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의 엄마는 모성신화에 가까울 정도로 헌신적이고 게다가 게으른 아버지에게도 따뜻한 사람이기에 이 영화에 나오는 엄마(고두심분)처럼 입 걸고 억척스러운 게다가 착해서 무능한 아버지를 구박하는 그런 타입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이 영화의 딸(전도연분)이 욕잘하고 부끄러운 줄 모르는 엄마와 바보스러울만치 착해서 무능한 아버지에게 절망하며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부끄러워하고 본인을 절대로 가정을 만들지 않겠다고 혹은 엄마같이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부분에서는 대한민국 대부분의 딸이 공감하지 않을까싶다. 자라면서 누구나 생각하는 '엄마처럼 살진 않겠다'.... 엄마가 헌신적인 경우에도 혹은 억척스런 경우에도 70년대에 태어난 우리딸들의 대부분은 조화롭게 살아가는 부모의 전형을 본 적이 거의 없다. 가부장제의 이데올로기가 국가주의와 어울려 공고했던 그때만 해도 그 자체가 불가능했을까? 사실 모든 일은-가사일부터 돈버는 일까지- 엄마가 다하면서도 사회적인 권한은 남자에게 있던 시대에.... 이영화에서도 보증을 서는 일이 부부의 동의가 있어야만 가능했다면 엄마는 그렇게까지 모질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던 나영은 아픈 아버지의 가출로 여행을 포기하고 어쩔수 없이 아버지를 찾아나서게 된다. 아버지를 찾아나선 섬에서 시대가 바뀌며 나영은 젊은 시절의 엄마와 함께 지내게 된다. 현재의 억척스러운 엄마가 맑고 수줍은 모습의 20대초반의 모습이고 현재의 무능한 아버지가 해맑고 따뜻한 모습의 20대이다. 그들이 수줍고도 애틋하게 만들어 나가는 사랑의 모습은 나영을 감동시킨다. 과거의 엄마와 만나고 나영은 내면에서 엄마와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게 되고 현재의 남자친구도 자신의 범위안으로 끌어들일수 있게 된다. 어떤 마음이었을까... 한편으로 이해가 되는듯하면서 한편으로 아리송하다...
젊은시절의 맑고 깨끗한 젊은이들이 세월의 흔적으로 모질고 무능해지는 모습은 여전히 속상하고 나영이 결국은 어떤 이유든 엄마와 화해하고 본인도 가정을 이루는 모습은 공감을 자아낸다. 우리들도 엄마처럼 살기 싫다고 하지만 어느 순간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현실적인 이유든 여러가지 상황으로 결국은 대부분 가정을 이루게 되지 않던가...?
전도연, 고두심의 인상깊은 연기와 우도의 아름다움 그리고 박해일의 해맑은 모습으로 기억에 오래남는 영화가 될 것 같다.