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잘 먹고 있나요?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42
김혜정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담임은 내게 누구와 사느냐고 물었다.

나는 "혼자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고아는 아니에요"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그 말을 하면서 약간 헷갈렸다.

열여덟 살도 고아에 속하는지, 아니면 열여덟 살은 고아라고 하기에 너무 나이가 많은지 말이다.

 

엄마가 죽은 후 홀로 지내던 재규의 앞에 엄마와 싸우고 고시원으로 나가있던 누나 재연이 나타난다. 그리고 식당으로 돌아와 다시 행복식당을 운영해 보겠다고 낑낑댄다. 은아이모까지 돕겠다고 나서지만 나, 재규는 그런 누나의 모습이 썩 탐탁치 않다. 멋대로 메뉴를 바꾸고 일을 진행하고, 자기 말은 듣는 족족 무시해버리는 데다가 사기까지 당해버리는 재연에게 화가 나기까지 한다. 서로에게 서툴고, 살갑지 못하던 두 남매는 오히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고, 엄마를 머물게 하고 또 떠나보내며 식당 문을 연다.

 

 

우리는, 그리고 종종 청소년 소설에서는 고아라는 모습을 한없이 안타깝고 불쌍하게, 반항의 이유로, 또는 꼭 극복해야할 편견쯤으로 여긴다. 그러나 사실 어른과 아이의 어중간한 경계에 서있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두 남매에게 고아라는 단어는 그저 낯설고, 이 세상에 없는 엄마를 어느 순간 잊기도 하며, 때때로 사무치게 그리워하기도 하며 묵묵히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청소년 소설에서 틀에 박힌 또다른 이름은 부모다. 부모님은 늘 살갑게, 때로는 묵묵히 자식을 챙겨주며 모든 자식들은 결국 부모님들의 사랑을 깨닫고 그 품으로 돌아간다는 그 흔한 클리셰를 이 소설에서는 만들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는 재연재규 남매에게 빛이기도 했지만 그늘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물론 대화가 부족했고 엄마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던 철없는 남매 스스로의 탓이기도 했지만 엄마의 고생을 고스란히 보고 자라서 자신이 원하던 것을 말하지 못하고 엄마의 기대에 한없이 무거워만 하던 두사람이 짐을 훌훌 털어내고 제 길을 찾아가는 것이 기특했다.

 

 

 

누나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누나의 몸의 떨림이 내게 전해졌다.

오랫동안 누나의 목을 막고 있던 사탕이 툭 튀어나왔다. 사탕이 떼구루루 굴러간다.

사탕은 구르고 또 굴렀다. 사탕을 잡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사탕을 다시 누나 입에 넣어주어야 누나가 울음을 멈출 것이다.

하지만 사탕은 잡히지 않았다.

손에 닿을 듯하던 사탕은 내 손안에서 빠져나갔다. 사탕은 구르면서 작아졌다.

그리고 누나의 울음소리도 점점 작아졌다.

 

 

아무리 서로 말이 안 통한다고 화를 내보고 때로는 지나칠 만큼 말을 아끼는 남매지만 한번 말이 트였다하면 툭탁거리고 다투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힘들 때 곁에 있는 유일한 존재가 서로에게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사실 읽는 내내 마음이 갔던 부분은 너무나 순둥이인 주인공 재규였는데 정말로 세계에 흩어진 고흐를 보는 것이 꿈이라는 이 열여덟 남자아이의 문장인 듯해서 더 재밌게 읽어나간 것 같다.

 

 

현실에 없을 것만 같은 착한 아들이자 누나를 오히려 챙기는 이 듬직한 남동생도 어쩔수 없는 어리숙한 열여덟 남고생이다. 그 사실이 재규를 더 사랑스럽게 만든다. 수지의 마음을 몰라 오랜시간 삽질을 하고, 충동적으로 누군가를 때리기도 하고 꿈을 찾아 훨훨 나는 친구를 부러워하기도 하고 진모와 성적과 외모는 반비례 한다며 여학생의 외모를 살피는 뜨끔한 일부터 엄마 생각에 펑펑 울기도 하는 그런 아이다. 결국 자신이 즐거워하던 미술을 다시 한번 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재규뿐만이 아니다. 우리 또래의 모든 아이들이 하는 걱정을 재규는 좀더 특별했던 상황 속에서 한 것 뿐이다.

 

 

 

인마, 원래 그래. 딱 부러지는 건 없다.

수학이라고 딱 정해지냐? 그 뭐냐, 파이. 3.14.

그 뒤로도 계속 줄줄이 따라오잖아. 인생은 원래 애매한 거다.

그러니까 결단력이 필요해. 3.14 뒤를 딱 잘라내는 것처럼 말이다.

 

 

재연과 재규 남매의 앞에는 너무나 긴 길이 있고 그 방향과 가는 법을 알려줄 중요한 사람이 한명 사라졌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혼란이 줄어들었고 자신을 솔직히 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 그들에게는 내일이 있고, 문을 열어야 할 행복식당이 문이 있고, 지켜봐 줄 많은 사람들이 있고, 엄마가 맺어준 서로가 있다. 자신의 인생의 첫발을 내딛은 두 남매의 행복식당에서 나도 한끼 싹싹 비우면서 잘 먹고 오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