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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버 -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지음, 한미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0월
평점 :

책 소개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는 1929년 겨울에 "게르버"를 쓰기 시작했다. 그해 겨울 1월 27일부터 2월 3일까지 단 일주일 동안 그는 신문기사를 통해 열 건의 학생 자살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한다. 8학년 졸업반을 통해 독일의 세계대전 패전 후 경직되고 위압적인 사회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위압적인 교수를 내세워 권위주의적인 위정자를 묘사했기 때문일까, 1933년 첫 출간을 했을 때 나치 정부의 금서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후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는 유대인 작가로서 박해를 받다가 결국 1938년 스위를 경유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내용 소개
20세기 초 독일은 고등학교 졸업시험에 대한 압박이 심했던 모양이다. 마치 졸업시험을 실패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졸업반 8학년들은 상당한 시험 스트레스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졸업시험이 중요한 만큼 학교의 교수들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들은 막강한 권력으로 학생들을 위압하며 군림했다. 마치 신처럼.

그리고 게르버가 있는 교실로 교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프투어 쿠퍼다. 일명 쿠퍼 신이라고 불리는 수학 담당 교수로서 누군가에는 명예로운 수학 교수로, 누군가에게는 "멍청이" 또는 "악당"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게르버는 쿠퍼가 상당히 껄끄러웠다. 예전에 그에게 건네 인사를 했지만 게르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를 무시했고, 언젠가는 비꼬기까지 했었다.
"학생은 진급 시험의 부담을 잘 극복한 것 같군요"
게르버의 아버지는 쿠퍼가 사랑하는 아들을 괴롭히고 꼬투리를 잡아 비난할게 뻔히 보여서 게르버를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게르버는 '그렇게 심하게 굴지 않을 거라며, 자신은 아직 노력을 제대로 해본 적 없다'며 어설픈 자신감으로 자신을 대변했다. 물론 자신도 알고 있었다. 쿠퍼가 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만에 하나 졸업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어수선했다.
아르투어 쿠퍼는 자신이 갖지 못한 권력과 고결함에 결핍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제한된 권력이 있는 학교를 소중히 여겼다. 쿠퍼는 혹시 학기가 새롭게 시작되고 학생들이 자신의 권력을 무시할까 두려워했었다. 그래서 그는 종종 수많은 불면의 밤을 끔찍한 환상으로 괴로워했다. 자신의 권력이 반항적인 학생에게 항거당할까봐 쿠퍼는 알 수 없는 대상을 증오하며 두려워했다.
학기가 시작되고 조용한 교실의 문을 소리 나게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에게 허용된 왕좌 교탁에서 왕을 맞이한 신하 같은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착석"
일사불란하다. 아직 쿠퍼의 제국은 굳건했다.
쿠르트는 자신의 미숙한 행동으로 인해 발생했던 사건을 책임지기 위해 우등생과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에게 학교 시험 불합격을 치명적인 치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실패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도. 그런 쿠르트의 달라지려는 모습을 보고 게르버의 아버지는 쿠르트에게 격려와 걱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낙관주의를 펼치는 네가 옳기를 바란다.
하지만 말해주고 싶은 게 하나 있구나.
인생이 학교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믿는다면 그건 잘못이다.
쿠르트는 자신을 나병환자 취급하며 예전의 자신이 자신이 했던, 거리를 두는 동료들의 모습에 씁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일어났다. 평소 존재감이 없던 벤다가 결석을 했다. 벤다는 한 번도 사고를 치거나 결석을 한적 없는 모범생이었다. 친구들은 그가 단순히 심한 감기에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며칠 후 교수가 벤다의 죽음을 알렸다. 충격에 빠져 있는 학급에 교수가 벤다와 친했던 친구는 누구냐고 물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벤다의 죽음이 애석했지만 가슴이 아프지는 않았다. 나는 그와 친했었나? 아니면 저기서 웅성거리는 친구들은....? 사방이 얼음같이 차고 무정하고 냉정하다. 치명적인 독을 가진 살모사처럼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졸업시험에 아이들은 서로 타인이었다. 리자가 보고 싶다.
지은이와 옮긴이
지은이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1933년 첫 소설 《게르버》가 나치 정부의 금서 판정을 받은 이후 유대인 작가로서 박해를 받다가 1938년 스위스를 경유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1940년 다시 미국으로 도피해서 생계를 위해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번역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연극 비평가로 일했다.
작품으로는 자신의 부정적 학교 체험을 그린 소설 《게르버》를 비롯해 《선수단, 스포츠 인생》 《복수는 나의 것》 《저 여기 있어요, 아버지》 《욜레스 아주머니 혹은 일화로 보는 서양의 몰락》 《그것 역시 빈이었다》 등이 있다.
옮긴이 한미희. 이화여자대학교 독문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고, 홍익대학교에서 박사 후 과정을 마쳤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모모》 《그림형제 동화집》 《에피 브리스트》 《카산드라》 등이 있다.
감상평
소설 게르버는 호흡이 길다. 끈질기게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여 독자를 몰입하게 한다. 그래서 글을 읽다 보면 질식할 것만 같았다. 들끊는 호르몬의 명령에 충실히 행동하다가 의도치 않게 꼬투리를 잡혀 허둥대는 주인공. 그런 미숙한 주인공을 사냥감을 덫에 몰듯이 은밀히 올가미를 걸어 조정하는 능숙한 사냥꾼 쿠퍼. 순위가 정해진 조작된 경주를 하듯이 비극적인 상황이 눈에 아른거려 더욱 숨이 막혔다.
고전소설이고 국가와 시대가 달라서 읽기에 약간의 어색함이 보였다. 하지만 예전에 내가 겪었고 지금 게르버 같은 아이들이 겪고 있을 숨 막힐 듯한 갈등과 번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명작은 명작이다. 한때 금서로 붉은 색칠을 했었지만 지금은 독일의 교과과정에 선정된 소설이다.
소설의 부제 '어느 평범한 학생의 기막힌 이야기'가 서글프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제 주관대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