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좋은 방 - 오직 나를 위해, 그림 속에서 잠시 쉼
우지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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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처음 책을 집어들게 된 것은 순전히 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그림과 친해지는 법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 우선 그림은 책이나 음악과 다르게 시작과 끝 지점이 명확하지가 않다. 그래서 불시에 그림을 마주하게 되면 늘 눈을 굴리며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그림을 보는 나의 인지적 시간은 언제나 0초였다.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나도 괜찮다는 점이 어려웠다.


저자는 방이라는 개념을, 개인에게 사적인 감정을 남기는 여러 공간으로 그 의미를 확대하여 그림을 매개로 독자에 소개한다. 마치 부동산 에이전트처럼,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고 그 방을 이미 차지하고 있는 가구와 소품 그리고 현재의 주인(?)까지 찬찬히 짚어준다. 그 조근조근한 설명을 듣고 있자면 여기로 할게요, 라는 말이 절로 목 끝까지 올라온다. 이번 방이 마음에 들건 마음에 들지 않건 계속해서 지치지 않고 다음 공간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게 이 뷰잉의 가장 매력적인 지점이다.


<혼자 있기 좋은 방>을 통해 저자는 그림으로써 삶을 살아온 여러 화가들과 그들이 남긴 수많은 작품의 존재 그리고 그 중에서도 아주 일부를 프린트된 형태로 독자에게 소개한다. 한 때 나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사진이 보편화된 시대의 '그림의 소용'에 대해 어리석은 의문을 가지기도 했다. 그림과 사진은 모두 프레임 즉, 시선을 가진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그림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좀 더 자유롭고 세밀한 감정이 있음을 뒤늦게야 배워가는 중이다. 생생한 그림 묘사를 읽어내려가며 함께 실린 그림을 들여다보는 루틴에 슬슬 익숙해질 즈음이면 예고도 없이 나타난 그림을 마주하고도 제법 당황하지 않고 어설프게나마 그것을 읽어보려는 시도를 해보게 된다. 그렇게 그림은 읽는 이의 삶 속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리라.


옛 그림들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해듣는 것도 재미가 있었는데, 18세기 영국의 화가 애나 블런던을 필두로 여러 화가들이 함께한 프로젝트 '셔츠의 노래'를 통해 (특히 섬유업계의) 여성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알리고 나아가 이것이 실질적 정책 마련으로 이어져 이들의 노동 환경 개선에 기여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는 3년 동안 실제 작업에 쓴 기간은 3개월이고 나머지 시간은 만찬으로 등장시킬 음식을 맛보는 데 전부 썼다는 일화도 재밌다. 그가 운 나쁘게 후원자의 채근에 못 이겨 단 몇 개월만에 작품을 완성했다고 해도 그의 작품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떨칠 수 있었겠느냐 하면 다소 의문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미 결론을 알고 있기 때문에 태평한 마음으로 내려보는 가정이다.


그림들을 보고 있으면 특히 21세기 이전 작품들의 지나치게 단순한 제목과 소재의 사소함에 사뭇 웃음이 난다. 그런가하면 그 풍경이 우리의 일상에 좀 더 바짝 닿아있을수록 마음을 채우는 위안은 배가된다는 점에는 신기한 기분을 느끼기도 한다. 이 글을 쓰면서 요즘 같이 푹푹 찌는 날씨일 때면 어떤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까 잠시 생각해보았다. 역시 저자가 책에서 제목을 귀띔해 준 이탈리아 출신 화가 주세페 데니티스의 '완전 추워!'가 좋을 것 같다.


                    Giuseppe De Nittis, Che freddo! (1874)


<혼자 있기 좋은 방>은 2015년 시작되어 햇수로 장장 4년이라는 시간을 쏟아 완성된 이야기라 들었다. 운 좋게 참여하게 된 작가와의 만남에서 내심 묻고 싶던 질문은 어떻게 이렇게 유려하고 단단한 이야기를 쓸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에 대한 간접적 대답을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저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의 ''방'에서 보낸다고 했다. 어느 누구보다도 '왜 하필 방인가'에 대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적임자였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번 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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