는 내가 평문을 써야 하는 책은 절대 읽지 않는다. 너무 많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을 마주하는 순간 독자는 아마 이 다음 장을 넘겨도 괜찮을지에 관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어버릴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저자 피에르 바야르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1을 통해 읽는 이들에게, 개개인이 갖고 있던 '읽는 행위'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책을 읽는다는 말이 갖는 의미를 자잘하고 친절하게 손수 쪼개어 알려주며 어느 문화권 내에서나 일정 수준 이상으로 신성시 되어왔던 책과 독서를 좀 더 삶에 밀착된 일상적 행위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책을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읽고난 후 이 리뷰를 쓴다. 저자의 지론을 거스르는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책에 관한 얘길 듣는 것은 책 읽기 그 자체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책 자체를 다루는 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책을 읽은지도 벌써 상당한 시간이 흘러 대부분의 생각이 휘발된 상태이므로 짐짓 아는 체하며 하나마나한 쉰소리를 늘어놓는 대신 저자가 권유한 대로 지금 떠오르는 책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선 이 책에서는 독서를 근본적인 행위로써 좀 더 세분화하여 바라본다. 단순히 읽었다 / 읽지 않았다가 아니라,


전혀 모르는 책(Unknown Book; UB)

대충 뒤적거려 본 책(Skimmed Book; SB)

어디선가 들어본 책(Heard Book; HB)

읽고난 후 내용을 잊어버린 책(Forgotten Book; FB)


이렇게 넷으로 나눈 후 ++/+/-/-- 와 같이 사적인 평을 붙이는 식인 것이다. 이렇게 하면 읽지 않은 책에 관해 말하기 위해 진땀을 빼지 않아도 좋게 된다. 피에르 바야르가 얼마나 거침없이 이 분류를 사용했냐면 어떤 책에 관한 이야길하면서, 그 책 속에 등장하는 언급 정도에 그칠 것이 분명한, 이 세계에는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책에 관해서도 지나침 없이 같은 식의 이름표를 달아두는 정도다.


책을 읽거나 읽지 않은 상태로만 나누는 것의 유일한 효과란 읽지 않은 상태를 떳떳하게 여기지 못해 입을 다물거나 읽은 척 소모적인 담론을 던지는 상황뿐이다. 인간은 어쩌면 평생에 걸쳐 책을 읽어야 하는데 읽지 않았군. 스스로를 탓하며 살아가는 종족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실제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다가가기보다도 더 먼저 말이다. 저자는 어차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책을 읽을 게 아니라면(이는 분명하게 불가능한 행위이며 다분히 미련한 짓임을 그는 숨기지도 않는다.) 어떤 책도 읽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일일 수 있으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자 우리 대부분은 애매하게 몇 권의 책을 읽으며 살다 죽을 것이라 말한다. 그는 책이라는 매개가 보다 일상적이며 대수롭지 않은 텍스트가 되길 역설적으로 설파한다.


위의 목록에 열심히 읽은 책이라는 분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책에 관해 쉬이 간과하기 쉬운 점 하나는 이것의 원형이 언어로 짜인 것이라는 이유로, 책을 읽는 행위가 그 자체를 고스란히 소화하게 됨을 의미한다는착각에 있다. 요즘은 거의 사지 않지만 나는 한 때 그와 비슷한 마음으로 음반을 샀었다. 손에 잡히는 느낌을 만끽하고 싶어서. 여전히 종이책을 사들이며 느끼는 든든함 역시 그리 다르지 않은 마음일 것이다. 책을 사는 시점과 실제로 그걸 펼쳐 읽는 시점 사이에 찰나에서 무한대까지의 시간 간격이 다양하게 분포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어떤 책을 사는 것만으로도 그 책에 대한 기대감이 적어도 절반 이상은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대충 읽든, 열심히 몇 번을 읽든 어느 쪽도 그 책의 온전한 원형이라고는 말할 수 없음을 저자는 화면책, 내면책 등의 용어로 이름 붙여 설명한다. 이는 책을 웬만한 노력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절대적 존재로 표상한다기보다는 책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며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통해 우리가 재기하게 되는 담론들에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이 지점에 이르게 되면 책 하나를 꼼꼼히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었는가 여부가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음을 쉽게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대단히 많이 팔린 책이든, 대단히 유명한 저자의 머릿속에서 시작된 것이든, 어찌 되었든 그 모든 것들은 그저 책인 것이다. 저자의 아이디어를 통해 책과 독서는 오랫동안 허울 좋게 걸치고 있던 투명한 망토를 벗어내고 마침내 가치 중립적 단어로 거듭나게 된다.


1.     F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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