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 - 구글러가 들려주는 알기 쉬운 경제학 이야기
박진서 지음 / 혜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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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저자 박진서 씨는 경제학자라는 직업이 멋지게 보여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기 시작했고, 눈을 잡아끈 그 멋에 취해 늦깎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저자는 자신처럼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을 생각하며 이 책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에 그들 이야기를 실었다고 합니다.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는 저자 자신이 지닌 지적 빈곤함에 대한 고백입니다. 그렇지만 삶이 힘들어 버거워할 때 지난 몇 년 간 힘껏 자신을 잡아 준 벗이라고 합니다. 박진서 씨는 인생이 죽음을 향하는 느린 걸음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이들의 얼굴을 추억할 거라고 출간 소감을 말하고 있습니다.

목차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는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제학 존재 자체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는 책입니다. 1장 경제학자들을 믿지 마라를 시작해서 차례로 경제학의 모순적인 모습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차례로 경제학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벤덤, 마르크스를 비롯해서 이름도 생소한 헨리 조지 같은 비주류 경제학자의 사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내용 소개

저자는 경제와 관련된 내용으로 책을 준비하려고 할 때 친구에게 경제에 대한 생각을 질문했다고 합니다. 친구는 "경제란 '알고 싶지 않은 것!'이지."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어 저자는 친구가 이런 심드렁한 대답을 한 이유를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의 책 '경제학 강의'의 내용을 빌려 설명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은 일반인들이 이 분야를 들여다보는 것을 꺼리게 만들어

영역 보존을 하는데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학문

사람들은 경제학을 어려운 학문하라고 생각하는데 경제는 우리들의 삶과 현실 그 자체인 학문입니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범하는 학문은 학문으로만 존재하게 만드는 행동은 잘못된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에 의해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진 이론에 현실을 끼워 맞춰 사람들이 일상과 괴리를 느끼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경제는 우리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경제학을 우리와 동떨어진 학문이라는 편견으로 대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경제학자들에 의해 주입된 편견일지도.



'합리적 개인'이란 용어를 들어본 적 있을 겁니다. 고전 경제학에서는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의 합리성을 규정할 때 주관의 개입 없는 경제활동 즉, 인간의 행동에 감정을 거세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인간의 형태를 기계적인 인간형, 완전무결한 인간형으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절대로 합리적인 인간이 아닙니다. 아니 저뿐 아니라 합리적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인과 카페에서 데이트를 할 때 자신의 수입이 수치화된 그래프를 통해 분석합니까? 그리고 분석으로 돈이 충분치 않을 경우 커피를 한 잔만 시키나요. 치즈 케이크는커녕 브라우니조차 외면하십니까? 경제학에서 강조하는 효율성을 따져서 합리에 어긋나면 모순된 행동을 멈춥니까? 경제학 교과서에 의하면 제한된 예산에 달달한 치즈케이크는 불합리의 극치겠네요.

당연히 이렇게 경제학에 나온 이론에 충실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사회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행위의 본질은 소비와 노동, 생산활동을 필수적으로 수반합니다. 사회는 국가와 개인(소비자), 기업, 금융기관(은행)의 서로 연결된 통로의 원활한 순환으로 지탱합니다. 만약 어느 주체가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면 순환은 어그러집니다.


한국경제의 최대 부흥기는 1970년대에서 80년대 일 겁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GDP가 눈부시게 성장하던 때였습니다.

5·16 쿠데타가 일어난 1961년 82달러이던 1인당 국민 총소득은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한 1979년 1,636달러로 20배로 불어났습니다.

수출은 4천만 달러에서 150억 달러로 급상습 했다.

이 기간 한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9.3%에 이르렀다

한겨레 21

경제 성장률만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정권은 아주 훌륭해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삶이 그들이 발표했던 숫자나 통계로 정확히 환원되었을까요? '디어 마이 프렌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국가의 부가 20배로 늘어날 때 열심히 일하던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온 생애를 바쳐 열심히 일한 그들에게 남은 건 고작 서울 변두리의 허름한 집 한 채뿐입니다. 1인당 국민 총소득이 20배가 넘게 늘어났지만, 그들이 일궈낸 열매는 다른 위정자들의 몫이었습니다.

경제성장은 인간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성장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은 꼬리를 길게 늘어뜨린 숫자로 대변되는 눈부신 경제발전보다는 평범한 이들의 작은 역사를 더 소중히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에게 경제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센은 경제학에 빈곤과 불평등, 삶의 질과 행복, 자유와 민주주의, 인간의 주체적 행위까지 반영한 그를 경제학계의 마더 테레사라고 합니다. 그는 주류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 시장 원리로 빈곤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시장원리와 더블어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을 통해 빈곤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기근과 마찬가지로 전반적인 경제 위기 또한 '악마는 제일 뒤처진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는 표현처럼

사회에서 가장 최하층에 속한 사람들부터 희생시키지요

센은 약자의 현실 즉, 빈곤을 개선하기 위해 '경제학의 중심에는 자본이 아니라 사람이 있어야 한다'라는 센 코믹스의 시선을 지금껏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자 소개

저자 박진서. 경제학자가 멋져 보여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해 정치경제학 공부를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경제학자의 힘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경제학자들의 사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들을 제대로 알아야 내 생각을 스스로 가두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991년 7월부터 지금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하고 있다. 섬유 수출 업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운 좋게 IT 업계로 직장을 옮기면서 에릭슨 엘지, IBM, Brocade, Amazon WebService 등을 거쳐 현재는 Google Korea에서 클라우드 관련 일을 하고 있다.

감상평

처음 "악마는 꼴찌부터 잡아먹는다"의 표지를 보고 아주 가벼운 아니 웃음이 담겨 있는 경제학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빨간 배경의 눈사람을 닮은 악마. 동그란 머리 옆에 난 앙증맞은 뿔과 양손에 든 포크와 나이프. 허술한 캐릭터가 그려진 표지를 보고 이 책이 주류 경제학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책일 거라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뒤 서평을 쓰는 지금 새삼스레 표지를 보고 든 느낌은 두루뭉술한 눈사람을 닮은 귀여운 그림체의 표지의 악마가 무섭게 보입니다. 이제는 눈사람 같은 악마에게서 책 속의 신자유주의라는 날카로운 나이프와 포크로 시장만능주의를 주장하여 부조리한 소득 불균형을 초래한 자본가를 떠올렸습니다.

한동안 동기부여나 자기 계발서를 읽었기 때문인지 처음엔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자가 경제학 용어를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 했지만 경제학이 지닌 특유의 경직된 어법과 글마저 합리와 효용을 가미한 함축적인 문장 때문에 머리가 어질했습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첫날엔 1/3도 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날에는 적응이 됐는지 큰 어려움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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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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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궁극적으로 삶의 순간을 감사하며 충실하라고 야생화와 정원사(작가), 신의 목소리를 빌려 독자들에게 격려하고 있다. 삭막한 아스팔트 도로에서도 치열하게 틈을 비집어 삶을 갈구하는 야생화가 바라는 삶을 감사히 여기라고. 시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만 ˝야생 붓꽃˝에 도전하기 바란다. 두께는 얇지만 내용은 무거운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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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붓꽃
루이즈 글릭 지음, 정은귀 옮김 / 시공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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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야생 붓꽃"은 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여성 시인 루이즈 글릭의 시집이다.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등 수많은 상을 수상한 루이즈 글릭은 지난 50년 동안 미국 시 문단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그녀의 작품은 우아함과 냉철함, 인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에 대한 민감성과 서정성 그리고 그녀만이 지닌 직간접적인 은유적인 표현으로 드러내는 통찰력으로 여전히 찬사를 받고 있다.

야생 붓꽃은 시인에게 퓰리처상과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시 협회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야생 붓꽃은 정원에서 영감을 얻어 작성한 시집이라고 한다. 정원에서 꽃이 피어나기까지의 시간을 일시적이면서 순환으로 영원과 끝을 다소 이해하기 모호한 독특한 문장 배열로 보여주고 있다.

내용 소개


나를 삭게 하는 고통에 힘들어하다가 작은 문을 발견했어. 응? 무시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네가 전에 했던 '죽음'을 이야기했던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주위를 봐봐. 변한 건 없어. 나를 스쳐 나무를 훑고 허공으로 치솟는 바람 외엔 해 질 녘의 여린 태양만 대지에 아른거릴 뿐이야.

생각만 해도 끔찍해. 나는 느낄 수 있을 뿐 어두운 땅속에서 묻혀 세상을 볼 수가 없어. 그래. 끝이 났어. 미숙한 상태에서 한치도 움직이던 그런 상태가 끝이 났어. 세상을 막고 있던 대지가 내게 틈을 보여줬어. 그리고 난 봤어. 땅의 진동으로만 보았던 나무와 새를. 너는 다른 세상에서 오는 길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나는 찾았어. 메마른 땅에 어른거리던 노을빛과 바람을. 그리고 나는 저 아래에서 움트는 기운으로 나를 환하게 펼쳤어.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한가요? 나는 알 수 없는 고민거리에 걱정하며 정원을 서성거려요. 누군가에게는 나를 보며 심오한 생각에 빠져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하릴없이 정원을 맴돌 뿐이에요. 쓸데없는 번민으로 짓이겨진 토끼풀이라도 헤집어볼까요. 혹시 네잎클로버를 찾으며 내 인생은 바뀔 수 있을까요?

언제쯤이면 이 고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제 여름이 지나고 곧 단풍이 드는 가을이 다가오는데, 정원 한구석에 있는 시든 나무가 서글퍼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니. 언제까지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며 자기가 원하는 것만 소리치는 거니. 꽉 쥔 손을 펴고 너희를 돌아보려무나. 내가 왜 너희에게 실망하는 지도 모르지 않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서로 다른 천 가지 목소리들로 뒤얽힌 한여름의 고요한 대기마저 쫓는구나.

너희들이 내게 그걸 요구할 권리는 없어. 너희는 나의 분신일 뿐 특별하지는 않아. 자신을 교만에 빠트리지 말거라.

작가와 옮긴이

작가 루이즈 글릭(Louise Elisabeth Glück). 미국의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1943년에 태어났다. 2020년 노벨문학상, 2015년 국가 인문 훈장을 받았다. 2003년부터 다음 해까지 미국 계관시인이었다. 1968년 시집 《맏이》로 등단했고, 1993년 시집 <야생 붓꽃>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을 받았다. 이후 시집 열네 권을 발표했고 에세이와 시론을 담은 책 두 권을 지었다. 예일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이 정은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미문학 문화학과 교수로 우리 시를 영어로, 영시를 우리말로 옮겨 알리는 일에 정성을 쏟고 있다. 말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며 시가 그 말의 뿌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산문집《딸기 따러 가자》와 《바람이 부는 시간》이 있다.

감상평

읽기 수월치 않은 시집이었다. 모호하고 어색한 시어의 배열에 시집을 펼친지 얼마 안 돼 졸음에 빠질 정도였다. 과장스럽게 들릴 수 있겠지만 두께가 얇을지라도 4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보다 읽기가 버거웠다. 시 한 편조차 완독하기 힘에 겨웠다. 그래서 어렵사리 시집을 다 읽고 부록처럼 딸려온 해설본을 펼쳐봤다. 작품이 어려우니 해설마저 난해했다. 오랜만에 접해본 멀미 나는 퀴퀴한 문과향이 진하게 났다.

대충 해설본을 읽어보니 "야생 붓꽃"에는 여러 목소리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야생화지만 도시인에게는 잡초의 목소리, 인간 또는 작가의 목소리 그리고 신의 목소리. 이렇게 세 명의 화자가 있다고 했다. 해설을 다 읽어보고 다시 시를 읽어보니 그런 것 같다. 왠지 예전 학창 시절에 수학 답지를 미리 넘겨본 것처럼 민망하다.

작가는 궁극적으로 삶의 순간을 감사하며 충실하라고 야생화와 정원사(작가), 신의 목소리를 빌려 독자들에게 격려하고 있다. 삭막한 아스팔트 도로에서도 치열하게 틈을 비집어 삶을 갈구하는 야생화가 바라는 삶을 감사히 여기라고. 시에 대한 관심이 있는 분만 "야생 붓꽃"에 도전하기 바란다. 두께는 얇지만 내용은 무거운 시집이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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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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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는 1929년 겨울에 "게르버"를 쓰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 1월 27일부터 2월 3일까지 단 일주일 동안 그는 신문기사를 통해 열 건의 학생 자살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8학년 졸업반을 통해 독일의 세계대전 패전 후 경직되고 위압적인 사회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위압적인 교수를 내세워 권위주의적인 위정자를 묘사했기 때문일까, 1933년 첫 출간을 했을 때 나치 정부의 금서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후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는 유대인 작가로서 박해를 받다가 결국 1938년 스위를 경유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내용 소개

20세기 초 독일은 고등학교 졸업시험에 대한 압박이 심했던 모양이다. 마치 졸업시험을 실패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졸업반 8학년들은 상당한 시험 스트레스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졸업시험이 중요한 만큼 학교의 교수들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들은 막강한 권력으로 학생들을 위압하며 군림했다. 마치 신처럼.


그리고 게르버가 있는 교실로 교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프투어 쿠퍼다. 일명 쿠퍼 신이라고 불리는 수학 담당 교수로서 누군가에는 명예로운 수학 교수로, 누군가에게는 "멍청이" 또는 "악당"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게르버는 쿠퍼가 상당히 껄끄러웠다. 예전에 그에게 건네 인사를 했지만 게르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를 무시했고, 언젠가는 비꼬기까지 했었다.

"학생은 진급 시험의 부담을 잘 극복한 것 같군요"

게르버의 아버지는 쿠퍼가 사랑하는 아들을 괴롭히고 꼬투리를 잡아 비난할게 뻔히 보여서 게르버를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게르버는 '그렇게 심하게 굴지 않을 거라며, 자신은 아직 노력을 제대로 해본 적 없다'며 어설픈 자신감으로 자신을 대변했다. 물론 자신도 알고 있었다. 쿠퍼가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만에 하나 졸업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수선했다.

아르투어 쿠퍼는 자신이 갖지 못한 권력과 고결함에 결핍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제한된 권력이 있는 학교를 소중히 여겼다. 쿠퍼는 혹시 학기가 새롭게 시작되고 학생들이 자신의 권력을 무시할까 두려워했었다. 그래서 그는 종종 수많은 불면의 밤을 끔찍한 환상으로 괴로워했다. 자신의 권력이 반항적인 학생에게 항거당할까봐 쿠퍼는 알 수 없는 대상을 증오하며 두려워했다.

학기가 시작되고 조용한 교실의 문을 소리 나게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에게 허용된 왕좌 교탁에서 왕을 맞이한 신하 같은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착석"

일사불란하다. 아직 쿠퍼의 제국은 굳건했다.

쿠르트는 자신의 미숙한 행동으로 인해 발생했던 사건을 책임지기 위해 우등생과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학교 시험 불합격을 치명적인 치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실패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도. 그런 쿠르트의 달라지려는 모습을 보고 게르버의 아버지는 쿠르트에게 격려와 걱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낙관주의를 펼치는 네가 옳기를 바란다.

하지만 말해주고 싶은 게 하나 있구나.

인생이 학교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믿는다면 그건 잘못이다.

게르버

쿠르트는 자신을 나병환자 취급하며 예전의 자신이 자신이 했던, 거리를 두는 동료들의 모습에 씁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 존재감이 없던 벤다가 결석을 했다. 벤다는 한 번도 사고를 치거나 결석을 한적 없는 모범생이었다. 친구들은 그가 단순히 심한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후 교수가 벤다의 죽음을 알렸다. 충격에 빠져 있는 학급에 교수가 벤다와 친했던 친구는 누구냐고 물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벤다의 죽음이 애석했지만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그와 친했었나? 아니면 저기서 웅성거리는 친구들은....? 사방이 얼음같이 차고 무정하고 냉정하다. 치명적인 독을 가진 살모사처럼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졸업시험에 아이들은 서로 타인이었다. 리자가 보고 싶다.

지은이와 옮긴이

지은이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1933년 첫 소설 《게르버》가 나치 정부의 금서 판정을 받은 이후 유대인 작가로서 박해를 받다가 1938년 스위스를 경유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1940년 다시 미국으로 도피해서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번역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연극 비평가로 일했다.

작품으로는 자신의 부정적 학교 체험을 그린 소설 《게르버》를 비롯해 《선수단, 스포츠 인생》 《복수는 나의 것》 《저 여기 있어요, 아버지》 《욜레스 아주머니 혹은 일화로 보는 서양의 몰락》 《그것 역시 빈이었다》 등이 있다.

옮긴이 한미희. 이화여자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모모》 《그림형제 동화집》 《에피 브리스트》 《카산드라》 등이 있다.

감상평

소설 게르버는 호흡이 길다. 끈질기게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여 독자를 몰입하게 한다. 그래서 글을 읽다 보면 질식할 것만 같았다. 들끊는 호르몬의 명령에 충실히 행동하다가 의도치 않게 꼬투리를 잡혀 허둥대는 주인공. 그런 미숙한 주인공을 사냥감을 덫에 몰듯이 은밀히 올가미를 걸어 조정하는 능숙한 사냥꾼 쿠퍼. 순위가 정해진 조작된 경주를 하듯이 비극적인 상황이 눈에 아른거려 더욱 숨이 막혔다.

고전소설이고 국가와 시대가 달라서 읽기에 약간의 어색함이 보였다. 하지만 예전에 내가 겪었고 지금 게르버 같은 아이들이 겪고 있을 숨 막힐 듯한 갈등과 번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명작은 명작이다. 한때 금서로 붉은 색칠을 했었지만 지금은 독일의 교과과정에 선정된 소설이다.

소설의 부제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가 서글프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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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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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게르버는 호흡이 길다. 끈질기게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여 독자를 몰입하게 한다. 그래서 글을 읽다 보면 질식할 것만 같았다. 들끊는 호르몬의 명령에 충실히 행동하다가 의도치 않게 꼬투리를 잡혀 허둥대는 주인공. 그런 미숙한 주인공을 사냥감을 덫에 몰듯이 은밀히 올가미를 걸어 조정하는 능숙한 사냥꾼 쿠퍼. 순위가 정해진 조작된 경주를 하듯이 비극적인 상황이 눈에 아른거려 더욱 숨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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